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57kg급 우승자 | ||||
안드라스 시케 (1988) | → | 안한봉 (1992) | → | 유리 멜니첸코[1] (1996) |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안한봉 安漢奉 | An Hanbong | |
출생 | 1968년 10월 5일 ([age(1968-10-05)]세) |
전라남도 해남군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해남중학교 광일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
종목 | 레슬링 |
체급 | 그레코로만형 -57kg |
신체 | 161cm, 57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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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이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7kg 금메달리스트이다.2. 선수 경력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계의 스타 선수로 활약을 펼쳤다. 아쉽게도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따며 그랜드슬램 달성에는 실패하였다.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그레코로만형 -52kg급 금메달을 시작으로 이름만 알려졌을 뿐 세계랭킹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래서 권덕용[2], 박장순[3] 등 다른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안한봉을 단지 스페인 구경이나 가는 사람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4] 뉴스에서도 잘해야 동메달이라고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는 만나는 선수들마다 악착같이 밀어붙였다. 1점을 실점하면 2점을 딸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따내고야 말았다. 안한봉을 만나는 선수들은 죄다 안한봉의 이 악착같음에 혀를 내둘렀고 결국 근성에서 밀려서 졌다. 결승에서는 동체급 세계랭킹 1위였던 독일의 리파트 일디즈[5]를 만났다. 여기서도 안한봉은 마치 도베르만이 목덜미를 물어뜯듯 일디즈를 잡고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힘에서 일디즈에게 밀렸으나 악착같이 밀어붙였다. 한마디로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경기를 했다. 중반에 역습을 당해 3점을 내줬지만 불 같은 정신력을 발휘해 옆굴리기로 2점을 따냈고 일디즈를 장외로 밀어내 1점을 만회해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장에서 결국 일디즈를 쓰러뜨리고 우승했다.
여담이지만 한국시간으로 안한봉이 금메달을 땄던 날 오후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3. 지도자 경력
2004년부터 현재까지 삼성생명 레슬링단 감독을 맡으며 레슬링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을 지내면서 애제자 정지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의 성과를 낸다. 이후, 국가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이 '노 골드'의 수모를 당하자, 급히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으로 재발탁되었다.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울 '비장의 무기'로 김현우를 점찍었는데, 당시 김현우는 안 감독이 김현우가 강원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삼성생명으로 스카우트할 정도로 안 감독이 일찍 김현우의 천제성을 눈여겨 보았다.국제레슬링연맹(FILA) 선정 올해 최고의 지도자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남자 레슬링 선수단 감독으로 참가했다. 김현우가 예선 첫 경기에서 동급 라이벌인 러시아의 로만 블라소프와의 경기에서 편파판정을 당하자 펄펄 뛰면서 울먹이며 항의하던 모습이 유명하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1992 바르셀로나 | 그레코로만형 -57kg |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90 오스티아 | 그레코로만형 -52kg |
동메달 | 1989 마티니 | 그레코로만형 -52kg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1990 베이징 | 그레코로만형 -52kg |
[1] 그의 전성기는 1998년 대한민국의 김인섭이 등장하면서 일찍 끝났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인섭을 예선 1회전에서 만남으로서 이 대회 금메달 후보 1순위이던 김인섭을 대회 내내 고전하게 만들기도 했다.[2] 1991년 세계선수권 그레코로만형 -48kg급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예선에서 초반에 탈락했다.[3] 박장순의 경우도 그의 체급인 자유형 74kg에 동급 최강 케니 먼데이가 버티고 있었다.[4] 더욱이 안한봉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체급을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57kg급 국내 최강자였던 시진철 선수를 꺾고 태극마크를 달았다.[5] 1990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우승한 이 체급 세계 최강자였다.[6] 한국 레슬링이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1999년 이후 무려 14년 만이었다.[7] 축구로 따지자면 FIFA 올해의 감독상과 비슷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