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02:37:22

엘리오 페트리

엘리오 페트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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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cannespalmedor.png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제24회
(1971년)
제25회
(1972년)
제25회
(1973년)
조지프 로지
(사랑의 메신저)
프란체스코 로시 / 엘리오 페트리
(마테이 사건) / (천국으로 가는 노동 계급)
제리 샤츠버그 / 앨런 브리지스
(허수아비) / (하수인)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
제22회
(1969년)
제23회
(1970년)
제24회
(1971년)
보 비더버그
(아달렌 31)
엘리오 페트리
(완전 범죄)
밀로스 포먼 / 돌턴 트럼보
(탈의) / (자니 총을 얻다)
각본상
제19회
(1966년)
제20회
(1967년)
제21회
(1968년)
수상작 없음 알랭 제수아 / 엘리오 페트리
(킬링 게임) / (시칠리아의 음모)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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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efd88f> 엘리오 페트리
Elio Petri
파일:Elio_Petri.jpg
출생 1929년 1월 29일
이탈리아 왕국 로마
사망 1982년 11월 10일 (향년 53세)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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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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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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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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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영화감독, 각본가
활동 기간 1953년-1982년

1. 개요2. 생애 및 활동3. 장편 필모그래피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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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평론가. 본명은 에라클리오 페트리.

70년대에 에토레 스콜라, 마르코 벨로키오, 리나 베르트뮐러, 마르코 페레리, 프란체스코 로시 등과 함께 이탈리아 정치 영화 붐을 이끈 감독으로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불과 4년 동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세계 3대 영화제 본상 4회 수상 및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페르소나 배우는 잔 마리아 볼론테이다.

2. 생애 및 활동

반 파시스트 성향으로 10대 시절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 어린 시절부터 영화 평론에 재능을 보여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인 루니타(l'Unità)에 평론문을 기고했으며 네오 리얼리즘 감독인 주세페 데 산티스[2], 카를로 리짜니[3] 등과 교류하면서 각본가로 영화계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후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한 엘리오 페트리는 32살의 나이에 장편 데뷔를 하게된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4]를 주인공으로 기용한 《암살자》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데뷔작부터 주목을 받는다. 이후 발표된 《I giorni contati》, 《Il maestro di Vigevano》도 무난하게 준수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5년 발표된 《제10의 도망자》는 기존 작품 세계에 변화가 일어난 독특한 작품으로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이다. 데스 게임 류의 원조 격인 영화로 살인에 성공하면 상금을 받는다는 자본주의 비판적 메세지에 코미디와 로맨스, 팝아트적인 영상미가 더해진 오락 영화로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우슬라 안드레스가 주연을 맡았다.

여기까지도 엘리오 페트리는 분명 좋은 커리어를 가진 감독이었으나 1967년, 잔 마리아 볼론테아이린 파파스를 기용한 범죄 스릴러 영화 《시칠리아의 음모》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당대 이탈리아의 중요한 감독으로 위치가 격상되었고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시칠리아의 음모》의 성공 이후 1969년, 실제 연인 사이인 프랑코 네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5]를 주연으로 기용한 싸이코 스릴러 《시골의 어느 한적한 곳》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다. 기존 영화들 중에는 《제10의 도망자》처럼 팝아트적 감각이 돋보이는 영상미와 더불어 감각적인 연출과 에로티시즘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령에 관련된 소재라 지알로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잔 마리아 볼론테와 디시 호흡을 맞춘 1970년작 《완전 범죄》는 부패한 사법 시스템을 고발하는 정치 풍자 영화로 비평과 흥행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며 페트리 감독의 최고작으로 불리게 된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국제 비평가 연맹상을 수상하였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 및 이탈리아 연간 흥행 8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문화부가 선정한 보존해야 할 이탈리아 영화 100선에 오르며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과 1년 뒤인 1971년, 이탈리아 북부 공장 노동자가 겪는 산업 재해를 다룬 《천국으로 가는 노동 계급》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엘리오 페트리는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다. 잔 마리아 볼론테와 마리안젤라 멜라토[6]가 출연하였다.

이후 우고 토냐치가 출연한 《사적 소유는 절도가 아니다》,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7]를 모티브로 하고 잔 마리아 볼론테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출연한 《토도 모도》, 잔카를로 잔니니가 출연한 《굿 뉴스》를 통해 엘리오 페트리는 정치성, 사회성이 강한 작품 세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1982년,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함께 차기작을 준비하던 그는 암으로 인해 53세라는 영화감독으로서는 한창 활동할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불과 11년 뒤였다. 이른 나이에 타계해서인지 재발굴이 의외로 늦었던 편에 속한다.

3. 장편 필모그래피

  • 암살자(1961) -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 I giorni contati(1962)
  • Il maestro di Vigevano(1963)
  • 제 10의 도망자(1965)
  • 시칠리아의 음모(1967) - 칸 영화제 각본상
  • 시골의 어느 한적한 곳(1968) -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상
  • 완전 범죄(1970) -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 천국으로 가는 노동계급(1971)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사적 소유는 절도가 아니다(1973) -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 토도 모도(1976)
  • 굿 뉴스(1979)

4. 기타

  • 한국에선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엘리오 페트리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 사망 당시 28살 연하 이탈리아 배우 줄리아나 데 시오와 연인 관계였다. [8] 페트리 사망 이후 데 시오가 배우로 성공하고 현재까지 롱런하게 되면서 데 시오는 종종 이탈리아 방송에서 페트리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인터뷰를 한다(...)
  • 현대 이탈리아 영화 중에선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작 《일 디보》가 페트리 감독 스타일이 연상된다는 평을 얻었다.

[1] 이후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탈퇴했다.[2] 《쓰디쓴 쌀》이 네오 리얼리즘 명작으로 유명하다,[3] 《가난한 연인들의 연대기》가 네오 리얼리즘 명작으로 유명하다.[4] 마르첼로가 주세페 데 산티스 영화에 출연하여 서로 친분이 있었다.[5] 이 두 사람은 2006년에 정식 결혼한다.[6] 리나 베르트뮐러의 페르소나 배우.[7] 영화가 공개되고 2년 뒤,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 살해된다.[8] 다만 엘리오는 사망 당시까지 파올라 페고라로랑 부부 관계였다. 즉 불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