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7:19:08

오광택

오광택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a700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 등번호 12번}}}
황인성
(1998~2000)
오광택
(2000~2002)
양희승
(2002~2007)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2번
최호
(1999~2002)
오광택
(2004~2005)
임효성
(2006)
}}} ||
대한민국의 농구인
<colbgcolor=#eeeeee,#191919> 오광택
吳侊澤
출생 1977년 6월 26일 ([age(1977-06-26)]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체중 90kg
포지션 농구선수(포워드/ 은퇴)
학력 동상초등학교 (졸업)
대경중학교 (졸업)
대경상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제학 / 학사)
프로 입단 2000년 드래프트 2라운드 6순위 (안양 SBS)
현역시절 등번호 12[1], 2[2]
병역 상무 농구단 (2002~2004)
소속 안양 SBS 스타즈 (2000~2002)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4~2005)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프로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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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농구선수였다.
슈팅에 탁월한 선수로써 특히 3점슛에 출중한 능력으로 매 경기 상당한 정확도를 가지고 많은 경기를 승리로 이끈 선수이다.
고려대학교, 프로농구선수시절 클러치 슈터로써 슛감각을 인정받아 전문 슈터로 활약을 했으며 특히 고비 때 마다 터지는 자신감 넘치는 3점 슈팅실력으로 승부사로 인정받은 선수이다.

2. 아마추어 시절

농구선수였던 부모님 슬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 때 3점슛과 가로채기에 능해 차세대 스타로 우뚝 섰다.
당시 선수시절 수차례의 우승과 팀내 에이스 선수로써의 자질을 가지고 슈팅 하나에도 책임감 있게 플레이하는 선수였다.
고교 시절 주전으로 뛰며 동기 이규섭 (전 삼성 썬더스 프로농구단 코치), 1년 후배 김정재와 함께 제32회 춘계연맹전에서 2연패를 노리던 대전고등학교를 꺾고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어 낸 것과 동시에 MVP까지 받게되는 영광을 안겼다.
고교시절 2학년 때 부터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2학년 때 부터 주전으로 뛰며 동기 이규섭 (전 삼성 썬더스 프로농구단 코치)과 함께 팀내 우승의 주역을 맡았다.
고교 3학년으로 진학해서는 출전하는 대회의 결승에 매회 진출하는 커다란 기록을 남겼다 오광택, 이규섭, 허진수가 주측이된 대경상고는 전국춘계연맹전 우승, 대통령배 준우승, 학산배 준우승등 라이벌 명지고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 당시 고교 최강 농구팀 이었다.
그후
1996년 고려대학교으로 진로가 결정되고
1학년때부터 출전기회가 주어져 1996년 MBC배 대학농구대회 결승 당시 라이벌 연세대학교 4학년 서장훈선수의 수비 앞에서 3점슛 2개를 적중 2점슛 1개포함 단시간 8득점을 하며 고려대학교의 MBC배 우승에 견인을 하며 3점슈터 루키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2년선배인 [현주엽], [신기성], 동기 [이규섭], [이정래]와 호흡을 맞추며 여러대회에서 활약을 하며 주전으로써의 활약을 하며 일본, 괌, 전국체전, 국내대회 다수의 경기에서 많은 수상을 하게된다.
특히 졸업전 4학년 때인 1999년 애니콜배 최강전에서는 삭발 투혼을 불태우며 대학재학시절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3. 프로선수 시절

고려대학교 졸업 후, 2000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16번(2라운드 6순위)으로 피지명, 안양 SBS 프로농구단에 입단해 루키 시즌 백업이었음에도 30경기를 출전한 식스맨 활약의 기록을 세웠으나 실력보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성실한 플레이를 했으며 슛미스가 적은 선수로 루키 첫해에도 상당한 활약을 하며 중요한 경기마다 3점슛을 터트려 주는 플레이가 보이며 상당한 활약을 했으나 돌연 상무에 입대했다.





[1] SBS 시절[2] 전자랜드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