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45:31

왕징(대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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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공 | 帶方公
왕징 | 王澂
작위 대방공(帶方公)
본관 개성 왕씨
징(澂)
부모 부친 신양공(新陽公) 왕전(王瑼[1] 또는 王㻇[2])
모친 수흥궁주(壽興宮主) 왕씨[3]
형제자매
2남 중 차남 [ 펼치기 · 접기 ]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
대방공 왕징(王澂)
배우자 미상
자녀 1남
중원공(中原公) 왕온(王昷)
생몰연도 ? ~ 1292년(충렬왕 18년) 9월 8일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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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왕족.

이름은 왕징(王澂), 작위는 대방공(帶方公)이다.

2. 생애

대방공 왕징은 정간왕 왕기의 후손으로, 회안공 왕정의 아들인 신양공(新陽公) 왕전(王瑼[4] 또는 王㻇[5])과 고종의 장녀 수흥궁주(壽興宮主)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274년 10월 충렬왕원나라에서 제국대장공주를 맞이할 때 왕을 수행했다. 대방공 왕징은 1275년, 1278년, 1284년 세 차례 툴루게[6]로 임명돼 고려의 고관 자제들을 거느리고 원나라에 다녀왔다. 첫 번째로 떠날 때는 경령전(景靈殿)[7]의 백은(白銀) 제기를 받고 떠났다. 1278년 9월 형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등과 함께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충렬왕을 맞았다. 대방공 왕징은 1292년 9월 8일에 죽었다.

3. 가족관계

  • 아들: 중원공(中原公) 왕온(王昷)
    • 손자: 회안대군(淮安大君) 왕순(王珣)
    • 손자: 창원군(昌原君) 왕우(王瑀)
    • 손자: 낙랑군(樂浪君) 왕수(王琇)


[1] 《고려사》 세가 고종편[2] 《고려사》 종실열전 편[3] 고종의 장녀[4] 《고려사》 세가 고종편[5] 《고려사》 종실열전 편[6] 독로화(禿魯花). 몽고어로 인질(人質)을 의미한다. 고려에서는 주로 왕자와 귀족의 자제(子弟)들을 볼모로 보냈다.[7]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시대 태조와 현 국왕의 직계 4대친(四代親)인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