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22:30:56

엔랴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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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nryakuji.jpg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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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
영어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
(Kyoto, Uji and Otsu Cities)
일본어 古都京都の文化財
(京都市、宇治市、大津市)
프랑스어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
(villes de Kyoto, Uji et Otsu)
국가·위치 일본 시가현 오츠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4년
등재기준 (ii)[1], (iv)[2]
지정번호 688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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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랴쿠지([ruby(延, ruby=えん)][ruby(暦, ruby=りゃく)][ruby(寺, ruby=じ)], 연력사)는 일본 시가현 오츠시 히에이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총본산이다.

서기 788년에 작은 사찰로 창건되었으며, 822년부터 정식으로 승려를 배출하는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조금씩 타 종단의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자경단 목적으로 소헤이(승병)를 양성했는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엔랴쿠지가 독립화된 무장세력이 되었고, 부정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에 엔랴쿠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되어 주지육림에 빠지고 민중을 괴롭혔다. 그러나 교토를 장악한 오다 노부나가에 밉보인 것[3]을 계기로 노부나가가 민중의 여론을 등에 업고 1571년에 엔랴쿠지를 토벌하고 불태워버렸다. 당시 다이묘들은 엔랴쿠지의 승병들을 천하에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하나로 뽑았다.[4]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불탄 뒤 재건된 건물이다. 평지가 좁은 가파른 산에 지어졌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절인만큼 전각 하나하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1994년에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절의 규모가 꽤 커서 히에이산 정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크게 동탑, 서탑, 요코가와 3곳으로 나눠져 있다. 사원의 주요 건물들은 대부분 동탑에 있으며 서탑은 동탑에서 20분 정도, 요코가와는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동탑의 근본중당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레이와 9년까지 내부 공사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일부 구간이 공개 중이라 공사 중인 모습과 법당의 내부를 일부나마 관람할수 있다. 근처에 있는 대강당에는 석가모니를 비롯해 일본 불교의 여러 고승들과 중국 천태종의 고승들, 엔랴쿠지를 창건하는데 많은 원조를 한 간무 덴노의 화상과 소개, 목상 등이 전시되어 있어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하다. 그 외 아미타당과 동탑(위 사진의 건물), 문수루 등이 있으며 서탑의 대표 건물로는 석가당, 요코가와는 중당이 있다.

2. 여담

한국사와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승려 엔닌중국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신라장보고가 도왔고 엔닌은 일본으로 귀국해 엔랴쿠지에서 지냈다. 그래서 지금도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

무사시보 벤케이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만나기 전 이곳에서 수행을 했었다고 한다.

2016년에 선배 승려가 후배 승려를 폭행하는 가혹행위 사건이 터졌는데,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 야쿠자연루된 사실이 덤으로 발각되는 바람에 오다 노부나가한테 박살난 기억을 잊었냐고 비난 받은적이 있다.

2021년 9월 12일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5]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6]을 법회에 초청하고 토론회까지 가졌다. 이를 두고 일본 국내에서는 '450년만의 화해'라는 반응이 많았다. #

이곳에서 보는 비와호의 전망이 아름다운데, 버스가 히에이산 정상까지 올라가니 그곳에서 관람하거나 아니면 동쪽에 있는 연력사 회관에서 숙박내지 1층 카페에서 간단한 차와 디저트를 즐기며 구경할수도 있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스스로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변해버린 엔랴쿠지는 오우미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군벌이었고, 노부나가가 키나이로 진출하던 시절에는 북쪽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동쪽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동맹상태였다. 단순히 노부나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 적대관계였던 셈.[4] 나머지 2개는 카모가와의 강물과 쌍륙의 주사위패.[5] 이름은 오다 시게카즈(織田茂和)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후손인지는 의문으로, 실제 후손은 오다 코이치.[6] 역사학자인 아케치 켄자부로(明智憲三郎). 만화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의 원작을 쓴 사람. 하지만 실제 후손인지 의문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