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6 13:20:05

엘 미라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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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미라도르의 모습

El Mirador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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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 미라도르과테말라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유적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엘 미라도르는 마야 문명의 첫 번째 대도시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 기원전 6세기 경 선고전기 시절부터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마야 문명 초기의 핵심적인 중심지였던 것이다. 엘 미라도르가 그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테라스 농법이었다. 원래 열대우림 지대는 특성상 엄청난 빗물에 영양분이 죄다 씻겨나가서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토질이 척박하다. 즉 워낙 땅이 안좋아서 농사를 짓기 힘든 땅이었다. 그러나 돌을 높이 쌓고 그 안에 흙을 채워넣는 테라스 농법이 처음으로 시작되자 양분들이 빗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다.

테라스 농법이 개발된 이래로 식량 생산량이 급증하며 당연히 인구는 대폭증했다. 엘 미라도르는 테라스 농법의 획기성에 힘입어 선고전기 마야 문명의 최고 중심지로 발전했고, 인근의 대도시인 나크베와 경쟁하면서 마야 문명권 전체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유명한 티칼이나 칼라크물도 이 당시에는 엘 미라도르에 한참 못미치는 중소형 도시일 뿐이었다. 엘 미라도르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전성기를 달렸고, 기원전 3세기 경에 최전성기를 찍었으며 기원후 1세기까지 세력을 유지했다.

당시 엘 미라도르에서 만든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라 단타'(La Danta) 피라미드이다. 높이가 무려 72m에 달하고 전체 부피가 2,800,000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3중 피라미드인데, 심지어 마야 문명의 최전성기에 해당하는 고전기의 대도시들도 이만한 크기의 피라미드는 건설하지 못했다. 워낙 그 규모가 압도적으로 거대해서 마야 문명권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로 불리기도 한다. 라 단타 피라미드가 세워진 180,000 세제곱미터 부피의 장대한 기단까지 포함하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대 건축물들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할 정도이다. 엘 미라도르의 건물들은 대다수가 돌을 채석장에서 잘라와 쌓아올린 뒤 특유의 스투코 마감 기법으로 신들의 얼굴을 조각해 새겨넣은 모습인데, 현재 스투코 조각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돌더미들만 남아있다.

파일:El-Mirador-Maya-Metropolis-32.jpg
'라 단타 피라미드'의 복원도. 심지어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도 크다.

하지만 대략 700여 년간의 전성기가 지나가자 엘 미라도르도 쇠락하게 되었다. 엘 미라도르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지배층의 지나친 건축욕 때문이었다. 엘 미라도르의 왕들과 귀족들은 세력를 과시하기 위해 건물들을 많이 건설했다. 이 건물들을 장식하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가 바로 석회 회반죽인 '스투코'였다. 스투코를 펴서 바르면 석재 겉면이 매끄러워져서 색을 칠하거나 치장하기도 쉬웠고, 스투코가 굳기 전에는 워낙 부드러워서 다양한 모양을 빚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스투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생나무를 태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1] 환경파괴나 생태계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던 엘 미라도르는 스투코를 만든답시고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나무들을 베어 태워댔다.

나무와 숲이 사라지자 상상도 못하던 부작용이 나타났다. 원래는 나무들이 비가 와도 점토와 토사물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뿌리로 단단히 잡아주었는데, 숲이 사라져버리자 이 점토층들이 대거 쓸려와 도시 쪽으로 유입되면서 양분이 풍부한 밭과 농경지들을 뒤덮어버렸던 것이다. 인근의 양분이 많은 늪에서 흙을 퍼오려 시도했지만 그 늪들마저도 몇 미터 두께에 달하는 메마른 점토층에 뒤덮여버리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시간이 흐를 수록 엘 미라도르 인근의 인구 부양력은 감소했고, 나중에는 집단으로 굶어죽는 인원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선고전기 말엽인 기원후 150년 경에 엘 미라도르는 버려지고야 말았다. 사회가 붕괴하고[2] 엘리트층들이 외부로 탈출하면서 아무도 그 곳에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후 고전기 후기에 해당하는 700년 경에 일부 마야인들이 이주해와서 다시 한번 도시를 세워보려는 시도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수가 적어 제대로 된 도시를 세우지는 못했고, 이때 세워진 건물들은 모두 높이가 겨우 8m도 넘지 못했다. 게다가 선고전기 시절 만들어진 건물들의 외장을 뜯어가거나 허물어 석재를 약탈하고, 왕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등 도시를 재건한다기보다는 유적에 빌붙어서 기생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마저도 200년이 흐른 900년대에는 거의 사라지고, 엘 미라도르는 다시 사람이 전혀 거주하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다가 1885년 클라우디오 우루티아가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해 보고했지만 아무도 신경을 안썼다. 거의 80년이 지난 1962년에서야 이 지역을 다룬 첫 번째 지도가 만들어졌고 1970년대에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발굴작업에서 엘 미라도르 유적이 티칼이나 우아삭툰 같은 고전기 시절의 대도시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라는 것이 처음 밝혀지면서 마야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마야 학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조금씩 발굴이 되고는 있지만 대규모 산림 벌채, 도굴꾼들의 유물 훼손, 인신매매 사업 따위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고 한다.



[1] 1톤의 스투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5톤의 석회석과 5톤의 목재가 필요했다.[2] 기원후 1세기 경에는 높이가 3~8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성벽을 지어 엘 미라도르를 둘렀다. 성벽을 지어야 할 정도로 인근의 침입이 빈번해지고 사회가 불안전해진 것이다.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던 로마로마 제국의 전성기 시절에는 성벽이 없는 열린 도시였다가, 제국이 붕괴하는 시점에 들어서야 야만족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주위에 성벽을 쌓았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