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3:32:21

웨인 브리지

웨인 브리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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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Wayne Bridge chelsea.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웨인 브리지
Wayne Bridge
본명 웨인 마이클 브리지
Wayne Michael Bridge
출생 1980년 8월 5일 ([age(1980-05-05)]세)
잉글랜드 햄프셔사우샘프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75kg
직업 축구선수 (레프트백 / 은퇴)
소속팀 사우스햄튼 FC (1998~2003)
첼시 FC (2003~2009)
풀럼 FC (2006 / 임대)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3)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 / 임대)
선덜랜드 AFC (2012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2~2013 / 임대)
레딩 FC (2013~2014)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6경기 1골 (잉글랜드 / 2002~2010)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불륜 사건의 피해자7.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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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2. 플레이 스타일

활동량도 좋고 크로스도 죽죽 날려주는 밸런스가 잘 잡힌 굿 플레이어이다. 다만 잔부상이 많고 첼시 시절이나 국대 시절 최강자 애슐리 콜의 그늘에 가려진 전형적인 콩라인 선수다. 사실 뛰는 것을 보면 그다지 단점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는 장점도 보이지 않는 편이다. 기복이 심한 편이라 경기가 안풀리는 날에는 클로킹 모드가 된다. 비록 180cm가 안되는 신장이지만 피지컬이 좋고,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는 선수다.

3. 클럽 경력

사우스햄튼 FC 유스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내며 빠르게 팀의 주전으로 잡았고, 5년 동안 173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3년 7월, 700만 파운드에 첼시 FC로 이적하였다. 첼시에서 두 시즌 동안은 주전 레프트백으로 뛰다가 2005-06 시즌, 스페인 출신의 델 오르노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독일 월드컵 출전을 대비해서인지 2006년 초 풀럼으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임대에서 복귀 한 다음 시즌에는 공교롭게도 이미 국대에서 자신을 밀어내고 있던 아스날에서 이적 온 애슐리 콜에게 자리를 빼앗기면서 수년간 벤치 멤버에 머무르고 말았다. 2007-08 시즌에는 토트넘 홋스퍼와의 칼링컵 결승에서 어처구니 없는 핸드볼 파울 삽질로 페널티킥 동점을 내줘 역전패 준우승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결국 기회를 찾아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후술할 불륜사건으로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1] 2012년에는 그야말로 진짜 멘탈붕괴를 시전 중이다. 애초에 경기를 뛸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다 아예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주급만 꼬박꼬박 받아챙기면서 놀고먹는 중. 보다못한 만치니 감독도 1월에 팀 떠나라고 종용하는데 과연 떠날려나 모르겠다. 결국 2011-12 시즌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선덜랜드 AFC로 임대 이적을 떠났다.

2013년, 맨시티와의 계약이 만료된 뒤 레딩 FC와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 레딩에서 12경기를 뛰었으며, 2014년 레딩의 승격이 좌절된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2년부터, 22살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다. 국가대표에서 동갑내기 애슐리 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라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2002년부터 자주 국가 대표에 발탁되었지만 출장 경기는 36경기뿐이다. 게다가 2010년 1월 30일, 그 사건이 터지면서 아예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참고로 2000년대의 잉글랜드의 영원한 숙제 '수준급 왼쪽 윙어 발굴'이 도저히 답이 안보이자 브릿지를 왼쪽 윙어로 기용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윙어 데뷔전은 평점 7점을 받으며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정답이 되지는 못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불륜 사건의 피해자

국내에서는 축구 외적인 사건으로 무척 유명세를 타게 되는데, 그 사건이 이른바 존 테리의 불륜 사건이다. 2010년 1월 30일, 영국 언론이 존 테리의 불륜 기사를 대서특필하면서 축구계는 충격에 휩싸이는데, 존 테리와 몰래 관계를 맺었던 여자가 바로 웨인 브리지의 약혼녀 바네사 페론첼이었다.

존 테리는 첼시 시절 웨인 브리지와 가장 절친했던 친구였는데 몰래 자신의 약혼녀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웨인 브리지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웨인 브리지와 바네사 사이에는 아이까지 있었지만 존테리는 여자라면 상관 없었는지 꽤 오랫동안 바네사와 불륜관계를 맺었다.

바네사가 존 테리의 아이를 임신하자 존 테리는 낙태를 종용했고 바네사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는 뉴스가 언론을 타면서 존 테리는 영구까임권을 획득하게 된다. 웨인 브리지는 그딴 xx랑 같은 비행기 타느니 은퇴하고 말지라는 반응을 보이며 국가대표에서 아예 은퇴해 버렸다. 되려 피해자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면서 존 테리는 더욱 까였다.

2009-10 시즌 첼시를 떠나 맨시티로 이적, 덕분에 성사된 불륜 더비 첼시-맨체스터 시티 전에서 존 테리는 "웨인 브리지와 화해의 악수를 하겠다"라며 호언장담했지만, 웨인 브리지는 악수를 거절했다.[2] 어떤 도박사이트에서는 두 선수가 악수를 할까 안할까로 베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 2010-11 시즌에서도 맨시티에서 웨스트햄으로 임대를 떠난 브리지는 첼시와의 경기에서 테리와 또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도 테리의 악수를 거절했다.

파일:external/metrouk2.files.wordpress.com/article-1341312611715-118bdb73000005dc-822494_466x367.jpg
테리의 악수를 거절하는 브리지.

파일:external/static-secure.guim.co.uk/John-Terry-webb-001.jpg
존 테리 뒤에서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웨인 브리지의 분노가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존 테리는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웨인 브리지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브리지는 불륜을 저지른 바네사와는 헤어졌다. 찌라시들은 신이 나서 웨인 브리지의 아이가 존 테리의 아이일 수도 있다고 떠들어댔지만, 웨인 브리지는 자신의 아이로 간주하고 키우겠다며 그런 찌라시들을 입막아버렸다.

7. 근황

파일:external/i.huffpost.com/o-FRANKIE-WAYNE-BRIDGE-2015-570.jpg

2010년 교제한 걸그룹 더 세터데이즈의 프랭키 샌드포드와 2014년 7월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2013년 10월에는 아들 파커 브리지, 2015년 8월에는 카터 브리지가 태어나며 슬하에 세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샌드포드와 BT 스포츠 인더스트리 어워드 2015에 참석하여 리즈 시절 못지 않은 외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행히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듯.


[1] 존 테리도 죄책감과 중압감을 느꼈는지 비슷한 시기에 폼이 안좋아졌다.[2] 여담으로 이 장면에서 존테리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어린아이의 표정이 참 볼만하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과연 악수를 할지 안할지 다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