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8 19:38:19

위저드리 4

파일:Wizardry_Logo_(Red).webp
릴가민 사가
위저드리 | 위저드리 2 | 위저드리 3 | 위저드리 4 | 위저드리 5
코스믹 포지 사가
위저드리 6 | 위저드리 7 | 위저드리 8

파일:external/www.hardcoregaming101.net/wizardry4a.jpg 파일:external/www.rpgcodex.net/8988.gif

1. 개요2. 상세3. 영향

1. 개요

Wizardry IV: The Return of Werdna

3편 발매 이후 5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1987년에 애플 IIIBM PC 호환기종으로 동시 발매되었다. 일본에는 1년 후 일본 PC로만 발매되었고, 패미컴으로는 발매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낮은 연령대가 대부분이었던 패미컴 유저들에게 극악한 난이도의 게임을 소개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긴 듯. 일본판 부제는 워드나의 역습(ワードナの逆襲).

전작들에 비해 외전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한 편이고, 아예 외전으로 보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플레이어가 직접 작성한 캐릭터가 아니라, 시나리오 1편에서 등장했던 사악한 마도사 워드나를 조종한다. 마물들을 소환하고 릴가민의 모험가들을 썰면서 지상을 향해 나아가며 광왕 트러버의 아뮬렛을 되찾는 것이 목적. 그래서인지 전투 화면을 보면 이전 시리즈와 달리 아군이 화면 하단이 아닌 몬스터가 있던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시나리오 담당자는 울티마 4의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게임 잡지 소프토크(Softalk)[1]의 편잡자인 로 애덤스 3세(Roe R. Adams III). 게임 박스에는 "지금 까지 모든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온 플레이어들에 대한 제작진들의 새로운 도전장이다." 라는 메세지가 쓰여 있었다.

매뉴얼의 스토리 소개가 워드나의 시점에서 쓰여진 것도 특징. 여기서 워드나는 뱀파이어 로드를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모험가 파티의 기습을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2. 상세

미궁의 최하층에서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1~3편의 마을 대신 미궁의 각 층에는 소환 펜타그램이 몇 군데 설치되어 있다. 펜타그램에 들어오는 것으로 워드나의 체력·마력 회복, 마귀 소환・편성을 할 수 있다. 경험치는 안 주고, 펜타그램에 들어오면 새로운 던전 레벨에 도달한 보상으로 렙업을 하는 방식. 이 게임에선 아예 경험치가 없다.

이 작품의 어려운 요소라면 그냥 시나리오의 요소 하나하나가 장난 아니게 어렵다는 것이다. 던전 구조는 토 나오게 어렵고[2] 몬스터, 아니 적 모험가들의 난이도는 기본적으로 스텟이 상당히 높게 잡혀 있어서 상당히 어렵다. 심지어 어떤 던전은 그 자체가 함정 투성이. 전작들에 비해 퍼즐 요소가 상당히 강화되었고 독특한 수수께끼 문제들이 많아졌다. 위저드리 시리즈 문서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이 수수께끼들이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이 알기 쉬운 하위 문화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본의 팬들과 유저들은 상당히 난해했다고... 오늘날과 달리 인터넷으로 정보 공유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

게임의 배경인 지하 던전과 지상의 마을+성은 다름 아닌 위저드리 1편에 등장하는 그곳이다. 1편에선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파티가 마을에서 출발해 지하던전 최하층을 돌파하여 마법사 워드나를 처치하고 그의 아뮬렛을 빼앗는 것으로 끝나는데, 4편은 이걸 뒤집어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마법사 워드나가 지하던전 최하층에서 깨어나 플레이어 파티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을 돌파하고 성에 이르러 자신의 아뮬렛을 되찾아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워드나가 상대해야 하는 수많은 플레이어 파티들은 정말로 위저드리를 플레이했던 유저들이 만든 캐릭터들이라는 점. 당시 위저드리 게임을 하다가 플로피디스크가 손상됐다거나 하는 경우, 서테크 사에 플로피를 우편으로 보내면 데이터를 복구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이때 서테크가 백업받아뒀던 플레이 데이터가 위저드리 4의 적 캐릭터들로 사용된 것이다. 위저드리 4를 플레이하다가 던전에서 옛날 자기가 만들었던 파티와 적으로서 조우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이 게임의 가장 힘든 점은, 세이브를 하면 적들이 모두 되살아난다는 점. 강적을 만나 힘들게 격파했더라도, 세이브 하는 순간 도루묵이다. 좋은 아이템은 전부 이벤트를 통해 얻는 것이지, 적을 죽여봐야 나오는 건 물약이나 허접 아이템 뿐.

때문에 세이브를 자제하며 악전고투 끝에 던전 다음 층에 이르러, 죽기 전에 빨리 펜타그램을 찾아 HP와 MP를 회복하고 부하 몬스터들을 새로 소환한 뒤 세이브를 해야 한다. 던전을 한 층 새로 돌파해 새 펜타그램을 찾아낼 때마다 워드나가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아 좀 더 강해지고, 더욱 강한 몬스터 부하들을 소환할 수 있는데, 이것이 다른 게임의 레벨 개념 처럼 작용한다. 즉 전투 자체가 아무런 득이 없으며,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

이 게임의 최대 묘미는 인간 모험가들을 썰고, 흔히 RPG에서 즐겨 이용하는 마을을 비롯하여 여관・술집・교회 등 다 쳐들어가 깽판 치고, 나아가 국가정ㅋ벅ㅋ하는 점. 특히 최고 레벨 몬스터인 그레이터 데몬이나 뱀파이어 로드들을 아홉마리씩 데리고 다니며 지상을 공포로 몰아넣는 맛은...

그러다 뒤통수 맞는 것이, 바로 지상 3층에 있는 최종 보스스카라 브레의 군주이자 Softalk Allstars 파티의 리더인 닌자 호크윈드(Hawkwind)[3]는 강력한 주문과 몬스터의 공격이 일체 통하지 않고 공격력도 위저드리의 닌자 클래스의 특성인 크리티컬 히트 때문에 아군들을 즉각 끔살을 시키는데, 이 녀석은 기존의 닌자 클래스보다 크리가 빵빵 터진다. 이 녀석을 멀리 보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소환 레벨1인 소환물인 Dink를 소환하는 방법 밖에 없다.[4] 당시 그 방법을 몰랐던 유저들은 수십번 삽질을 했었다고...[5]

엔딩은 서양 RPG에서 최초[6]이 일텐데, 총 다섯 가지의 멀티 엔딩이다. 선 엔딩 하나, 악 엔딩 셋, 그리고 진 엔딩.
진 엔딩은 환상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그 존재 조차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찬반양론이 심한 작품인데, 특히 일본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다. 당시 일본 PC판은 번역이 조악했고[7] 4편의 수수께끼들은 일본 문화와 전혀 맞지 않던 요소들 투성이여서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굳이 해보고 싶다면 뉴 에이지 오브 릴가민에 수록된 어레인지 버전을 플레이하는 것이 좋다. 지도도 버튼 하나로 불러올 수 있는 데다가 (일본 자막 기준) 특정 장소에 진입하면 워드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힌트를 준다.

3. 영향

위저드리 4의 마지막 던전은 세피로트의 나무의 구조를 하고 있는데,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의 텔레네트판[8]진 여신전생 2의 마계도 똑같이 세피로트의 나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나, 인간 주인공이 악마들을 소환해 동료로 삼는다는 컨셉이 똑같다는 점, 선/악/중립 루트의 멀티엔딩, 초기 여신전생 시리즈 작품들 중에는 소환된 동료 악마는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얻거나 레벨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게임들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위저드리 4가 여신전생 시리즈에 영향을 줬고, 이 영향이 드래곤 퀘스트 V 천공의 신부포켓몬스터 시리즈 등에 이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위저드리 4가 여신전생 시리즈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박도 있다. 위저드리 4의 정확한 출시 날짜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리 빨리 잡아도 최소 1987년 10월 이후,[9] 보통은 12월쯤에 출시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일본판은 1988년에야 출시되었다. 반면 텔레네트판 여신전생은 1987년 7월에 출시되었고, 아틀러스가 제작한 패미컴판 여신전생은 1987년 9월에 출시되었다. 즉 오히려 여신전생 쪽이 먼저 출시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무인 요코야마 히데유키가 『여신전생 10년사』에서 한 언급에 의하면 여신전생은 개발에 1년 정도 걸렸다고 하고,[10] 당시 회사의 컴퓨터에 PC98판의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직원들이 그것을 즐긴 것이 여신전생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직원이었던 스즈키 카즈나리는 리쿠르트라는 잡지의 12월호를 보고 (1986년 4월에 설립된) 아틀러스가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입사했는데 그 당시의 여신전생의 기획은 PC판 위저드리의 팬이었던 우에다 카즈토시(Mr.boo)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으며, 내용은 위저드리와 거의 똑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입사원이었던 자신에게도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기에 대화를 통해 악마를 동료로 삼는 시스템과 악마를 합체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고 한다.# 『여신전생 ~30년지~』의 우에다 카즈토시의 인터뷰에 의하면 소설의 1권과, 발매 전 원고지 카피본인 2권[11]을 받았고, 자신이 당시 푹 빠져 있던 위저드리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에 여신전생 게임의 제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개발진들의 언급들을 교차검증해봤을 때, 여신전생은 1986년 4월에서 10월 사이에 기획이 시작된 것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저드리 시리즈가 여신전생 시리즈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여신전생 1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작품은 시기상 1985년에 PC98판으로 나온 위저드리 1편이고, 최대한 넓게 잡아도 여신전생의 제작 도중에 PC98판으로 발매된 2편이나 3편 정도가 한계다. 게다가 위저드리 4와 여신전생 둘 다 몬스터를 아군으로 쓴다는 컨셉은 동일하지만, 위저드리 4는 던전 내에 설치된 마법진에서 필요한 몬스터를 소환하는 시스템이고, 여신전생은 악마(몬스터)를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 악마들을 합체시켜 전력을 강화하는 시스템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013년에 PC로 출시된 Paper Sorcerer 라고 위저드리4 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던전 RPG 가 존재한다. 차원 감옥에 갇힌 사악한 마법사가 몬스터들을 이끌고 층층이 올라가며 최종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적. 어두우면서도 스타일리시한 흑백 일러스트가 호평을 받았다.

[1] 1979년 부터 1984년까지 애플 II 전문으로 게임 리뷰, 공략 뿐 아니라 애플 II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했던 잡지. 그리고 작중에서는 Softalk Allstars라는 최강 난이도의 적군 파티가 존재한다.[2] 당장 시작 위치부터가 워드나가 잠들어 있던 밀실인데, 문을 찾는 방법(소환진에서 레벨 1 프리스트를 소환한 뒤, 그 프리스트가 전투 중 빛을 밝히는 주문을 써야 한다.)을 모른다면 밀실에서 영영 나오지 못하게 된다.[3] 시나리오 담당자가 담당자이다 보니 의도 같은데 울티마 시리즈에도 동명의 인물과 울티마 항목에도 보다시피 스카라 브래라는 도시가 있고 바즈 테일에도 스카라 브래가 있고 이름도 엇비슷한 호크슬레이어라는 인물이 있다.. 참고로 위저드리 OVA에서도 동명의 닌자 캐릭터가 있다.[4] 호크윈드에겐 Dink의 공격 이외에는 먹히지 않는다. 이 Dink라는 몬스터도 참으로 비범한데, HP가 3이지만 AC가 -90이고 마법 저항이 100%라서 거의 모든 마법이 박히질 않는다.[5] 오라클이라는 녀석이 힌트랍시고 "일리아드를 읽어보라" 는 얘기를 해 줄 뿐이고, 이 오라클도 랜덤으로 나와서 그나마도 못들어볼수도 있다. 일리아드에서 최강캐인 아킬레우스가 허접쓰레기인 파리스의 활에 쓰러진다는 데서 힌트를 얻어, 최강캐인 호크윈드를 최허접 몬스터로 잡는다는 생각을 해내야 하는 것. 그런데 웃기게도 실제 일리아드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이 없다. 또한 던전의 지도를 완성했을 경우 지도에 지형지물이 층별로 D, I, N, K의 글자를 나타내게 됨을 볼 수 있다. 힌트는 이것 뿐.[6] 다만, 게임계 최초는 아니다. 1983년에 출시된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에서 8개 엔딩, 1983년에 출시된 노부나가의 야망1편이 8개 엔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위자드리 4보다 1년 앞서 1986년에 출시된 일본의 드래곤 퀘스트 1편이 4개의 멀티 엔딩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7] 나중에 시리즈들이 패미컴, 슈퍼패미컴으로 이식되어서야 제대로 된 번역들이 나왔다.[8] 텔레네트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위저드리하고는 아무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쿼터뷰 방식의 액션RPG다. 여신전생 시리즈로 유명한 아틀러스에서 제작한 작품은 아니며, 아틀러스 소속인 우에다 카즈토시가 여신전생에 대해 조언하는 형식으로 참여했다.[9] 5월 5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매뉴얼에 "-Roe R. Adams, III, Ithaca NY, October 1987"라고 되어 있고, 게임 잡지의 리뷰도 11월에야 나왔다고 한다.[10] 아틀러스 직원은 아니지만 게임 라이터인 나리사와 다이스케에 의하면 여신전생은 개발에 4개월 정도밖에 안 걸렸다고도 한다. 이를 보고 개발진의 인터뷰들과 모순되는 내용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개발을 제외한 다른 과정에서 시간이 더 들어갔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후술할 스즈키 카즈나리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입사할 당시에 기획 중이었다고 한 것을 봤을 때, 여신전생의 기획은 1986년 11월에 발매된 『은하전승』의 개발과 동시에 진행되었기에 기획 단계에서 몇 개월은 걸린 것으로 보인다.[11] 소설 디지털 데빌 스토리 시리즈의 1편인 여신전생은 1986년 3월, 2편인 마도의 전사는 1986년 10월에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