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5:06

오토프리트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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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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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프리트 4세
Otfried von Goldenbaum IV · オトフリート4世
인물 정보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
재위 SE ? ~ SE ? (5년)
가족 관계 프리드리히 4세(증손자)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위 은하제국 황제
별칭 강정제,強精帝,
파일:Goldenbaum-Dynasty.png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파일:Goldenbaum-Dynasty.png
에르빈 요제프 1세오토프리트 4세오토하인츠 2세
Kaiser Otfried von Goldenbaum IV

1. 개요2. 통치

1. 개요

The Passionate / The Blackmailer('강도 황제'나 '공갈 황제')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33대 황제이다. 별명은 '強精帝(강정제)', 즉 정력이 좋은 황제. 재위중에는 여색에 탐닉하고 600명이 넘는 자식을 얻은 그에게 실로 걸맞은 별명이라 할 수 있을듯.

2. 통치

정치, 사냥에도 관심없이 그저 여색만 탐닉한 황제. 후궁만 무려 1만 명이 넘었다고 하며, 결국 기력쇠진으로 재위 5년 차 어느 후궁의 침대에서 복상사했다. 심지어 황제가 승하할 때까지 승은을 입지 못한 후궁만 5천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1]

그래서 서출들이 매우 많아 무려 624명의 자식을 보았고 388명이 성인으로 자랐는데,[2][3] 그로 인해 이 시기 대귀족들은 황제의 아들이나 딸과 결혼하거나 또는 사돈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물론 이는 황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를 빌미로 거액의 결혼지참금을 바치게 하여 귀족들을 괴롭혔다.[4]

이 때문에 가문이 망한 경우도 있는데, 작중에서는 에드문트 폰 존넨펠스 백작의 사례가 대표로 소개된다. 그는 자유행성동맹과의 전쟁에서 수 차례 무훈을 세워 제국원수까지 오른 유능한 인재였으나, 결혼을 3번 했는데 상대가 모두 황제의 서녀들이라 매번 결혼지참금을 바치고 고생만 하다 결국 40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그나저나 어떻게 같은 사람의 딸 3명과 결혼을... 그의 친구 브루흐 제독은 '존넨펠스는 황제에게 재능과 재산과 정력을 모조리 빨아먹혀 죽었다'고 평했다가 군대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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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데 5년이면 2000일도 안된다.(...) 이 점으로 보면 아무래도 오토프리트 4세는 황제가 되기 전부터 엽색행위를 즐긴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2~3명씩 매일 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은 황제 시절'만' 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게다가 성인으로 자란 자식들을 귀족들에게 시집, 장가보내는 대가로 막대한 지참금을 강요한 것을 보면 확실히 황제가 되기 전부터 오토프리트 4세의 여색탐닉으로 태어난 아이들도 많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토프리트 4세는 생각보다 고령에 즉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재위기간이 고작 5년인 이유는 고령임에도 여색에 지나치게 탐닉한 결과일수도 있다. 애초 복상사 증세도 심장마비, 뇌출혈로 고령에 걸리기 쉬운 질환이기도 하고.[2] 388명의 자식이 어느 수준이냐면 중국 황제 중에서 제일 자식이 많은 사람은 강희제인데 자식이 고작(?) 55명이다(...) 그런데 이 황제는 그런 인물보다 몇배 이상 더 많았다(...)어쨌든 아내 부자, 아들 부자, 딸 부자 셋 다 이뤘네 다만 아내가 이만큼 많은건 아니지만 자식은 이보다 더 많은 사례가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자이르의 바쿠바 족 왕인 르켕 왕으로 아내는 800명 밖에(?) 없었지만 그 800명 아내 사이에서 생긴 자식이 2천명 이상이다(...) 당시 그가 통치하던 바쿠바 족 인구는 총 5만명이었으니 전 인구의 4%는 자기 자식, 1.6%는 아내라는 얘기다(...)[3] 헌데 이 628명 중에 고작 388명만이 성인으로 자란 것은 기이할 정도로 낮은 생존률이다. 어느 시대나 왕족들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그나마 전근대라면 의학기술의 미발달로 아무리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아도 수준이 모자라 그런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지만 은영전은 미래 세계관이라서 의학기술이 오히려 더 발전된 세계관일 것이다. 그런데도 성인으로 성장한 자식이 62%밖에 안되는 것은(3명 중 1명은 성인으로 못 자라고 사망) 너무 낮은 수치다.[4] 근데 잘만하면 오토프리트 4세를 통해 얻은 골덴바움 가문의 피를 바탕으로 귀족들이 제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마냥 싫어하지는 않았을 수도?물론 그것도 그만한 대귀족이어야지 가능하다. 당장에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는 황제 자리에 도전도 안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