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1:00:32

오원석/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오원석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bordercolor=#ce0e2d> 파일:오원석.png 관련 문서
오원석
Oh Wonseok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마추어 경력
아마추어 시절
프로 경력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svg SK 와이번스
SK Wyverns
2020년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2021~2023).svg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SSG Landers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국가대표 경력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모자 로고 3.sv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2019년 (U-18) · 2023년
평가
플레이 스타일 수상 경력
기타
별명 · 여담 · 분류
}}}}}}}}} ||

오원석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오원석/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모자 로고 3.svg
{{{#!wiki style="margin: -16px -11px" 2019년
(U-18)
2023년 }}}
아마추어 시절


[clearfix]

1. 개요

SSG 랜더스 소속 좌완 투수 오원석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야탑 오원석.jpg

수진초등학교 리틀야구단을 거쳐[1] 매송중학교 야구부에서 활약. 이때 SK 와이번스 야구 꿈나무 장학금을 받았던 인연이 있다.[2]

야탑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안인산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3학년 시작 전까지는 연고지인 SK 와이번스의 1차지명은 같은 학교 동기인 안인산으로 거의 유력한 상황이였다. 투수로서는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질 뿐만 아니라 타자로도 장충고박주홍에 비견될 만큼 빼어난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 하지만 안인산은 2019년 들어서 부상으로 타자로만 나오고 투수로는 나오지 않으면서 평가가 다소 내려간 상태인 반면 오원석은 3학년이 되면서 평균 140km/h대 초반, 최고 144km/h의 패스트볼과 뛰어난 제구력, 그리고 다양한 변화구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좋은 성적을 거둬 평가가 상승하고 있었다. 주말리그와 황금사자기를 거치면서 안인산이 부진하자, 페이스가 좋았던 오원석이 1차지명 후보로까지 언급되기 시작하였다.[3] 결정적으로 류준열 사장과 손차훈 단장을 포함한 SK 구단 고위 관계자가 총출동한 73회 황금사자기 성남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오원석은 선발로 나와 6⅔이닝을 1실점에 7탈삼진으로 호투한 반면 안인산은 아웃카운트 한개 잡지 못하고 3피안타 1사사구로 3실점을 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비교적 일찍 결정된 다른 팀의 1차지명과는 달리 SK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두 선수를 놓고 고심했고, 결국은 좌완투수가 부족한 SK 와이번스의 상황과 맞물려 오원석이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자로 결정되었다.[4][5]

이후 기장군에서 열리는 제 29회 WBSC U-18 야구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 선발되었다. 야탑고에서는 박민이 함께 선발되었다.

8월 1일 김광현이 선발로 나선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 때 시구를 했다. 박민호, 서진용, 앙헬 산체스, 김태훈, 하재훈, 김주한, 안상현 등의 SK 선수들이 한 글자씩 맡아 '웰컴 투 헬♡ SK'라는 문구로 환영인사를 전했다. '웰 컴 투 SK ❤' 2020 신인 오원석 선수 기념 시구|슼케치(08.01),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이 프로구나...!" 오원석의 시구 비하인드(08.01)

3.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파일:47오원석 1차 지명.jpg

2019년 7월 1일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았다.

2019년 7월 28일 계약금 2억 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김광현 이후로 오랜만에 배출된 좌완 선발 유망주라 그런지 팬들에게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구단에서도 고교생답지 않은 능력치를 갖고 있어 미래의 선발자원으로서 많은 기대를 갖고 있기에 차세대 좌완 선발 에이스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3.1. 2020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원석/선수 경력/2020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f19ec45e-f257-4c33-a431-78edb469b825.jpg

3.2. 2021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원석/선수 경력/2021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34e2f7c4-302c-4a21-a7f4-961c96b01953.jpg

3.3. 2022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원석/선수 경력/2022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코시 오원석.jpg

3.4. 2023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원석/선수 경력/2023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47오원석2023.jpg

3.5. 2024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원석/선수 경력/2024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47오원석 2024.jpg

4. 국가대표 경력

4.1. 2019 WBSC U-18 야구 월드컵

파일:오원석 국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ERA WHIP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사구 삼진 상세
3 1 10 1.80 0.80 0 1 0 0 7 0 2 2 1 7 ##

WBSC U-18 야구 월드컵 대회에서 중국전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3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4K를 기록하고 장재영과 교체되었다.

그리고 다음 대만전에 6회 이민호의 뒤를 이어 불펜 등판하여 한국에 극강인 대만 상대로 3⅔이닝 0피안타 1사사구 1K를 기록하며 당시 대회 우승을 차지한 강력한 대만 타선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펼치며 역투하였지만 이미 앞에서 허윤동이민호가 7실점을 기록하며 불을 지른 후였고 결국 팀은 패배하였다.

그리고 다음 미국전에 불펜으로 등판하여 3⅓이닝 4피안타 2실점 무사사구 2K를 기록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후 팀이 호주와의 3,4위 결정전에서 승리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하였다.

4.2.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파일:오원석 2023년 11월 17일 APBC 일본전.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rowcolor=#fff> 경기 세이브 홀드 ERA 탈삼진 승률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투구수
1 0 0 0 0 0.00 1 - 1 1 0 0 19

2023년 10월 24일에 공개된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등번호는 29번을 배정받았는데 애초에 소속팀에서 사용하는 47번이나 33번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이미 배정된 등번호였고 마침 29번이 비어있길래 선택했다고 한다.

11월 17일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선발 투수 이의리의 뒤를 이어 대표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고 149km/h까지 찍힌 패스트볼을 앞세워 첫 타자인 7번 타자 사카쿠라 쇼고를 삼진 아웃으로 처리했고 두 번째 타자인 카도와키 마코토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나 노무라 유키오카바야시 유키를 연달아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시켰고 8회말에 마운드를 최준용에게 넘기면서 자신의 성인 첫 국가대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여담으로 이날 일본 현지 방송에서는 오원석이 등판하자 "일본 킬러의 애제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했다. #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10회말 승부치기 상황에 안타를 맞으면서 끝내기로 패배했고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5.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오원석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선발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20 SK-SSG 8 1 0 1 0 0 9⅔ 5.59 12 1 6 1 9 1.86 113.3 -0.09
2021 33 21 7 6 0 2 110 5.89 125 11 73 10 95 1.80 128.4 -0.06
2022 31 24 6 8 0 0 144 4.50 158 16 58 3 112 1.50 106.4 1.78
2023 28 27 8 10
(4위)
0 0 144⅔ 5.23[6] 158 11 69
(4위)
9 88 1.57 122.9 1.64
KBO 통산
(4시즌)
100 73 21 25 0 2 408⅓ 5.16 453 39 206 23 304 1.61 118.0 3.27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오원석의 완투, 완봉 기록
<rowcolor=#fff> 연도 완투 완봉
2023 1완투
(공동 1위)
0완봉
KBO 통산 1완투 0완봉


[1] 더그아웃 매거진 팬터뷰에 나온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르면, 원래는 축구를 하고 싶었으나 야구부원 모집 가정통신문을 받고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2] 2016년 당시, 같이 장학금을 받은 선수는 강백호, 정해영, 양창섭, 강태경 등이 있었다.[3] 현장 평가 또한 오원석이 더 좋았다고 한다.[4] 이후 안인산은 결국 2차 3라운드에서 NC가 지명했다. 좌완 투수 중에서 신장이 좋고 안정적인 투수는 오원석과 정구범 둘 뿐이고 그 중에서도 정구범이 최대어라고 손꼽히지만, 오원석도 평가가 높은 만큼 2차로 풀리면 1라운드 5순위 안에 뽑힐 가능성이 높았기에 지명 10순위인 SK가 오원석을 놓치면 아쉬울 것이라는 조영민 팀장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한다.[5] 가뜩이나 SK 와이번스는 상위 드래프트 선정으로 인해 말이 많은 팀이었다. 김광현을 데려오기 위한 도움닫기랍시고 ''류현진 거르고 이재원'을 지명한다던가, 같은 야탑고 선배인 김하성, 박효준[7] 다 놓치고 1차 지명을 이현석으로 지명한다던가... 물론 전면 드래프트로 1라운드에 어깨가 싱싱한 경남고 투수 서진용을 데려온 것은 되돌아보면 신의 한 수였다는 평이 많아졌고, '안인산 대신 오원석'을 1차 지명으로 데려온 것도 오원석의 활약 덕에 인식이 많이 바뀐 편이라고 볼 수 있다.[6] 규정이닝 충족한 투수 중 최하위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66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6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7] 이 경우는 박효준이 메이저리그 진출했기 때문에 예외의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