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5 07:57:43

에치오 로이크

파일:Ezio Loik.jpg
이름 에치오 로이크
(Ezio Loik)
생년월일 1919년 9월 26일
사망년월일 1949년 5월 4일 (향년 29세)
국적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출신지 피우메 자유국
포지션 라이트 윙 하프
신체조건 178cm | 75kg
소속팀 AC 밀란 (1937-1940)
베네치아 FC (1940-1942)
토리노 FC (1942-1949)
국가대표 9경기 4골 (1942-1949)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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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피우메 자유국에서 태어난 로이크는 피우메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1937년부터 3년간 AC 밀란의 유니폼을 입었다.

로이크는 1940년에 베네치아 FC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그의 평생의 동료 발렌티노 마촐라를 만나게 된다. 로이크는 베네치아에서 마촐라와 함께 현재까지 베네치아의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인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안겼고 1941-42 시즌에는 세리에 A 3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 활약으로 토리노 FC의 부름을 받았다.

로이크는 토리노에서의 초창기 때엔 마촐라와 함께 호흡도 안맞고 기량에서도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 갖은 욕을 먹었지만 2개월 후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로이크도 그란데 토리노의 주축멤버 중 한 명으로 토리노의 4연속 스쿠데토 달성에 큰 기여를 했다.

1948-49 시즌에 토리노는 4경기를 남기고 승점 4점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토리노 선수단은 포르투갈에서 친선 경기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참사를 당해 1군 스쿼드의 대부분이 사망했고 로이크도 그 중 한 명이 되었다.

2.1.2. 국가대표

로이크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7년간 9경기에 출전, 4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로이크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의 강한 몸매를 가졌고 인내심이 있는 선수였다. 로이크는 훌륭한 수비 능력, 끈질긴 커버력과 태클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양발로 강력한 슛을 날렸기 때문에 종종 팀 내 득점 선두권에 오르곤 했다. 로이크는 볼 컨트롤이 좋았고 볼에 대한 안정성이 매우 높았으며 속도가 좋지는 않았지만 전술적으로 매우 똑똑했고 시야도 좋았다.

4. 뒷이야기

  • 베네치아 FC토리노 FC 시절 로이크의 동료였던 발렌티노 마촐라와는 서로 성향이 안 맞아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마촐라는 과묵했음에도 그래도 사람들에게 친절한 면이 있고 다소 충동적인 성격이었지만 로이크는 매우 조용하고 수동적인 성격이었다. 로이크는 처음에 마촐라를 싫어했고 마촐라가 오만하다고 오해했지만 곧 오해를 풀고 사이좋게 지냈다.

5. 수상

5.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