オウム真理教附属医院(オウムしんりきょうふぞくいいん) Astral Hospital Institute | |
분류 | 종합병원 |
설립 | 1990년 6월 1일 |
해체 | 1995년 10월 31일 |
진료과 | 내과, 소아과, 신경내과, 외과, 정형외과, 정신과, 물리치료과, 산부인과 |
진료시간 | 08:00 - 22:00(연중무휴) |
소속 | 옴진리교 |
주소 | 도쿄도 나카노구 노카타 5초메 30번 13호 |
1. 개요
옴진리교가 "수행"에 필요한 향정신성의약품을 구입하는 출처로 쓰기 위해 만든 직속병원.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간부 중에 의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1]1.1. 특징
치료 방식으로는 온열요법이나 요가 등의 독자적인 방법을 썼고 옴진리교 선전 신문이었던 <계약의 서>에 종종 '거미막하출혈 후유증 회복', '말기 암 완치', '간암, 간경변 개선' 등의 선전문구가 적혀있었다.그러나 48시간 이상의 수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의료법 제13조를 무시하고, 자주 입원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신자를 몇 달이나 감금하는 등 불법 활동의 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약사 린치 살해 사건에서는 본 의원 소속의 약사가 살해되었다. 1994년 4월 5일에는 미야자키현 자산가 납치 사건의 피해자가 이곳에서 감금되어, 치료로서 옴진리교의 수행을 빙자한 고문을 당하였다. 의원에서는 5년간 21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출가생활에서의 학대로 인한 신자의 부상 은폐, 교단의 자금 모금을 위한 진료 보수의 부정 청구에도 이용되었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옴진리교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며 1995년 10월 31일에 폐원하였다.
2. 역사
2.1. 유사의학의 시작점
당장 아사하라 쇼코가 옴진리교를 창설하기 전 침술사 자격으로 후나바시시에 침술원을 개업한 적이 있었을 정도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약국 경영에 착수했지만 국민건강보험을 부정청구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또한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약 재료를 사용하여 가짜 약을 제조한 뒤 전단지에서 '류마티스, 신경통, 요통이 30분 만에 사라진다'고 선전하고 한 병에 3만엔에서 6만엔으로 판매하여'효능이 없는 것은 커녕 설사를 했다' 등의 호소가 경찰에 밀려 약사법 위반으로 경시청에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은 경력이 있었다.이후엔, '병고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두어 1987년 8월 잡지인 '마하야나'엔 투시로 치료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선전을 했다.
또한 저서 '초능력 '비밀의 커리큘럼' 암·에이즈도 무섭지 않아!!' 를 출판하고, 그 안에서 염화나트륨을 녹인 뜨거운 물을 마시고 요가 포즈를 취하고 호흡법을 행함으로써 초기의 암이, 또 중증의 경우에도 다른 호흡법이나 정신 집중을 더한 치료로 낫는다고 했다(…). 교단은 독자적인 치료법을 '새로운 의료'라고 명명, 진료소 광고에서는 '현대 의학에서는 완치하기 어려운 만성병이나, 난치병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질병에, 놀라운 효과를 올리고 있습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선전은 의료법 위반이었다.
2.2. 진료소 계획
본 의원 이전에도, 옴진리교는 1989년 가을에 도쿄도 스기나미구에 진료소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교단 광고에는 '본 치료 센터의 이용은 아사하라 쇼코 후원회 회원에 한합니다'라는 거절 문구가 있었다. 10월 말에 스기나미 서 보건소에 신청이 나왔지만 서류에 미비가 있어 보건소가 시정하도록 지도했다. 그러나 교단 측은 시정에 응하지 않고 총무부장이 강경하게 허가를 강요했다. 스기나미 서 보건소의 담당자에 따르면 '의사가 있다고 하는데, 의료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허가가 없을 때 진료를 시작했다는 의료법 위반 혐의도 있어 11월에 보건소가 입입 검사를 실시했다. 설비는 갖추어져 있어 진료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있었지만, 교단 측은 '개원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현장을 장악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데, 며칠 후에 갑자기 진료소 개설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연락이 왔다.2.3. 부속의원 개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이 의원은 1990년 6월 1일에 개설되었다. 당초 아스트랄·클리닉의 명칭으로 보건소에 신고를 했지만, 보건소에서 ' 옴진리교의 관련 시설'이라고 알 수 있는 명칭이 아니면 접수할 수 없다고 해서, 이 이름으로 변경하였다.원장은 일반적으로 '치료성대신'인 하야시 이쿠오라고 알려져 있지만, 보건소에 신고된 관리자는 의사인 히라타 마사유키, 의원 고문은 교단 최고참 간부이자 침술사인 오우치 토시히로였다. 교단의 팜플렛 '병은 치유된다' 1990년 4월호에 따르면 원장이 히라타 마사유키, 고문이 나카가와 토모마사, 그 외의 의사로 카타히라 켄이치로, 사사키 마사미쓰의 이름이 나왔다.
입구의 간판에서는 '내과, 외과, 정형외과, 소아과, 신경내과, 정신과, 산부인과'를 내걸고, '입원응수' '각종 보험 취급합니다'라는 기재도 있어,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접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전 홍보로는 4월 하순에도 개원할 예정이었지만, 나카노키타 보건소가 몇 번이나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 서류를 갖추지 못하고, 신청 서류의 미비로 접수하지 못하고 개원이 지연되었다.
무엇보다 온갖 난치병 기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대선전하고 있는 이 부속 의원은, 정작 종종 자신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교주의 병조차도 밝혀내지 못했다. 1995년 4월 1일에 사사키 마사미츠는 아사하라에 대해 간경변, Q열, 만성 심부전, 심내막염 의심, 피부염이라는 5개나 되는 병명을 들어 '약 1개월의 가요 및 침대 위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진단서를 작성했지만, 1995년 5월 17일 체포된 아사하라는 건강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한다.
3. 의료진
모두 아사하라 쇼코에게 심취했던 열성 신자들로 구성되었다. 레지던트까지 끝마친 사람들이 입교한 경우도 있었지만, 히라타와 나카가와는 연수 도중에 출가하여 정식 근무의로서 경험한 적도 없었다. 서 스기나미 보건소의 담당자는 '솔직히 말해서, 이 체제로 진료소를 개설해도 괜찮을까 불안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의사의 친족은 일찍부터 위험성이나 문제점을 도쿄도나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에 호소했지만, 행정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괄호 우측은 홀리네임, 즉 교단 내에서만 통용되던 이름이다.- 하야시 이쿠오(林郁夫, 보디사트바 크리슈나난다) - 전직 의사이자 교단 간부. 교단이 부처제를 채택한 후에는 치료성대신이었다. 사린 사건의 실행범이긴 하지만 수사에 협조적이었던 것도 있고, 또 피해자나 유족들로부터도 사건 해결을 위해 협력한 것과 사과를 신속하게 한 점이 평가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로써 사린 사건 실행범 중에서는 사형 집행을 받지 않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수감 생활 중에는 매일 사린 사건 사망자의 이름을 염불과 함께 염하며 참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 히라타 마사유키(平田雅之, 바라드바자) - 오사카 시립 히가시 고등학교와 아이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간사이 의과대학 정형외과 의사국에 들어가, 간사이 의과대학 부속 병원이나 한와 기념 병원 등에서 연구 의사로 1년 7개월 정도 근무했다. 하지만 옴진리교 교주의 공중 부양이나 심령 치료를 진지한 얼굴로 믿고 있는 등, 그 생각은 현대적인 의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문은 정형외과였지만 수술을 한 적은 없었고, 책을 보면서 탈구를 치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감금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후 알레프에 다시 입교했다.
- 나카가와 토모마사(中川智正, 바즈라팃사) - 오카야마 현립 오카야마 아사히 고등학교, 교토부립 의과대학 출신으로 대학 시절에는 학원 축제의 실행 위원장을 맡는 등 밝고 활발한 학생이었다. 국가 시험을 준비할 무렵에 우연히 옴진리교를 알게 되었고, 유체이탈을 비롯한 일련의 신비체험을 겪은 끝에 입교했다. 의료 경력은 오사카 철도 병원에 연수의로 1년 2개월 정도 근무한 게 전부였음에도 아사하라의 주치의로 일하며 건강 관리를 도맡았다. 한번은 교단 간부이자 아사하라의 애인이었던 이시이 히사코(石井久子)가 아사하라의 아이를 배자 제왕절개 수술을 담당했는데, 해 보지 못했던 수술을 갑자기 하다 보니 결국 의료사고를 일으켜 아기를 사산시켰다고 한다.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의 실행범 중 한 명이었으며, 사건 당시 옴진리교의 배지를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 일조하였다. 사린 가스의 제조를 맡은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일하다가 체포되었다. 미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진행한 옴진리교 관련 연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2018년 7월 6일에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 사사키 마사미츠(佐々木正光, 멧타벳자) - 단신 부임으로 지방 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 옴진리교에 빠졌다, 병원의 신경내과 의사는 본인 혼자였음에도 환자, 아내, 갓 태어난 장남까지 모두 내팽개치고 갑자기 출가했다. 대학에서 빌린 1136만 엔의 육영자금도 방치해두어 대학 관계자와의 연락도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고 한다. 미야자키현 자산가 납치 사건에 관여하였기에 실형을 살았고, 이후 알레프로 들어갔다.
4. 치료법(…)
- 온열수행 - 47도에서 50도의 끓는 물에 약 20분간 사람을 집어넣은 후 60도의 옴 드링크인 '사트바레몬'[2]을 1.5리터 마시게 하기. 당연히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 가자 카라니 - 세면대 한 잔의 소금물을 마시고 토하는 것을 반복해서 위를 세척하는 치료법(…).
- 네티 카르마 - 물에 담근 길이 50cm·폭 3cm의 천을 코에서 꽂고, 입에서 꺼낸다.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반사가 멈추고, 기침이나 콧물이 나오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인도의 수트라네티 요법과 같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치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