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02:58:47

오세이 코피 투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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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샨티 제국 초대 아샨티헤네
오세이 코피 투투 1세
Osei Kofi Tutu I
파일:오세이 투투 1세.pn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오툼포 나나 오세이 코피 투투 오펨수
Otumfuo Nana Osei Kofi Tuto Opemsoo
출생 1660년
아니남
사망 1717년 (향년 56~57세)
불명
재위 기간 초대 아샨티헤네
1701년 ~ 1717년
전임자 나나 오비리 예보아
후임자 오포쿠 와레 1세
부모 아버지 : 오우수 판인
어머니 : 마아누 코토시
왕조 오요코 아보히옌 왕조

1. 개요2. 생애
2.1. 덴키라 왕국의 볼모2.2. 추방과 도피2.3. 황금 의자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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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샨티 제국의 초대 아샨티헤네.

2. 생애

오세이 코피 투투 1세는 1660년 경 현대 가나 동부 지역의 '코코푸 아니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덴세 지역의 아칸족 귀족 '오우수 판인'이었고 어머니 '마아누 코토시' 역시 크와만 마을의 대추장 '오키 아켄텐'의 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이었던 셈.[1]

전설에 따르면 마아누 코토시는 수년 동안 불임으로 고생했다. 후계를 물려받을 자식이 생기지 않자 끙끙대던 마아누 코토시는, 남편 오우수 판인과 제 남동생 오비리 예보아와 함께 영험하다는 무당을 만나러 갔다. 무당은 강의 신의 힘을 빌어 마아누 코토시에게 자식을 가지도록 만들어줬다. 마아누 코토시는 기뻐하며 만약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진통이 오지 않게 해준다면 더 크게 보상할 것이라 말했고, 강의 신은 그 소원을 들어줬다. 마아누 코토시는 답례로 갓 출산한 자신의 아들에게 강의 신의 이름을 딴 '투투'라는 이름을 붙였다.[2] 이 아이가 바로 오세이 투투, 즉 훗날의 오세이 코피 투투 1세다.

2.1. 덴키라 왕국의 볼모

오세이 투투 1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선 딱히 알려진 게 없다. 그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등장하는 건 16세가 되고 난 이후부터다. 오세이 투투가 16살이 되어 아칸족 기준 성인이 되자, 인근의 덴키라 왕국에서 오세이 투투를 찾아왔다. 당시 일대의 패권국이던 덴키라 왕국은 복속국들에게 귀족 인질을 뜯어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자국에 억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세이 투투를 인질로 잡아가려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 인질이었지 실제로 덴키라 궁정에서는 이렇게 잡혀온 인질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줬다. 인질들은 훗날 자기 마을로 돌아가 차기 지도세력이 될 것인데, 덴키라 입장에서도 굳이 나쁜 대우를 해줘서 이들에게 안좋은 기억을 심어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오세이 투투 역시 덴키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는 덴키라 왕국의 수도 '아반케세소'에서 덴키라 사교계와 어울렸으며, 덴키라 왕국의 법과 행정체계, 문물을 빠르게 습득했다. 오세이 투투는 타고난 매력과 능력을 십분 활용해 덴키라 궁정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왕의 방패를 옆에서 드는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올라갔다.

2.2. 추방과 도피

그러나 이렇게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던 오세이 투투에게도 큰 시련이 닥쳤다. 오세이 투투는 잘생긴 외모에다가 운동까지 잘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였는데, 이때문에 허구한날 덴키라 사교계에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문제는 그가 덴키라 공주 '아코베나 아벤수아'와 엮이면서 터졌다. 아벤수아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기 때문. 공주가 임신을 해버리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에 대한 찌라시가 퍼져나갔고 오세이 투투의 아이일 가능성이 컸다. 공주는 신분이 높아 책임을 지지 않았지만, 오세이 투투는 그렇지 않았다. 이 일로 처형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오세이 투투는 저멀리 최동단에 있는 아크와무로 도망쳤다.

오세이 투투는 고향 크와만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그러는 순간 분노한 덴키라 왕국이 크와만을 쓸어버릴 것이 뻔했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대신 그는 아크와무로 향해 그 곳의 왕 '사스라쿠 1세'에게 몸을 의탁했다. 당시 사스라쿠는 아름다운 외모의 오세이 투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어서 그를 받아주었다.[3] 오세이 투투는 아크와무 궁정에 머무르며 아크와무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했다. 느슨한 씨족과 연맹 체제인 크와만과 덴키라 왕국과는 달리, 아크와무는 단일 통치자 아래 통합된 중앙집권적인 왕국이었다. 이때 배운 지식은 훗날 오세이 투투가 아샨티 제국을 세울 때 요긴하게 써먹는다.

이 시절 즈음 오세이 투투가 만난 사람이 바로 '오콤포 아노키예'다. 당시 오콤포 아노키예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덴키라 왕국에서 살고 있었다. 저명한 사제였던 터라 여러 왕들로부터 러브콜이 쏟아들어왔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고 있었다고. 허나 덴키라 왕국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덴키라의 사제들은 아노키예의 어머니 손에 이상한 색의 반점이 나있다는 핑계로 그녀를 죽여버렸다. 격분한 아노키예는 덴키라를 뒤집어엎어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결국 오세이 투투가 덴키라에서 도망칠 때 그를 따라 빠져나왔다고. 아노키예와 오세이 투투는 아크와무에서 함께 지내며 곧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아크와무에서 몇 년 동안 지내던 오세이 투투에게 크와만의 왕이자 자기 외삼촌 오비리 예보아가 도르마아와의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오세이 투투가 적법한 계승권자였기에, 오세이 투투는 왕위를 승계하기 위해 크와만으로 향했다. 특히 아직도 오세이 투투를 수배하고 있던 덴키라 왕국의 습격을 우려한 사스라쿠 1세가 300의 최정예병을 붙여줬다고. 오세이 투투는 그의 도움을 받아 크와만에 도착해 '오세이 투투 1세'로 즉위한다.

오세이 투투 1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할일이 태산이었다. 아칸족 씨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분오열된 상황인데다가 적대 세력들도 넘쳐났다. 이 아칸족들을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덴키라 왕국과의 전쟁은 꿈도 못꾸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2.3. 황금 의자의 전설

그래서 오세이 투투 1세는 크와만 씨족이 속해있는 아만투족의 대회합을 개최했다. 그는 전국에 흩어진 아만투족 추장들을 죄다 크와만으로 불러모으고, 이번 대회합에서 누가 아만투족을 다스리는 대추장이 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공포했다. 대제사장 직을 맡은 오콤포 아노키예는 신의 목소리를 빌어 '이번 대회합에서는 하늘과 조상들이 의자를 하나 내려줄 것인데, 이 의자가 무릎 위로 내려온 사람이 새로운 대추장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까지 하며 밑밥을 깔아줬다.

그래서 수 천에 달하는 아만투족들이 구슬과 직물로 만든 제일 좋은 옷에다가, 금, 구리, 황동 따위의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걸치고선 크와만에 도착했다. 이렇게 쏟아져들어온 아만투족들 덕분에 크와만이 얼마나 북적거렸는지, 일부는 숲짐승들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고 누구는 야자잎 섬유로 만든 옷을 걸쳤으며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음료를 가져와 양과 염소를 몰고 가거나 식사와 뿌리가 담긴 자루, 야자 포도주가 가득 담긴 큰 호리병박을 들고왔다.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온 덕에 오세이 투투는 이 많은 손님들을 모두 먹일 수 있었다. 북소리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울렸고 무용수들이 곳곳에서 춤을 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개중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은 당연히 오세이 투투 1세였다. 그는 손에 너무 많은 금반지와 팔찌를 끼고 있어서 무게 탓에 하인들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머리에는 순금으로 만든 관을 쓰고 순금 신발을 신었다. 모두가 그의 강인함을 볼 수 있도록 넓고 근육질인 가슴을 크게 드러내며 자신의 위엄을 과시했다. 그의 옆에는 그의 어머니가 서있었는데, 그녀 역시 아름다운 황금으로 치장했지만 이미 아이를 많이 낳고 머리가 희어진 터라 오세이 투투 1세만큼 빛나지는 못했다. 그날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빛나는 이는 단연 오세이 투투 1세였다.

오세이 투투 1세는 밤의 어둠 속에서 덴키라 왕국을 꺾을 방법, 아만투를 위대한 국가로 만들고 보르누와 카넴을 건너 저멀리 하얀 얼굴의 사람들과 교역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콤포 아노키예는 부와 권력에 대한 눈부신 예언을 하며 그의 말에 신뢰를 더해줬다. 그들은 이미 이번 대회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반쯤 예측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회합이 열리는 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추장들이 모여 떨리는 마음으로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세이 투투 1세 역시 금나무 아래에 앉았다. 대제사장 오콤포 아노키예는 북소리를 배경으로 나타나 마법의 춤을 추고 희생제물을 바쳤다. 아노키예는 곧 신과 조상신들에게 소리치며 간구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희생제물의 피가 끓어오르고 북소리의 템포는 점점 빨라졌다. 검은 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아차렸지만, 점점 검은 구름이 몰려들자 모두가 그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천둥구름보다도 더 검었지만 그 속에서 천둥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짙은 하얀 먼지가 내려왔다. 먼지는 천천히, 마치 씨앗이 떨어지듯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내려왔다. 하얗고 부옇던 먼지는 서서히 의자의 형상을 갖췄다. 아래에서 3개의 의자다리가 뻗어져나왔다. 마침내 제 형상을 갖춘 의자는 황금빛으로 빛났지만, 아래는 나무로 깎은 모습이었다. 의자는 내려올 수록 하강 속도가 느려지더니 마침내 오세이 투투 1세의 무릎팍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오세이 투투 1세는 용감한 인물이었지만, 하늘에서 의자가 내려오자 너무나도 놀라서 무릎팍에 내려앉은 의자를 감히 만질수조차 없었다. 그때 오콤포 아노키예가 몸을 떨면서 코끼리 가죽과 천을 땅에 깔은 다음, 황금 의자를 받아들고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아노키예는 하얀 피부, 창백한 눈,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알비노 남자를 의자에 앉혔다. 아노키예가 알비노 남자의 머리를 어루만지자 알비노의 몸은 의자 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그의 영혼이 의자에 바쳐진 것이다. 이 이후로 아샨테 지방에서 알비노가 죽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오콤포 아노키예는 큰 소리로 선포했다. 이제 의자에 영혼이 주어졌으며 이제 이 자체가 아샨티 국가의 영혼이 되었으니 모든 자들이 이 의자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오세이 투투 1세를 포함한 모든 지도자들, 위대한 어머니, 그 지도자들의 아내들이 이 위대한 영혼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몸의 털을 뽑고 집게손가락의 손톱을 깎아 가루를 내어 물과 야자주에 섞은 다음 일부는 의자에 붓고 일부는 마셨다. 이로써 황금 의자는 곧 아샨티와 아칸족의 명실상부한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 된 것이었다.

오콤포 아노키예가 말하기를, 이 의자는 아샨티의 영혼이나 다름없으니 어떤 인간도, 심지어 아샨티헤네조차도 절대 이 의자에 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절실한 상황에서 아샨티헤네가 이 의자 위에 팔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면 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자에 달 종 2개와 금 2개, 황동 2개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 의자가 내려앉은 오세이 투투 1세가 아샨티 전체의 왕 즉 '아샨티헤네'로 즉위할 것이며, 모든 아칸족들은 오세이 투투 1세에게 영원토록 충성을 맹세하기를 요구했다. 이에 감복한 추장들은 오세이 투투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는 오직 오세이 투투 1세에게만 충성할 것이며, 결코 황금 의자 앞에서 무기를 꺼내들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황금의자의 선택을 받아 전 아칸족의 지배자가 된 오세이 투투 1세는 그가 앉아있던 금나무의 이름을 따 크와만을 쿠마시로 개칭했다. 이때부터 오세이 투투는 크와만의 지도자라는 뜻의 '크와만헤네'가 아니라 쿠마시의 지도자라는 뜻의 '쿠마시헤네'로 불리기 시작했다.
[1] 심지어 당시 크와만 마을이 속해있던 아칸족들은 모계계승법을 따랐다. 즉 오키 아켄텐이 죽으면 오세이 코피 투투 1세가 자동으로 권좌를 승계하는 것이다.[2] 그 강의 신의 이름이 '오투투'였다.[3] 단순히 얼굴만 보고 받아준 건 아니었다. 오세이 투투가 사스라쿠 1세와 신관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 준 적도 있고, 오세이 투투의 고향 크와만이 사스라쿠 1세의 적대국인 도르마아와 전쟁을 벌였다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