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안영오(安穎五, 安永吾, 安永五), 안성오(安性五) |
자 / 호 | 영오(永吾) / 신와(愼窩) |
본관 | 순흥 안씨[1] |
출생 | 1878년 11월 3일 |
전라도 곡성현 오지면 대리 (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대동마을 460번지)[2] | |
사망 | 1935년 5월 5일[3] |
전라남도 곡성군 | |
묘소 |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괴정리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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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안자정은 그의 6촌 재종제(再從弟)이다.
2. 생애
1878년 11월 3일 전라도 곡성현 오지면 대리(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대동마을 460번지)에서 아버지 안방섭(安邦燮, 1858. 2. 13 ~ 1911. 11. 3)과 어머니 선산 류씨(善山 柳氏, 1856. 5. 20 ~ 1934. 9. 18)[4] 사이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면우 곽종석(俛宇 郭鍾錫)의 문하에 들어가 한문을 수학했다.경술국치 후 1911년 전 호남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항일비밀결사를 결성하려고 하자, 그를 돕기 위해 목화 30근을 군자금으로 제공했다. 이듬해인 1912년 이석용이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을 결성하자 6촌 재종제(再從弟)인 안자정과 함께 입단해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13년 이석용이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조선인 형사 김대형(金大亨)에게 체포되어 이듬해인 1914년 처형되자, 고향 곡성군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순흥안씨 병자대보(丙子大譜, 1936년)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후 1935년 5월 5일 고향 곡성군에서 별세했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