1. 개요
宸翰帖. 조선 시대 1600년경에 왕실 인물들인 효종, 현종, 숙종, 장렬왕후, 인선왕후, 명성왕후 등이 효종의 셋째딸 숙명공주에게 보낸 친필 한글 간찰 66통을 모아놓은 서첩인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과 이들이 또한 효종의 넷째딸 숙휘공주에게 보낸 친필 한글 간찰 36통을 모아놓은 서첩인 숙휘신한첩(淑徽宸翰帖)을 합쳐 부르는 명칭. 본디 두 서첩 모두 대한민국 보물 제1629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었으나, 서첩의 전래상황과 수록 자료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각 서첩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별도 명칭, 번호를 받아 각각 보물 제 1946호, 보물 제1947호로 변경 지정 되었다.2. 내용
숙명신한첩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효종, 현종, 인조계비 장렬왕후, 효종비 인선왕후가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66통이 수록된 서첩이다. 장렬왕후가 보낸 것이 2통, 부왕 효종이 보낸 것이 9통, 모후 인선왕후가 보낸 것이 53통, 동생 현종이 보낸 것이 2통, 올케 명성왕후가 보낸 것이 1통이다.숙휘신한첩은 원본 책명이 신한첩곤(宸翰帖坤)이며, 현재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효종, 현종, 숙종, 효종비 인선왕후, 현종비 명성왕후, 숙종비 인현왕후가 숙휘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36통이 수록된 서첩이다. 부왕 효종이 보낸 것이 2통, 모후 인선왕후가 보낸 것이 18통, 오빠 현종이 보낸 것이 3통, 올케 명성왕후가 보낸 것이 1통, 조카 숙종이 보낸 것이 6통, 질부 인현왕후가 보낸 것이 5통 등이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신한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선왕후언간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신한첩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인선왕후언간
- 한국어 위키백과 : 신한첩
- 두산백과 : 신한첩
- e뮤지엄 : 왕과 왕비가 쓴 편지 모음
4. 보물 제1946호[1]
『신한첩 - 신한첩 곤(宸翰帖 - 宸翰帖 坤)』은 효종(孝宗, 1619~1659), 현종(顯宗, 1641~1674), 숙종(肅宗, 1661~1720),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 현종비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비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가 효종의 넷째딸 숙휘공주(淑徽公主)에게 보낸 한글어찰을 모은 것이다. 숙휘공주는 연일정씨 인평위(寅平尉) 정제현(鄭齊賢)과 혼인하였다. 수록된 어찰은 효종 2통, 현종 3통, 숙종 6통, 인선왕후 18통, 명성왕후 2통, 인현왕후 5통 등 모두 36통이다. 처음의 장황 그대로 남아 있는데, 표지에 “신한첩 곤(宸翰帖 坤)”이란 제서(題書)가 쓰여 있듯이 원래 건·곤(乾·坤) 2첩이었다.
이 첩은 앞쪽에 실린 정제현의 후손 정진석(鄭晉錫, 1779~?)의 1802년 한글 지문(識文)을 통해 제작내력을 알 수 있다. 그중 “건(乾)인 즉 사조(四祖) 어필(御筆)이시오 곤(坤)인 즉 육성(六聖) 언찰(諺札)이시라” 했는데, ‘사조 어필’은 국립청주박물관의 효종·현종·장렬왕후·인선왕후 어찰을 가리키며, ‘육성 언찰’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효종·현종·숙종·인선왕후·명성왕후·인현왕후 어찰을 가리킨다. 또 한글 필치가 국립청주박물관의 “○○대왕어셔”나 “○○왕후어셔”라고 쓴 것과 같아 이들 첩이 건·곤으로 함께 장황되어 짝을 이루었다고 추정된다.
이 어찰첩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 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이 첩은 앞쪽에 실린 정제현의 후손 정진석(鄭晉錫, 1779~?)의 1802년 한글 지문(識文)을 통해 제작내력을 알 수 있다. 그중 “건(乾)인 즉 사조(四祖) 어필(御筆)이시오 곤(坤)인 즉 육성(六聖) 언찰(諺札)이시라” 했는데, ‘사조 어필’은 국립청주박물관의 효종·현종·장렬왕후·인선왕후 어찰을 가리키며, ‘육성 언찰’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효종·현종·숙종·인선왕후·명성왕후·인현왕후 어찰을 가리킨다. 또 한글 필치가 국립청주박물관의 “○○대왕어셔”나 “○○왕후어셔”라고 쓴 것과 같아 이들 첩이 건·곤으로 함께 장황되어 짝을 이루었다고 추정된다.
이 어찰첩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 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5. 보물 제1947호[2]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은 효종(孝宗, 1619~1659), 현종(顯宗, 1641~1674), 인조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 1624~1688),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가 효종의 셋째딸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보낸 한글어찰을 모은 첩이다. 숙명공주는 청평위(淸平尉) 심익현(沈益顯, 1641~1683)과 혼인하였다. 수록된 어찰은 효종 7통, 현종 2통, 장렬왕후 2통, 인선왕후 54통 등 모두 65통이다. 현재 제1면은 따로 떼어져 액장(額裝)되어 있으며, 제2면은 분실되었으나 사진은 남아 있어 원래 66통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어찰첩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신한첩(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한글서체 변천과정에서 고체(古體)에서 궁체(宮體)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대표적인 필적이 다수 수록되어있어 관련분야 연구 자료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어찰첩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신한첩(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한글서체 변천과정에서 고체(古體)에서 궁체(宮體)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대표적인 필적이 다수 수록되어있어 관련분야 연구 자료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한첩 - 신한첩 건(宸翰帖 - 宸翰帖 乾)』은 효종(孝宗, 1619~1659), 현종(顯宗, 1641~1674), 인조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 1624~1688),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가 효종의 셋째딸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보낸 한글어찰을 모은 첩이다. 숙명공주는 청평위(淸平尉) 심익현(沈益顯, 1641~1683)과 혼인하였다. 수록된 어찰은 효종 7통, 현종 2통, 장렬왕후 2통, 인선왕후 54통 등 모두 65통이다. 현재 제1면은 따로 떼어져 액장(額裝)되어 있으며, 제2면은 분실되었으나 사진은 남아 있어 원래 66통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어찰첩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신한첩(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한글서체 변천과정에서 고체(古體)에서 궁체(宮體)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대표적인 필적이 다수 수록되어있어 관련분야 연구 자료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첩은 표지가 개장되었지만 첩 크기나 수록 어찰에서 계명대 소장품과 짝을 이루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어찰첩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신한첩(宸翰帖)», 오죽헌시립박물관의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서 현종,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의 한글어찰을 수록한 «어필첩(御筆帖)»등과 함께 조선왕실의 한글어찰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한글서체 변천과정에서 고체(古體)에서 궁체(宮體)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대표적인 필적이 다수 수록되어있어 관련분야 연구 자료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첩은 표지가 개장되었지만 첩 크기나 수록 어찰에서 계명대 소장품과 짝을 이루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