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9:25:18

우리집 문제

1. 개요2. 제작 역사3. 시리즈 구성
3.1. 우리집 문제3.2. 우리 옆집 문제3.3. 우리 아랫집 문제3.4. 우리 윗집 문제3.5. 우리 처갓집 문제3.6. 우리 누이집 문제3.7. 우리 큰집 문제3.8. 우리 사돈집 문제3.9. 우리 작은집 문제3.10. 우리는 모두 한가정3.11.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3.12. 우리 삼촌집 문제3.13. 특징
4. 여담
4.1. 근황

1. 개요

북한의 시리즈물 영화로 이희찬의 대표적인 연출작이다.1973년 "우리집 문제"부터 1988년 "우리 삼촌집 문제"까지 15년에 걸쳐 12편으로 구성된 시리즈이며 북한 코믹 영화의 대명사이다.

2. 제작 역사

1973년 '우리집 문제'로 시작되었다.
이 본편이 굉장히 유명해졌는데, 혁명화(좌천)을 주제로 해서인지 6년후인 1979년에 시리즈 제작이 재개되었다.
이후 1983년 '우리는 모두 한가정'으로 끝을 맺었다가 1986년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가 등장했고 1988년 '우리 삼촌집 문제'를 끝으로 더이상 제작되지 않음으로서 15년만에 12번째 작품으로 끝을 맺었다.

북한에선 아직까지 코미디 영화, 경희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김세영이 이 시리즈로 희극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아직까지 대표적인 가족물 경희극 영화이며 2022년에 들어 화질을 개선해 다시 방영하고 있다.

3. 시리즈 구성

  • 우리 집 문제(1973,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 제작)
  • 우리 옆집문제(1979)
  • 우리 아래집문제(1980)
  • 우리 웃집문제(1980)
  • 우리 처가집문제(1980)
  • 우리 큰집문제(1981)
  • 우리 누이집문제(1981)
  • 우리 사돈집문제(1982)
  • 우리 작은집문제(1983)
  •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 다시 시작된 우리 집 문제(1986)
  • 우리 삼촌집문제(1988)

3.1. 우리집 문제

파일:우리집문제.jpg
1973년 작품.
시리즈 중 유일하게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現 조선인민군4·25영화촬영소)에서 제작했다.

우편국장과 그의 아내 길순이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내용으로, 아내의 말만 듣고 과오를 범한 우편국장이 좌천당하는 결말이다.

배경은 가상의 도시인 자강도 동성시 경일구역으로, 후속작에 나오는 지역들도 평양을 빼놓고는 가상의 지역이다.

본편이니 만큼, 후속작들에서 나오는 문제는 물론 북한 정부가 하지말라고 하는 모든 행동들이 총집합 되어있는, 북한 기준으로 막장부부이다.

우편국장의 경우, 처음에는 성실하고 올곧았으나 이미 이때부터 학습회, 강연회 같은것들은 빠지기 일쑤였다.
거기에 아내가 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신문 송달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위치를 이용해 유세를 부리며 부하직원들을 마구 부려먹는 간부가 되어간다.

길순의 경우,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고 취업비리, 돌려막기 행위를 일삼으며 우편국의 출근버스를 쌀자루 나르는데 써서 출근을 막고, 부부싸움으로 온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것은 물론, 남편의 일에까지 마구 간섭하고 거만함은 기본으로 갖춘 막장중의 막장을 달린다.

결국 이렇게 살던 우편국장의 아내는 돌려막기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우편국 자동차를 타고 친정집에 갔다오고, 그때문에 중앙에서 내려오는 신문을 인계받지 못해 결국 좌천된다.

작중에서 우편국장은 시 우편국 국장, 길순은 거리 체신분소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1979년 우리 옆집 문제에서 다시 상부로 복귀했다.
  • 우편국장 역: 김세영[A][2]
  • 김길순 역: 한길명[B][4]
  • 경호 역(길순의 장남, 윤옥의 오빠)
  • 윤옥 역(길순의 장녀, 경호의 동생)
  • 현옥 역(길순의 차녀): 우리집 문제에는 갓난아기로, 우리 옆집 문제에선 유아로 나온다.

3.2. 우리 옆집 문제

파일:우리옆집문제.jpg
1979년 작품.
우편국장 부부가 복귀한 아파트 옆집의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다.

이 복귀 지역 또한 불분명한데, 도입부에 나오는 전경에는 평양시 보통강구역황금벌역이 나오고, 버스정류장이나 여러 게시물을 보면 강안동이라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 강안동은 평양 선교구역(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평양시 선교동 일원)에 실존하는 동네이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에 도 행정위원회 처장이 사는것을 보면 평양이 아니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남편의 직위를 바탕으로 일과 조직생활을 대충하고 사치부리는 구역 행정위원장의 부인 명숙의 문제를 푸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간부의 아내라고 해서 남편의 자동차를 마음대로 타고다니는것[5], 상품들을 지방의 친척에게 빼돌리는것[6], 조직생활을 태만하게 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주민들에게 이러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 리성진 역: 최명관[B]
  • 박명숙 역: 정미숙[B]
  • 명숙의 사촌언니: 남궁련[A]

3.3. 우리 아랫집 문제

1980년 작품.
도 행정위원회 처장으로 일하는 남편과 여관 접대과장으로 일하는 그의 아내 혜순, 딸 두명으로 이루어진 우편국장의 아랫집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작품은 이들이 우편국장 가정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문제를 가지고있다는것을 표현하며, 이 작품 이후부터 다양한 문제를 꼬집는다.

간부가정의 전형적인 문제를 꼬집는데, 방직공장에 집단궐기로 배치받은 딸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려는 취업비리, 아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간섭문제[10], 남의 집을 가로채는 문제[11][12] 를 강하게 꼬집고 있다.

장녀 은주와 순철의 연애는 후속작까지 이어지며 결국 결혼한다.
  • 조병철 역: 김익성[B]
  • 혜순 역(처장의 아내): 정선희[14]
  • 조은주 역(처장의 장녀): 최순복[15]
  • 조은옥
  • 박순철 역: 김철(윗집 명숙의 동생이자 은주의 남편)[B][17]

3.4. 우리 윗집 문제

1980년 작품.

이 시리즈에 등장한 집안 중 유일하게 아내가 여러모로 위치가 높다.

사회적으로도 서재철은 편의관리소 지도원이지만, 경숙은 간부들이 자주 드나드는 수정각이라는 식당의 책임자이다.[18]

또한 서재철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지만 경숙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있는편이다.

돈과 배경에 의해 연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정략결혼을 비판하는 영화로, 수옥은 성준과 사귀었지만, 지방으로 탄원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때 마침 수정각 지도원을 하는 민성태는 책임자인 경숙에게 자신의 아들이 무역 대표부로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고, 경숙은 수옥을 종용해 민성태의 아들 명수와 결혼시킨다.

한편 재철의 형이 명수가 일하는 무역부의 국장을 맡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태는 명수를 종용해 서재철의 딸 수옥과 결혼시킨다.

그러나 무역부의 변심으로 명수와 수옥은 외국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고, 부부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또한 명수는 재철의 집안이 도와주지 않아 외국으로 못나가게 됐다고 생각한 점도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된다.
거기에 자기 아들을 결혼시켰던 이유 중 하나인 안사돈 경숙이 수정각 책임자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결국 이혼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렇듯 사랑이 아닌 돈과 배경으로 한 수옥 부부와 대비되는 인물로 전작인 '우리 아래집 문제'의 주인공인 아랫집의 은주와 그의 연인인 순철의 결혼과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따라간 은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은주가 휴가를 받아 본가가 있는 도시로 올라왔을때 비관에 빠진 수옥에게 충고하는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 서재철 역: 리경환[A][20]
  • 경숙 역(서재철의 아내): 현미순[A][22]
  • 민성태 역: 최계식[A]
  • 봉녀 역(민성태의 아내): 문예봉[A]
  • 민명수 역(민성태의 아들이자 수옥의 남편): 리태우[B]
  • 서수옥 역(서재철의 딸이자 명수의 아내): 리경숙
  • 서수영 역: 오명옥
  • 성준 역(수옥의 전 애인): 김선남[B]

3.5. 우리 처갓집 문제

1980년 작품.
우편국장의 처갓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내용으로, 시집살이를 잘 견뎌내는척 하면서 뒤로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처갓집 며느리 복희의 문제를 푸는 내용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 수출되었다.
  • 분녀 역(길순의 어머니): 유경애[A]
  • 김길훈 역(길순의 남동생): 김승오[B]
  • 복희 역(길훈의 아내): 김옥희[A][30]
  • 김길옥 역(길순의 여동생): 리금선[B]

3.6. 우리 누이집 문제

1981년 작품.
우편국장의 누나 봉녀와 그 일가를 다룬 내용으로, 시월드를 주제로 한 내용이다.
처음엔 자기말을 듣지않고 집안 살림을 쥐락펴락 하며, 말대꾸를 하는 순영이 싫어 우편국장 집으로 가출한다.[32]
이로인해 우편국장은 지난 처갓집 문제처럼 시부모를 괄시한줄 알고 찾아온 동철 부부를 훈계한다.

시댁 염소를 친정으로 빼돌려 팔아치운 돈을 자신이 꿀꺽한줄 알고 심하게 구박한다거나 며느리가 거짓말까지 하고 직장에서 자리를 비우고 사온 음식을 무시하고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며느리를 딸인줄 알고 온갖 험담을 다 해버리고, 충격을 받은 순영은 집을 나온다.

그러나 염소 판 돈은 사실 시누이 동화와 시동생 동수의 결혼자금으로 저축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봉건적으로 시집살이를 시킨 봉녀와 그것을 부추긴 시누이 동화를 우편국장 부부가 비판하여 깨달음을 얻고 신정에 며느리에게 새 옷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그 현장을 찾은 순영과 봉녀가 마주치며 그돈을 옷사는데 쓰면 안된다는 순영과 옷을 해입히겠다는 봉녀가 기쁜 다툼을 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점은, 여성도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 존재이니 집안일과 시집 살림에 소홀할지라도 시집살이를 시키거나 하지 말라는것이며, 순영의 모습을 통해 순종적이고 착한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궤변으로 느껴질수 있는데,
  • 봉녀 역(우편국장의 누나): 김선영[A]
  • 김동철 역(봉녀의 장남): 김동식[34][35]
  • 순영 역(봉녀의 맏며느리): 홍순정[B]
  • 김동숙 역(봉녀의 장녀): 김경숙[37]
  • 김동화 역(봉녀의 차녀): 김선옥[38]
  • 김동수 역(봉녀의 차남): 최광성
  • 김옥(동철의 딸)

3.7. 우리 큰집 문제

1981년 작품.
북한 특유의 성격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우편국장의 조카인 동팔이 돌격대로 뽑히자 동생의 연줄을 이용해 돌격대에서 빼내고 우편국장이 사는 도시로 이주시키려는 우편국장의 형 윤삼과 그것을 계획한 조카 동팔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당시 북한은 70일 전투(1974), 100일 전투(1980)을 거치며 농촌 지원, 돌격대 등 중요한 일에 아무나 끌어다쓰는 문화가 만연해있었고, 주인공 동팔 역시도 건설과 아무상관도 없는 상업관리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지역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큰 건설이 벌여졌으니 여기저기서 끌어다쓰는 모습을 엿볼수 있다.
물론 영화의 목적은 알다시피 돌격대로 끌고가면 얌전히 끌려가라는것을 결말로 담고있다.
  • 리윤삼 역(우편국장의 형): 박민[A]
  • 리동팔 역(윤삼의 아들): 리문호[B]
  • 성희 역(동팔의 연인): 오봉호
  • 로동과장 역: 강원숙
  • 로동과장 처 역: 김명희[A][42]

3.8. 우리 사돈집 문제

1982년 작품.

비행 청소년과 입시 비리의 문제를 지적한 작품이다.
우편국장의 사돈집이자 윤옥의 시집인 건설사업소 지배인 일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자녀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와 무조건 두둔해주는 어머니, 비행 청소년인 아들을 다룬 영화이다.

물론, 나라에서 거저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주며 공부까지 시켜준다는 선전은 빠지지 않는다(...)
  • 김영섭 역(윤옥의 시아버지): 김해섭[A]
  • 옥순 역(윤옥의 시어머니): 백경아[A]
  • 김문수 역(윤옥의 남편): 김광남[B]
  • 윤옥(우편국장의 딸): 류광춘
  • 김문호 역(윤옥의 시동생이자 제자): 주광일

3.9. 우리 작은집 문제

1983년 작품.
우리 큰집문제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있다.
타지에 살다가 우편국장이 사는 도시에서 항구 건설이 이뤄지자 노력지원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지 않고 정착하게 되었고, 항구 경리과에서 지도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우편국장의 딸 윤옥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고 윤옥 부부를 차에 태워 떠나보낼때까지 동네사람들과 남아있는다.

그때 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잠깐 우편국장을 찾아오고, 그가 돌아가고나서 국장의 형이 부위원장과도 영 남남은 아니라며 말을 시작하더니 계획과장이 불러주는 촌수를 그림으로 그리게 된다.
그 결과 부위원장과 국장의 형은 사돈의 팔촌의 고모 사촌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완전 남남이라며 한바탕 웃게 된다.

그러나 윤길만은 홀로 남남은 아니라며 심각하게 고심하고, 마침 1983년 새해를 맞는 연말이니 부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내기로 한다.

1983년 설명절, 윤길의 가족은 형인 우편국장의 집이 아닌 부위원장의 집을 먼저 찾아가고, 부위원장의 가족은 되지도 않는 촌수를 달고온 윤길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때 부위원장의 아들이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조르자 냅다 무역항에서 가져온 스케이트를 덥석 안겨주고 친척의 정이라며 가까워진다.

이후 부위원장의 이름을 팔아 남에게 가게 될 입사증을 가로채 아파트에 들어가려 하고, 수출품으로 무역항에 쌓인 물건들 중 탈락한 물건들을 헐값에 사다가 부위원장 집에 지속적으로 선물한다.[46]

그러다가 무역항 부항장의 남동생과 부위원장의 여동생을 억지로 이어줘서 경리과장 자리에 오르려다가 싸움을 하고, 우편국장이 단단히 문제를 제기해 잘못되어감을 깨달은 부위원장 아내를 문제가 세워질까봐 무시하고 다닌다.

결국 우편국장은 동생의 입사증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걸 알게 된 윤길은 마침 동생의 집들이 때문에 들른 누나와 형을 데리고 국장의 집에 찾아가 문제를 세우자고 말한다.

그러나 누나와 형도 윤길이 집을 빼앗은걸 알게 되자 단단히 혼을 내고, 이웃들까지 등장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 윤길 역(우편국장의 동생): 손원주[B]
  • 세옥 역(윤길의 아내): 김영희[A]
  • 인순 역: 강여선[B]

3.10. 우리는 모두 한가정

1983년 작품.
  • 양필수 역: 오향문
  • 조미숙 역: 리성심

3.11.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

1986년 작품.

3.12. 우리 삼촌집 문제

1988년 작품.
우리집 문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며 이로서 시리즈는 15년만에 종결을 맞게 된다.

3.13. 특징

시리즈의 모든 편에는 본편의 주인공이었던 우편국장(김세영)과 그의 아내 길순(한길명)이 등장한다.

우리집 문제부터 우리 아래집 문제까지는 자기집과 이웃을 배경으로, 우리 처가집 문제부터 우리 작은집 문제까지와 우리 삼촌집 문제, 총 6편이 이 부부의 친척집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렇게 우편국장 부부가 이곳저곳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항상 당국에서 권하는 계몽적인 내용으로 결말을 낸다. 그래서인지 온갖 방법을 다 써도 변하지 않던 주인공들이 당을 믿고 따르자느니, 당의 품이니 하는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고 반성하는 모습을 볼수있다.[53]

북한에서 컬러방송이 1974년에 시작되었지만 막상 영화 자체는 1983년도까지는 흑백으로 촬영되어있다.

'우리집 문제'가 나온지 10년만인 1983년에 '우리는 모두 한가정'이라는 영화로 시리즈는 막을 내렸으며, 여태껏 문제가 있었다가 풀어진 모든 가정들이 나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우리는 모두 한가정 이후 3년만에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가 제작되었고 15년만인 1988년 우편국장의 아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작은집(아들 기준 삼촌집)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 삼촌집 문제'가 나왔다.

동네 이름을 다 평양에서 따온듯 하다.

우리집 문제에서 배경으로 하는 새거리동은 실제로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있는 동네고, 우리 옆집 문제의 배경인 강안동은 실제로 평양시 선교구역에 있는 동네다.

4. 여담

이 시리즈는 1970~80년대의 북한의 생활상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는 영화로 당대 북한의 사회문제가 어떠한지를 직, 간접적으로 알수있다. 물론 지하영화나 사회를 대놓고 비판하는 영화가 아닌 관제 계도성영화인 만큼 사회문제를 다루기는 했어도 어쨌든 당의 영도하에 해결되었다는 어거지식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모습도 같이 볼수있다.[54]

현실과는 다른 점도 꽤나 보인다.

가령 '우리 사돈집 문제'에서 주인공 문호가 가출해서 갈천역까지 갔다가 그 역에서 붙잡히고 부모와 지도원 선생이 바로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행증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남한에서도 집안 식구가 아프거나 급한일이 있으면 병원에 보낸다거나 하는 식의 긴급한 사유가 있으면 바로 야간통행증 끊듯이 북한에서도 가출한 자녀를 찾는다는 식의 긴급한 사유면 여행증을 바로 발급해주는식으로 처리하기는 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체벌을 험하게 하는 것이 당연시된데다가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인사고과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히 두들겨맞는 것으로 끝나지않았다는게 문제였다.

또한 '우리 누이집 문제'에서도 같은 문제점이 있는데, 순영의 남동생을 원래 고향으로 돌려보내야하는 날보다 더 빨리 돌려보내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여행증에는 기간까지 적혀있으므로 현실에서는 마음대로 날짜를 어기고 돌려보내기는 어려울것이다.

시리즈 출연진 중 월북배 우로는 김세영, 유경애, 오향문, 문예봉이 있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별로 없다. 우리집 문제, 우리 아래집 문제[55], 우리 누이집 문제[56], 우리 작은집 문제[57],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 우리 삼촌집 문제가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있으며 우리 옆집 문제는 가을~초겨울 사이, 우리 웃집 문제는 봄[58]으로 보인다.

여름으로 한 영화는 우리 처가집 문제와 우리 사돈집 문제밖에 없다.

우리 삼촌집 문제에서 경호와 그의 여자친구 은옥이 장난삼아 나중에 우리 며느리 문제에 걸리는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는데, 다음해 우편국장 역의 김세영이 사망해 후속작은 나오지 못했다(...)

4.1. 근황

1988년 시리즈가 끝난 이래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북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다.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배우들도 많다.
  • 김세영: 1972년 공훈배우를 받고 1973년 '우리집 문제'에 출연, 1975년 인민배우를 받고 시리즈 전체에 출연했으며 1989년 10월 23일 사망,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 박민: 1975년 공훈배우를 받고 1981년 '우리 큰집 문제'에 출연했으며 1987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고 1995년 8월 15일 사망했다.
  • 김선영: 1978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고 1981년 '우리 누이집 문제'에 출연, 1995년 7월 29일 사망했다.
  • 유경애: 1980년 '우리 처가집 문제'에 출연, 1980년 김일성훈장을, 1993년 로력영웅을 받았고 2007년 사망했다.
  • 김옥희: 공훈배우로 '우리 처가집 문제'에 출연, 1992년 인민배우가 되었다.
  • 김영희: 공훈배우로 '우리 작은집 문제'와 '우리 삼촌집 문제'에 출연, 이후 인민배우가 되었다.
  • 박기주: 공훈배우로 '우리 삼촌집 문제'에 출연, 199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고 1995년 7월 18일 사망했다.


[A] 인민배우[2] 캐릭터 이름대로 시 우편국장이다.[B] 공훈배우[4] 우리집 문제에선 체신분소 직원, 우리 옆집 문제에서 가내작업반 반장이 되었으며 우리 웃집 문제에서 인민재판소 인민참심원이 되었다.[5] 북한은 일반적으로 자동차가 공무용 물품으로 취급되며, 이 시기에는 자동차를 돈이 있다고 탈수있던 시대도 아닌지라 사적인 이유에서 자동차를 타는것은 원칙적으로 징계대상이다. 남한에서도 1가구 1대 자동차 소유가 일반적이지만 마찬가지로 사적인 이유에서 관용차를 타는것은 징계감이다.[6] 하지만 경제가 어느정도 굴러갔던 이 시절에도 도시와 농촌의 공급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기에, 농촌 사람들은 특정 상품을 얻기위해 그것이 공급되는 평양이나 대도시에 사는 친척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소련에서도 있었고, 미국이나 남한, 일본, 중국도 시골에서는 장기보조식품은 몰라도 신선식품이 부족하다든가하는 애로사항이 있기는 하다.[B] [B] [A] [10] 우편국장이 취업비리를 성사시켜주지 않았다고 우편국 기계실 공사를 빼버리라는 둥의 명령을 하고, 그 결과 자동통신체계 수립에 문제가 생기고 아파트 문제까지 수면위로 떠오르며 내각에서 조사를 나오게 된다[11] 주변 수양거리에 화려한 아파트를 짓고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남편을 타박해 입주를 허가하는 입사증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는다[12] 근데 빼앗은 입사증이 하필 우리 옆집 문제의 주인공 부부에게 갔어야할 입사증이라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이 상태에서 두 집간의 혼사를 추진하던 우편국장까지 끼어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번져진다[B] [14] 여관(호텔) 접대과장[15] 1988년 '우리 삼촌집 문제'에서 도시경영처 지도원인 선희라는 배역으로 나온다[B] [17] 이 작품에선 연인이며 후속작 '우리 웃집 문제'에서 결혼한다[18] 보통 남자가 시(市) 간부에서 도(都)나 중앙 간부로 올라갈때 여자가 그 지역에서 한직을 받아 따라올라가는 북한 사회에서 여성이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는 아내가 농장 관리위원장이거나, 굉장히 드문 지역의 간부거나(도/시/군 처장이나 국장, 과장), 못해도 당조직 혹은 행정기관에서 지도원 이상은 하는 경우이다.[A] [20] 지도원으로 일한다[A] [22] 수정각이라는 식당 책임자[A] [A] [B] [B] [A] [B] [A] [30] 당시에는 공훈배우[B] [32] 하필 길순의 생일이라 외식하러 나가는길에 밀고들어와 폐를 끼쳤다[A] [34] B[35] 우리 옆집 문제에서는 대학생 모집과장으로 출연[B] [37] 4명의 자녀를 두고있다[38] B[A] [B] [A] [42] 우리 옆집 문제에서 길순과 가내작업반에서 함께 일했다[A] [A] [B] [46] 공식적인 절차를 다 밟고 돈내고 사온 물건이 무슨 문제냐고 의아할수 있지만, 1990년대 이후 국가가 아닌 자신과 장마당으로 먹고살면서 당국의 선물에 시큰둥 해지는걸 보면, 당시 북한 당국도 국가가 아닌 친척, 지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 덕으로 사치품을 쓰는것을 크게 경계한 것으로 볼수 있다.[B] [A] [B] [50]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의 주인공[A] [A] [53] 사실 비슷한 시기 남한 개그프로그램도 정권이나 당국을 찬양하는 내용을 넣는 경우가 많았다. 2020년대에 KBS와 MBC에서 유튜브로 당대의 개그프로그램을 올려놓고있지만 당대의 당국을 찬양하는 내용을 방송사에서 빼는것.[54] 우리 처가집 문제의 경우, 가정불화를 해결하는데 감동적인 내용이 아닌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말을 먼저 던지고, 거기에 감화되어 자아비판을 하며 해결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을 만들거나, 우리는 모두 한가정에선 부부는 성격이나 살림살이가 아닌 혁명동지로서 같이 살아가야한다고 말하는 놀라운 내용을 집어넣기도 했다[55] 결말이 새해를 맞이하는것[56] 결말에서 새해를 맞이한다[57] 초반에 1983년 새해를 맞이한다[58] 5월이라는 배경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