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8:37:12

발렌베리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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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특징1.2. 후계자 요건
2. 가문의 역사
2.1. 발렌베리 가의 초석을 닦은 앙드레 오스카르 발렌베리2.2. 앙드레의 위기, 재도약의 2세대2.3. 이후2.4. 보쉬 스캔들2.5. 가문 사람들의 생활
3. 관련 기업4. 관련 링크5. 관련 문서

1. 개요

Wallenberg family

지주회사 인베스터 AB를 기반으로 하는 스웨덴기업 가문.

1.1. 특징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Esse, Non Videri.)
발렌베리 가문의 신조
  • 150년 이상의 시간 동안 5대에 걸쳐 경영 세습.
  • 금융·건설·항공·기계·통신·제약 등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1]
  • 매출에 따른 순이익의 대부분은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 가문 소유의 재단은 대학·도서관·박물관·과학연구 등 공공사업에 투자.[2]
  • 기업 경영 시 필수적으로 노동조합 대표자를 이사회에 중용.
  • 가문 소유의 재단과 기업을 대표하거나 경영하는 자는 주식을 받지 않고 급여만 수령.

1.2. 후계자 요건

1. 경영 세습은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 한함.

2. 후계자는 혼자 힘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함.

3. 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함.

4. 후계자는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에 진출하여 실무 경험과 금융의 흐름을 익혀야 함.

5. 후계자 평가는 10년 이상에 걸쳐 하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으로 정함.

6. 후계자로 선발된 2명은 차례대로 그룹 계열사들의 경영진으로 참여하여 경영 수업을 받으며, 최종적으로 인베스터 AB[3]의 CEO와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4]의 CEO를 교대로 수행함.

2. 가문의 역사

발렌베리 가문의 계보

2.1. 발렌베리 가의 초석을 닦은 앙드레 오스카르 발렌베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2px-AOWallenberg.jpg

1856년에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앙드레 오스카르 발렌베리(André Oscar Wallenberg, 1816년생)가 은행을 창립하면서 대재벌로서의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앙드레는 17세였던 1832년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해군 장교가 되었고 견습 사관으로서 미국에 건너가 2년간 머물면서[5] 은행사업에 자극을 받았는데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정글 같은 미국 금융업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은행업에 관심이 생긴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꿈을 키웠는데 스웨덴 최초의 증기선인 린쇠핑 호의 선장을 역임[6][7]했고 중부지역 해군책임자를 거쳐 순드발지역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스웨덴 의회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된 그의 정치적 배경은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산업혁명에 힘입어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은행이 없어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한다.[8] 이에 주목한 앙드레는 1856년에 은행을 세워서 국내 자산가[9][10]와 외국에서 유치한 자금[11]을 국내 산업에 공급[12]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13] 이것이 발렌베리 그룹의 모태이자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는 SEB의 원류,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탄생이었다.

2.2. 앙드레의 위기, 재도약의 2세대

하지만 앙드레의 독선에 질린 은행 이사의 절반이 독립을 선언하여 스톡홀름 한델스방켄이라는 은행을 설립했는데 오늘날 스웨덴 금융계의 투톱이 생긴 게 이때라고 한다. 게다가 전체 은행자산 중 40퍼센트에 이르렀던 채권자산은 1870년대의 경기과열 끝에 찾아온 1878년 경기침체를 맞으면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위기를 초래했다. 3일 연속 뱅크런을 맞자 위기에 몰린 앙드레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은행 경비원들에게 사복을 입히고는 동전을 가득 채운 현금자루 하나씩을 걸머지게 하고는 예금을 하러 온 것처럼 행세하게 하여 고객들을 진정시켰다. 다행스럽게도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가 자신의 개인예금 1만 크로네를 공개적으로 예치했으며, 마지막에는 정부 차원에서 앙드레의 은행을 비롯한 전 은행권에 구제 금융을 해주면서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그는 이자율을 대폭 올려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지만 예전 같은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1886년에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에게는 21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고, 이들 가운데서 발렌베리 가문의 진정한 건설자들이 배출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px-KnutWallenberg.jpg

가업을 승계한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1853~1938)는 당시 파리에 있던 세계적인 은행 크레디리요네에서 전문 금융교육을 받았고, 21세부터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되어 은행 경영에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준비된 후계자였다. 은행의 경영자가 된 그는 외국생활 동안 구축한 런던과 파리의 금융계 인맥을 통해 해외자금 조달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를 통해 공급된 자금은 스웨덴 산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그러던 중 그와 그의 은행에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는데 1911년에 은행들의 일반기업 주식 직접소유 및 경영 참여가 법적으로 허용[14]되면서 금융자본의 산업지배가 가능[15]해졌기 때문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3px-MarcusWallenberg3.jpg

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면 대부분의 은행은 피지배기업들의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졌는데 1878~1879년의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크누트는 이복동생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1864~1943)[16]에게 SOS를 요청했고 피지배 부실기업들 중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워크아웃 작업을 시작[17]했다. 부실기업들을 실사한 마르쿠스는 부실의 주범이 무능력한 경영자들이라는 걸 알고는 이들의 모가지를 모두 쳐냄과 동시에 회사의 부채를 털어줬고, 오랫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쿠스의 첫 작품인 철도차량 제조업체 아트라스를 예로 들면 기존 경영진을 갈아치운 마르쿠스가 그 자리에 40대의 유능한 경영자를 새로이 투입했는데 새 경영자는 수익성이 없는 공장을 모두 폐쇄하는 대신 스톡홀름의 다른 공장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부채 청산을 위해 새로운 법인인 니야 아트라스(Nya atlas)를 세워 기존 회사의 자산을 모두 인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청산했다고 한다. 그렇게 부활한 회사가 산업용 컴프레서와 압축공구 세계 1위를 달리는 아트라스 콥코의 전신이다.

그밖에도 철강회사 호포스(오늘날의 SKF), 발전설비회사 아세아(현재의 ABB), 트럭제조회사 스카니아 바비스(현재의 스카니아[18]) 같이 건설ㆍ기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크누트는 엄청난 규모의 자선사업을 추진[19]하는 한편 정계에 진출하여 외무장관으로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의 위기를 극복[20]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그는 부부의 이름을 따서 세운 ‘크누트앤앨리스 발렌베리재단’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

2.3. 이후

3대가 되면 크누트의 조카 야콥과 마르쿠스가 전자업체 에릭슨을 사들여 오늘날의 그룹 체제를 갖췄다.[21] 두 명 중 한 명은 지주회사, 한 명은 은행을 맡는 것이 보통이다.

4대째 후계자인 마르크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 총재 신분으로 1971년자살했다. 3대째 마르쿠스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을 경쟁 은행인 '스칸디나비스카 은행'과 합병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거대 은행으로 만들고자 했다. 반대로 4대째 마르크는 가문의 은행을 지키고자 합병에 반대했다. 둘은 부자지간이었지만 계속해서 충돌했고 끝내 합병안이 가결되자 마르크는 자살했다.

현재는 5대째인 마르쿠스 발렌베리와 야콥 발렌베리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야콥 발렌베리는 1956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76년 스웨덴 왕립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 해군 예비역 장교가 되었으며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1980), MBA(1981)을 졸업했다. 몇 년간 몇 개의 국제적 은행에서 일하다가 1984년에 발렌베리로 돌아와서 SEB 은행에서 1990년까지 일했다. 주로 스톡홀름에서 일했으나 런던/뉴욕/홍콩/싱가포르 등 금융 중심지에서도 일했다. 1990년에서 1992년까지 발렌베리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부사장(Deputy Managing Director)으로 일했다. 1993년 SEB 그룹에 재입사해 1997년에는 CEO가 되었고 1998~2005년에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5대째 후계자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역시 비슷하다. 스웨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으며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뉴욕의 시티은행 본사를 시작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시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때 자산규모 250조의 싱가포르 계열 투자회사 테마섹 이사회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2.4. 보쉬 스캔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웨덴은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택하는 전략을 취했다. 발렌베리 가문 역시 양국과 모두 교류하면서 전쟁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에 전후 보쉬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인 1940년 독일과 미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자 발렌베리 가문의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이었던 야콥 발렌베리는 독일 회사인 보쉬의 미국 자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이 계약에는 비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 발렌베리는 보쉬에게 회사를 돌려주는 대신 보쉬는 발렌베리에 거액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미국과 독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독일 자산이 전부 몰수되었으나 보쉬의 미국 자회사만은 발렌베리와의 밀약으로 이러한 조치를 피할 수 있었고, 전후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발렌베리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2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6px-Raoul_Wallenberg_memorial_London.jpg

이렇게 발렌베리 가문은 나치에게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가문의 일원 중 하나였던 스웨덴의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만 명의 유대인들을 나치화살십자당의 마수로부터 구출하여 ‘헝가리의 쉰들러’[23]로 찬양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소련군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독살[24]되었지만 그의 행적과 죽음은 유대인들의 증오에 대한 발렌베리 가문의 방패가 되었고, 행위 자체의 인도적인 면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방계 출신인 데다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죽어 어머니가 재혼한 후 사실상 가문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되어 일족은 아니다. 발렌베리 가문 본가는 이 사람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아무런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다.

2.5. 가문 사람들의 생활

그들은 선대 오너들의 이름인 '마르쿠스'나 '크누트', '야콥' 등의 이름을 자주 쓰는데 이는 선조들의 이름을 쓰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문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발렌베리 가문 오너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를 체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옷은 형제가 물려입고, 계절에 따라 잔디깎기, 갈퀴로 낙엽 모으기 등등의 집안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받으며[25] 그 용돈의 반은 저축을 함으로써 근검절약을 익힌다고 한다. 게다가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문 앞에 앉혀서 이야기를 듣게 한 다음 사업 안건 해결 방식의 근거를 묻게 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을 익히게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집안에서부터 제왕학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오너를 매 대마다 2명씩 선발하여 지주회사와 금융계열사 대표를 분담시키기 때문에 독단경영을 할 수 없으며 개인, 소수 독재보다 가문 사람들 의견을 중시하는 편이다. 미국이나 한국은 전제군주제나 봉건제에 가까워 결정권자들[26][27]이 적으나 발렌베리는 로마, 그리스식에 가까워서 가문 사람들 물량이 압도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한국 가문들과는 달리 리더나 보스의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후계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가풍이 굉장히 엄하다. 단순히 선대 이사의 자녀도 메리트가 없다. 이사 후보는 발렌베리 가문의 수십 명의 자녀 모두에게 열려 있다. 거기다 자격 조건이 아주 특이하고 엄격한데 아주 특출난 능력을 보여주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예비역 장교여야 하고, 자력으로 외국 명문대 MBA를 취득하고, 발렌베리 이외의 외국계 금융기업에 입사해서 수년간의 경력을 쌓아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무능하면 가문 사람이라도 간단한 일이나 시키거나 돈이나 받으면서 생활하게 만든다. 물론 가문의 후광을 입어서 커리어패스를 쌓는 과정이 수월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야심이나 다른 사상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 서로가 견제하면서 어느 정도 공신력이 보장될 수도 있다.

3. 관련 기업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Investor AB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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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베리 가문은 공식적으로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훈 중 하나가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28]이기 때문이다. 대재벌이다 보니 세간의 이목이 쏠릴 것을 알고 몸을 숙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예 가훈으로 정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듯하다. 지주회사인 인베스터 AB도 간판은커녕 외관 자체가 굉장히 수수하게 꾸며진 건물에 입주해 있다. 이만큼 가훈을 철저히 지키는 덕분에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이후 150여 년간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세습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존경받는 가족경영기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3개의 발렌베리 가문 소속 재단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데 몇몇 회사[29][30]는 재단에서 직접 소유하는 기업이다. 나머지 회사들은 재단에서 직접 소유한 지주회사 인베스터 AB의 피지배 기업인데, 재단과 인베스터 산하에 있는 기업들은 다음과 같다.
발렌베리 가문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 목록
기업 업종 비고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 금융업 SEB, Stockholm Enskilda Bank. 스웨덴 2위의 거대금융기업으로, 현재는 인수합병을 통해서 스칸디나비스카엔실다 은행으로 불린다. 스웨덴 왕실과 거래하는 로열 뱅커(royal banker)이자 발트해 연안권에서 잘 나가는 금융그룹이다. 상술한 대로 발렌베리 가문의 모태이자 든든한 돈줄.
에릭슨 통신장비 기지국에서 쓰는 교환기 등의 통신설비를 만들고 소프트웨어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2012년 기준 매출이 350억 달러라고 한다. 한때는 소니와 손잡고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 스마트폰을 내놓기도 해서 알 사람은 아는 회사였으나 2012년 1월에 소니에게 가지고 있던 지분 50%을 매각하고 손을 뗀 상태.
일렉트로룩스 전자 대한민국에서는 청소기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TV를 제외한 나머지 가전제품만으로 2013년에 전 세계에서 20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브 방위산업 KF-X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던, 3차 FX 사업에 JAS-39 그리펜을 내세웠던 그 곳이다. 자동차 회사인 사브 오토모빌은 1990년에 GM에 매각하여 갈라졌다.
아트라스콥코 광산장비, 공기압축기 광산채굴용 소형 착암기와 공기압축기 시장 세계 1위라고 한다.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인 슈퍼사이클에 들어간 2013년도부터 반도체 공장 클린룸 설비 부문의 실적 증가로 2018년 기준 시가총액이 한화로 60조 원을 넘나드는 거대기업이다.
감브로 의료산업 투석치료 기기 개발 및 연구로 유명한 기업이다.
SKF 베어링 발렌베리 재단 직속으로, 베어링 분야에서의 매출로 10조 단위를 찍는 세계구급 기업이다.
SAS 항공운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개국이 2 : 2 : 3의 비율로 출자했고, 민간 : 국가의 비율이 1 : 1인 민관 합작 항공사다. SAS의 설립을 계기로 세 나라를 호구로 취급했던 타국의 대형 항공사들이 서비스를 강화했다 카더라. 정작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서비스 수준은 대한민국 국적사만큼이 아니라는 게 함정. 단, 2022년 조종사 파업으로 회생절차를 밟았고, 그로 인해 회사 자체가 2024년 에어프랑스-KLM 그룹으로 사실상 넘어가버린 상태.
ABB 발전설비
엔지니어링
지멘스, GE와 더불어 세계 3대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꼽히고, 매출은 2012년 기준으로 50조 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에 지상용 인버터를 납품해서 수도권 전철 5호선을 소음철로 만든 회사이다. 산업용 로봇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기업인데, 아이언맨 3에서 토니 스타크가 잠시 의탁했던 꼬마인 할리 키너에게 보내준 선물 중에 이 회사 로고가 박힌 기계팔 로봇이 있었다.
허스크바나 전동공구 전기톱과 모터사이클에서 유명한 회사다.
소비 바이오 투자한 지 얼마 안 된 신생업체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제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장약 로섹(Losec)[31]을 출시한 아스트라(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와 영국의 제네카(원래는 화학회사였는데, 제약부문을 분할하면서 출범)가 합병하면서 탄생한 거대제약회사로, 매출이 40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발렌베리 가문의 주식비율은 4%에 못 미치지만 많은 연구센터들이 스웨덴에 있다고 한다.
스토라엔소 제지 발렌베리 재단 직속으로, 발렌베리 가문에서 소유했던 스토라[32]와 핀란드 정부가 최대 주주인 엔소를 합병하면서 세계 1위의 펄프-제지업체가 됐다. 합병 ' 발렌베리 가문이 2대 주주로 밀려남에도 추진했다고 하니 엄청난 뚝심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나스닥OMX 증권거래소 산하에 있던 OMX(북유럽증권거래소)가 고점이었을 때 두바이에게 팔았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OMX와 나스닥 거래소를 합병한 나스닥OMX의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였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신의 한 수.
스카니아 상용차 및 엔진 트럭, 버스, 디젤 엔진을 제조하는 곳으로 유명한 기업. 다만 2008년부로 발렌베리 가문이 완전히 손을 털고 나왔기 때문에, 폭스바겐이 의결권과 주식비율 모두 최고주주이다.
AIK 포트볼 축구 스웨덴 1부 축구 리그 소속 구단. 발렌베리 가문 소유.
기타 등등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구급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33]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근거로 ‘이 같은 재벌 위주의 구조 때문에 자산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발렌베리 산하 기업에서 나온 배당금은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의 개인 금고가 아니라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재단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재단의 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집행하고, 투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및 학술 사업 발전 후원금으로 쓰며[34] 재단의 재무상황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매년 재단으로 모이는 배당수익의 20퍼센트만 재투자에 쓰이고 나머지 80퍼센트는 후원 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실제로 2004년 기준에 의하면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인 피터의 개인 주식자산은 당시 환율 기준으로 199억,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인 마쿠스의 주식자산은 173억, 야쿱의 주식자산은 52억에 불과하다고 한다.[35] 미국의 대기업 CEO들 연봉이 100억 단위가 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정말 검소한 것 맞다.

스웨덴의 높은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스위스, 네덜란드 등으로 떠난 세계 최대의 DIY 가구 제조업체인 이케아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액체포장용 종이팩인 테트라 팩을 만든 라우싱 가문 등 다른 스웨덴의 거물 기업인들과 달리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 남아서 묵묵히 가업을 지켜나갔다. 현재도 스웨덴 사회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발렌베리에 대한 스웨덴 현지의 평가는 높다.

이같은 발렌베리의 지배구조와 기부가 가능했던 건 스웨덴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 덕분인데 기업을 소유한 오너들은 보유주식을 상속-증여세 없이 재단에 출연하는 대신 고용을 지키며, 노동자 대표들을 일정 수 이상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대표들을 이사회에 보냄으로써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회사의 어려움을 분담하고, 정치권은 오너 가문에게 특혜를 주는 대신 두둑한 세금을 받아 노동자들의 복지유지 및 개선에 힘쓰는 것이 이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다만 현재 한국에 알려진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정보들은 어느 정도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살트셰바덴 협약에서 발렌베리를 비롯한 기업들이 85% 법인세를 납부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협약 어디에도 '법인세'에 대한 언급은 없다.
2011년 기준 살트셰바덴 협약을 따르는 기업
스웨덴 상장기업 55%
핀란드 상장기업 36%
덴마크 상장기업 33%

과거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36],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Saltsjöbadsavtalet)'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어냈다고 한국에 알려져 있었으나 '85% 법인세'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을 통해 와전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2 (한국 언론의 자기복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살트셰바덴 협약의 내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에서 제공하는 협약 전문(스웨덴어)에도 법인세에 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1. 발렌베리 가문은 법인세를 내지 않고 오히려 환급을 받고 있다.
2. 상속세 폐지, 황금주 허용, 낮은 실효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이 댓가로 높은 기부를 하고 있다.
3. 85% 법인세 납부는 한국 언론의 무검증 복제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다.

4. 관련 링크

(the free encyclopedia)Wallenberg family
삼성, 발렌베리 가문을 꿈꾸긴 했을까?
스웨덴 157년금융名家 발렌베리가문

5. 관련 문서



[1] 투자회사들처럼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일정 지분을 보유했다는 의미로, 일정 지분을 가졌다고 하여 가문의 기업으로 오해는 금물이다. 인베스터 AB가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하며 종속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업은 자산 대비 20% 수준에 불과하다.[2] 스웨덴 노동조합과의 마찰로 빚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노총(LO)과 스웨덴경영자총협회(SAF)가 노사관계 사회적 대타협의 일환으로 만든 살트셰바덴 협약에 따라 발렌베리 가문에 이익이 되는 차등의결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이다.[3]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4] 발렌베리 가문의 모태이자 자금줄[5] 당시 스웨덴 해군은 해군에 소속을 두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6] 앙드레는 이 배에서 청소를 담당하던 미나 안데르손과 결혼하여 5명의 자녀를 뒀는데 그녀가 죽자 어린 조카들을 돌봐줬던 처형 로 비사 사이에서 2명의 자녀를 봤다.[7] 로 비사와는 정식 혼인을 안 해서 발렌베리 가문을 힐난하는 소재가 됐는데 이런 사생활과는 달리 SEB의 전신인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은 세계 최초로 여성을 정식 직원으로 고용한 은행이라고 한다.[8] 이전에도 은행이 있긴 했지만 지주들의 수요나 만족시키는 보수적이고 낙후된 시스템이어서 산업혁명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9] 첫 고객이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으로 유산관리에 애를 먹던 자기 모친이었는데 유산을 맡아 관리하는 대신 매 분기마다 5.35%씩 총 21.4%의 이자를 지급했다고 한다.[10] 여기에 해군 동기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다고 한다.역시 인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11] 스웨덴 최초로 자금시장 거래, 채권발행, 해외차입 등을 도입했고, 다른 은행들과 달리 예금유치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12]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 공업국으로부터 수요가 증가되던 철광석과 목재가 끝내주게 많은 스웨덴이라 광업과 목재가공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한 덕분에 은행업도 탄력을 받았다고 한다.[13]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았는지 북유럽의 메디치, 스웨덴 제2의 군주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한다.[14] 금산분리법이 해제된 그야말로 충공깽스러운 사건이다.[15] 사실 이 법안은 은행권의 로비에 의해 통과됐는데, 1934년에 집권한 사회민주당에서 ‘스웨덴판 글래스-스티걸법’, 다시 말해 금산분리를 다시 입법화하면서 은행권에게 빅엿을 먹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은행들에 대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대신 기존 소유주식을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발렌베리 그룹의 구조가 3개의 가문 소유 재단을 정점으로 지주회사 인베스터 밑에 금융업체인 SEB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있는 형태로 갖춰진 것이다. 금융업체라는 캐시카우가 자회사로 있으니 발렌베리 그룹으로서는 절대로 망할 일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주회사법에 의해 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업체를,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업체를 지배할 수 없다.[16]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웁살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고 한다.[17] 오늘날로 치면 사시에 합격해서 판사 임용을 앞두던 재벌 2세가 2대 회장이 된 이복형에게 코 꿰여서 법복을 포기하고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된 것이다.[18] 2000년대 후반 몇 년 동안 지분변동이 생기면서 2008년에 이르면 발렌베리가 남은 지분까지 폭스바겐에 매각하면서 폭스바겐이 70.94%의 주식을 보유해 스카니아의 최대주주가 됐다.[19] 스톡홀름 시청사 신축자금을 지원(주로 골든홀 건축에 투입됐는데 이곳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했고 유럽 최초의 경영대학인 스톡홀름경제대학의 설립을 주도했다.[20] 영국의 해상봉쇄 때문에 영국과의 무역협상이 유일한 살 길이었는데 스웨덴에 방문한 영국 측 협상 대표단의 대표였던 햄브로 은행(현재 투자운영 부분은 JO 햄브로로 떨어져나갔고, 나머지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에 인수되어 SG햄브로 은행이 되어 버렸다)의 오너가문 출신 에릭 햄브로가 크누트의 친구여서 잘 해결됐다고 한다.[21] 발렌베리 가문의 오너들은 야콥, 마르쿠스라는 이름을 많이 쓰는데 이는 선대 오너들의 이름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위대한 업적과 가문의 장대한 역사를 기억하려는 의미라고 한다.[22] 다만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스웨덴 자체가 중립국으로서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서 양면 외교를 취하고 있었고, 발렌베리는 독일만이 아닌 연합국과도 교류하고 있었으며, 이런 문제로 발렌베리 외의 다른 스웨덴 기업들 역시 독일과 교류하고 있었다.[23] 그가 일하면서 유대인들을 구한 곳이 헝가리였기 때문이다.[24] 다만,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어서 정확하게 현재로서는 실종, 사망인정으로 구분되고 있다.[25] 이 때문에 가문 사람들 중 학교 교재를 저당잡혀 용돈을 구한 이도 있다고 한다.[26] 기사나 유교의 방식이든 용병의 방식이든 진짜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오너의 주식 수가 부족해도 제왕적 경영에 문제가 없는 경우들도 있다.[27] 사람들의 착각과 다르게 미국도 가족기업들이 GDP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수성가 문서 참조.[28] 라틴어로 'Esse, Non videri'[29] SKF, 스토라엔소 등[30] 국내 투자 사례도 존재한다. 2023년 7월에는 가문 소속 투자사인 EQT파트너스를 통해 맥쿼리자산운용 컨소시엄의 지분 전량인 36.87%와 SK스퀘어의 지분 28.82%를 약 2조원에 인수하며 SK쉴더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31] 성분명 omeprazole. 개발만 20년이 넘게 걸렸는데, 발렌베리 가문 오너들의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덕분에 개발에 성공하여 출시하자마자 10년간 세계 1위를 지켰고, 2001년에는 단독 매출 55억 달러를 찍었다고 한다.[32]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고 한다.[33] 인베스터는 주력기업 외에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고 한다. 100여 개 기업 지분을 소유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거다.[34] 대략 2천~3천억 원 정도가 매년 스웨덴 학술계에 들어가는데 스웨덴 국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탄 이들은 거의 다 발렌베리 재단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35]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가의 신화, 87p.[3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47257&cid=43667&categoryId=43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