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02:37:05

쌍검(무예도보통지)


雙劍
무예도보통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권 찌르는 무기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鐺鈀), 기창(騎槍), 낭선(狼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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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4권 치는 무기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
1:흔히들 왜검교전이라고 이야기하나 무예도보통지에는 '교전' 이라고만 되어 있다. }}}

1. 개요
1.1. 설명1.2. 현대의 조선 쌍검술의 현황1.3. 문화적인 가치와 매체에서의 활용
2. 기록
2.1. 순서2.2. 기본 자세(格法)
2.2.1. 지검대적세(持劍對賊勢)2.2.2. 견적출검세(見賊出劍勢)2.2.3. 비진격적세(飛進擊賊勢)2.2.4. 초퇴방적세(初退防賊勢)2.2.5. 향우방적세(向右防賊勢)2.2.6. 향좌방적세(向左防賊勢)2.2.7. 휘검향적세(揮劍向賊勢)2.2.8. 진전살적세(進前殺賊勢)2.2.9. 오화전신세(五花纏身勢)2.2.10. 향후격적세(向後擊賊勢)2.2.11. 지조염익세(摯鳥殮翼勢)2.2.12. 장검수광세(藏劍收光勢)2.2.13. 항장기무세(項莊起舞勢)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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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술서 무예도보통지 제3권에 실린 '두 자루의 검으로 구사하는 검법'이다.

참고로 말을 타고 벌이는 마상쌍검도 함께 전해온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상쌍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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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명

조선시대 사료에서 쌍검이 처음 언급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1594) 9월 3일 기사다.
전교하기를,

"옛날 사람이 쌍검(雙劍)을 쓴 지는 오래이다. 염민(冉閔) 같은 사람은 왼손에 쌍인모(雙刃矛) 오른손에 구극(鉤戟)을 잡고 군사를 공격하였고, 고황제(高皇帝) 의 맹장 왕필(王弼)은 쌍검을 휘두르며 위오왕(僞吳王)의 군사를 맞아 싸우러 갔으니, 이것이 그 한 예이다. 지금도 중국인은 쌍검을 많이 쓴다. 전에 의주(義州)에 있을 때 어떤 중국인이 쌍검을 잘 사용하는 것을 보았는데 푸른 무지개가 떠서 그의 몸을 감싼 듯하였고 그 민첩한 상황이 마치 휘날리는 눈이 회오리바람을 따라 돌 듯하여 바로 쳐다볼 수 없었으므로 마음에 늘 기이하게 여겼었다. 전에는 평양 사람도 꽤 전습하였었다. 또 들으니 중국인은 말 위에서 쌍검을 쓴다고 하는데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에는 여러가지 무예를 모두 익히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쌍검의 사용을 가르치지 않아서는 안 되지만 그 일이 마땅한지의 여부를 참작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훈련 도감이 회계하기를,

"쌍검의 사용은 다른 기예보다 가장 어려우므로 중국 군사 중에도 능숙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기사(騎射) 같은 것은 반드시 익숙하게 말 달리기를 익혀 사람과 말이 호응하여야만 좌우로 활 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살수(殺手) 중에도 그 기술(技術)에 능숙한 자는 많이 얻기 어렵습니다. 그 중 몇 사람에게 오로지 쌍검을 가르치게 한다면 재능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차례로 교습하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의주까지 피난 갔을 적에 중국인이 펼치는 쌍검술을 보고 뻑간 선조는 병사들에게 쌍검을 가르칠 것을 당부하는데, 실제로 6개월 뒤인 선조 28년(1595) 3월 23일 기사에서 명나라 군관을 불러 쌍도술을 교습시키므로 이때 쌍검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9월 3일 기사에 선조 본인이 지나가듯이 '평양인들은 옛날부터 쌍검을 익혀왔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전에도 조선 고유의 쌍검술은 존재했던 듯하다.[1] 다만 무예도보통지는 선조 시대로부터 200년이나 지난 뒤에 간행된 서적이고 무예제보에는 쌍검이 수록되지 않았기에 선조대에 전래된 쌍검술이 무예도보통지의 것과 동일한 무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무예도보통지 쌍검술과 같은 기예는 이후 어느 중국 무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본국검과 마찬가지로 조선과 중국의 쌍검술을 조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인들이 볼 수 있는 조선쌍검술은 무예도보통지의 기록을 충실히 재현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현대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기록을 충실히 재현하는 칼춤 내지는 과거의 제식무예를 고증하는 리인액트 문화재로서 첩종 같은 행사에서 시연되고 있다. 전용 도검이나 수련방법까지 보존되어 있는 중국과 동남아의 쌍검술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멋과 아름다움에서는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검술 연구자들이 좋아하는 검술이다. 민족무술이라며 홍보하기에 좋은 편이고, 중+중 사이즈를 다루는 조선시대의 쌍검술은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어내기에 매우 적합하다.

덕분에 2010년대부터 한국 무술단체나 문화공연에서 무예도보통지의 쌍검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보면 꽤 많다.

조선의 환도는, 일본도와 중국검의 중간적인 중+중(中) 사이즈이다. 따라서 쌍검술의 몸 동작을 처럼 아름답게 다듬는데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표준형 환도 이상의 진검을 이용한 검술을 접해봤다면, 이런 사이즈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유의미한 타격을 해내는 기술이 엄청난 고난이도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2] 덕분에 아름답고 멋있는 문화재를 복원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이상의 발전이나 복원은 꽤 난해한 기술이라는 평가가 많은 편.

특징을 기술하자면, 좌우 칼의 소임이 딱히 공격 방어로 나뉘지 않으며, 대부분의 동작이 칼 2개가 교차로 튀어나가면서 회전하는 과 같은 형태이므로, 화려한 공방일체의 춤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도 무예도보통지의 쌍검술을 잘 구사하는 사람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여, 그런 연구자들의 결과물을 복제하는 이상의 발전과 보급은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3]

최근의 조선쌍검술의 복원에 있어서의 특징이라면, 현대 한국 무술인들의 특유의 영향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중국과 동남아의 쌍검술이 원거리에서의 교전보다는 양손에 쥔 칼을 이용하여 온몸을 닦아내듯한 나이프파이팅 방식의 빈틈이 없는 연타와 물흐르는듯한 신체 보호 위주로 기교를 발달시켰다면[4] 현대 한국의 쌍검술 복원은 대나무 베기, 원거리 타격처럼 동세를 크게 보여주기 위한 공연성 위주의 동작이 두드러진다.

이는 애초에 조선무술이 단절되었던 문화재의 복원이기도 하거니와, 실전적인 무예도보통지의 그림과 같은 연무를 정확히 구현하는 문화재 중심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외국에도 고무술과 쌍검술은 현대에 무술홍보를 위해서 복원한 창작무술이 많은 만큼, 대다수의 무술에서 시대가 단절된 현대에 들어선 무술의 복원이란 현실적으로는 창조에 가깝다.

참고로 쌍검술을 처음 제식화한 선조는 어지간히 쌍검에 꽂혔는지 왜란이 끝난 후 충주 수비전에 큰 공을 세운 파주목사 김명윤(1564∼1609)을 치하하면서 쌍검을 하사하기까지 했다. 김명윤유품쌍검은 그 형상이 대단히 특이한데, 일반적인 환도의 칼날에 또 다른 작은 칼날이 나뭇가지처럼 붙어 있는 형태다. 하사품으로 내려진 도검이 으레 그렇듯 실전용이 아닌 의례용으로 여겨지지만 비슷한 구조인 호접쌍도처럼 충분히 실전에서 쓸 수 있긴 하다.

1.2. 현대의 조선 쌍검술의 현황

조선쌍검술의 실전성을 복원하는데는 말이 많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의 사열의식을 재현하겠다는 리인액트로서는 현재의 수준에서도 의미가 충분하고, 또한 그런 의미에서는 최대한 원전을 건드리지 않고 정확한 시연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무술단체에선 이 쌍검술을 토대로 독자적인 전통무술을 복원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전통기록을 현대 문화재로 부활시키겠다는 발상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고, 성공적인 예시도 매우 많다.[5] 다만, 아직까지는 원전 기술자가 복원해놓은 연무형을 베끼는 이상의 발전은 없는지라, 대다수의 단체들이 칼춤의 복제 정도만 가능하면서 자신의 장삿속을 챙기겠다며 원전을 환빠스럽게 왜곡하고 역사관이 전혀 다른 단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 많았던 편이다. 사실 현대에는 화려한 공연성 위주의 스포츠 무예로서 가닥을 잡고 복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몇몇 무술단체들이 고구려 무술이니 신라 무술이니 하는 쌍팔년도 환빠 같은 주장에 이 문화재를 많이 팔아먹었던지라, 2000년대 초반까지 부쩍 관심을 받았던 조선쌍검의 이미지가 최근에는 시궁창이 되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린 감이 있다.[6]

여담으로, 현대 한국의 쌍검술 시연은 대나무 같은 튼튼한 타겟을 베어내는 쌍검술의 타격력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참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것은 검술시연이라면 튼튼한 타겟을 베어내는 시참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단체들나 관객들의 경향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위력만큼은 증명되었다지만 이런 큰 동작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무술보단 공연을 중심적으로 복원되었고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무기술이 사람을 살상하는 기술인 만큼 사람 대 사람의 대결에서 실제 무기술의 위력을 보여주는게 한계가 있기에 물체 베기를 통해 기술의 실제적 위력을 보여주는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베기를 할때 대부분 실전에서는 사용이 제한적인 동선이 긴 동작의 기술이 주류가 되고 정작 검술에서 중요한 검날의 방향전환 및 공격과 방어의 연결동작은 제대로 구현이 안된다는게 문제점이다.

그밖에는, 연무의 재현 자체는 이미 연구자들이 많은 결과를 보여주어서 쉬운 편이나, 대련을 하기에는 수련과 연구 자체가 상당히 난해하다. 1개의 칼을 쓰는 조선세법조차 독립성을 얻으려면 한 세대쯤 무술인을 갈아넣어야 한다는데, 조선 쌍검술은 2개의 칼을 이용한 기본적인 보법과 전술, 근육발달 및 수련체계,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단체 등등, 새로운 창작무술을 하나 만들어야할 정도의 노력과 자본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국은 검도인들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서, 이런 쪽을 연구할 바에는 그냥 일본 검도를 단련하는 것이 무술계에 도움이 된다는 합리적인 판단도 한몫한다.

또한, 중+중 사이즈의 환도를 사용하는 조선쌍검술은 칼의 형태부터 연무에는 유리하지만 독립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는 매우 고난이도라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는 연무가 아닐때는 힘의 분배부터 심히 난해하기 때문이다. 중국, 동남아의 쌍검술들이 소+소(小) 조합이면서도 유용한 타격력을 지닌 것은, 쌍검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형태로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쌍검술이 발달한 지역에선 쌍검술의 동작 뿐만 아니라 체중 활용에도 합리적으로 개조한 형태가 함께 전승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다.[7]

각 항목의 지적처럼 (1) 유의미한 칼의 형태 (2) 실질적인 수련 방법 등등, 검술로서의 심층적인 논의는 시들해졌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는 상태. 대체로 복원 문화재이므로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을 중시하는 의견이 많으며, 남아있는 쌍검 유물이나 일부 환도 유물처럼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쌍검술에 더 적합한 칼이 사용되었을 거라는 주장도 간간히 있다. 다만 어차피 문화재 재현을 중심으로 하는 검술이기 때문에 후자의 의견은 극소수. 애초에 쌍검술은 대련 자체가 마이너하다.

최근의 한국 쌍검술 복원은 태권도나 택견이나 심지어 스포츠 검술을 도입하는 등등, 별별 신기한 집단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무술단체에서 쌍검술을 연구한다든지, 다른 무술과의 연결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 셈. 사실 외국의 고무술이란 것들도 다양한 무술을 수련해본 연구자와 동호회들이 현실성을 기반으로 복원한 클럽 문화인 경우가 많은데, 뒤처진 우리 쪽에선 이를 진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3. 문화적인 가치와 매체에서의 활용

조선의 쌍검술은 3cm 간격이 나는 환도를 쓴다는 루머들이 널려 퍼져있다. 3~5cm 정도 차이가 나는 환도를 사용하면, 상대가 두 칼의 약간의 간격 차이를 눈치채기 힘들어서 아차 하는 사이에 당하는 수가 있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무근의 낭설이다. 이러한 3cm 간격 같은 루머를 쓰지 않더라도, 조선 쌍검술은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다.

미니어쳐 업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원형제작사인 페리 형제가 이 조선의 쌍검술 팬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워해머 히스토리컬 시리즈로 전국시대의 일본 무사들을 다룬 작품을 만들면서 그들과 대적하는 진영으로 조선군을 등장시켰는데, 조선군 자료라는 게 국내에서도 접하기 힘든 물건이 대부분인지라 잘 만들긴 했지만 고증상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고 이를 아쉽게 여긴 국내의 한 미니어쳐 게임 팬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며 자료를 모아 보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원형사로서 제작하려는 작품의 본국에서 자료를 보내주니 좋다며 받아들인 건데, 그 자료 중에 무예도보통지가 끼어 있었고, 여기에 쌍검은 물론 마상쌍검까지 들어있는 걸 보고 "아니, 쌍검술을 정규군 편제에 집어넣은 군대가 있단 말야? 그것도 마상쌍검이라니!!!"라며 흥분해서 마구 만들게 되었다고. 나중엔 만드는 모든 조선군 병과에 쌍검을 들려주려는 걸 말려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할 정도.

사실 대단히 특이한 것은 없는데, 멋있어서 관심받는 전통검술이다. 어차피 현대에는 전통검술의 실용성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검술단체라면 학생들도 흉내낼 수 있는 공연 종목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

단지 멋있기 때문에 종종 조선시대의 대표 검술처럼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련의 매커니즘도 연구되지 않았고, 조선을 다루는 사극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당연하지만, 시간과 배우의 한계가 있는 사극에서 복잡하디 복잡한 쌍검술은 무술동작으로 연출하기가 엄청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배우기가 어렵다는건 문화적으로도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닌 셈.

지금은 첩종 같은 지역행사에 출연하는 무술단체가 있다면 꽤 어렵지 않게 어떤 형태인지 구경을 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를 다루는 한국 만화[8]와 관련작품 등에서, 특정한 캐릭터의 검술 실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쌍검술이 종종 사용된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2자루의 환도를 이용하는 쌍검술 장면이 꽤 유명하다.

2. 기록

2.1. 순서

본문은 문화 컨텐츠 닷컴이나 실제 공연을 벌이는 무술단체들에서 정확한 정보를 볼 수 있으며, 질답을 얻고 싶다면 그러한 쪽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일:LfOb0wa.jpg
오른쪽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줄을 따라가는 순서대로 나열했다.
  1. 지검대적세
  2. 견적출검세
  3. 비진격적세
  4. 초퇴방적세
  5. 초퇴방적세
  6. 초퇴방적세
  7. 향우방적세
  8. 향좌방적세
  9. 휘검향적세
  10. 향우방적세
  11. 향좌방적세
  12. 진전살적세
  13. 전일타[9]
  14. 오화전신세
  15. 오화전신세
  16. 오화전신세
  17. 향후격적세
  18. 지조염익세
  19. 장검수광세
  20. 항장기무세

2.2. 기본 자세(格法)

2.2.1. 지검대적세(持劍對賊勢)

파일:qkysg8G.gif
본국검법의 지검대적세와 마찬가지로 검을 들고 상대와 마주한 자세이지만 본국검법과는 달리 오른 편 칼을 오른 어깨에 지고 왼편 칼을 이마 위에 들고 선다.

2.2.2. 견적출검세(見賊出劍勢)

파일:KHEIVcM.gif 두 칼을 사진과 같이 들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한 걸음 뛰어오르는 자세로 쌍수도의 견적출검세와는 연원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2.2.3. 비진격적세(飛進擊賊勢)

파일:sFrwrzG.gif 날듯이 나아가 도적을 치는 자세로 두 칼을 사진과 같이 들고 오른 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친다.

2.2.4. 초퇴방적세(初退防賊勢)

파일:Bu6nwG3.gif
오른편 칼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편으로 세번 돌아 물러온다.

2.2.5. 향우방적세(向右防賊勢)

파일:lo0JEaF.gif

2.2.6. 향좌방적세(向左防賊勢)

파일:X9j4Bsx.gif

2.2.7. 휘검향적세(揮劍向賊勢)

파일:iVzxPZS.gif
양손에 든 칼로 좌우를 씻고 앞으로 나아간다.

2.2.8. 진전살적세(進前殺賊勢)

파일:3EJ8ULY.gif
왼쪽 칼을 오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친다.

2.2.9. 오화전신세(五花纏身勢)

파일:q3ApSRc.gif

2.2.10. 향후격적세(向後擊賊勢)

파일:S8HkZ36.gif

2.2.11. 지조염익세(摯鳥殮翼勢)

파일:gJSWr7b.gif
오른 편 칼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왼쪽 칼을 오른 쪽 겨드랑이에 끼고 한 번 소리치며 오른편으로 돈다.

2.2.12. 장검수광세(藏劍收光勢)

파일:nhZFEqS.gif
왼쪽 칼을 오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쪽 칼로 오른발을 쳐들고 안으로 스쳐 한걸음 뛰어 좌우로 씻어 오른 발을 들어 왼쪽손과 왼쪽 다리로 앞을 한번 찌른다.

2.2.13. 항장기무세(項莊起舞勢)

파일:G1bYYs8.gif
왼쪽 칼로 오른편을 한번 씻어 대문을 만든다.
[1] 실제로 평양 기생은 20세기까지 진주와 더불어 쌍검을 활용하는 검무로 유명했다.[2] 같은 무게의 쌍수도월도를 휘두르는 것보다 제곱수는 더 어렵다. 물론, 현존하는 조선시대 쌍검술의 복원만으로도 시참 같은 고정목표에 대한 살상력은 낼 수 있으니, 조선 환도의 사용법에 동반되는 보법을 잘 사용하면 위력의 재현만큼은 불가능하지 않은 상태.[3] 높은 난이도는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즉 연구자로서 도달하기 위한 수준이 그만큼이나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고, 충분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인적자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가 된다. 얼마나 제대로 쌍검술을 하는 사람이 적은지를 보자면, 실전성에 있어서 대중적인 매뉴얼과 레시피가 만들어지기 힘들다는건 별로 긍정적인 의미라고 보기는 힘들다.[4] 사실 검술의 근본을 따지자면 이러한 신체보호 방식으로 몸을 씻어내는 쌍검술의 개념이 자연스럽고, 그런 점에서 중국과 동남아의 쌍검술은 실전성과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5] 애초에 중국이나 동남아 뿐만 아니라, 서양이나 일본의 쌍검술을 비롯한 복원무술도 과거의 기록이나 유물을 토대로 현대에 걸맞게 실용성을 복원한 창작무술이 대다수이다.[6] 하지만 '우리는 무예도보통지 기반으로 환도와 조선쌍검을 스포츠 형식으로 다듬어서 써보겠습니다', 하는 솔직하고 과학적인 단체도 꽤 있긴 하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파벌의식이 적고 과학적인 발상을 지닌 연구집단이나 동호회들이 클럽 문화를 중심으로 무술을 복원하는데 유리한 편이다.[7] 중국제 쌍검술에 사용되는 도검은 환도와 사이즈는 비슷하더라도 얇은 칼몸 덕분에 빠른 움직임이 가능하고, 동남아의 칼리 아르니스는 특유의 단봉 테크닉이나 특수한 손잡이를 활용하여 환도 못지 않은 리치를 지닌 쌍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8] 야뇌 백동수 등등[9] 전일타(前一打)는 그냥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라는 뜻이고 초퇴방적세와 오화전신세의 경우 연속으로 3번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