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8:01:43

우산하 9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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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왕릉, 귀족묘, 벽화묘 등에 대해서는 통구 고분군, 고구려왕릉 문서를 참고.
※ 각 고분군 구분에 대해서는 통구 고분군 문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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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SCO World Heritage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한국어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중국어 高句丽王城、王陵及贵族墓葬
영어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
프랑스어 Capitales et tombes de l’ancien royaume de Koguryo
국가·위치
[[중국|]][[틀:국기|]][[틀:국기|]]
지린성 지안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135
등재연도 2004년
등재기준 (ⅰ)[1], (ⅱ)[2], (ⅲ)[3], (ⅳ)[4], (ⅴ)[5] }}}
파일:우산하 992호.png
<colbgcolor=#000> 우산하 992호
파일:우산하 992호 전경.jpg
우산하 992호 전경[출처]

1. 개요2. 무덤의 구조3. 무덤의 연대4. 무덤의 주인5. 여담6.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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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지린성 지안시 과원촌 부근의 우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의 4세기 중엽경 왕릉급 고총으로 공식적으로는 우산하 0992호(JYM 0992)로 편호되었다. 2004년에 고구려 왕릉으로서 장군총, 태왕릉 등의 무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무덤의 구조

적석총의 발전상 가운데서 계장식 적석총에 이어 나타나는 전형적인 계단식 적석총에 해당한다. 장군총이나 태왕릉처럼 정교하게 면이 가다듬어 진 것은 아니지만 대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기단부의 하중 지지력 및 형태 유지력을 보완, 발전시켜 나갔다.

무덤의 정상에서는 방형의 함몰된 부분이 확인된다. 함몰부를 중심으로 펼쳐진 포석은 주변의 채움석으로 활용된 석재에 비해서는 작고 비교적 촘촘히 깔려져있다. 우산하 992호의 함몰부의 크기가 기존의 석곽으로 추정되거나 석곽이 남아 있는 경우의 함몰부에 비해서 넓다. 즉, 기존의 석곽에서 장법에서 석실(또는 광실)로의 변화가 상정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이 우산하 992호분으로써, 원상태를 추론하면 현재의 높이보다는 1~2m 가량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지 자체에서도 소위 '배타적' 공간이라 표현하는 묘역과 같은 개념의 공간이 기존의 계장식 적석총에 비해서 현격하게 넓어진다. 고분 자체의 크기는 줄지만 묘역의 범위는 늘어나고 높이도 의도적으로 높게 쌓아 올림으로써 고구려 적석총에서의 왕묘급의 의례행위에서의 진전이 우산하 992호분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무덤의 동서 양측으로는 추정 제의시설인 제대가 확인되었다. 또 우산하 992호분의 묘역, 배타적 공간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일반 고분군[7]이 형성된다. 이 고분군에서 발굴된 무덤으로는 우산하 1041호분[8]이 있다.

3. 무덤의 연대

묘정 상부에서 채집된 권운문 와당에서 무술의 갑자(甲子)가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묘 정부에서 출토된 유물 일부가 4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유물과 상관성이 높은데 다만 그 유물보다는 다소 느린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대체로 4세기 전반에서 4세기 중엽경에 만들어진 왕릉으로 보는데에 큰 이견이 없다.

4. 무덤의 주인

4세기 전반의 경우 왕이 많지 않은데, 이 때문에 우산하 992호의 경우 봉상왕이나 미천왕, 고국원왕 정도가 후보에 오를 수 있다. 미천왕과 고국원왕은 다른 무덤이 후보군에 올라 있어 봉상왕이라는 추정도 있다. 다만 미천왕의 2차 왕릉일 것과 고국원왕의 수릉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5. 여담

우산하 992호는 우산(우산)의 능선 사면에 위치하는데 이러한 지형조건이 동일한 곳에 거의 우산하 992호분과 유사하게 축조된 무덤이 있다. 바로 우산하 901호분으로 크기는 약간 작지만 우산하 992호처럼 묘역이 있고 추정 배총군이 배치되는 점에서 동일한 양상이다. 축조기법 상으로도 거의 유사하다. 다만 우산하 901호는 발굴되지 않아 유물을 통해서 연대를 구체적으로 특정할만한 근거는 없다.

6. 같이보기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출처]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 2004, 集安高句丽王陵-1990~2003年 集安高句丽王陵调查报告-, 文物出版社[7] 배총군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없다.[8] 우산하 992호분과는 시간적 차이가 크다. 우산하 1042호분은 5세기 전반경에 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