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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니프리드 륑스타 Anni-Frid Lyngstad | |
KVO1kl[1] | |
본명 | <colbgcolor=#fff,#1f2023>안니프리드 륑스타 Anni-Frid Lyngstad |
출생 | 1945년 11월 15일 ([age(1945-11-15)]세) |
노르웨이 발랑겐 비외르키센 | |
국적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 [[노르웨이|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가수, 싱어송라이터, 환경운동가 |
신체 | 172cm |
배우자 | 라그나르 프레드릭손 (1964년 ~ 1970년 이혼) 벤뉘 안데르손 (1978년 ~ 1981년 이혼) 하인리히 루초 로이스 대공 (1992년-1999년 사별) |
왕실 가문 | 로이스(Reuss) 가문 |
장르 | 팝, 재즈 |
애칭 | 프리다 (Frida) |
사용 악기 | 보컬, 피아노 |
재산 | 3억 달러 (한화 3,399억 원)# |
활동 기간 | 1967년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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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가수. ABBA의 일원으로 보컬을 담당하며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2. 상세
ABBA 이전에도 스웨덴에서 유명한 솔로 가수였다. 스웨덴인인 다른 멤버들과 달리 노르웨이 출생의 이민자다. 노르웨이인 어머니와 독일 국방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레벤스보른),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간 아버지 없이 자랐다. 종전 후 나치부역자들에 대한 처벌과 차별을 두려워한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이주했으나, 어머니는 이주 후 얼마 못가 급작스런 신부전으로 21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으며, 륑스타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후[2] 1992년에 독일 로이스(Reuss) 가문의 귀족이자 스위스계 스웨덴인[3]인 하인리히 루초 로이스와 결혼하였다.[4] 그래서 현재 정식 이름은 안니프리드 로이스 대공비 겸 플라우엔 백작부인(Anni-Frid Prinzessin Reuß, Gräfin von Plauen)이다.솔로 커리어 최고 히트 싱글 'I Know There's Something Going On' |
ABBA 이후에도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1982년 제네시스 드러머 겸 보컬리스트 필 콜린스가 프로듀싱한 앨범 'Something's Going On'을 공개한다. 앨범을 공개하기 전 그해 8월 싱글과 뮤직비디오 'I Know There's Something Going On'을 공개했다. 이 싱글은 벨기에와 스위스에서 1위 히트곡이 되었으며, 호주,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에서 톱10 히트곡이었다. 이 곡은 미국에서도 1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임을 증명되었다.[5] 솔로 가수 활동 당시 프리다(Frida)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1986년 그녀는 스위스로 이주하여 남자친구인 건축가이자 독일 귀족의 후손 하인리히 로이스 공과 함께 프리부르에 있는 그의 성에서 살았다. 이후 스웨덴 국왕이 된 칼 16세 구스타프와 같은 기숙학교의 학생이었던 남편 덕분에, 륑스타는 스웨덴 왕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결국 스웨덴의 실비아 좀멀라트 왕비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1998년에는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이듬해 남편이 림프종으로 사망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솔로 가수 활동은 1996년 이후 사실상 중단한 상태이며, 이후에는 자선 활동이나 환경운동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아, 1992년 스웨덴의 환경단체 'Artister För miljön'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채식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