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Hero's Grand Prix 챔피언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2005 미들급 | 2006 라이트 헤비급 | 2006 미들급 | 2007 미들급 |
야마모토 노리후미 | 아키야마 요시히로 | JZ 칼반 | JZ 칼반 |
이름 | 야마모토 노리후미 ([ruby(山本 徳郁, ruby=やまもと のりふみ)]) |
출생 | 1977년 3월 15일 |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 |
사망 | 2018년 9월 18일 (향년 41세) |
괌 데데도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종합격투기 전적 | 26전 18승 6패 2무효 |
승 | 13KO, 2SUB, 3판정 |
패 | 1KO, 1SUB, 4판정 |
입식 전적 | 4전 1승 3패 (1KO) |
체격 | 163cm / 66kg / 168cm |
링네임 | Kid |
주요 타이틀 | K-1 HERO'S 2005 미들급 그랑프리 우승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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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종합격투기- 주요 승: 카메다 마사시, 카도아키 히데키, 카츠다 데쓰오, 제프 커란, 자담바 나라툰가락, 이안 제임스 샤파, 토니 발렌트, 호일러 그레이시, 우노 카오루, 스도 겐키, 미야타 카즈유키, 이스트반 마조로스, 비비아노 페르난데스, 하니 야히야
※ 킥복싱
- 주요 승: 무라하마 타케히로
3. 커리어
3.1. K-1 HERO'S & DREAM
집안 자체가 레슬러 가문으로 아버지 야마모토 이쿠에이는 1972 뮌헨 올림픽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7kg 대표로 출전했다. 누나 야마모토 미유는 1991년 17세의 나이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당시 최연소로 우승한 바 있고,[1] 여동생 야마모토 세이코는 4년 연속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을 했다.[2]고교 시절 홀로 미국으로 유학갈 정도로 레슬링에 몰두하면서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했으나, 1999년 전일본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치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매형이었던[3] 엔센 이노우에로부터 종합격투기를 배우며 2001년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K-1 HERO'S, DREAM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HERO'S에서 가장 낮은 체급이 라이트급[4]이어서 실제 평체가 밴텀급 수준[5]이던 야마모토에게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러한 불리한 조건을 깨고 경량급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2004년 4월에는 K-1 MAX 2004에서는 쿵푸 베이스의 이소룡의 후예 컨셉인 토니 발렌트[6]와 붙은 적이 있다. 188이라는 자신보다 훨씬 장신의 발렌트였지만 초반 빠르게 그라운드로 몰고가 백 포지션에서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1라운드 57초만에 승리한다.
2006년 5월 HERO'S 2006 미들급 그랑프리 토너먼트 개막전에서는 플라잉 니킥으로 미야타 카즈유키에게 1라운드 4초만에 KO승을 거두기도 했다.[7]
종합격투기 선수로는 승승장구했지만 한편으로는 올림픽 출전을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았는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재도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팔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은 무산됐고 이 부상을 기점으로 기량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3.2. UFC
그래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손꼽히는 경량급 간판이었기 때문에 2011년 UFC와 계약했다. 드미트리우스 존슨, 대런 우에노야마, 본 리에게 내리 3연패를 하면서 부상으로 3년간 쉬었다. 2015년 2월 UFC 184에서 로만 살라자르를 상대로 가졌는데, 2라운드 중 살라자르의 눈을 찔러 경기는 무효가 됐다. 그리고 이후 2차례 부상으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UFC 184의 경기가 야마모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됐다. 2016년 이후로는 경기도 잡히지 않고 40세를 넘기면서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여겨졌다.3.3. 사망
그러던 와중 2018년 암으로 투병하는 게 알려졌고, 9월 18일 사망했다. 데이나 화이트, 타카다 노부히코를 비롯해 축구 선수인 나가토모 유토 등도 SNS에 조의를 표했다.생전 온몸에 문신을 새겨서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이것이 간암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됐으나, Rizin FF의 창립자인 사카키바라 노부유키가 유가족으로부터 허락받아 밝힌 사인은 위암이었다. 2016년 처음 암을 진단받았지만, 현역 복귀를 꿈꾸고 있었기에 팬들에게 심려를 끼칠까봐 투병 사실을 숨기면서 오키나와나 괌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2018년 2월 경부터 몸 상태가 나빠졌다고 한다.
4. 여담
고교 시절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서 최무배에게도 잠깐 레슬링을 배웠고, 이 시기 한국 음식에 빠져 체력 보강을 위해 삼계탕이나 갈비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별명인 신의 아들이나 KID는 자신에게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고 자신은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8] 언론에서는 그의 격투 센스 때문에 격투신의 아들이라고 포장하기도 했다.[9]
2004년 모델 MALIA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뒀으나 2009년 이혼했다.
여동생은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던 야마모토 세이코인데, 매제는 다르빗슈 유다.
[1] 한창 전성기에는 올림픽에 여자 레슬링 종목이 없어서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고, 40세가 넘은 나이에도 2016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는 등의 노력에도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면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2] 하지만 뒤이어 동 체급 최강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올림픽에는 못 나갔고, 2015년 다르빗슈 유와 재혼했다.[3] 야마모토 미유는 3번이나 결혼할 정도로 연애사가 파란만장했다 .[4] 당시 HERO'S 분류 상으로는 미들급이였다.[5] 키가 작기도 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레슬러 출신이라서 어려서부터 체중 조절을 해온 탓에 도리어 체중 중량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DREAM과 협상하면서는 WEC처럼 밴텀급 체급 신설을 요구했었지만, 결국 페더급을 63kg으로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6] 이 경기전에 K-1에서 이미 무에타이 선수와 입식으로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비록 패배했지만 독특한 컨셉과 나름 화려한 킥들을 구사했기 때문에 당시 일본팬들 사이에서 기대치가 꽤 높은 선수였다.[7] 이는 당시 메이저 종합격투기 단체 최단 시간 KO 신기록이자 현재도 최단시간 KO 타이 기록이다.[8] 다만 KID는 체구가 작은 탓에 대학 시절 레슬링부에서 선배지만 아이 같아서 붙은 별명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9]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하기 전에는 레슬링만 전문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격투기 데뷔 당시 킥복싱을 배운건 약 2년 남짓 정도였는데, 고바야시 마사토를 다운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