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용화사'라는 이름은 한국의 절 이름으로서는 꽤 인기가 있다. 불경에 따르면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아래 내려와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이 세상을 용화세계(龍華世界)로 바꾼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에 '용화사'란 이름을 단 절이 십여 개가 넘는다. 조계종에만 8개가 소속되어 있다(...). 용화보전(대웅보전)에는 높은 확률로 미륵불을 모시고 있다.2. 청주시의 용화사
한자 : 龍華寺 / 로마자 : Yonghwasa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무심서로 565 (사직동) 무심천변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시내 도심에 위치해 있는 유명사찰이며, 청주를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이다. 현재 문화해설과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며, 스님과의 차담 또는 108배를 통한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1]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恩霑禪師)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년)에 벽담선사(碧潭禪師)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보물 985호 석불상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2.1. 역사
절 자체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불상은 상당히 오래된 특이한 곳이다. 구한말 1902년(광무 6년-고종 39년)에 창건되었는데, 전해오는 사연이 있다. 창건 한 해 전(1901) 어느 날 엄비(嚴妃)가 꿈을 꾸었는데, 일곱 불보살이 나타나 '우리가 지금 강가에 묻혀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엄비가 영문을 몰라 자세한 사정을 알려달라고 하자, 청주 무심천변에 묻혔다고 설명하며 청주 지주 이희복에 자세한 사연을 아니까 그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엄비가 꿈에서 깬 뒤 기이하게 여기며 청주에서 이희복을 불러 꿈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이희복도 자신도 비슷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무심천을 조사해볼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희복이 다시 청주로 내려가 일꾼들을 모아 무심천을 뒤져보니, 오래 전에 묻힌 미륵불상 등 석조 불상 5좌에 보살상 2좌로 총 7좌가 나왔다.[2] 그래서 용화사를 세우고 출토된 상을 봉안하였다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1989년에 보물 제985호 '청주 용화사 석조불상군 (淸州 龍華寺 石造佛像群)'으로 등록되었다.왜 이 석불들이 무심천변에 묻혀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93년 전신주 매설공사 중 발견된 바리, 종, 남아있는 초석, 석탑 등의 양식으로 미루어 신라말이나 고려 시대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들의 하부는 시멘트로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