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7:15:49

예언자의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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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모스크의 전경

1. 개요2. 역사3. 구조4. 기타


ٱلْمَسْجِد ٱلنَّبَوِي

1. 개요

메디나에 있는 이슬람 최고의 성지 중 한 곳. 무함마드무덤이 이 곳에 있다.

원래는 예언자 무함마드메디나를 정복하고 지은 모스크였다. 무함마드는 이후 모스크 옆에 자택을 짓고 살았는데, 632년에 무함마드가 자택 내에 있는 애처 아이샤의 거처에서 죽자, 죽은 바로 그 자리에 관을 넣었다. 이후 아이샤의 거처에서 벽 일부만 남기고 철거한 뒤, 무함마드의 관을 중심으로 (작은 돔이 있는) 사각형 묘각을 세웠다.[1] 우마이야 왕조 시절에 모스크를 확장하여 묘각과 하나의 건물로 합쳐버렸으며 이후 아바스 왕조,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많은 이슬람 왕조들이 건물을 개축하며 오늘날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세계에서 2번째로 지어진 모스크이자 메카의 '마스지드 알 하람'에 이어 이슬람에서 2번째로 신성한 모스크이기도 하다. 메디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모스크이기에 순례기간에는 6백만 명에 달하는 순례객들이 다녀가곤 한다. 비무슬림도 방문할 수 있어 단순 관광객도 점차 늘고 있다.[2]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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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시대의 모스크
선지자 무함마드메카에서 이슬람을 포교하다가 기존 토착민들의 미움을 사 622년 메디나로 쫒겨났다. '카스와'라는 이름의 낙타를 타고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현재 예언자의 모스크가 세워질 터에 도착했다. 이 자리는 원래 공동묘지로, 고아 사흘과 수하일 소유의 땅이었다. 두 고아들은 공짜로 무함마드에게 땅을 바치려 했지만, 무함마드가 이를 거절하고 돈을 주고 사들였다.

무함마드는 땅을 사자마자 모스크 건설을 시작했다. 모스크를 짓는 데에 7개월이 걸렸고 완성된 모스크는 30.5m X 35.62m 사이즈였다. 종려나무를 잘라 지붕 골조를 만들었고 짓이긴 진흙과 종려나무 잎사귀들을 섞어 지붕을 덮었다. 높이는 약 3.60m였다. 모스크에는 3개의 문이 뚫려있었는데 남쪽으로는 '자비의 문(بَاب ٱلرَّحْمَة)', 서쪽으로는 '가브리엘의 문(بَاب جِبْرِيْل)', 동쪽으로는 '여인의 문(بَاب ٱلنِّسَاء)'가 있었다. 이 당시에는 무슬림들이 메카가 아닌 예루살렘을 향해 절을 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방향을 표시하는 '키블라'가 예루살렘이 있는 북쪽에 있었다. 629년 카이바르 전투에서 무슬림들이 유대인들을 꺾고 승리하자 그 기념으로 모스크를 더욱 확장해 서쪽 벽 옆으로 3열의 열주들을 세우고 47.32m X 47.32m로 넓혔다.

이 모스크가 중요한 이유는 무함마드가 여기서 죽어서 묻혔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스크 바로 곁에 있던 아내 아이샤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3] 제2대 칼리파우마르는 무함마드의 아내들이 썼던 집들을 제외하면 모스크 주변에 있던 가옥들 전부를 밀어버리고 모스크를 확장개축했다. 우마르가 개축한 모스크는 57.49m X 66.14m 크기였고 햇빛에 말린 진흙벽돌들을 사용해서 벽을 쌓았다. 흙바닥이었던 것을 단단한 자갈바닥으로 만들었고 높이도 5.6m로 크게 올렸으며 입구도 3개나 더 냈다.

제3대 칼리파인 우스만 역시 예언자의 모스크 개축에 열을 올렸다. 우스만은 649년에 아예 모스크를 통째로 헐어버리고 10개월에 걸쳐 새로운 모스크를 지었다. 새롭게 지어진 모스크는 정면 방향이 메카카바를 향해 있었다. 기존의 자비의 문, 가브리엘의 문 같은 중요한 문들은 다시 짓긴 했지만 여전히 똑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진흙 벽돌로 쌓아올린 기존의 벽들은 석재와 모르타르로 다시 쌓았고 종려나무 기둥들은 석재 돌기둥으로 바뀌었다. 잎사귀와 진흙으로 만들어진 천장도 값비싼 티크 나무로 다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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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 시대 아바스 왕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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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루크 왕조 시대 오스만 제국 시대
우마이야 왕조왈리드 1세 역시 모스크를 크게 확장했다. 물론 이 예언자의 모스크가 칼리파 체제의 탄생지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마이야 왕조가 시리아다마스쿠스로 궁정을 옮겨가면서 소외된 메디나 사람들의 불만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다.

왈리드 1세의 공사가 끝나는데는 무려 3년이 걸렸다. 동로마 제국에서 값비싼 최고급 원자재들을 수입해왔고 그리스 및 콥트교도 장인들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모스크의 면적은 기존의 5094제곱미터에서 8672제곱미터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던 아내들의 집 역시 철거됐고[4] 그의 무덤을 모스크와 합쳐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로 만들었다. 모스크는 긴 변의 길이가 101.76m인 사다리꼴 모양으로 재건됐다. 미나레트 4기가 건축됨도 이때가 처음이다.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들어선 아바스 왕조도 예언자의 모스크를 지속적으로 관리했다. 알 마흐디는 모스크를 북쪽으로 50m 확장했으며 알 마문, 알 무타와킬은 무함마드의 무덤을 대리석으로 덮었다. 맘루크 왕조는 장인 수십 명을 파견해 무함마드와 파티마의 무덤 주변을 단장했고 그의 무덤 위에 돔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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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시절의 모스크와 당시 지어진 기도실
오스만 제국 역시 예언자의 모스크에 많은 공사를 진행했다. 쉴레이만 1세는 모스크의 동쪽과 서쪽 벽을 재건하고 북동쪽에 첨탑을 하나 더 지었으며 무함마드 무덤 위에는 강철 돔을 씌우고 서쪽 '자비의 문'을 다시 지었다. 무라트 3세는 설교단을 만들었다. 특히 현재 예언자의 모스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녹색 돔'도 이 오스만 제국 시기에 지어졌다. 1817년 마흐무트 2세가 무함마드의 묘 위에 돔을 새로 씌우고 20년 후 1837년 녹색으로 칠했다. 압뒬메지트 1세도 1849년부터 무려 30년간의 개축 공사를 단행해 모스크를 크게 확장했다. 모스크 북쪽에는 마드라사를 세웠고 기도실은 너비를 두 배로 넓혔다. 기도 장소와 안뜰은 붉은 돌로 포장했다.

오스만 제국은 갈수록 국력이 쇠락해가더니, 결국 1805년 사우디 가문의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에게 메디나를 빼앗겼다. 과격한 와하비즘 세력인 사우디 가문은 메디나에 있는 무덤과 모스크들을 죄다 철거해버렸다. 사람들이 쿠란과 경전이 아닌 성지와 사원 그 자체를 숭배하면서 거의 우상숭배가 되었다고 여겼기 때문. 무함마드의 무덤에서도 금과 보석들을 벗겨내었을 정도였다. 다만 녹색 돔과 예언자의 모스크만큼은 철거되지 않았다. 돔이 파괴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단단했을뿐더러,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또한 다른 것은 몰라도 예언자의 모스크만큼은 철거에 회의적이었던 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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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공식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된 뒤 예언자의 모스크도 여러 차례 개조에 들어갔다.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모스크 주변의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동쪽에 새로운 날개를 하나 더 만들었고 콘크리트 아치 기둥들을 세운 기도실을 지었다. 기존 오스만 제국 시절의 미나레트들은 헐려나갔고 대신 맘루크 왕조 스타일의 미나레트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파이살 국왕, 파흐드 국왕 등도 쭉 모스크 확장에 열을 올리며 1992년에는 그 면적이 16만 제곱미터에 이르렀다. 2012년 9월부터는 60억 달러 규모로 공사를 벌여 160만~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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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모양의 차양들 옆으로 움직이는 돔
예언자의 모스크는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의 2층 건물이다. 평평한 지붕 위에는 돔 27개가 올라갔는데, 모스크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만 제국 시절 지어진 기도실은 남쪽 부분에 있다. 놀라운 점은 돔들이 통째로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는 것. 돔들이 기계장치로 통째로 움직여 옆으로 이동하면 햇빛이 기도실 안으로 환하게 비춘다. 이 모스크의 놀라운 점은 움직이는 돔뿐만이 아니다. 모스크 앞 광장에는 거대한 우산 모양 차양들이 수십여 개 서있는데, 자동으로 접었다 펼 수 있는 장치가 있다. 기도자들이 뜨거운 태양빛을 쬐지 않도록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준 것.[5] 그래서 이 차양들이 접혀 있다가, 기도 시간이나 햇빛이 지나치게 뜨거울 때마다 펼쳐져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모스크의 상징은 바로 녹색 돔이다. 모스크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데, 이 돔 바로 아래에 무함마드아부 바크르, 우마르의 무덤이 있다. 맘루크 왕조알 만수르 칼라운이 1279년 처음 나무로 돔을 지었다. 이후 1481년 화재로 돔이 무너지자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불에 타지 않는 벽돌로 돔을 쌓았으며 납판으로 외부를 둘렀다. 현재의 돔은 1818년 오스만 제국마흐무트 2세가 만든 것으로, 원래는 은색이었는데 1837년에 천국의 색깔인 녹색으로 칠했다.

1805년에 근본주의를 외치던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가 메디나를 점령했을 때, 사우디군은 메디나의 무덤과 성지들이 그 자체로 숭배받아 우상숭배에 가까워졌다고 해서 수많은 무덤과 옛 유적들을 철거해버렸다. 이 예언자의 모스크도 풍파를 피해가지 못해서 무덤에서 금과 보석들이 벗겨져 나갔지만, 이 녹색 돔만큼은 철거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극단적인 와하브파 신도였더라도 차마 이 돔만큼은 무너뜨리기가 꺼림칙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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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돔 녹색 돔 내부 구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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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으로 접근을 차단하는 금제 철망[7] 묘각을 뒤덮은 녹색 천[8]
이 돔 아래는 본래 무함마드의 아내였던 아이샤의 집이 있던 자리이다. 현재는 무함마드의 시신이 안치되었는데, 초대, 제2대 칼리파인 아부 바크르우마르의 관도 함께 안치되었다. 그 옆에는 빈 자리가 하나 있는데, 무슬림들은 미래에 예수가 재림한 뒤 죽으면 이 곳에 예수의 관이 놓일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순례객들은 무함마드의 관은커녕 묘각도 보기 어렵다. 방을 봉인하고 묘각을 세웠기 때문에[9]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묘각을 덮은 2중 격벽의 바깥쪽 부분뿐이다. 그마저도 전체 모습을 다 볼 수는 없고 금제 철문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엿보아야만 한다. 이 구멍은 무함마드ㆍ아부 바크르ㆍ우마르 시신의 머리 부분과 가까운 자리에 뚫은 것인데, 무함마드와 가까운 구멍은 특별히 눈에 띄게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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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다 민바르
무함마드의 무덤 바로 옆에는 신성한 정원 '라우다(ٱلرَّوْתَة ٱلَّرِيْدَة)'가 있다. 무함마드의 묘각(집 터)과 생전에 메디나의 무슬림들에게 설교했던 장소 사이에 있는데, 생전에 무함마드가 그 자리를 두고 "내 집과 설교대 사이에 천국의 정원이 임하였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부러 다른 곳에는 다 붉은 양탄자를 깔았는데 이 곳은 천국의 정원이라는 이유로 천국의 색인 녹색 양탄자를 깔았다. 다만 지금은 모스크 전체에 녹색 양탄자가 깔려 있다.

라우다를 지나면 무함마드가 생전 설교하던 장소 '민바르'가 있다. 무함마드 시절에는 대추야자 나무 블록 하나 위에 올라가서 설교를 했는데, 나중에는 에셀나무 블록 위에 올라가서 설교를 했다. 629년에는 블록에 올라가기 쉽도록 3단짜리 계단을 만들었는데,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는 무함마드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일부러 두 번째 계단까지만 올라가 설교했다. 이후 바이바르스, 사이크 알 마흐무디, 카이트베이 등이 더욱 화려한 설교단을 만들어 세워놨고, 현재의 것은 1590년 무라트 3세가 세운 설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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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흐랍 미나레트
예언자의 모스크에는 미흐랍이 2개 있다. 미흐랍은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일종의 장식용 문이다. 하나는 무함마드가, 다른 하나는 우스만이 지었는데, 우스만이 지은 게 실제로 메카를 가리킨다. 따라서 지금도 신자들이 예배할 때 우스만의 미흐랍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도열하여 절하고, 무함마드의 미흐랍은 상징적인 용도이다. 실제로 우스만의 미흐랍이 무함마드의 미흐랍보다 크기도 크고 정교하다.

원래 모스크에는 우마르가 지은 7.9m 짜리 미나레트 4개가 있었다. 그러다가 1307년에 맘루크 왕조가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의 미나레트 하나를 추가했고 메흐메트 4세가 재단장했다. 1994년에 사우디 정부가 대대적인 개축 작업을 단행하면서 현재는 104m 짜리 미나레트 10개가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모스크는 미나레트가 많아봤자 4~6개에 그친다. 일반적으로 미나레트의 개수가 많을수록 격이 높은 모스크이므로 예언자의 모스브가 거의 최고로 신성한 모스크라는 뜻이다.[10] 거의 미나레트는 상부, 중부, 하부로 나뉘어지는데 상부는 원통형, 중부는 팔각기둥형, 하부는 사각기둥형이다.

4. 기타

  • 방을 봉인하고 묘각을 세운 것이기 때문에 예언자의 모스크에 가봤자 볼 수 있는 것은 무함마드의 관이 아니라 안에 있는 후즈라트[11]를 덮은 2중 격벽의 바깥쪽 부분뿐이다. 그리고 벽 앞에도 철문을 세워 막았는데, 무함마드ㆍ아부 바크르ㆍ우마르 시신의 머리 부분과 가까운 자리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무함마드와 가까운 구멍은 특별히 눈에 띄게 표시하였다. 무슬림들이 이 구멍에 대고 (묘각 안쪽의 무함마드에게) 축복의 인삿말을 건네려고 몰려들므로 매우 북적인다. 무슬림들은 미래에 예수가 재림한 뒤 죽으면 무함마드 옆에 관이 놓이리라 믿는다.
  • 무함마드의 묘각(집 터)과 생전에 메디나의 무슬림들에게 설교했던 장소 사이는 라우다(정원)라고 불리는데, 생전에 무함마드가 그 자리를 두고 "내 집과 설교대 사이에 천국의 정원이 임하였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에겐 라우다에서 예배 드림이 역시 강력한 권장사항. 다만 인기가 많은 관계로 관리소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 라우다 주변에는 무함마드 생전에 있었던 일화에 언급되는 장소들이 있다. 무함마드가 평소에 잠을 자곤 했던 자리라든가, 기도 드리곤 했던 장소라든가, 어떤 사람이 알라에게 용서받으려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었다가 무함마드를 통해 살아난 장소라든가,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살던 자리라든가. 파티마가 살던 자리 쪽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다.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특별히 공을 들여서 관리하며 매년 참배객 수백만 명이 방문한다. 메카와 달리 복장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전통복장에서 청바지까지 전세계 무슬림들의 다양한 옷차림을 볼 수 있다.

[1] 이 공간을 후즈라트(Hujrat)라 한다. 1대ㆍ2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우마르가 죽자 그 관 또한 후즈라트 안, 무함마드의 관 옆에 안치하였다.[2] 사실 비무슬림이 갈 수 있는 사우디 최대의 성지이자 관광지이기에 사우디, 특히 제다 등 히자즈 지방에 간다면 교통편도 좋은 이곳을 들리지 않으면 손해이다[3] 현재는 아이샤의 집과 벽을 철거하고 예언자의 모스크 안에 편입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다.[4] 특히 무함마드 아내들의 집을 철거할 때 메디나 시민들의 강한 반발이 있긴 했지만 왈리드 1세는 그냥 씹고 강행했다.[5] 이 옆으로 움직이는 돔구조와 차양 모두 독일 무슬림 출신 건축가 마흐무드 보도 라시크가 지었다고 한다.[6] 사실 이도 확실하지는 않다. 녹색 돔 내부 무함마드의 무덤 묘각 안쪽은 아예 들어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쪽 모습은 추정도다.[7] 일반적인 순례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저 구멍은 무함마드와 아부 바크르, 우마르의 시신 머리가 있는 쪽으로 뚫려 있다. 순례객들은 저 철망에 뚫린 구멍에 대고 축복의 말을 속삭인다.[8] 여기마저도 사우디 당국의 허가를 받은 극소수 사람이 아니면 출입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안쪽은 아예 철저하게 봉인되었으므로, 사실상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다. 무덤 안쪽으로 이 이상 접근하기는 불가능하고, 인터넷에 무함마드의 무덤 내부라느니 무함마드의 관이느니 하며 떠돌아다니는 사진은 모두 가짜다.[9] 특히 이 묘각의 벽도 불규칙한 오각형 모양이다. 일부러 순례자들이 이 주위를 돌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으로 순례객들이 주위를 여러 차례 돌기 쉽도록 설계된 카바 신전과는 대조된다.[10] 메카에 있는 카바의 모스크 '마스지드 알 하람'에도 미나레트 9개가 있다.[11] 632년에 무함마드가 자택 내에 있는 애처 아이샤의 거처에서 죽자, 죽은 그 자리에 관을 넣었다. 이후 아이샤의 거처에서 벽 일부만 남기고 철거한 뒤, 무함마드의 관을 중심으로 (작은 돔이 있는) 사각형 묘각을 세웠는데, 이 공간을 후즈라트(Hujrat)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