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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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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 Ring
1973
Waterloo
1974
ABBA
1975
Arrival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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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The Album
1977
Voulez-Vous
1979
Super Trouper
1980
The Visitor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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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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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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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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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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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A52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이름 아바
ABBA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비에른 울바에우스, 벤뉘 안데르손,
아그네사 팰츠콕, 안니프리드 륑스타
입성 연도 2010년
후보자격 연도 1999년
후보선정 연도 2003년, 2010년 }}}}}}}}}}}}}}}

파일:A75A5D13-D37C-4A62-94E4-4B9BA96D570A.png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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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 2010년 미국의 케이블 음악채널 VH1에서 음악평론가와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종사자 등 총 200명 이상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Top 100' 순위를 정했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마이클 잭슨레드 제플린롤링 스톤스밥 딜런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지미 헨드릭스프린스엘비스 프레슬리제임스 브라운스티비 원더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밥 말리데이비드 보위더 후너바나비치 보이스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마돈나핑크 플로이드U2마빈 게이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브루스 스프링스틴더 클래시AC/DC벨벳 언더그라운드척 베리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닐 영아레사 프랭클린엘튼 존라디오헤드에어로스미스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존 레논블랙 사바스건즈 앤 로지스티나 터너조니 캐시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폴 매카트니플리트우드 맥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킹크스폴리스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밴 헤일런메탈리카레이 찰스조니 미첼알 그린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라몬즈JAY-Z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팔리아멘트-펑카델릭샤데이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빌리 조엘비욘세리틀 리처드퍼블릭 에너미피터 가브리엘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키스스투지스칩 트릭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휘트니 휴스턴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크림제네시스노토리어스 B.I.G.토킹 헤즈도어즈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저스틴 팀버레이크콜드플레이오티스 레딩투팍 샤커데프 레파드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R.E.M.재니스 조플린밴 모리슨더 큐어러시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Run-D.M.C.레너드 스키너드주다스 프리스트에미넴메리 제이 블라이즈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ABBA스틸리 댄어스 윈드 & 파이어커티스 메이필드더 밴드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N.W.A.조지 마이클비 지스비스티 보이즈엘비스 코스텔로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그린 데이LL Cool J펄 잼머라이어 캐리아웃캐스트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저니프리텐더스디페시 모드홀 앤 오츠앨리샤 키스
출처}}}}}}}}}

파일: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로고 (검정).png 역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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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1957년1958년1959년1960년
파일:스위스 국기.svg 리스 아시아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코리 브로켄파일:프랑스 국기.svg 앙드레 클라보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테디 스홀텐파일:프랑스 국기.svg 자클린 부아예
1961년1962년1963년1964년1965년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장 클로드 파스칼파일:프랑스 국기.svg 이자벨 오브레파일:덴마크 국기.svg 그레테 & 외르겐 잉만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질리올라 칭케티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프랑스 갈
1966년1967년1968년1969년1970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우도 위르겐스 파일:영국 국기.svg 샌디 쇼파일:스페인국 국기(1945–1977).svg 마시엘파일:스페인국 국기(1945–1977).svg 살로메
파일:영국 국기.svg 룰루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레니 쿠르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리다 보카라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다나
1971년1972년1973년1974년1975년
파일:모나코 국기.svg 세브리느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비키 레안드로스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앤-마리 다비드파일:스웨덴 국기.svg ABBA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티치-인
1976년1977년1978년1979년1980년
파일:영국 국기.svg 브라더후드 오브 맨파일:프랑스 국기.svg 마리 미리암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즈하르 코엔 & 알파베타파일:이스라엘 국기.svg 밀크 앤 허니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조니 로건
1981년1982년1983년1984년1985년
파일:영국 국기.svg 벅스 피즈 파일:독일 국기.svg 니콜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코린느 에르메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헤레이스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바비삭스
1986년1987년1988년1989년1990년
파일:벨기에 국기.svg 산드라 킴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조니 로건 파일:스위스 국기.svg 셀린 디온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리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토 쿠투뇨
1991년1992년1993년1994년1995년
파일:스웨덴 국기.svg 카롤라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린다 마틴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니암 캐바나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폴 헤링턴 & 찰리 맥게티건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시크릿 가든
1996년1997년1998년1999년2000년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이미어 퀸 파일:영국 국기.svg 카트리나 앤 더 웨이브즈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다나 인터내셔널 파일:스웨덴 국기.svg 샤를로트 닐손 파일:덴마크 국기.svg 올센 브라더스
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타넬 파다르 & 데이브 벤튼 & 2XL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마리 N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세르타브 에레네르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루슬라나 파일:그리스 국기.svg 엘레나 파파리주
2006년2007년2008년2009년2010년
파일:핀란드 국기.svg 로디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마리야 셰리보리치 파일:러시아 국기.svg 지마 빌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알렉산데르 뤼박 파일:독일 국기.svg 레나
2011년2012년2013년2014년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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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2017년2018년2019년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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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월스트리트 저널 로고.svg 선정
가장 인기 있는 록 밴드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월스트리트 저널이 2018년 음반 판매량, 유튜브 조회수, 차트 및 음원 성적 등을 종합하여 통계 산출을 통해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록밴드를 선정했다.
<rowcolor=#fff,#000>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rowcolor=#fff,#000>6위7위8위9위10위
AC/DC 이글스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에어로스미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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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000>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플리트우드 맥 린킨 파크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마룬 5 본 조비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U2 밴 헤일런 저니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산타나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시카고 너바나 더 후 비치 보이스 콜드플레이
<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도어즈 레너드 스키너드 그린 데이 펄 잼 포리너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블랙 사바스 니켈백 데프 레파드 푸 파이터스 하트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폴 아웃 보이 더 폴리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ABBA 원리퍼블릭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제네시스 R.E.M. 키스 러시 ZZ TOP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고릴라즈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패닉! 앳 더 디스코 blink-182 다이어 스트레이츠
51위부터는 링크 참조.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999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전문가 81명/청취자 1,556명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Top 10 선정.
※ 전문가 81명↓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6위7위8위9위10위
엘튼 존 밥 딜런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마돈나
※ 청취자 1,556명↓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너바나
6위7위8위9위10위
레드 제플린 에릭 클랩튼 마돈나 ABBA 핑크 플로이드
※ 전문가 + 청취자 종합↓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너바나
6위7위8위9위10위
핑크 플로이드 마돈나 에릭 클랩튼 밥 딜런
출처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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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상징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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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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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구 · 게르만족 · 스웨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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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알스벤스칸 ·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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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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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음악가 음반 판매량
List of best-selling music artists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2억 이상 판매한 음악가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순수 음반 판매량이 아닌,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싱글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정규, EP, 컴필레이션 앨범 등의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이 포함된 국가별 앨범 인증단위를 기준으로 계산하였다.[1] 출처는 위키백과이다. 위키백과 자료 설명 글에 "글로벌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기관이 없기 때문에 이 정보는 공식적으로 기재할 수 없습니다."라고 언급되었다.[2]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 엘튼 존
최대 600,000,000장[3] 500,000,000장 최대 400,000,000장[4] 최대 300,000,000장[5] 최대 300,000,000장[6]
<rowcolor=#FFD700> 레드 제플린 리아나 핑크 플로이드 비 지스 에미넴
최대 300,000,000장[7] 250,000,000장 최대 250,000,000장[8] 220,000,000장 220,000,000장
머라이어 캐리 <rowcolor=#FFD700> 테일러 스위프트 휘트니 휴스턴 이글스
220,000,000장 200,000,000장 200,000,000장 200,000,000장 200,000,000장
롤링 스톤스 <rowcolor=#FFD700> 셀린 디옹 AC/DC
200,000,000장 최대 200,000,000장[9] 최대 200,000,000장[10]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1억 5천만 이상 판매한 음악가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D700> 드레이크 가스 브룩스 칸예 웨스트 빌리 조엘 저스틴 비버
170,000,000장 170,000,000장 160,000,000장 160,000,000장 150,000,000장
<rowcolor=#FFD700> 에드 시런 브루노 마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U2 에어로스미스
150,000,000장 150,000,000장 150,000,000장 150,000,000장 150,000,000장
<rowcolor=#FFD700> 필 콜린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ABBA 프랭크 시나트라
150,000,000장 150,000,000장 150,000,000장 150,000,000장
[ 각주 ]

[1] 그러나 미국의 인증은 소속사에서 수동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위의 자료는 더 정확성을 잃게 된다.[2] #[3] 최소 500,000,000장 –[4] 최소 350,000,000장 –[5] 최소 275,000,000장 –[6] 최소 250,000,000장 –[7] 최소 200,000,000장 –[8] 최소 200,000,000장 –[9] 최소 175,000,000장 –[10] 최소 150,000,000장 –
1억 5천만 미만부터는 영문 위키백과 문서 참조.
같이보기 : 세계 음악가 음반 판매량 / 세계 앨범 판매량 순위1 / 2 (영국 / 미국 / 일본), 연도별 최다 판매 앨범
}}}}}}}}} ||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내 앨범 판매량 순위
List of best-selling albums in the United Kingdom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1위 2위 3위 4위 5위
파일:Greatest Hits 81.jpg
파일:external/fanart.tv/21-4dc8696962468.jpg
파일:Gold: Greatest Hits.jpg
파일:SgtPepper.jpg
파일:external/www.aolcdn.com/2nd.jpg
아델 ABBA 비틀즈 오아시스
Greatest Hits 21 Gold: Greatest Hit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7,500,000장 6,000,000장 5,580,000장 5,340,000장 4,940,000장
<rowcolor=#fff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파일:05103710_zi (2).jpg
파일:The Dark Side of the Moon.jpg
파일:Brothers in Arms.jpg
파일:Michael Jackson Bad.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ueen_-_Greatest_Hits_2.png
마이클 잭슨 핑크 플로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 마이클 잭슨
Thriller The Dark Side of the Moon Brothers in Arms Bad Greatest Hits II
4,470,000장 4,470,000장 4,350,000장 4,140,000장 3,990,000장
같이보기 : 세계 앨범 판매량 순위1 / 2 (영국 / 미국 / 일본), 연도별 최다 판매 앨범, 세계 음악가 음반 판매량
}}}}}}}}} ||

}}} ||
<colbgcolor=#000><colcolor=#d4aa00> ABBA
파일:1477483261-abba-ola-lager-premium-rocksho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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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다른 사진 보기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newFile-7.jpg
1974년 유로비전 우승 당시
(왼쪽부터) 벤뉘 안데르손, 안니프리드 륑스타, 아그네사 팰츠콕, 비에른 울바에우스
파일:tumblr_nmge9leujc1ttto2wo1_1280.jpg
1976년
(왼쪽부터) 벤뉘 안데르손, 안니프리드 륑스타, 아그네사 팰츠콕, 비에른 울바에우스
파일:4095.jpg
2021년 약 40년만에 컴백
(왼쪽부터) 비에른 울바에우스, 아그네사 팰츠콕, 안니프리드 륑스타, 벤뉘 안데르손
파일:1000000475.jpg
2023년
(왼쪽부터) 비에른 울바에우스, 아그네사 팰츠콕, 안니프리드 륑스타, 벤뉘 안데르손
}}}}}}}}} ||
결성 <colbgcolor=#fff,#1f2023>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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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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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스톡홀름
멤버 벤뉘 안데르손 (보컬·피아노·키보드)
비에른 울바에우스 (보컬·기타)
안니프리드 륑스타 (보컬)
아그네사 팰츠콕 (보컬)
장르 유로팝, 팝 록, 디스코
활동 기간 1972년 – 현재[1]
데뷔 앨범 Ring Ring[2] (1973. 03. 26.)
데뷔일로부터 [dday(1973-03-26)]일째, 데뷔 [age(1973-03-26)]주년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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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
3.1. 음악 스타일3.2. 세계적인 성공3.3. 이름3.4. 로고
4. 멤버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5.2. 베스트 앨범5.3. 라이브 앨범5.4. 박스 셋5.5. 싱글
6. ABBA에 대한 말들7. 박물관8. 여담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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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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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R MUSIC WILL LIVE FOREVER.
그들의 음악은 영원할 것이다.
로빈 깁#

아바(ABBA)는 1972년부터 활동한 스웨덴의 4인조 혼성 팝 그룹이다.[3]

비틀즈 이후로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 음악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은 뮤지션 중 하나이자 혼성그룹으로 한정지으면 최초의 사례이다.[4]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ABBA의 전성기 당시에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네 가지가 비에른 보리, 볼보스카니아 그리고 ABBA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또한 그들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한 뛰어난 음악으로 인해 대중음악계의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5]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ABBA/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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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3.1. 음악 스타일

ABBA의 팝은 대다수의 현대 히트곡과는 달리 R&B, 힙합, 소울 음악, 펑크, 라틴음악의 영향, 즉 백인이 아닌 음악적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울바에우스는 1981년 인터뷰에서 "우리의 음악적 뿌리는 유럽인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노래를 좋아합니다."라고 그들의 접근 방식을 다소 깔끔하게 요약했다. "이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에서는 아마도 우리의 노래가 잘 통할 겁니다. 미국에서는 팝 음악이 블루스, 소울 음악, 가스펠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는 ABBA의 유산에는 없는 것일 겁니다."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스웨덴 전통 민속음악과 슐라거 음악에서 자랐다. 이 음악은 독특하게 대륙적인 유럽풍의 팝 음악으로 엉성하고 단순한 음악이다. 그리고 그들의 취향이 10대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거의 독점적으로 남아 있는 영향의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비치 보이스의 황금 십대 찬송가,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 레논-매카트니Rubber Soul, 클래식 음악, 그리고 뮤지컬 극장. 성숙한 작곡가와 작사가로서 결정적인 멜로디, 아찔한 편곡과 대위, 그리고 지나치게 과장된 감정적 제스처를 선호하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영향의 혼합은 이 밴드가 정제되지 않은 감상주의 공급자로서 명성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피치포크#

ABBA는 지적이고 음악적인 단순함을 가장한 팝의 극대주의를 대표했다. 비틀즈롤링 스톤스보다 문화적으로 더 멀리 떨어진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연구하고 학구적인 수의 정확성으로 재구성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슈퍼그룹으로 이해한 것을 하나로 모으기 전에 각 멤버들은 상당한 지역적 성공을 거두었다. 키보드 연주자 안데르손은 ABBA를 "스웨디쉬 비틀즈"로 만들며 히트곡을 썼다. 기타리스트 울바에우스의 후테난니 싱어즈도 스웨덴어로 된 커버와 미래의 스타가 되어 작사를 썼고, 결국 이 둘은 서로의 밴드에 기여했다. 울바에우스의 미래의 아내인 펠트스코그는 스스로 쓴 schmaltz로 10대 소녀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두 사람은 70년대 초반 그녀의 솔로 프로듀싱에 함께 일했고, 안데르손은 비슷한 펜으로 그의 파트너인 륑스타를 위해 홈통 히트곡을 제작했다. 네 사람 모두가 재능과 경험을 모아보니 결과는 빽빽하게 채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대인들은 처음에는 외부 프로듀서/송라이터에 의존했지만, ABBA는 대체로 자급자족적이었다. 매니저 스티그 앤더슨의 약간의 영어를 보조해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그들만의 가사를 썼다. 그들은 스틸리 댄과 함께 연주했던 것과 같은 숙련된 세션 음악가들과 함께 그들을 편곡하고, 제작하고, 노래하고, 공연했다. ABBA는 대부분의 MTV 이전 공연자들보다 더 많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투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실은 그들의 집이었고, 그들은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를 지은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과 10cc처럼 ABBA는 새롭게 확장된 멀티 트랙 레코딩의 교향곡과 합창의 가능성을 악용한 배열을 빠르게 구축했다. 직설적으로 보이는 고리의 풍부한 질감 렌더링은 "이렇게 싸게 보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돌리 파튼의 공리와 맞먹는 것이었다.

자꾸 귓전에 맴도는 곡조에 대가인 안데르손과 울바에우스는 쓴맛과 단맛이 뒤섞인 상당한 조화 복잡성을 자랑했다. 모타운의 클래식 작사가들처럼 아픈 가사("S.O.S," "Money, Money, Money")로 날카로운 멜로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뛰어났고, 때로는 정반대의 조합("I Have a Dream," "Chiquititita")으로 슬픈행복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의 가장 행복한 히트곡들에도 몇 가지 이상의 블루 노트가 포함되어 있다. "댄싱 퀸"의 희열적인 현악과 리듬을 벗겨내고 그들의 유일한 미국 차트 토퍼는 훨씬 슬픈 곡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황홀함을 느끼도록 배열되어 있다. 하모니가 'Feel the beat from the tambourine, oh yeah' 후렴구절에 맞춰 최고조에 달할 때, 음 사이의 프리송은 가사에 불균형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삶은 그들의 상황보다 훨씬 더 큰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노래방에서 그것들을 시도했던 여러분 중 누구나 이미 알고 있듯이, ABBA의 클래식들은 도전적일 수 있다. 이것은 메릴 스트립이 아닌 ABBA의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의 영화 버전에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펑크와 힙합은 많은 현대 팝의 멜로디적 복잡성을 거의 감소시켰는데, 특히 이 시구들에서는 곡이 현재 한계 간격 내에 있는 소수의 음표들 사이에서 잘 조율되는 경향이 있다. ABBA의 구절은 오늘날의 전형적인 후렴구보다 상당히 멜로디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그들은 소프라노 펠트스코그와 메조소프라노 륑스타가 각각 일반 록커들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어졌다. 종종 온전한 합창단으로 개조된 그들의 목소리는 프레디 머큐리가 퀸의 가성소리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초인적인 조화를 이루었을 때와 같이 그들 부분의 합보다 더 큰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정렬되었다.
PBS#

ABBA의 음악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뭔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행복한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북유럽의 우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꽤 슬펐을 때도, 우리는 항상 기쁨에 넘친 것처럼 들렸다.
― 비에른 울바에우스#


취향을 초월한 밴드 ABBA의 재평가(피치포크)

그야말로 팝 음악의 마스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전체 스타일의 팝 음악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ABBA의 멤버들은 그들의 매니저인 스티그 앤더슨과 함께한 ABBA 그룹 활동 전에도 이미 자신들만의 음악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엔터테인먼트 음악의 다양한 스타일들을 디자인하고 작곡하는 것에 대해서 수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광범위한 음악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ABBA의 멤버들은 모두 곡을 쓸 수 있었지만, ABBA에서는 오직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올바에우스만이 송라이팅 팀을 구성했는데, 특히 벤뉘 안데르손은 작곡을 하고 비에른 올바에우스는 가사를 썼다. ABBA의 음악적 롤 모델은 비틀즈의 레논-매카트니, 엘비스 프레슬리비치 보이스였다. 또한 옛 스웨덴 전통 민요들#, 고전 작곡가 모차르트, 베르디, 바흐도 그들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다. ABBA는 더 풍부하고 깊은 멜로디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컬과 인스트루먼트를 층층이 쌓아 올린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철학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ABBA의 독특한 사운드는 당대 최고의 팝 사운드로 여겨졌으며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오늘날에도 ABBA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으로 비평가들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모국인 스웨덴의 경우에 더 그랬다. 음악학자인 Per F. Broman은 "ABBA의 문제는 실력이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업적이라는 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업성이 강한 이지 리스닝 음악이 ABBA가 추구했던 장르였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70년대 전성기 당시 ABBA를 무시하기도 했다.[6] 그러나 해체된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ABBA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자 ABBA를 긍정하는 평론가들도 많이 생겼으며, 2010년에는 그 영향력을 인정받아 팝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ABBA는 이지 리스닝 계열 팝 밴드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밴드다.

ABBA는 그룹 경력 이전에 다양하게 활동했던 음악적 배경 때문에, 초기 몇 년 동안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꾸준히 실험했다. 대표적으로 'People Need Love'나 'He Is Your Brother'와 같은 초기 작품들은 1960년대 후반의 'Flower-Power- 시대'의 영향을 여전히 들을 수 있다. ABBA는 'Hasta Mañana' 같은 슈팅 발라드에서부터 'Honey, Honey', 'I Do, I Do, I Do, I Do, I Do'와 같은 레게 팝과 트로피컬 러블랜드 스타일의 팝 음악, 'Waterloo'나 'So Long' 같은 록 노래까지 다양한 팝 음악들을 만들었다. ABBA는 또한 'Watch Out', 'Sitting In The Palmtree', 'King Kong Song' 같은 뛰어난 곡들을 제작했으며, 또한 다소 실험적인 팝을 제작했다. 1975년 3월에 제작된 'S.O.S'와 'Mamma Mia'부터 ABBA는 특유의 고유한 음악 스타일을 완성해냈고, 그 후 몇 년 동안 꾸준히 그들의 음악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울바에우스 콤비의 콜라보레이션 과정은 종종 "영감적이고 극대주의적", "완전 완벽주의"로 묘사된다. 작곡을 위해, 두 음악가들은 주로 스톡홀름의 작은 샤이어 섬 비고스에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의 기초 작업은 그들이 주로 다루는 악기(올바에우스는 기타, 안데르손은 피아노)로 몇 시간 동안 함께 연주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연주한 멜로디에 대한 흥미롭고 직관적인 접근 방법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 비로소 그들은 그 멜로디를 하나의 완전한 곡으로 완성시키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가끔 간단한 영어 단어나 구절을 불렀지만, 그것은 보컬 멜로디를 구상하기 위해 임시로 하는 것이고 나중에 나온 노랫말과는 거의 맞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노래에는 스트록과 레프레인이 간단한 변화로 따르는 전형적인 기본 구조가 있지만, 이러한 구조를 완성한 노래 'Intermezzzo No.1'에서 그들의 작곡 능력을 들을 수 있다. 이후 'The Name of the Game'와 같은 노래들은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또한, 이들은 새로 쓴 곡이 전에 이미 녹음한 노래와 너무 비슷했을 때, 곡을 폐기하고 그 곡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ABBA의 미공개 노래 리스트이다.[7]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올바에우스는 악보를 읽거나 쓸 수 없었고, 자신들을 도와주는 스튜디오 레코딩 프로듀서들이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작업하게 하기 위해 프로듀서들에게 자신들이 작곡한 곡들을 귀로 듣고 외우게 하였다. 이 방법에 대해, 두 아티스트들은 나중에 "곡을 처음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머리에 각인되는 곡이어야 정말 잘 만든 곡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곡의 초안이 완성된 후 올바에우스는 주로 그 멜로디에 맞는 기본 텍스트를 썼다. 울바에우스는 각각의 단어와 가사를 멜로디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여 언어의 멜로디가 그 노래의 멜로디와 크게 일치하도록 하였다.

스웨덴어가 모국어인 울바에우스는 매니저 스티그의 도움을 받아 영어 텍스트를 완성했다. 그들의 매니저인 스티그 안데르손은 초기에는 ABBA 음악의 일부 관여했고 ABBA 곡들의 노래 가사를 썼다. 매니저 일 때문에 가사를 쓸 시간이 없을 때에는 올바에우스에게 일부 가사의 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티그가 쓴 가사들은 단순하고 때로는 도전적이지 않은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Does Your Mother Know부터 올바에우스는 단독으로 작사를 도맡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도전적이고 때로는 심오한 내용을 썼다. 'The Winner Takes It All'의 가사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노래를 종종 ABBA의 두 커플의 관계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삶과 유사함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올바에우스에 따르면, 그 노래는 그가 작사한 유일한 자서전 노래이며 부모의 관점에서 자신의 자녀들의 빠른 성장을 주제로 한 그의 딸 린다에게 바치는 감성적인 발라드라고 한다.

음악 제작 과정에서, ABBA는 그들의 곡과 사운드를 완벽하게 완성했다. 안데르손과 울바에스는 전자 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등 당시의 대표적인 악기들 외에도 오케스트라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신디사이저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의 음악적 동반자인 음향 엔지니어 마이클 B는 정교한 스튜디오 기술을 선보였다. 그는 미국 음악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에게 영감을 강하게 받았으며 여러 테이프에 음성과 악기를 녹음하여 일부 소리 요소를 느리게 하거나 시간을 약간 단축시키는 등 이들을 다양하게 변형시켰다. 현대 스튜디오 기술을 통해 그들의 노래들은 독특하고 특이한 소리를 얻게 되었다. ABBA는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스튜디오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했고 곡을 녹음하는데에 항상 많은 돈을 투자했다. ABBA는 1977/1978년, 스톡홀름에 폴라 뮤직 스튜디오(Polar Music Studio)라는 자신들만의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었으며 미국 시장에서 더 성공하려는 욕심으로 초기 '80년대 팝'의 사운드를 완벽하게 선보이기 위해 그들은 마이애미에 있는 크리트리아 스튜디오에 가서 최고의 음악 프로듀서들과 협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ABBA는 당시 개발되어 있는 스튜디오 기술이 집약된 수준 높은 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을 제작했다. 그들의 예술적 창조와 정교한 제작 방식으로 인해, ABBA는 오늘날 현대 대중 음악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3.2. 세계적인 성공

이 스웨덴 그룹은 40년 전 10월 세계무대에 뛰어들었고 여전히 가장 성공적인 밴드 중 하나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팝 그룹이며 비틀즈 이후로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룹 뮤지션을 꼽으면 거의 무조건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70년대 후반 상업적으로 절정에 달했던 ABBA는 볼보 다음으로 스웨덴 수출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영어권 밖의 다른 나라에서의 음악가의 전례 없는 인기였다. 한편, 현재 전세계 54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공연되고 있는 맘마 미아 주크박스 뮤지컬에 의해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추진되어, 이 밴드의 음반은 계속해서 팔리고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은 기이한 변칙으로 남아 있는데, 록 음악R&B의 난폭하고 성적인 공용어가 아닌 보다 가정적이고 절제된 유럽적 가치에 바탕을 둔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사운드이다. 로큰롤이 탈출과 아웃사이더 세계에 관한 것이라면 아바의 팝송은 결코 반항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꿈과 실망을 발굴한다. 댄싱퀸(Dancing Queen)의 소란스러운 황홀감이나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의 계단식 운명론에서 요약하면 교외지역의 희망과 두려움은 그 못지않게 서사시적이고 타당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BBC, ABBA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가?

비영어권 그룹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최초의 그룹이다. 또한 대중음악 사상 가장 성공한 혼성 그룹이기도 하다. 이들의 총 판매량은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억 5,000만장이며, 아티스트의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또 다른 매체인 차트마스터(Chartmasters)에 의하면 1억 5,956만장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판매량은 전세계 아티스트 음반 판매량 순위에서 상위 20위안에 드는 대기록이다. 또 ABBA의 대단한 점은 그들의 음악이 그 시대의 국한된 인기가 아닌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ABBA 이전의 스웨덴의 음악가의 성공은 1950년대 이후 대부분 그들의 나라에만 한정되어 있었고, 1975년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ABBA의 인기는 상업적인 측면 외에도, 이전과 이후에도 ABBA와 같은 유사한 성공을 거둔 스웨덴이나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다른 밴드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Roxette, Ace of Base 등 ABBA 이후에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인기 밴드나 그룹이 나오긴 했지만, 현 시점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ABBA의 인기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고 전성기였던 기간도 비교적 짧았다.

국제 음악 시장, 특히 영어 음악 시장에서 성공 할 수 있었던 이유는 ABBA의 매니저인 스티그 안데르손과 멤버 벤뉘 안데르손, 비에른 울바에우스의 빠른 판단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ABBA는 폭 넓은 국제적인 팬들의 명성을 얻기 위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것이 빠르게 목적지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처음 몇 년 동안 ABBA의 많은 히트곡들이 등장했다. 스티그 안데르손은 매니저로서 전 세계를 발판을 이용하여 모든 시장에서 싱글곡들을 선보였다. 1973년, 그들의 조국인 스웨덴 밖에서의 첫 번째 성공이 스칸디나비아와 베네룩스 국가들에서 두드러졌고,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이후, 특히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영국, 호주, 프랑스에서 ABBA의 성공은 어마어마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아일랜드, 뉴질랜드와 같은 중소 음악 시장에서도 ABBA는 부분적으로 큰 차트 및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ABBA의 경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1976년 ABBA는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각각 3개의 1위 히트곡을 배출했고, 독일과 뉴질랜드에서 각각 4개의 1위곡을, 호주에서는 5개의 1위가 나왔다. 또한 1976년에 적어도 한 개의 싱글이 노르웨이, 스웨덴, 오스트리아, 프랑스 및 스위스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독일에서는 ABBA는 텔레비전에서 다양한 인기 음악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프로모션 공연을 했다. 루디 카렐과 함께 진행 중인 밴드와 같은 쇼에서 단골적인 게스트 공연 외에도, 주로 ZDF와 디스코에서 일자 리히터, 라디오 브레멘 음악점 또는 레이너 홀베가 선보인 스타 퍼레이드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가수 대접을 받았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하나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8] 아티스트 중 하나인 ABBA는 총 1,130만 장의 싱글이 팔리며 영국에서는 1974년부터 1981년까지 모든 싱글이 적어도 TOP 10을 기록 했고, 그 중 9개는 1위를 차지했다. 역대 UK 차트에서 가장 많은 1위 곡을 보유한 아티스트 7위이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싱글을 판 밴드 4위에 올랐다.# 여기에 발표된 앨범은 1982년까지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총 1,700만 장의 ABBA 앨범이 판매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무기한 휴식까지 영국에서의 어마어마한 인기로 그들의 공연과 인터뷰, 총 15개의 콘서트는 매년 화제를 몰고 다녔다. ABBA/역사 항목에도 설명했지만, 1992년 발매한 ABBA의 베스트 앨범 'ABBA Gold'는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3,100만 장 이상이 팔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이며 영국에서만 558만장이 팔리며 역대 3번째로 영국에서 많이 팔린 앨범이다.[9] 심지어 이 앨범은 2021년 영국 앨범 차트에서 여전히 차트에 진입하며 역대급 롱런을 하고 있는 중이다.[10] 이 기록은 영국 음악 사상 최장 기간 신기록이다.[11] 2021년 7월 1주차에는 1,000주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을 최초로 세웠다.[12]## 2021년 6월 4주차 기준 이 앨범은 무려 2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20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24위,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앨범 24위#, 2010년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46위[13]#를 기록하며 영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앨범 반열에 올랐다.

영국 이외에도 유럽권,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그룹이다. 베스트 앨범 ABBA GOLD는 이 곳에서도 불티나게 팔린 앨범으로 독일에서는 250만 장 판매, 스위스에서도 50만장 판매, 오스트리아에서는 397주 동안 차트에 올라 역대 2번째로 롱런한 앨범이다. 스웨덴에서는 2016년 10월 이 앨범이 6번째 베스트 차트 앨범으로 등재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이 앨범은 역대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호주에서 이 앨범은 역대 네 번째로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이다. 아티스트들의 앨범 판매량을 매우 자세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한 웹 사이트 차트마스터(ChartMasters)에서는 이들의 최고 히트작인 베스트 앨범 'ABBA GOLD'의 판매량을 분석했는데, 차트마스터는 이 앨범이 현재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3,400만장이 팔렸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 앨범은 유럽에서 마이클 잭슨Thriller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라고 분석했고, 아시아에서는 300만장이나 팔렸다고 말했다. 또한 오세아니아에서는 총 150만장를 넘어섰다고 분석했으며, ABBA의 인기가 비교적 떨어지는 북미권에서도 이 앨범은 1,000만 장 이상 팔렸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전세계적인 성공을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ABBA의 음악을 사용한 미디어 매체의 대성공이다. ABBA의 음악을 사용한 뮤지컬 맘마 미아는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초대박을 기록해 2020년 기준 4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여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3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이 뮤지컬은 웨스트엔드 역사상 7번째로 오래 공연된 뮤지컬, 브로드웨이 역사상 9번째로 오래 공연된 뮤지컬을 기록하고 있다. 또 전세계적으로도 롱런을 기록하는 중이다.[14] 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맘마 미아!(2008년 개봉)와 맘마 미아! 2(2018년 개봉) 역시 모두 전세계에서 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그중에서 영국에서 초대박 흥행을 했는데 1편은 2008년 흥행 1위, 2편은 2018년 흥행 2위[15]를 기록하며 성공했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해 미디어 매체에서 이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는 극소수라고 볼 수 있다.

반면, ABBA는 활동 당시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이루지 못했다. 1972년부터 미국 음반인 플레이보이 레코드사는 이 밴드의 첫 음반을 발매했지만 모두 차트에 도달하지 못했다. 1974년, 스티그 앤더슨은 애틀랜틱 레코드와의 3년 계약을 체결하여 ABBA가 해체될 때까지 모든 음반을 판매했다. ABBA는 1974년, 1975년, 1976년, 1978년에 그 곳에서 프로모션 투어를 했지만, 앨범 중 어느 것도 톱 20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들의 싱글들의 성공도 1위 히트곡과 3위 히트곡으로 크게 제한되어 있었고, 6개가 싱글이 상위 20위에 올랐다. 벤뉘 안데르손은 1976년 인터뷰에서 유럽의 밴드에 대한 미국 음악 시장 진입이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호주 음악 시장보다 더 어렵다는 평가를 했다. 미국에서는 음악 비디오와 TV 출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히 한 그룹의 라이브 출연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ABBA의 1979년 미국 투어 이후에도 ABBA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의 영화 맘마 미아!의 대히트로 ABBA의 인지도와 인기가 크게 상승한다. 베스트 앨범 'ABBA Gold'는 미국에서 총 580만장이 팔렸고, 닐슨 음악 시대(1991년 시작)의 19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앨범이다.#

동양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일본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그룹이다. 일본에서 그들의 성공은 특히 1978년 가을의 프로모션 투어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방문 당시의 텔레비전 쇼와 스페셜은 2009년에 일본에서 ABBA라는 제목으로 DVD로 발매되었다. 일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된 ABBA의 투어는 1980년에 총 11회 공연이 완전히 매진되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현재 일부 획득하기 어려운 ABBA 라이선스 앨범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그룹이다. 70년대 말-80년대 초 당시, 한국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미)다큐멘터리 영화 ABBA (1977)가 개봉한 일은 있다. 외국 음악인의 영화, 특히 전기 영화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극장 개봉까지 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세대를 초월한 그룹답게 스트리밍 시대에서도 젊은 층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21년 영국 스포티파이의 책임자 술리나 옹은 인터뷰에서 "18살에서 24살이 ABBA의 가장 많은 리스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2014년 이후 청취율이 50% 증가했다는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아바의 청취를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세대를 초월한 아바의 엘리트 수준의 작곡에 대한 지속적인 매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3.3.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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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사용된 그룹명
Björn & Benny, Agnetha & Frida[16]

ABBA는 그들의 커리어 초창기에 성공에 대한 불확실로 확정적인 그룹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그들의 4명의 이름들을 활동명으로 썼다. 그들은 "Bjorrn & Benny, Agnetha & Anni-Frid", "Anni-Frid, Agnetha, Benny, Bjorrn", "Bjorrn + Benny + Agnetha + Frida" 또는 "Bjorrn + Benny + Anna + Frida"라고 불렸다. ABBA의 첫 번째 오펠 차 앞 유리창에는 1973년까지 "BJÖRN BENNY AGNETHA FRIDA"가 쓰여 있었다. 미국의 초기 음반회사에서는 "Bjorrn & Benny, Agnetha & Anni-Frid"의 Agnetha가 부분적으로 빠져서 이름이 불리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그네사 팰츠콕가 그 당시 CBS-Cupol 레코드 회사로부터 독점 계약을 한 가장 성공적인 소속 스타였기 때문에 펠트스코그의 이름에 대한 라이선스 수수료를 CBS-Cupol에게 ABBA의 소속 회사 폴라 뮤직이 지불해야 했다.

이러한 계약관계는 ABBA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1975년 말까지 계속 적용되었고, 따라서 나중에 아그네사 팰츠콕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CBS-Cupol에 높은 대금 지급을 해야 했다. 또 다른 여성 멤버 안니프리드 륑스타의 EMI Music 음반 계약은 1972년 만료되었다. 1970년대 초, 네 멤버들은 스웨덴 민속 공원에서 진행된 몇몇 음악 페스티벌에서 "Festfolk" 또는 "Festfolket"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공개적으로 공연했고, 스웨덴 클럽과 술집에서 "Engaged Couples"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멕시코에서는 1972년과 1973년에 그들의 레코드 회사는 단순한 그룹 이름인 'Los Suecos'로 처음으로 이름지었다. 이후 그들의 조국인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노래가 성공한 후에야 적절한 밴드 이름을 찾아야 했다. 특히 이 들의 매니저인 스티그 안데르손은 언론에게 항상 "Bjorrn & Benny, Agnetha & Frida"라는 이상한 이름을 언급해야 한다는 것에 점점 더 화가 났다.

1973년 3월 한 스웨덴 잡지에서는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이 그룹에 대한 확정된 명칭을 제출하라는 요청을 발표했다. 이때 등장한 그룹명이 바로 "Friends and Neighbors", "Alibaba", "BABA"라는 이름의 제안이 들어온다. 1973년 여름, 마침내 매니저 스티그 안데르손의 제안으로 그 그룹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스웨덴 예비 결정전에서 이 들의 이름 앞자리를 딴 "ABBA"라는 이름을 정했다. 이 간단하고 매우 두드러지고 간결한 단어 "ABBA"는 앙네타(Agnetha), 비요른(Björn), 벤뉘(Benny) , 애니(Anni) → ABBA의 4명의 밴드 멤버들의 초기 문자에서 유래한 약어이다. 때때로 밴드 이름 구성도 역순(애니, 벤뉘, 비요른, 앙네타)으로 해석되기도 했다.[17] 벤뉘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 콤비는 ABBA라는 이름이 스웨덴에서 Abba Seafood라는 크고 잘 알려진 식품 회사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곤혹스럽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스티그 안데르손은 "ABBA"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이 회사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ABBA"라는 용어는, "아버지의"[18]를 뜻하는 성경 용어이기도 했다. 이 단어의 의미는 1977년 영화 ABBA에서 한 노인의 인터뷰 장면에서 언급된다. 이 밴드의 이름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빠르게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거의 모든 언어에서 쉽고 동일한 방식으로 발음되고, 항상 알파벳순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3.4.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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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사용된 로고 교체된 후 로고

밴드 이름이 ABBA로 결정된 후, 처음에는 커버, 포스터, 기타 프로모션 자료에만 타이포그래피로 그려졌다. 1976년 2월 ABBA는 독일 음악 방송 디스코에 출연하기 전에 사진작가인 볼프강 힐레만과 인근 스튜디오에서 독일 청소년 잡지 브라보(Bravo)의 일부 사진 작업을 의뢰받았다. 여기에서 네 명의 밴드 멤버가 각각 큰 은색 이니셜 문자를 들고 촬영하는 촬영 현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 사진들에서 안데르손은 두 번째 자리에 서서 실수로 "B"를 거꾸로 들고 머리 위로 올렸지만, 사진 촬영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진 작가는 이 밴드 멤버들에게 그 오류를 알려준 후 안데르손과 울바에우스는 잠시 대화를 나눴고, 오히여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 이 로고를 소유하기로 결정하고 힐레만에게 "대형 마케팅 아이디어"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뉴스 고딕볼드의 그래픽 디자이너 룬 쇠데르크비스트는 반사형 "B"로 ABBA 철자를 개발하여 두 "B"가 두 "A"에 조화롭게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ABBA 로고는 1976년 8월 13일 공식적으로 발효됐고 등록됐다. 싱글 'Dancing Queen' 이후 지금까지 모든 공식 ABBA 레코드, 출판물 및 팬 기사에 이 로고가 사용되고 있다. CD 싱글 'Dancing Queen'과 1992년 베스트 앨범 'ABBA Gold'가 출시된 이래, ABBA 로고는 'Helvetica Roman' 글꼴로 개발된 버전도 사용되었고, 문자가 좀 더 작았지만, 굵기가 좀 더 넓었다. 그러나, Gold 앨범의 이후 앨범 발매에서는 이전 오리지널 로고가 다시 사용되었다. 반사형 "B"로 표시된 ABBA의 로고는 AC/DC의 로고와 롤링 스톤스의 키스 로고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악 그룹 상표 중 하나가 됐다. 안데르손과 울바에우스는 로고가 완성된 직후 새로운 ABBA 글꼴을 상표로 보호하도록 하였으며, 따라서 종종 추가 등록 기호인 ®를 부착하기도 한다. ABBA 로고가 상표로 등록된 후, 이 로고의 저작권은 ABBA 소유의 마케팅 회사가 소유한 권리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일부 오리지널 사운드 미디어, 다양한 라이선스 및 비공식 사운드 미디어에서는 ABBA 로고가 아닌 오리지널 로고를 그래픽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4.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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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벤뉘 안데르손, 비에른 울바에우스, 안니프리드 륑스타, 아그네사 팰츠콕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발매일 제목 리드 싱글 UK 차트 빌보드차트
<colbgcolor=#fff,#1f2023> 1973.03.26. <colbgcolor=#fff,#1f2023> Ring Ring <colbgcolor=#fff,#1f2023> People Need Love <colbgcolor=#fff,#1f2023> 차트진입 실패 <colbgcolor=#fff,#1f2023> 차트진입 실패
1974.03.04. Waterloo Waterloo 5위 49위
1975.04.21. ABBA So Long 13위 174위
1976.10.11. Arrival Dancing Queen 1위 20위
1977.12.11. ABBA: The Album The Name of the Game 1위 14위
1979.04.22. Voulez-Vous Chiquitita 1위 19위
1980.11.03. Super Trouper The Winner Takes It All 1위 17위
1981.11.30. The Visitors[19] Slipping Through My Fingers 1위 29위
2021.11.05. Voyage When You Danced With Me / Just A Notion 1위 2위

5.2. 베스트 앨범

발매일 제목 UK 차트 빌보드 차트 비고
<colbgcolor=#fff,#1f2023> 1975.11.17. <colbgcolor=#fff,#1f2023> Greatest Hits <colbgcolor=#fff,#1f2023> 1위 <colbgcolor=#fff,#1f2023> 48위 <colbgcolor=#fff,#1f2023> 전세계 600만장 판매
1975.11. The Best of ABBA 미발매 미발매 오세아니아 국가에서
발매된 앨범.
1979.10.29. Greatest Hits Vol. 2 1위 46위 -
1980.06.23. Gracias Por La Música 미발매 미발매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발매된 앨범.
1982.11.08. The Singles: The First Ten Years 1위 62위 -
1992.09.11. Gold: Greatest Hits 1위 25위 전세계 3,400만장 판매[20]
1993.05.25. More ABBA Gold: More ABBA Hits 13위 차트진입 실패 -
1993.09.25. ABBA Oro: Grandes Éxitos 미발매 미발매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발매된 앨범.
1998.10.26. Love Stories 24위 51위 -
2001.11.02. The Definitive Collection 9위 17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303위
2005.09.08. 18 Hits 차트진입 실패 15위 -
2006.11.20. Number Ones 1위 15위 -

5.3. 라이브 앨범

발매일 제목
<colbgcolor=#fff,#1f2023> 1986.08.18. <colbgcolor=#fff,#1f2023> ABBA Live
2014.09.29. Live at Wembley Arena

5.4. 박스 셋

발매일 제목
<colbgcolor=#fff,#1f2023> 1994.10.31. <colbgcolor=#fff,#1f2023> Thank You for the Music
2005.11.07. The Complete Studio Recordings
2008.11.11. The Albums

5.5. 싱글

발매년도 제목 UK 차트 빌보드차트
<colbgcolor=#fff,#1f2023> 1970년 <colbgcolor=#fff,#1f2023> She's My Kind of Girl <colbgcolor=#fff,#1f2023> 차트진입 실패 <colbgcolor=#fff,#1f2023> 차트진입 실패
1972년 People Need Love
He Is Your Brother
1973년 Ring Ring 32위
Another Town, Another Train 차트진입 실패
Love Isn't Easy (But It Sure Is Hard Enough)
Rock'n Roll Band
Nina, Pretty Ballerina
1974년 Waterloo 1위 6위
Honey, Honey 차트진입 실패 27위
Hasta Mañana 차트진입 실패
So Long
1975년 I've Been Waiting for You
I Do, I Do, I Do, I Do, I Do 38위 15위
SOS 6위 15위
Bang-A-Boomerang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Mamma Mia 1위 13위
1976년 Fernando 1위 13위
Rock Me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Dancing Queen 1위 1위
Money, Money, Money 3위 56위
1977년 Knowing Me, Knowing You 1위 14위
King Kong Song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The Name of the Game 1위 12위
1978년 Take a Chance on Me 1위 3위
Eagle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Summer Night City 5위
1979년 Chiquitita 2위 29위
Does Your Mother Know 4위 19위
Voulez-Vous 3위 80위
Angeleyes 3위 64위
Gimme! Gimme! Gimme! (A Man After Midnight) 3위 차트진입 실패
I Have a Dream 2위
1980년 The Winner Takes It All 1위 8위
On and On and On 차트진입 실패 90위
Super Trouper 1위 45위
1981년 Lay All Your Love on Me 7위 차트진입 실패
One of Us 3위 107위
When All Is Said and Done 차트진입 실패 27위
1982년 Head over Heels 25위 차트진입 실패
The Visitors 차트진입 실패 63위
The Day Before You Came 32위 차트진입 실패
1983년 Under Attack 26위
Thank You for the Music 33위
2021년 I Still Have Faith In You 14위
Don’t Shut Me Down 9위

6. ABBA에 대한 말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룹 중 하나인 스웨덴의 유로팝 그룹.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70년대에 성층권에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 수십 년간 팝의 소리에 영향을 미친 스웨덴의 센세이션들.
AllMusic#

ABBA는 세계 최고의 밴드다. 경쟁자가 없다.
NME#

ABBA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는 70년대의 대중문화에 파장을 일으켰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인기는 여전히 강해지고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팝에 관한 한, ABBA는 비틀즈보다 지난 수십 년간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PBS#

나는 ABBA가 그들의 음악에 순수한 기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노#

70년대 중후반에는 ABBA만큼 훌륭한 팝송을 쓰고 프로듀스하는 사람이 없었다.
스티븐 윌슨#

매 10년 마다 ABBA가 있다; 그것은 팝이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증거이다.
― 게리 버클(아메리카의 멤버)#

ABBA의 음악은 이제껏 쓰여진 음악 중 가장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멜로디적이고 운율이 좋은 음악 중 하나이다. 멋있거나 애매모호하게 말하려고 하지 않고 노래 전체가 치솟는 멜로디에 빠져든다. 신선하게, 그들은 멜로드라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듣는 사람을 따라 부르도록 유혹하거나 쉬운 멜로디의 날개로 그/그녀를 운반할 용기가 있다. 그 노래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쉽게 들려서 그들이 얼마나 독창적인지 잊어버리기 쉽다.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발적이거나 무심코 함께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곡된 팝의 우수성으로, 세심하게 구성되었으며 항상 신선하고 새롭고 독창적이다.

비에른과 벤뉘는 레넌-매카트니, 브라이언 윌슨, 버트 배커랙, 엘비스 코스텔로와 같은 천재들 사이에 쉽게 랭크될 수 있는데, 이들의 헌신, 노력 그리고 자연 본능은 점차 훌륭한 예술의 형태로 변했다. 비록 ABBA의 음악이 즉각적이고, 즐겁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복잡할 수 있고, 깊은 향수, 후회,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ABBA의 음악은 여러 면에서 의 음악과 비교될 수 있다. 두 밴드 모두 스튜디오를 최대한 이용했다. 매 스텝마다 흥미로운 디테일이 가미된 다층 음악이며, 아바는 둘 중 더 섬세하다. 두 밴드 모두 새로운 멜로디 곡과 접근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모든 곡을 개인으로 다루는데 노력했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놀랍도록 신선하고 오래된 노래들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선율적인 스위프에는 또한 어떤 화려함, 웅장함, 자신감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에 필적할 가수는 없지만, 앙네타와 애니 프리드는 아름다운 가창력과 정교한 화음으로 듣는 사람을 눈부시게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대조를 이루며 짜여질 때, 팝 태피스트리는 콕토 트윈즈처럼 더 찾기 힘든 밴드로 짜여진 것처럼 영리하고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Rate Your Music#

7. 박물관

ABBA Th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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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음악(ABBA)
주소 Djurgårdsvägen 68, 115 21 Stockholm, Sweden
개관 2013년 5월 7일
규모 14,000m2
관리 Stockholm Entertainment Group
연락처-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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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에 ABBA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의 섬[21]’으로 불리는 스톡홀름 유르고르덴(Djurgarden) 지역에 자리 잡은 ABBA 박물관은 2013년 5월 7일 개관했다. ABBA의 팬이라면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전시품의 선택, 구성 및 발표에는 멤버인 비에른 울바에우스가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4명의 멤버 모두가 박물관에 물품을 기부했다.

영국 리버풀의 비틀즈 박물관[22]에서 영감을 받아 2006년 설립자 울프 웨스트먼과 에와 위겐하임 웨스트먼에 의해 처음 발표되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여행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며 베스트 어트랙션에 꼭 포함되어 있는 곳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팬들이 멤피스, 비틀즈 팬들이 영국 리버풀을 찾듯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ABBA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음악도시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스톡홀름 시립 미술관의 토발드 올슨선데린 기획담당은 “많은 시민은 ABBA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스톡홀름 대중문화의 큰 부분이다. 많은 외국 관광객이 ABBA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다”고 얘기했다. 박물관과 도보 투어, 보트 관광이 대표적이다. 개장 전날 세계 곳곳에서 찾아든 ABBA 팬들이 박물관 앞에 모여 밤새 ABBA 노래를 부르며 개장 축제를 벌였고, 오픈과 동시에 3개월치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로 화제였다. 2013년을 개관 이후로 2018년까지 약 150만 명의 방문객들이 방문했고, 이 방문객 중 70% 이상이 외국에서 왔다. 이 박물관은 ABBA의 그간 역사, 앨범, 의상 등 모든것을 총 망라한 곳이다. 볼거리도 상당히 많아 ABBA의 관한 엔터테인먼트는 가득하다. 볼 수 있는 기념품이 풍부하고 ABBA의 역사의 모든 세부 사항이 있다. 스튜디오, 사무실, 휴가 주택에 이르기까지 밴드의 유명한 장소를 다양하게 재현했다.

총 3개 층의 ABBA 박물관은 1970년대 활동 당시 착용한 화려한 의상, 모자, 부츠 등 40여 점을 전시하는데 드레싱룸을 마련해 이들의 의상을 관람객들이 직접 입어볼 수 있게 했다. ABBA의 시그너처인 별 모양 기타를 비롯한 20여 점의 악기도 볼 수 있다. 비요른 울바에우스는 열한 살 때 동네 목수가 만들어준, 그의 음악 인생 ‘첫 기타’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제는 60대가 된 멤버들의 현재 모습도 만날 수 있다. 4명의 멤버 각자가 ABBA에 얽힌 추억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그동안 베일에 감춰졌던 이별과 이혼 등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풀어낸다. 멤버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당시 ABBA의 스타일리스트였던 잉마리에 할링(Ingmarie Halling)이 뮤지엄 기획에 직접 참여해 ‘리얼리티’를 높였다. ABBA 멤버들에게 의미 있는 녹음실과 분장실, 함께 떠난 별장 등을 전시장에 재현한 것. 멤버들이 함께 모여 작곡을 했던 빅소(Viggso) 섬의 오두막과 1982년 은퇴 무대인 스웨덴 아레나 아이스하키 링크 재현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한다. 기존의 음악 뮤지엄이 작고한 뮤지션을 추억하는 ‘기념관’인 데 반해 ABBA 박물관은 실제 그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요소를 강조했다. 전시장에는 데뷔곡 ‘Ring, Ring’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빈티지 전화기가 설치돼 있는데 전화번호는 오직 4명의 멤버만이 알고 있다. 운 좋은 관람객은 그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도 있다. 피아노가 놓여 있는 전시장은 베니 앤더슨의 스튜디오와 연결해 놓았다. 앤더슨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생중계’하거나 관람객이 피아노를 치면 그가 답가를 연주할 수 있게 했다. 꼭 2차원적으로 전시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방문객이 실제로 ABBA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직접 화면을 보면서 춤도 출 수 있다. 음악을 듣고, 비디오를보고, 나중에 다운로드 할 수있는 음악을 믹스하고, 심지어 자신을 연주 할 수도 있다. 또한 실제로 밴드와 함께 서서 공연 할 수있는 홀로그램 무대도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ABBA 로고 ‘공연 전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ABBA는 전성기 때 공연 마지막 두 곡에서 이 소품을 이용했다. ABBA의 조명 디자이너였던 패트릭 우드로프는 “깡통 안에 전구를 설치한 단순한 소품이다. 공연 때 끝에서 두 번째 곡에서는 전구 불을 그냥 환하게 켰고 마지막 곡에서는 전구 불이 반짝이도록 했다. 관객은 여기에 늘 열광했다”고 얘기했다. ABBA의 매니저였던 스티그 안데르손 소유로 시내에 위치했던 폴라(Polar) 뮤직 스튜디오는 ABBA 사운드가 확립된 장소로 유명하다. 도시개발 계획과 함께 2004년 철거됐는데, 박물관은 원모습을 복원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76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음반 'Arrival’의 표지에 사용된 벨47기종 헬리콥터를 타고 관람객이 사진 찍는 공간도 늘 인기다. ABBA 박물관은 주제와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33개 전시공간을 마련해 밴드의 역사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관람객이 ABBA의 다섯 번째 멤버가 돼 기존 멤버 네 명과 함께 관람하도록 설계했다. “무엇보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 관람에 주력했다. 방문객은 입장과 동시에 개인 ABBA 홈페이지가 생긴다. 방문객이 박물관 안에서 부른 ABBA 노래, 입은 ABBA 의상 등은 모두 저장된다. 전시된 피아노는 베니의 개인 스튜디오 피아노와 연결돼 있어 그가 실제로 연주하면 전시된 피아노가 같이 연주되도록 설계됐다.” ABBA 박물관 카타리나 포켄하브 홍보이사의 설명이다. 박물관 관광 외에도 약 2시간 길이의 ABBA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도보관광도 있다. 크게 늘어난 ABBA 팬들의 요청에 따라 2010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ABBA의 흔적이 담긴 명소를 직접 보면서 스톡홀름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점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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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담 투소같은 밀랍인형도 있다. 이 인형을 끝으로 박물관 관람은 종료된다.

8. 여담

  • ABBA는 그들이 만든 곡들을 제3자에 의한 샘플링 사용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들이 만든 창작물에 샘플링하는 행위가 날로 먹는 행위라고 느껴서 허용하지 않는다. 극히 드문 예로 허락된 사례가 있는데 로린 힐이 소속하고 있던 힙합 그룹 푸지스의 노래 'Rumble In The Jungle'(1996년 발표, The Name of the Game을 샘플링), 마돈나의 노래 'Hung Up'(2005년 발표, Gimme! Gimme! Gimme!를 샘플링)가 있다. 마돈나 역시 어렵게 샘플링을 허락받았다. 마돈나 측이 메일로 샘플링을 허락을 부탁함 → ABBA측 거절, 전화를 걸어 부탁함 → 거절, 결국 마돈나가 직접 비오는 날 아바의 작곡가 벤뉘 안데르손의 자택으로 찾아가 부탁을 했고 마침내 허락받았다. 어렵게 샘플링을 허락받은 이 노래는 마돈나의 제3의 전성기를 이끈 메가 히트곡이다.
  • 벤뉘 안데르손 & 비에른 울바에우스 콤비는 그들의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아 공동으로 영국 작곡가, 작사가, 작가 아카데미의 '특별 국제 공로상', 스웨덴 산업 통상부의 "음악 수출상"(2008), 스웨덴 음악 출판협회(SMFF)의 "평생 공로상"를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 ABBA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애정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대형 스크린 속 아바이며 스칸센 민속원에서 태어난 수컷 곰 두 마리의 이름은 아바 남성 멤버 이름을 딴 ‘비요른’과 ‘벤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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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의 ABBA 대형 스크린
  • 디스코그래피를 차례대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활동 초기에는 남성 멤버 비에른이 자주 리드보컬을 맡거나, 듀엣을 하기도 했는데, 후기로 나아갈수록 여성 멤버들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대표곡도 대부분 여성 보컬이다. 후기의 히트곡들이 대부분 여성 보컬 곡들이라 남성 멤버 두 명은 병풍에 불과한 존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바의 히트 곡들은 대부분 남성 멤버인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울바에우스 두 명이서 공동으로 작곡했다. Does Your Mother Know만 봐도 "비욘(Björn)"이 거의 노래의 대부분을 다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작곡 듀오인 벤뉘와 비에른은 악보를 쓸 줄을 몰랐고, 오직 앙네타만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1981년 'Dick Cavett'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그들이 사용한 악기들은 실험적이었고 즉흥적이었으며, 또한 스튜디오에서 반주녹음에 노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훗날 뮤지컬 '맘마미아!'를 제작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먼저 음악이 완성되고 나서 다른 음악가들이 참여한 후 음악을 듣고 악보에 기보를 하고 가사를 추가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후반작업에 6개월 이상이 소요되었고, 작곡가들 또한 벤뉘와 비에른이 음원을 먼저 만들고나서 후에 가사를 추가했었다고 밝혔다.
  •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어, 전세계적으로 무려 2억 장 가량의 앨범이 판매 되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한데,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세친구 오프닝으로 'I Do, I Do, I Do, I Do, I Do'와 'Honey Honey'가 쓰였다.
  • 허나 미국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편. 아바의 음악 중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노래는 Dancing Queen 한 곡 뿐이다. 주 이유 중 하나는 가사는 영어인 반면, 그 당시 멤버들이 영어를 거의 몰랐던 것이 크다. 덕분에 TV 등에 나와 공연을 하는 내내 외운 가사에 집중하느라, 초긴장 상태로 마네킹처럼 서서 노래만 줄창 불러대다보니 노래 외의 퍼포먼스는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 국내에서 다른 가수의 노래가 아바의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One Summer Night"과 "Summer Night"는 아바의 곡인 "Summer Night City"과 헷갈려서, "Sugar Sugar"는 가사 초반의 "Honey Honey"가 아바의 대표곡 "Honey Honey"와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꼭 한번씩 들어보고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
  • 아바의 멤버들이 살인적인 스웨덴의 세율을[26] 피해 국적을 옮겼다 식으로 잘못 알려진 적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는데도 스웨덴 국적을 유지하여 그 많은 세금을 다 냈다. 나름대로 애국자라면 애국자랄까 스웨덴 국적을 포기한 것은 프리다(노르웨이 출신의 갈색 머리 여성) 뿐이고, 그 이유도 세금 문제가 아니라 아바가 해체한 이후에 프리다가 스웨덴-스위스 혈통의 독일 귀족으로 로이스 대공 겸 플라우엔 백작인 하인리히 루조(Heinrich Ruzzo Prinz Reuss, Graf von Plauen)와 재혼하면서 독일 귀족의 규칙으로 인하여 독일로 귀화했다. 세금 덜 내고 싶으면 독일이 아니라 모나코로 갔겠지... [27] 덕분에 그녀의 공식 호칭도 Anni-Frid Lyngstad Prinzessin Reuß von Plauen(독일어)(스웨덴어: Anni-Frid, Prinsessa av Reuss, Grevinna av Plauen, 영어: Her Serene Highness Princess Anni-Frid Synni Reuss, Countess of Plauen)이라는 엄청난 길이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며, 스웨덴 왕가와의 친분도 생겼다고 한다. 하인리히 루조는 1999년에 스톡홀름에서 병사함으로서 프리다와 사별하게 된다.
  • 당시 기준으로 매우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공연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정말로 빡빡했던 당시 스웨덴의 세금제도 하에서 합법적인 세금 공제를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해진다. 간단히 요약하면, 실생활에선 도저히 입고 다닐 수 없는 정도 파격적 의상이어야 공연활동을 위한 무대의상으로 인정받아 비용처리가 가능했기 때문. # 그 당시에 그러한 파격적인 옷을 입고 나가서 호주에선 앙네타에게 "가장 섹시한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라고 농담삼아 질문을 던지자, 앙네타는 "글쎄요, 저는 본 적이 없거든요 ㅎ"라고 농담으로 되받아 쳤다. 이러한 내용은 아바 박물관에도 나와있는 농담이기도 하다.
  • 워낙 유명하다 보니 영미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ABBA의 노래를 부른다. 주로 많이 부르는 노래는 'The Winner Takes It All'.1, 2, 3, 4, 5, 6, 7, 8, 9

  • 1999년 스웨덴에서 4인조 혼성 그룹인 A*Teens(초기에는 ABBA Teens)가 아바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데뷔한 바가 있다. 이후 해체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는 "Upside Down"이 있다. 한국에서는 KBS 동물 프로그램 주주클럽 시즌2의 엔딩곡으로 쓰였고, 장나라성시경의 듀엣곡으로 번안되기도 했다. 그 외 북유럽 팝으로 유명한 경우는 제2의 ABBA에 가장 가까웠던 Ace of Base아쿠아(Aqua)가 있다.
    • 다니 레네발트: 1984년 7월 24일 생. 백금발의 굉장한 미소년인 남자 멤버. 어른이 된 현재는 키가 185cm나 될 정도로 덩치가 좋다.
    • 마리 셰르네홀트: 1983년 7월 11일 생. 여성 멤버 중 큰 쪽. 역시 금발이다. 어른이 된 현재는 170cm로 여성 치고는 큰 키이다.
    • 사라 룸홀트: 1984년 10월 25일 생. 여성 멤버 중 작은 쪽. 흑발에 입이 독특하게 생겼다. 어른이 된 현재는 165cm이다.
    • 아미트 폴: 1983년 10월 29일 생. 동양인처럼 생긴 남자 멤버.[28] 어른이 된 현재는 173cm로 이 당시에 비해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다.
  • 베니는 스톡홀름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일본은 1978년에 프로모션 방문, 1980년에 대규모(총 11회 공연) 투어가 있었던 것과 달리, 한국은 내한 공연은 커녕 바이른 울바에우스를 제외하고 방한조차 한 적이 없다. 다만 1979년에 일본을 포함한 극동아시아 투어의 계획이 있었고, 한국도 공연후보지에 포함이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최종적으로는 1980년에 일본공연만이 성사되었다. 나름 인기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 바이른 울바에우스는 2004년 1월에 뮤지컬 맘마 미아 한국 초연 때 업무차 방한한 적이 있었다.
  • 1994년 호주 영화 뮤리엘의 웨딩에도 내내 아바의 노래가 나온다. 주인공이 친구와 아바 코스프레를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압권.
  • 소설 & 영화 마션의 등장인물인 멜리사 루이스 (Melissa Lewis)가 ABBA의 열성적인 팬으로 나온다.[29] 남편이 ABBA의 1978년도 오리지널 미개봉 앨범을 입수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활동 당시 아바의 앨범은 CD로 나오지 않았다. CD가 상용화된 것이 80년대 초이기 때문. 미개봉 LP판을 구했다니, 크게 기뻐할 만도 하다. 물론 이후에 앨범은 CD로 리마스터링되어 다시 나오긴 했고, ABBA Gold 같은 편집 음반은 CD로 나왔다.
  • 멤버 울바에우스는 이 밴드가 사실상 해체된 후 수년간 ABBA를 인기있게 유지한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LGBT 팬 층의 공로를 돌렸다. ABBA는 7~80년대 게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던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울바에우스는 2011년 "80년대에 ABBA는 분명히 유행이 지났고, 완전히 유행이 지났어요. 자,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속되는 동안 즐거웠는데, 이제 끝났어요. 하지만 어떤 이상한 이유로 우리는 게이 씬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었죠. 그리고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부활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게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멤버들 중 안니프리드 륑스타는 레벤스보른 출신이다. 노르웨이에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할머니와 어머니가 일찍이 스웨덴으로 이주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프리다는 한동안 아버지(나치 독일군 장교였다고 한다)가 군함 침몰로 사망한 것으로 듣고 자라다가 아바로 유명해진 뒤 독일 잡지 'BRAVO'에서 사실이 폭로(?)되었고 그제서야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참고) 이 부분은 2016년 4월 2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 1998년에 ABBA를 그대로 벤치마킹하고 ABBA의 노래로 그대로 활동하는 혼성그룹 A-Teens이 결성되었다.
  • 또한 안니프리드 륑스타는 벤뉘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유부녀였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상태로 노래를 했었다. 그리고 벤뉘와 이혼하고 나서는 스위스의 귀족과 결혼했다. 그리고 그 귀족이 죽은 뒤에는 공작부인인 상태로 영국남자와 만나서 같이 산다고 한다. 이러한 점만 보면 엄청난 능력자인것...
  • 「The Winner takes it all」은 비에른이 이혼할 때의 심정을 담아서 쓴 곡이라는 루머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일단 본인은 부인했다.
  • 야구 응원가로 꽤 많은 노래가 쓰였으나, ABBA 측이 모든 응원가 사용을 거부하면서 묻히게 된 노래가 많다. 대표적인 게 조인성, 송주호민병헌. 특히 민병헌은 당시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에서 ABBA의 요청을 쌩까고 곡을 계속 사용하다 소송 직전까지 가고 나서야 포기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아마도 ABBA 노래를 사용한 응원가 중 가장 유명한 응원가는 채태인의 응원가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문서 참조…..
  • 아일랜드에는 이들의 커버 밴드인 '아바에스쿠(Abbaesque)'가 있다. 아일랜드 전역에서 매년 150회 이상의 매진 공연하며 가장 성공적인 커버 밴드 중 하나가 됐다.홈페이지
  • 2014년 새롭게 만들어진 스웨덴 음악 명예의 전당(Swedish Music Hall of Fame)의 당연하게도 최초로 헌액된 아티스트 중 하나다.#
  • 심슨 가족에도 그들의 음악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미더스가 테이핑 한 ABBA의 노래 'Waterloo'를 번즈가 튼 장면이다.

  • 2018년 브렉시트 방안을 놓고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테레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가 댄싱퀸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하기도 했다. 춤추는 몸짓이 웃겨서 이 되기도 했다.
  • 2018년 셰어가 이들의 커버 앨범을 내 호평을 받기도 했다.[30] 또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둬 첫 주에만 15만 장이 팔리며,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 판매량은 세어 커리어 최고 초동 판매량이다.[31]
  • ABBA의 히트곡 중 하나인 'Money, Money, Money'는 배금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표 직후인 1976년 박정희 정부 시기에 금지곡 크리를 먹기도 했다.
  • 2010년 덴마크의 극우 정당 덴마크 인민당이 집회에서 이들의 음악 'Mamma Mia'를 사용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울바에우스는 이들을 비판했다. ABBA는 자신들의 음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도록 허락한 적이 없다며 덴마크 인민당을 고소하겠다고 말했으나, 덴마크 인민당이 꼬리를 내려 이들의 노래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해 고소는 하지 않았다. ABBA는 성명서를 통해 "첫째,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이 좋아하는 대로 노래를 다시 쓸 수 없고, 둘째,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그들의 당을 지지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ABBA는 정치적 맥락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고 발표했다.#
  • 2021년 8월부터 공식 유튜브에 4K 리마스터 버전으로 뮤직비디오를 재업로드 하고 있다.#

9. 외부 링크



[1] 보통 1982년에 해체한 것으로 알려져있고 그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다만 휴식을 취하겠다고 했을 뿐.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2018년에 재결성했다. 현지시간 2021년 9월 2일 신곡을 발표하며 약 40년만에 컴백을 발표했다.[2] 유로비전 데뷔는 1974년.[3] 그리고 두 부부끼리 모인 그룹이기도 했었다.[4] 관련 자료 영어 위키백과, 차트마스터(Chartmasters), 포브스[5] 아바의 꾸준한 인기에 관한 기사들 1, 2, 3, 4, 5, 6, 7, 8.[6] 동시기에 활동했던 밴드 도 비평가들의 평이 박했다. ABBA와 퀸은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앨범보다는 싱글 위주로 좋은 평을 받는다. 이 때문에 두 그룹의 최고 판매 앨범은 베스트 앨범이다.[7] ABBA는 미공개 음원을 한번도 공개한적이 없다.[8]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조사한 영국의 팝 아티스트 호감도 최상위권 이기도 하다.#[9] 1위는 의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2위는 아델의 21.[10] 현재 영국에서 이 앨범은 208주 동안 중단 없이 판매되고 있다. 또한 10년동안 세 차례에 걸쳐 차트 1위를 차지했다.[11] 2위는 밥 말리의 Legends.[12] 무려 20년 가까이 100위안에 들었다는 뜻이다.[13] 20세기에 발매된 앨범 중 최고 순위다.[14] 한국에서도 롱런중인데 2004년부터 2016년 공연까지 12년간 서울 포함 33개 지역에서 1,622회 공연, 195만여 관객을 동원했다.[15] 그 해 최고 흥행 영화 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가 2018년 영국 흥행 5위를 기록한걸 보면 영국인들의 엄청난 ABBA 사랑을 알 수 있다.[16] 이후에 ABBA로 그룹명이 결정되자, 저 명칭이 사라지고 ABBA로 바뀌었다.[17] 예를 들어 싱글 'Waterloo' 또는 'Gracias por la musica'와 같은 몇몇 포스터와 디스크 커버 사진들, 1976년 초에 초기 북을 사용한 일부 사진들에서 그랬다. ABBA 멤버들이 1977년에 호주로 도착했을 때 착용한 선글라스 뒷면에 Wolfgang Heilemann의 편지의 이러한 빨간 글자가 붙었다.[18] 신기하게도 한국어 아빠를 발음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Abba이다.[19] 피치포크 선정 1980년대 최고의 앨범 182위[20] 비영어권 그룹 앨범 판매량 역대 1위[21] 엄청나게 많은 박물관이 있다. ABBA 박물관 이외에 대표적으로 노벨상 박물관, 바사호 박물관, 세계 최초 야외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 북방 민족 박물관, 현대 박물관, 스웨덴 역사 박물관, 말괄량이 삐삐를 테마로 꾸민 어린이 박물관 주니바켄 등이 있다.[22] 정확히는 '비틀즈 스토리'라는 박물관이다.[23] ABBA의 엄청난 팬으로 유명. #[24] 참고로 코스텔로 3집 앨범 Armed Forces의 대표곡 중 하나인 Oliver's Army 도입부에 Dancing Queen이 연상되는 코드가 나온다.[25] 인터뷰로 ABBA를 사랑했지만, 70년대 당시는 숨기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26]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최고소득세율이 87%였는데 1970년대 초반의 90%대 세율에 비해서 낮아진 것이 이 정도. 다만 이건 스웨덴만이 특별한 건 아니었고, 사실 미국이나 영국도 1970년대까지는 최고 소득세율은 80-90%대 정도로 고세율 정책을 유지했다. 이렇게 세율이 낮아진 것은 마가렛 대처로널드 레이건 양 콤비 덕택이고, 만약 레이건이 인기가 없었거나 마가렛 대처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맥없이 패배하거나 아니면 포클랜드 전쟁 자체가 터지지 않았으면 세율이 이처럼 낮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27] 그도 그럴 것이 독일도 세율이 꽤나 높다.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도 원래는 독일에서 살고 싶었으나 세금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서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고 할 정도...[28] 인도계 스웨덴인이기 때문에 동양인처럼 생기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29] 설정상 옛날 구닥다리 디스코를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는 디스코 장르를 굉장히 싫어한다.[30] 셰어는 영화 맘마 미아! 2에도 출연했다.[31] 셰어의 빌보드 앨범 차트 최고 순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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