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30 03:42:05

김세영(배우)

<colbgcolor=#bc0021><colcolor=#ffffff> 김세영
Kim Se yeong
출생 1923년 9월 17일
충청북도 청주군 남일면 두산리
(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두산리)
사망 1989년 10월 23일(향년 66세)
평양시
전직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
학력 청주대성고등학교 중퇴
주요서훈 공훈배우, 인민배우
가족 아들 김천 딸 김은라, 김민희

1. 개요2. 생애3.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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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영화배우. 청주 문화공단,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배우이다.

2. 생애

1923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6살에 아버지를 여의어 삼촌 집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이후 당시 청주상업학교(現 청주대성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했고 사무원으로 취업했다.

해방 전 청주시 문화공단에서 일본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했는데, 친하게 지낸 월북배우 박학[1]과 훗날 장모와 사위 역할로 만나게 되는 월북배우 유경애[2]와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6.25 전쟁으로 조선인민군에 의해 석방되어 1950년 월북했다.

월북 이후 '소년 빨찌산' 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그러나 60년대까지 월북 동료 박학보다도 뜨지 못하다가 70년대 들어 뜨게 되는데[3], <자랑끝에 있은일>, <안해의 일터> 등에 출연하다가 북한 코미디 영화의 대명사 우리집 문제에서 주인공 부부의 남편인 우편국장 역할을 맡아 성공했으며 이후 우리집 문제 시리즈에 전부 출연했다.

3. 출연작

  • 소년 빨찌산(1950)
  • 또 다시 전선으로(1952)
  • 정찰병(1953)
  • 흥부전(1963)
  • 끝없어라 나의 희망(1964) - 세포위원장 역
  • 새살림(1965) - 철수 역
  • 영원히 이길에서(1966)
  • 명랑한 무대(1966) - 의사 역
  • 인민을 위한 숨은 투쟁(1968)
  • 한 자위단원의 운명(1969)
  • 보충병(1969)
  • 자랑끝에 있은일(1970)
  • 아내의 일터(1970) - 남새반장 역
  • 사과 딸 때(1971)
  • 공중 무대(1972)
  • 우리집 문제(1973) - 우편국장 역
  • 두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1974) - 지배인 역
  • 도루메기소동(1974) - 부장 역
  • 보람찬 우리 생활(1975) - 배우 아버지 역
  • 은혜로운 해빛은 여기에도 비친다(1975) - 교육회장 역
  • 대지에 뿌리내린다(1976) - 관리위원장 역
  • 우리 선전원(1976) - 영만 역
  • 북은 내가 치겠소(1977) - 만수 역
  • 유원지의 하루(1978) - 아버지 역
  • 우리 옆집 문제(1979) - 우편국장 역
  • 우리 웃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아래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처가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큰집 문제(1981) - 우편국장 역
  • 우리 누이집 문제(1981) - 우편국장 역
  • 우리 사돈집 문제(1982) - 우편국장 역
  • 우리 작은집 문제(1982) - 우편국장 역
  • 두 선장(1982) - 경윤 역
  •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 우편국장 역
  • 그가 받은 꽃다발(1984) - 만섭 역
  • 은비녀(1985) - 빠찡꼬집 사장 역
  • 봄날의 눈석이(1985) - 강득보 역
  •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1986) - 우편국장 역
  • 우리 삼촌집 문제(1988) - 우편국장 역
  • 림꺽정 3부(1988) - 봉산리방 역
  • 정다운 불빛(1989) - 상수 역
  • 발동소리 울린다


[1] 월북 이후 배우와 연출가로서 공적을 많이 세워 인민배우,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이 되었다.[2] 월북 이후 인민배우, 김일성훈장, 로력영웅을 받았다.[3] 물론 김세영이 뜬 후에도 박학보다 서훈이나 공적은 밀렸지만 북한 주민들이라면 다 아는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