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3:21:01

안정공주

1. 개요2. 어머니 측천무후의 배경3. 짧은 생애4. 음모론

1. 개요

安定公主
654~654 (향년 0세)

중국 당나라 고종측천무후의 4남 2녀 중 장녀. 당 고종에게는 3녀,[1] 측천무후에게는 장녀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널리 알려진 안정공주의 사인(死因)은, 친어머니 측천무후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이다. 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갓난 친딸을 살해하고서, 고종의 황후와 숙비를 범인으로 몰아 모함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측천무후의 악독함과 냉혈함을 뒷받침하는 사례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2. 어머니 측천무후의 배경

본래 무조(武照)는 14살에 당고종의 아버지인 당태종후궁으로 입궁했다. 그녀는 재인(才人)이라는 낮은 등급의 후궁이었고, 당태종으로부터 그리 많은 총애를 받지 못했다. 당태종은 649년 사망했고, 그의 많은 후궁들은 감업사(感業寺)라는 로 보내졌다. 비구니가 되어 죽을 때까지 당태종의 명복을 빌며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무조는 그러한 운명을 거부했다.

당고종은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무 재인에게 반해 있었다. 게다가 고종의 정실인 황후 왕씨[2]도 무조를 궁으로 도로 데려오는 일에 동참한다. 당시 황후 왕씨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궁에서는 후궁인 숙비 소씨가 황후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왕 황후는 소 숙비를 견제하기 위해, 절에서 비구니로 살고 있던 무조를 환속시켜 궁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우를 쫓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었다.

다시 궁으로 돌아온 무조는 소의(昭儀)라는 등급의 후궁으로 봉해졌다. 그리고 왕 황후의 의도와 달리, 무 소의는 왕 황후와 소 숙비를 모두 제치고 당고종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리고 평소 왕 황후와 소 숙비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3. 짧은 생애

654년, 무 소의는 안정공주를 낳았다. 그러나 안정공주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 마침 안정공주를 보러 무 소의의 처소를 방문했던 왕 황후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왕 황후와 소 숙비황후후궁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좁디좁은 감옥에 갇혔고, 무 소의는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왕씨와 소씨의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들은 황후가 된 무조의 명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본래의 성씨인 '왕'과 '소' 대신에 '망(蟒, 이무기)'과 '효(梟, 올빼미)'로 불리게 되는 등, 죽어서도 두고두고 모욕을 당했다.

4. 음모론

오랫동안 "무조가 친딸 안정공주를 죽이고는 왕 황후에게 혐의를 씌워 모함했다"고 전해져 왔다. 반면 "안정공주는 영아돌연사증후군이나 다른 이유로 돌연사했는데, 무조가 마침 왕 황후에게 혐의를 씌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양쪽 가설 모두 '어쨌든 왕 황후나 소 숙비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무 소의(측천무후)가 딸의 죽음을 이용해 두 사람을 제거했다'라고 보는 것은 공통. 하지만 정말로 왕 황후나 소 숙비가 안정공주를 죽였거나, 또는 제3의 인물이 안정공주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한국 드라마 연개소문대조영에서는 전통적으로(?) 알려져 오던 첫 번째 설을 그렸다.

반면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문학가 샨사의 소설 <측천무후>에서는, 무조가 범인이라는 기존의 설을 부인한다. 소설 <측천무후>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사랑하는 딸 안정공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무 소의의 충격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이어 무 소의는 왕 황후와 소 숙비를 범인으로 믿어 잔혹한 복수를 한다. 그리고 측천무후 범인설에 대해서는 "나를 왜곡하고 모함하기 위해 사람들이 꾸며낸 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중국 드라마 무미랑전기에서는 고모 고양공주에 의해 살해되는 것으로 나오고, 드라마 태평공주비사에서는 유모가 몰래 빼돌려서 살아남았다는 설정으로 나와 가정문이 극 중 태평공주와 같이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1] 후궁 숙비 소씨가 낳은 이복언니 의양공주(義陽公主)와 선성공주(宣城公主)가 있었다.[2] 당고조의 여동생인 동안공주(同安公主)의 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