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스터빈스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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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알버트 스터빈스 Albert Stubbins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 1919년 7월 17일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 월센드 | |
사망 | 2002년 12월 28일 (향년 83세)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 월센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37~1946) 리버풀 FC (1946~1953) 애싱튼 AFC (1953~1954) |
감독 | 애싱튼 AFC (1953~1954) 뉴욕 아메리칸스(1960) | |
국가대표 | 1경기 (잉글랜드 / 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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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前 축구 선수. 리버풀 FC에서 활약하였다.2. 클럽 경력
잉글랜드 북동부의 월센드에서 태어난 스터빈스는, 1929년 학교를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당시 뉴캐슬에서 30경기에 출전해 6골을 득점하여 가능성을 알렸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모든 리그가 중지된 이후에는 커리어에 위기가 찾아왔으나 전시 친선 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전쟁 기간 동안 188경기에 출전해 231골을 득점하며 꾸준히 실력을 키워냈다.이후 전쟁이 끝나고 리그가 재개된 1946년, 그는 당시 클럽 레코드 금액인 12,500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리버풀에 입성하게 되었다.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 에버튼 또한 전시 리그에서 활약을 펼친 그에게 접근하였으나 그는 리버풀 행을 결정했다. 안필드에 입성한 스터빈스는 1946년 9월 14일 볼튼 원더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리버풀 이적 이후 첫 시즌인 1946-47 시즌에 스터빈스는 날카로운 득점력을 발휘했고 잭 발머와 함께 막강한 공격력을 뽐내면서 리그를 평정한 투톱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리그 24골을 포함 총 28골을 득점했고, 발머와 팀 내 최다 득점자의 위치에 오르며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제일 앞에서 이끌었다. 스터빈스는 그 다음 시즌인 1947-48 시즌에도 24골을 넣으며 걸출한 득점 감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1948-49 시즌에는 계약 문제로 인해 약간의 제약이 발생했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에는 리버풀이 사상 최초의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과정에 공을 세우며 팀을 이끌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스터빈스는 출장 횟수가 적어짐을 느꼈고,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1953년 1월 3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를 끝으로 그는 리버풀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리버풀과 안필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였으며, 당대 머지사이드 축구와 풋볼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리버풀에서 총 178경기에 나서 83골을 득점했다. 스터빈스는 리버풀을 떠나 애싱튼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짧은 커리어를 더 이어갔으나 부상 문제로 인해 일찍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 그는 스포츠 언론사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1960년 잠시 미국의 세미 프로 팀인 뉴욕 아메리칸스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후 83세의 나이로 짧은 투병 끝에 고향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3. 국가대표 경력
1945년 웨일스와의 비공식 친선전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뛴 바 있다.4. 기록
- 리버풀 FC (1946~1953)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46~47
5. 여담
- 1946년에 뉴캐슬을 떠나 이적할 당시 리버풀과 에버튼의 구애를 동시에 받았는데 동전 던지기를 통해 리버풀을 선택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뉴캐슬의 디렉터였던 스텐 시모어가 스터빈스에게 어느 팀과 먼저 대화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스터빈스는 동전을 던져서 리버풀과 먼저 만나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 이후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조지 케이와 회장 W. H. 맥코넬을 만난 스터빈스 리버풀의 플랜에 감명을 받았고 에버튼과는 더 만날 필요도 없다며 안필드 행을 확정 지었다.
- 리버풀의 로컬 밴드이자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비틀즈의 아이코닉한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표지에 그려진 바 있다. 당대 머지사이드를 상징하는 선수이자 리버풀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인데, 이에 축구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수 많은 유명인들과 함께 해당 앨범 표지에 등장했다.
- 스티븐 백스터[1]가 1885년 발표한 유명 SF 소설, '《시간의 배》(The Time Ships)'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 'A-L-B! E-R-T! Albert Stubbins is the man for me…' 라는 응원 문구가 유명했다.
- 1948년 3월 6일, 허더즈필드와의 안필드 홈 경기 당일 아침에 전보를 통해 '득점하면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는 협박 메세지를 받은 일화가 있다. 나머지 팀원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비밀로 했다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최선을 다했기에 협박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 다른 수많은 리버풀 레전드들에 비해 약간은 짧은 경기 수를 소화했지만 당대 가장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선수로 유명하다. 구단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내가 나쁜 경기를 한다고 한들, 우리 관중들은 몇몇 다른 선수들처럼 절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것."이라며 직접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언급한 바 있을 정도. 은퇴 이후에는 자신을 사랑했던 리버풀 서포터즈들이 '알버트 스터빈스 크레이지 크루(The Albert Stubbins Crazy Crew)'라는 팬덤을 결성하기도 했다.
[1] 리버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