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0:11:50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colbgcolor=#000><colcolor=#fff>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Erich von Stroheim
파일:4046ce7b57f9b6c3c202aee81e70efff.jpg
본명 에리히 오스발트 슈트로하임
Erich Oswald Stroheim
출생 1885년 9월 2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57년 7월 5일 (향년 71세)
프랑스 모르파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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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각본가, 감독, 프로듀서, 배우
데뷔 1912년, '보이지 않는 적' (배우로 출연)
종교 표면상 가톨릭, 실제론 불신자[1]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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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트로하임의 <탐욕>은 영화 중의 영화다.
- 장 르누아르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영화감독이자 배우. 작품들도 유명한 편이지만, 주로 기구한 생애로 더 유명하다.

2. 생애

슈트로하임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할리우드에 입성하여 배우, 스턴트맨 등으로 활약하며 그리피스 등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이름에 귀족의 성임을 나타내는 '폰 (von)'을 붙인다. 이 시기 독일권 출신 예술가들은 귀족 출신이 아님에도 자신의 이름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예명의 개념으로 '폰' 칭호를 사용했는데 그도 그랬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셉 폰 스턴버그가 있다.

1919년 <눈먼 남편들>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후, 슈트로하임은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하나가 되며 이 시기, 슈트로하임은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배우로서 글로리아 스완슨 같은 당대의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훗날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게 될 <탐욕>의 제작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프랭크 노리스[2]의 소설 <맥티그>를 원작으로 하여, 슈트로하임은 무려 462분이라는 경이로운 러닝타임의 영화 <탐욕>을 선보였고, 이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란 영화사 MGM의 임원들은 재빨리 영화를 대거 편집하기 시작했다. 결국 약 5시간 가량이 편집되어 사라졌고, 현재 이 사라진 분량의 필름들은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고난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갔다. 그는 <결혼 행진곡>에서 <탐욕>에서 부분적으로 시도했던 컬러의 실험을 보다 밀고 나갔으며, <메리 위도우>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퀸 켈리>에서 촬영 중에 주연이자 프로듀서였던 글로리아 스완슨에 의해 해고되고 이후 <워킹 다운 브로드웨이>에서도 역시 작업 도중에 해고되자 그는 결국 영화감독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그는 아예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대표적인 작품은 장 르누아르의 <거대한 환상>, 빌리 와일더의 <다섯 개의 무덤>, <선셋 대로> 등이다. 그는 프랑스 영화 쪽에서도 활동했는데 프랑스 영화계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찰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황급히 미국으로 귀국해야 했다. 이후 4~50년대 즈음 시네마테크의 활성화와 함께 점차 재평가받게 된 슈트로하임은 뒤늦게 세계 영화사의 거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지만 그 영광을 오래 누리지는 못하고 1957년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슈트로하임에게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할 정도이다. 이외에도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 감독 에른스트 루비치기예르모 델 토로도 슈트로하임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수전 손택은 <탐욕>을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오랜 미국생활동안 모국어인 독어를 까먹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독일어 자체는 잘 했지만 중서부 미국 억양이 섞이면서 악센트가 괴상해졌다고 한다. 장 르누아르는 슈트로하임이 <위대한 환상>을 찍으면서 독어를 어린학생 외국어 배우듯이 배워야했다고 저술했다.[3] 빌리 와일더하고 폴 코너[4]는 슈트로하임이 오스트리아계 하층민 스타일의 독어를 구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5]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도 슈트로하임이 독어를 "웃기게" 구사한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악센트 문제 때문에 독일어라 보기 부끄러워서 감춘듯. 해외생활을 오래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크게 손상된 작품인 <탐욕>은 원래는 2시간 조금 되는 버전만 남아 있었지만 1999년 터너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4시간 가까이로 복원되었다. 복원을 총괄한 릭 슈미들린은 영화의 대본에 기초하여 사라진 장면, 등장인물 등을 복원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라진 장면들의 필름은 아예 소실돼 버려서 주로 영화의 스틸샷 등을 활용했다. 실제로 이 버전을 보면 영화의 대부분이 스틸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Arthur Lennig, "Stroheim", archive.nytimes.com, 2000[2] 스티븐 킹이 존경하는 소설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사실주의적인 소설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다.[3] 당시 맡았던 역할은 어느정도 고급 독일어를 써야하는 귀족 스타일의 장교 캐릭터였다. 중산층 출신에 오랜 미국 체류로 억양이 바뀐 슈트로하임이 배워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지우지 못했는지 독어 사용자들이 듣기엔 미국 악센트가 섞여있다고 한다.[4] 당시에 와일더를 포함한 거물급 감독과 배우들을 관리하던 할리우드 매니저다.[5] 다만 실제 슈트로하임 집안은 중산층 모자 제작자였다. 독일/오스트리아 활동도 없는데다 (미국에서도 여행 세일즈맨을 하다가 스턴트맨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사람이다.) 와일더와 코너가 한창 어렸을때 슈트로하임은 이미 미국에서 넘어갔으니 당연히 두 사람은 슈트로하임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