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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에르 황제의 황후이자, 라틴 제국의 섭정.2. 생애
보두앵 1세와 앙리의 자매로, 피에르와 결혼하여 10명의 자녀를 낳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다. 피에르가 황제가 되자 황후가 되었으나,[1] 1217년 피에르는 육로를 통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다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과의 접전에서 포로가 되어 1219년 옥사했다.반면 욜랑드는 해로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하여 라틴 제국의 섭정이 되었다. 그녀는 니케아 제국에 맞서 제2차 불가리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나중에는 니케아 제국과도 협정을 맺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 마리 드 쿠르트네를 니케아의 황제 테오도로스 1세에게 시집보냈다. 그녀는 그해 44살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피에르가 죽은 후 피에르의 차남 로베르가 황제가 되었다.
[1] 욜랑드의 남매인 보두앵 1세와 앙리가 모두 후사가 없어서 욜랑드가 제위를 계승해야 했는데, 4차 십자군이 멸망시킨 동로마 제국이라면 몰라도 서유럽의 살리카법을 적용한 라틴 제국에서 욜랑드가 여제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남편 피에르가 황제가 되고 욜랑드는 황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