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23:00:48

아라시(아이돌)/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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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 비하 논란2. 우익 논란3. 5x10 Anniversary Tour 리허설 유출
3.1. FNS : 미궁‘의’ 러브송
4. K-POP 관련 그래미 어워드 인터뷰 논란5. Face Down : Reborn 리릭비디오 표절 의혹

1. 한국인 비하 논란

파일:두부퀴즈.jpg

2017년, '한국에선 어떤 일을 한 사람에게 두부를 주는 관습이 있다. 무엇을 한 사람일까?'라는 퀴즈에 오노 사토시가 "성형(整形)"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한국에 대한 무지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며 불쾌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2. 우익 논란


아라시가 우익이라는 의견이 자주 거론된다. 일본인이 전쟁 피해자를 언급하는 모습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 자체가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히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은 아라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본 연예인 팬들이 안고 가야 할 딜레마이다. 우익 논란이 있는 아라시의 필모그래피는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이 있다. 전쟁에 관련한 필모그래피 참여 자체만으로 우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익 논란이 있는 부분에 관해서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아라시가 우익이라는 의견을 취합해 보았다.

1. 2013년 24시간 테레비, 아이바 마사키의 전쟁 참여 할아버지 인터뷰, 당시 사쿠라이 쇼의 눈물 및 이 인터뷰 자체에 대한 아라시의 방송 출연
  • 24시간 테레비 아이바 마사키 편은 아이바 마사키의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이후 ‘일본인이 전쟁에서 죽고, 그 전쟁이 비참하고 참혹했다’라는 장면은 나오나, 그 이후 ‘생존자 할아버지가 뉴기니아에 사죄하고, 뉴기니아의 건축을 도와주고, 전쟁병의 유골을 환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전사자들의 본국 송환에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전쟁을 도발한 일본 정부의 잘못과 당시 전투의 참상을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 동료들의 유골 송환작업을 죽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이 우익 논란은 아라시가 전쟁 참여자에 대한 인터뷰 하나 가지고 우익이라고 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인터뷰는 사실 일본 정부의 잘못을 질타한 것이다. 다만 이 이후에도 전쟁 참여자에 대한 인터뷰는 아주 많이 했다.


2. 참고로 아라시의 아이바 마사키는 2005년 연극 ‘제비가 있는 역’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세계가 구분되어 있고, 일본인 이외에는 수용소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붙잡혀 가기도 하는. 타카시마(아이바 마사키의 역할) 군은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깊게 알려고 한다든가, 뭔가 행동하려는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가 없어요. 즉,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실제로 그런 세계가 되었다고 한다면, 저도 타카시마 군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어요. 그렇지만 전쟁은 좋지 않은 것이 확실하고, 모두 그것을 알고 있죠. 문제는 단순하지 않고, 그걸 일반 시민들도 알았다면 전쟁따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잘 모르니까 가르치려는 것은 그만둬!라면 안 되네요. (중략) ... 이 연극을 관람하고 전쟁이라든가, 인종차별 문제가 조금이나마 머릿속에 남게 된다면, 지금의 저로서는 그것이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이후 라디오 방송.
“이야~ 나 좋은 일 했구나. 왜냐하면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야, 이건. 있죠, 싫은 일은 전하는 건 굉장히 싫어요. 그렇죠? 모르는 게 좋을 때가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나에게 사연을 보내 준) 이 선생님이 생각한 건 초등학교 선생님인데요. 그게 예전에 전쟁이라든가, 일본인이 아시아인에게 한 짓을 제가 (학생들에게) 전했다고. 제 연극을 보고 매우 훌륭했다고.

이 인터뷰와 라디오 방송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3. 사쿠라이 쇼의 드라마 ‘블랙보드, 시대와 싸운 교사들’ 출연.
  • 이 드라마는 일본 우익이 욕한 드라마로 유명하다. 다음 장면과 같이, 블랙보드 드라마는 전쟁의 끔찍함을 알고, 군국주의를 반성하자는 내용이다.
파일:3f31e8ca513676b8902284f05c411d01.jpg

4.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출연.
  • 그와 관련된 인터뷰
“제 자신이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고
저의 부모님도 모르는 세대이고
우리 할아버지는 전지에 가셨는데
살아계셨을 적에 그 시절의 이야기는 하고 싶어하지 않으셨어요. 전쟁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모르는 세계가 오면 좋겠어요.”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람객의 주관이 담길 수밖에 없기에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구리바야시와 사이고(니노미야 카즈나리 역할)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인물들로 설정되어 나온다.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 혹은 네티즌 리뷰로는 휴머니즘 주제의 영화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전쟁 배경 시대 자체가 제2차 세계 대전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영화 출연 자체 여부를 떠나, 이 영화는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5. 내한 당시 ARASHIC 홍보 포스터 Sea of Japan 표기 논란
  • 일본해 표기가 된 것은 맞다. 내한 당시 기삿거리로 문제가 되자, SM엔터테인먼트가 CD 재킷을 수정. 다만 전 세계 지도의 대부분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현실과 미국 공식 뉴스, 구글 지도도 Sea of Japan이라는 표기를 한다고 하여 그들 모두를 친일 또는 우익이라고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음은 마츠모토 준의 2006년 9월 9월 라디오 준스타일 中

“에~ 한국의 이거 뭐라고 읽을까요? 동해, 동쪽의 바다라고 써 있는데요. 응. 헤에~ 한국의 바다는 이렇게 예쁘구나!”

6. 사쿠라이 쇼의 The Black Eyed Peas - Where is the Love 랩 피쳐링 가사 논란

그 빌딩이 무너지는 날 생각했습니다.
당하는 쪽의 이유는 무엇인지
신이라는 건 결국 이런 것인가
정의가 가진 의미 왜 이런 건가
전쟁터에 사는 이 소녀
아버지는 전쟁터로 아침에 또
오늘도 생각해 가지 마 생각해 가지 마
아침해를 같이 보는 것을 기대해
'''다시 도쿄 재판적인 승자와 논리
받아들일 수 없는 약자의 항의'''
위협을 써서 녀석들은 웃어
오늘도 총알의 분만큼 돈다발이 휘날려
오른쪽이던가 왼쪽이 아냐
그저 내가 알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한 가지
Where’s the love y’all? (I don’t know)
hey, It’s a small world yo-
people killing People dying
Children hurted you hear them crying
Can you practice what you preach
Would you turn the other cheek?
(영어 부분 후략, 원곡과 영어 부분 같음)

아라시의 모든 우익 논란 중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이다. 먼저 우익이라는 주장의 논리이다.
  • 도쿄 재판 승자의 논리는 미국(승자)이 일본(패자)을 그들의(미국의) 잣대로 심판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로 인해 받아들일 수 없는 약자의 항의는 일본의 억울함을 말하는 대목이므로, 이 가사는 전형적인 일본의 우익 진영 논리를 보여주고있다.


다음은 우익이 아니라는 주장의 논리이다.
  • “도쿄 재판의 승자의 논리 = 일본의 군국주의(실제로 가장 높은 천황과 몇몇 장군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로 인해 받아들일 수 없는 약자의 항의(피해를 봤던 아시아국).” 그에 뒷받침하는 근거가 시작할 때 “그 빌딩이 무너지는 날 생각했습니다. 당하는 쪽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 문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9.11 테러로 피해를 본 미국”, 논란이 되는 대목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약자인 일본을 상대로 심판하는 미국.” 이 두 문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모순된 형태가 나온다는 것. 즉, 노래는 중동을 수없이 능욕했으면서 9.11 테러로 피해자인 척, 약자인 척하는 미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것. 이 경우에 미국의 위선을 꼬집기 위해 도쿄 재판을 끌어들였다고 보는 것. 만약 곧이곧대로 해석하게 된다면, 갑자기 도쿄 재판 얘기가 나오는 가사의 자연스러움이라든지, 위에서 표현한 미국의 모습과 아래에서 표현한 미국의 모습이 다른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익 가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일본인의 평균적인 역사관과 본인이 한번도 아시아의 피해에 대해 얘기하지않은 것을 생각하면 "약자의 항의"가 피해국이라고 생각하는것은 말이 안된다는 모순도 있다.

사쿠라이 쇼가 이 랩을 작사할 때, 이스라엘 친구와 징병제와 전쟁,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기억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한다.[1] 즉, 본인이 밝힌 작사 의도는 9.11 테러의 원인 및 결과, 대응방식에 대한 미국의 태도 비판인 원곡 가수 The Black Eyed peas의 뜻을 이어, 여러 전쟁의 원인에는 사랑의 부족과 그 결과에 강자의 논리로만 채워지는 현실 비판이라고 한다.



7.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다수의 우익 영화, 드라마 참여
니노미야는 유난히 우익 성향의 영화나 드라마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은 것에 "혹시 성향이 그 쪽인가"하는 얘기가 많다.
특히 본인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 주둔군이었는데, 2022년 수용소에서 사랑을 이라는 영화 홍보를 돌 때 유난히 할아버지[2]를 언급하며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일본을 그리워하던 일본인[3]들의 아픈(...) 역사를 거듭하며 말해 더더욱 그러한 의문을 강화시키고있다.

3. 5x10 Anniversary Tour 리허설 유출

2009년 10주년 콘서트 5x10 Anniversary Tour의 리허설 몇 개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립싱크 논란으로 라이브 실력에 문제가 있다던 아라시의 리허설을 보니 CD를 삼켜 버린 듯한 라이브 실력.
오노 사토시의 솔로 무대인 ‘흐림 뒤 쾌청’ 리허설 영상이 가장 유명하다. 영상 초반에서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무대를 배경으로 노랫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팬들은 “노래만 틀어 놓고 동선을 맞춰 보는구나” 하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영상 중반부 이후 오노 사토시가 나오면서 카메라 앞을 향해 돌아보는데,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반전.

3.1. FNS : 미궁‘의’ 러브송

2011년 12월 FNS 가요제에서 아라시의 迷宮ラブソング 무대가 라이브 무대 에러로 구설수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실(과 의견)만 적자면
  • 멤버들의 인이어가 착용되지 않는 상태였다. (모니터 불륨이 없는 상태, 밴드에서 모니터 불륨이 없으면 가수는 본인의 목소리 체크가 안 된다.)
  • 오케스트라가 먼저 시작되고, 드럼 연주가 들어갔다. (드럼은 모든 악기 -가수의 목소리-의 박자를 책임진다.)
  • 마이크의 메인 불륨이 작았다. (모니터 불륨이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메인 불륨이 작으면, 본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 마이크 하단 파인 부분을 잘 보면 ON의 초록 불빛이 아닌 OFF의 빨간 불빛이 켜져 있다. (파이지 않는 부분은 초록 불빛이다.)
  • 그런데 아라시와 미나미 코우세츠와의 콜라보 무대 ‘妹’에서는 마이크 하단 파인 부분이 초록 불빛이었다.[4]

반응
아라시의 실력(라이브, 콘서트 포함)과 너무 달랐던 나머지 팬들 사이에서는 “후지 테레비의 실수(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사고였다.) 때문에 노래를 못 할 상황이었음에도 끝까지 웃으며 끝내 줘서 고맙다”고 반응했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몰랐던 팬 외의 사람들의 반응은...(이하 생략) 이 방송이 끝나고 후지 테레비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트위터에서 사과만 진행하여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하였다.[5]

후지 테레비의 전체적인 에러가 의도가 있었는지, 실수였는지는 모르는 상황.
종합해 보면 아라시가 평소보다 잘 불렀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곡을 완곡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4. K-POP 관련 그래미 어워드 인터뷰 논란

With films like Parasite and groups like BTS catching major attention and support in the U.S. and across the world, K-POP and Korean music and pop culture have become true global cultural phenomena. In your experience, has this growth in K-POP increased or impacted the popularity of J-POP? Are you seeing new fans discovering your music and J-POP music and culture through their exploration of K-POP?
미국과 전 세계에서 기생충 같은 영화와 방탄소년단 같은 그룹이 큰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K-POP과 한국 음악과 대중문화가 진정한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당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K-POP의 성장이 J-POP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는가? 새로운 팬들이 K-POP 탐사를 통해 당신의 음악과 J-POP 음악과 문화를 발견하는 것을 보고 있는가?
ㅡ 2020년 9월 25일 그래미 어워드에서 진행한 인터뷰

라는 질문에 마츠모토 준은 "난 K-pop이 J-pop에 영향력을 꼭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말은, 나는 분명히 K-pop을 듣고 음악과 춤 양쪽 모두에서 특정 그룹의 스킬 수준에 정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분명하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보다, 내가 그 모든 현상을 만들어낸 유산의 일부라는 것에 영감을 받았단 것이다. Johnny & Associates로 대표되는 창업자 겸 탤런트 매니저 쟈니 키타가와는 50년 이상 춤과 노래를 하는 보이밴드를 프로듀싱 해왔다. 그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쌓아올린 모든 유산이 이제 다른 공간에서도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감동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은 쟈니가 촉발시킨 일들을 즐길 수 있다. 내가 그 유산의 일부가 된 것이, 그것이 계속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다. J-pop과 K-pop 사이에는 어떠한 영향이나 경쟁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개인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끼고 볼 수 있는 이 조직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라고 답변했다.

헌데 그냥 J-pop과 K-pop은 무관하다 정도에만 그쳤어도 될 답변을, K-pop을 띄우면서도 약간 자존심이 상한건지 아니면 진짜 평소 신념인지 알 수 없지만 굳이 자신의 소속사인 쟈니스가 사실상 오늘날 K-POP의 세계적인 인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버려서 여러 K-POP 팬들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했다. 사실 마츠모토 준의 발언은 한국보다도 해외의 K-POP 팬들에게 더 불쾌하게 해석될 여지가 큰데, K-POP 팬들은 YGJYP 등 K-POP 대형 기획사들의 음악적 뿌리가 미국의 대중 음악에서 기원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쟈니스가 튀어나오니 황당할 법도 하다.

현재로서 K-POP에 남은 J-POP, 작은 의미로 아라시의 흔적을 찾아 보자면 팬라이트 중앙제어, 그리고 한국 아이돌 산업을 일으킨 선구자 중 한명인 SM이수만과 DSP의 이호연이 초창기에 아라시의 소속사 쟈니스의 운영 시스템을 꽤 벤치마킹했다는 것이 있다.[6] 근데 이런 운영방식 또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의 아이돌 보이 그룹 뉴 에디션뉴 키즈 온 더 블록을 거쳐서 VOXK-POP 다큐가 지적했듯 결국에는 잭슨 파이브를 만들어 낸 1960년대의 모타운 레코드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만 덮어놓고 부정만은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한국인들에게 SM과 같은 대형 기획사들이 J-POP의 영향을 받지 않았냐고 하면 의외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스템이나 상술은 많은 부분 일본을 차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 아이돌 산업의 양대산맥이던 SM과 DSP 모두 다 JPOP 아이돌 산업을 참고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80~90년대까지는 방송이나 가요산업 전체가 일본 업계를 많이 참조하고 무수하게 벤치마킹했었던 것은 맞다. 당시의 무대를 비교해 보면 편집, 자막, 구성, 구도 등 모든 것이 일본 방송의 영향이 확연하다. 또한 사실 한국인이 라이브로 볼 수 있었던 최초의 아이돌 그룹인 소녀대 역시 워낙 옛날이라 지금은 언급하는 사람이 없지만 소방차 등 DSP 아이돌 그룹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도 사실이다.

2010년대 이전까지는[7] 다른 나라 노래도 많이 카피했지만 일본 음악도 엄청나게 많이 카피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간접적으로 K-POP 아이돌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아이돌 시장만 봐도 한국 아이돌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소방차의 경우 일본 아이돌을 엄청나게 모방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1세대 아이돌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미국 쪽이었던 것은 맞지만 아무래도 일본 아이돌들도 여러가지로 참고한 것도 사실이다. SM만 시스템을 따라했다고 하기에는 당시 투탑이던 대성기획의 젝스키스도 V6를 참고해서 블랙키스와 화이트키스를 만들었고 핑클 역시 쟈니스를 많이 참고하기도 했다. 기타 다른 그룹들도 쟈니스나 J-POP을 이것저것 많이 참고했다.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멤버 갈등으로 사라진 혼성 아이돌 그룹 ZAM의 경우 쟈니스는 아니지만 일본 그룹인 ZOO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당시 흑인음악 댄스는 일본 쪽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일본 영향도 많이 받았으며 한동안 꾸준히 배워왔던 것도 사실이다.[8]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시스템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며 한 장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다만, 음악적 지향성이나, 뿌리, 퍼포먼스 등 K-POP의 근간을 이루는 콘텐츠들은 J-POP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다.[9]

이렇게 찾아보면 J-POP이나 쟈니스에 영향받은 부분이 적다고 할 순 없긴 하지만, 1세대 아이돌들 SM과 DSP 등이 가장 많이 카피했던 핵심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디어와 골자였다. 일본 쪽을 적지 않게 따라한 것은 맞지만 몇몇 돈벌이를 제외하면 핵심적인 아이디어나 지향점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서 왔지 쟈니스나 J-POP과는 별개라고 볼 수 있다.[10][11] 서태지는 90년대 초반 매우 젊은 나이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했고 그룹운영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국에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꾸렸으며 음악적으로는 락그룹 시나위 베이스 출신에 흑인음악까지 섞었고, 나이도 젊었기 때문에 가요계의 일본 유산에 그렇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12] 뭣보다 쟈니스 역시 상술되었듯이 거슬러 올라가면 모타운까지 가기 때문에, 그렇게 따지면 쟈니스도 그냥 모타운의 유산이 될 뿐이기에 자기 소속사에만 시야가 매몰된 식견이 짧은 얘기다. 쟈니스가 K-POP에 나름대로 영향을 준 것은 맞고 쟈니스 소속 사람으로서는 그런 것만 보이거나, 그게 커 보일 수도 있겠지만 K-POP이 J-POP의 유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마당에 쟈니스의 유산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른바 소방차 등 0세대 아이돌, 젝스키스나 HOT 등 1세대 아이돌에게 JPOP의 영향력은 나름대로 강하긴 했으나 그것이 반드시 쟈니스 계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시간이 거듭될수록 쟈니스 스타일과는 큰 관련이 없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 특히 시부야계의 영향력도 약해지는 2010년대부터는 일반적인 상호작용 수준 말고는 JPOP이 KPOP에 특별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만한 부분은 없다.

이런 와중에 뜬금없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이 마치 쟈니 키타가와의 영향으로 댄스 그룹 음악이 발전되었다는마냥 발언한 것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수긍할법한 데이터라도 제시하지 않는 한 그냥 깊은 생각도 안해보고 실언한 셈이 된다.[13][14]

그리고 이 항목에서 JPOP이 KPOP에 나름대로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기입한 것은 맞으나 2020년 시점에서 KPOP이 JPOP에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특히 2020년 시점에서 KPOP은 JPOP에 영향력이 별로 없는데 쟈니스의 영향력은 KPOP과 아시아에[15] 혁혁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부인할 가치도 없는 웃기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시기도 2020년 12월 활동 중단을 하기 직전인 9월에 저런 발언을 해버려서, 사실 앞으로도 딱히 관련 인터뷰는 더 추가될거 같진 않기에 아라시 팬들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다. 굳이 저런 발언을 안했으면 이런 논란에 거론될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5. Face Down : Reborn 리릭비디오 표절 의혹


Face Down : Reborn의 리릭비디오DAY6Zombie 가사 뮤직비디오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참고로 좀비의 가사 뮤직비디오는 5월 21일, 아라시의 face down : Reborn의 공개 날짜는 6월 26일 공개되었다.

DAY6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인스피(INSP)는 이미 지난 6월 해외 팬들을 통해 두 뮤직비디오의 유사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두 뮤직비디오가 너무나 비슷해서 놀랐고, ‘우리가 비디오를 잘 만들어서 일본 국민 아이돌마저 따라 해 줬구나’라고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1] 쇼비트 라디오 中[2] 한국 주둔 이후 광복이 되자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3] 당시 시베리아 수용소에 끌려간 일본군은 대다수 전범이었다[4] 콜라보 무대에는 라이브에 문제가 없었다.[5] “마이크의 상태는 당시 현장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에 의해 깊은 책임과 사과를 올립니다.”[6] 이수만 본인도 직접 쟈니스 주니어 방식 참고했다고 말하기도 한 슈퍼주니어 운영방식에서 이런 부분이 돋보였다. 다만 슈주는 팬들이 하도 졸업 제도 등에 반발이 심해서 도중에 포기한 케이스.[7] 2000년대에도 대표적으로 빅뱅의 거짓말도 그렇고 시부야계를 많이 참조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8] 듀스도 초기의 춤은(아마도 일본 살다 온 김성재의 덕택으로) 일본의 LL Brothers 등을 많이 참고했다는 게 사실 정설이다.[9] 단 이것도 파고들어가면 한국에 레코드가 처음 들어왔던 것은 강점기 시기이며 레코드 산업도 당시 한국의 경제사정 치고는 꽤 흥행했기에 일본의 영향이 분명히 크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소위 평론가들이 이 계보에서 눈을 돌리고 단절시키고는 있긴 하나 분명 4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이미자 등 엔카형 여가수들이 인기가 드높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사실상 KPOP도 JPOP도 아닌 시기라고 해야할 것이며 쟈니스랑은 더더욱이 별 상관이 없다. 즉 KPOP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을 역사적으로 파고들어가다 보면 강점기와 그 이후에도 일본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가 나오기는 하나 그 사실이 JPOP과 쟈니스가 영향력을 끼친 부분이라고는 못한다.[10]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에게서 소방차 등의 0세대 아이돌의 영향력까지 소급해갈 수도 있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기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방향성이나 음악성은 소방차와는 매우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나치게 쟈니스나 JPOP의 영향력을 찾을 이유도 없다.[11] 그렇다고 해서 2000년대까지의 JPOP의 영향력을 덮어놓고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이 막대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1세대~2세대 아이돌의 컨셉이나 노래가 전부 다 서태지에게서만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 모든 부분에서 서태지만을 참조하진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 JPOP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거나, 혹은 JPOP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은 선배 가수들의 영향력을 받은 경우가 제법 있었다.[12] 서태지의 인터뷰 등으로 보면 어려서 영향을 받거나 좋아하는 한국그룹은 들국화, 시나위 등 다 한국 락밴드들이다. 서태지가 언급하는 서구 밴드들은 JPOP과 당연히 연관이 없고 한국 가수들이나 밴드들 역시 일본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가수를 언급한 적은 없다.[13] 아시아 전역이 너무 넓긴 하지만 쟈니스 계열이 홍콩, 대만, 그리고 동남아와 중국에 나름대로 영향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과거에는 정보화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시아 동부 쪽에 일본의 영향이 강했던 것인데 시간이 갈수록 서구에서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14] 게다가 쟈니스 유산 운운도 웃긴게, 쟈니 키타가와부터가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일 뿐더러, 세부적인 내용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 발언 2여년 후 성착취 파문이 터져버리면서 사실 일본 입장에선 더이상 추앙해주기도 민망해진 계륵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15]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한정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