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0:28:19

융단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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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의 융단폭격


1. 개요2. 상세3. 그 외

1. 개요

B-52, B-1, B-2의 융단폭격 모습
융단폭격(Carpet bombing) 또는 집중 폭격(Saturation bombing)은 폭장량이 큰 폭격기를 이용해 넓은 면적을 연이어서 공격하여, 마치 불의 융단을 펼쳐서 까는 것처럼 보이는 폭격이다.

2. 상세

이름만 보면 그냥 해당 영역을 불벼락 융단과 같은 폭탄의 화망으로, 단순히 그 일대를 뒤덮어 초토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조준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당 영역에 골고루 깔려야만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무작정 폭탄을 뿌리는 건 아니고 설정된 지역에 골고루 떨어지도록 면밀하게 미리 조준, 투하간격을 설정해 폭탄을 투하한다.[1]

이런 전법이 나오게 된 이유는 당시에 유도 기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에 폭탄을 정확한 위치에 맞히기 위해서는 급강하폭격 같은 방법밖에 쓸 수 없었는데, 여기서 발상을 전환해서 '정확히 날리지 못할 바에는 그냥 그 일대를 완전히 날려버리면 목표물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는 단순 무식하지만 메우 효과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광범위한 지역을 폭격하는 전략 폭격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현재는 미군이 주로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시초는 영국이다. 초기에는 다른 군대와 마찬가지로 영국군도 폭격기 편대가 낮에 이륙해서 표적을 조준하여 폭탄을 투하하였지만 폭격기들은 폭격기들대로 적 요격기에게 탈탈 털리고, 당시의 열악한 조준기 탓에 폭탄은 폭탄대로 죄다 빗나갔다. 그래서 아예 적 요격기의 위협이 덜한 밤에 폭격을 하는 한편, 한 번에 엄청난 수의 폭격기 편대를 출격시켜서 표적뿐만 아니라 그 일대, 혹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쑥밭으로 만드는 전술을 사용했다.

의외로 이 당시 미군은 융단폭격을 해도 표적지역 일대를 뒤덮는 것보다는 최대한 표적을 정조준하여 핀포인트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군의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 같은 것과 달리, B-24B-17은 덩치는 더 큰 주제에 폭탄 탑재량은 절반가량밖에 안 되었다.[2] 표적을 핀포인트 공격할 것이므로 폭탄을 대량 투하할 필요는 없고, 대신 표적을 확인하려면 표적이 보이는 낮에 폭격해야 하므로 달려드는 적 요격기에 맞서기 위해 폭탄 탑재량을 늘리는 대신 방어 기총을 늘리는 쪽을 택한 것. 물론 핀포인트 폭격이란 것이 영국군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쪽도 한 번 출격에 수백 대의 폭격기가 떼지어 날아다녔기 때문에 영국군보다 투하하는 폭탄 숫자가 적을 뿐이지 당하는 입장에선 똑같이 죽을 맛이었다.[3] 일본 본토 공습 때도 미군은 초창기에는 고고도에서 목표물을 폭격하는 정밀 폭격을 시도했으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효율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커티스 르메이가 폭격 임무를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저고도에서 소이탄을 이용한 융단폭격으로 방법을 바꾸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독일이나 일본은 애당초 이런 대형 폭격기가 없었기 때문에 융단폭격은 꿈도 못 꿨다. 물론 독일도 "우랄 계획"이라는 이름하에 4발 대형 폭격기를 개발 시도는 했다. 소련의 우랄 산맥까지 갈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발을 주도하던 공군 참모총장 발터 베버 대장이 비행기 사고로[4] 사망한 이후 후임자인 케셀링은 공중포병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폭격기의 역할을 지상군의 지원에 중점을 맞추면서 급강하 폭격기와 쌍발 폭격기 중점으로 방향이 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랄 계획이 성공했다 치더라도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상 대형 폭격기가 오래 활약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드는 부분.[5] 일본 또한 태평양 폭격기라 하여 일본 열도에서 미 본토까지 논스톱 비행(!)이 가능한[6] G10N 후가쿠라는 대형 폭격기를 만들 계획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만들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저 G10N 후가쿠의 경우 육군이 아닌 해군에서 만들려고 했던 기체라는 사실.

다만 이 융단폭격이란 전술 자체가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어쨌든 그 목표지역 부근 전체를 폭격하는 것이므로 그 임팩트에 비해 사실 효율은 매우 낮다. 이를테면 공장 하나 부수는데 실제로는 폭탄 두어 발만 명중해도 충분하지만 명중률이 그렇게 안 나오니까 수십대의 폭격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것. 당연히 수십대의 폭격기가 출격하려면 생산비, 유지비가 엄청나게 깨진다. 게다가 폭격기만 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폭격기들이 적진에 침투하기 위해서 적 전투기나 대공망도 무력화해야 하므로 융단폭격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필요한 자원과 인력은 더 크다. 물론 넓은 지역을 폭격하는 경우라면 어차피 폭탄을 많이 쏟아부어야 하므로 이런 단점은 어느정도 상쇄된다. 그리고 방어측도 대규모 공격인 만큼 상당한 항공기 손실을 각오해야하기도 하고.

또한 피아 구분이 당연히 안 되기 때문에 위험요인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융단폭격을 퍼붓는 것은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으며 이렇게 표적 일대를 폭탄으로 도배하는 융단폭격은 민간인과 건물, 문화재 등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재앙.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탈리아 전선의 몬테카시노 수도원 전투와 노르망디 전역 당시 레슬리 멕네어를 미 공군이 팀킬한 것. 몬테카시노 수도원 전투의 경우 애시당초 독일군 공수부대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수도원을 피해서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나 미국은 독일군이 수도원을 활용할 것을 우려하여 대규모 융단폭격을 가한다. 덕분에 수도원에 피난온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이미 미군 덕에 역사적 문화적 보호가치를 상실한 수도원에 독일군은 방어진지를 새로 구축하고 배가 되는 연합군을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2차 대전 당시의 융단폭격 작전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독일군 전 전선에 가해진 여러 폭격 중 굿우드 작전 당시 캉 폭격[7], 독일 남부의 주요 거점 도시였던 드레스덴 폭격[8]도쿄 대공습이 가장 유명하다. 당시 연합군의 융단 폭격은 독일군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데 전략폭격으로 자신의 친인척이 죽었다는 소식에 독일군 병사들은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기 두려워했다고 하며 서부 전선에서는 융단폭격이 독일군을 맞추지 못해도 기동로를 철저히 파괴하여 독일군 기동부대의 이동을 철저하게 방해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집중 폭격 대상이 인민군 치하에 있을 때의 서울평양이었는데 정말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서울이야 2차례 북한에 점령당한 몇 달 정도 폭격을 당했지만 평양의 경우 전선이 고착화된 이후 약 2년간 계속 견제가 있었고, 1952년 7월 11일, 이제까지 폭격을 자제해왔던 평양도심에 총 822기의 전폭기와 54기의 폭격기로 주야간으로 폭격을 감행해 초토화시켰다. 1953년 휴전 이후 집 두채만 남아있었다고. 그리고 또다른 전략 요충지였던 원산시원산 포위전하도 폭격을 맞아 아예 한국어에 원산폭격이라는 고유명사가 생겼다. 개전 초기에는 미 공군이 B-29를 동원해서 낙동강 근교, 즉 왜관 근처에 융단폭격을 가했으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920톤을 쏟아부어 전선 정면에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는데 그쳤다. 다만, 이후 북한군 내에서는 왜관 폭격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스마트 폭탄 같은 정밀 타격 무기가 발달하였으며, 이로 인해 보다 적은 노력으로 한 발을 정확히 맞히는 것이 가능해졌으므로 목표물의 위치만 정확히 알면 융단폭격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기존의 전략 폭격기들 상당수는 재래식 폭탄보다는 핵무기나 탄도 미사일[9]을 탑재하는 형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밀 타격 무기의 값이 아직까지는 엄청나게 비싼 데다가 산개한 적군 보병같이 정밀 폭격 시 손해가 나는 표적이 증가하였고,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필요성만 생긴다면 폭격기를 아직도 운용하고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라면 도심 지역에 대해서도 다시 융단폭격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10]

사실 민간인 지역만 아니라면 여전히 미군은 융단폭격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것 보다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적군이 폭격에 피해를 입지 않아도 이 융단폭격을 당하거나 목격하게 되면 사기가 뚝뚝 떨어진다고 한다. 미군과 적대했던 국가나 세력은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국가단위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이라크에서는 아예 항복을 종용하면서 사전 경고한 다음 적이 숨어있는 곳 근처의 빈땅에 융단폭격을 한 번 맛보기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적들은 알아서 백기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북한도 전쟁 위기가 조성되어 미군이 폭격기를 오키나와에 전진 배치하면 뒤로 물러설 정도.

3. 그 외

데프콘(소설) 3부 한미전쟁 편에서는 산맥을 끼고 있는 한국군의 방어선을 말 그대로 갈아엎어 버리는 미군의 흡사 베트남전롤링썬더 작전, 라인배커 작전에 버금가는 무자비한 B-52, B-1 랜서, B-2 폭격기들의 융단폭격이 인상깊게 묘사된다. 장병들은 16km 밖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충격파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지고, 그 충격파를 그대로 맞으면 인체는 뼈와 살이 그대로 분리되며, 방어 진지는 물론 50톤 짜리 전차까지 장난감처럼 날아 다니며 분해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웜즈 시리즈에서는 폭격 무기 중 하나로 이 융단 폭격이 나온다. 게임 내의 이름은 'Mike's Carpet Bomb'. 개그와 풍자로 가득한 웜즈답게 진짜 융단이 줄줄이 투하된다. 다른 폭격 계통 무기와의 차별점은 융단이 통통 튀면서 융단 하나당 5번씩 터진다는 것.


[1] 이를 포격과 연계해 포격으로 적군을 몰아넣고 폭격기가 일대를 쓸어버리는 전술도 구사할 수 있다.[2] 최대 폭장하고 실제 탑재 가능한 폭탄수는 다른 개념이다. 아브로 랭커스터는 최대 폭장이 14,000 파운드고 1,000 파운드 폭탄 14발을 탑재 가능한데 B-17G형의 최대 폭장은 17,600 파운드지만 1,000 파운드 폭탄 8발 정도만 탑재 할 수 있었다.(다만 B-17는 근거리 폭격시에도 9,000 파운드 이상 탑재하지 않았다고 한다.)[3] 일단 폭격기당 폭장량 자체도 영국이 더 많았고 숫자도 영국이 한번에 더 많이 보냈다.[4]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서 He 70를 직접 조종하던 도중 추락했다.[5] Me 264같은 4발 폭격기를 제조하는 시도는 있었으나, 이조차 시제기 1대로 끝나 버렸다.[6] 물론 편도이다. 미국을 폭격한 후 독일로 귀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7] 이때 연합군이 하도 폭격을 퍼부은 나머지 캉 일대가 초토화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캉에서는 80년을 넘어가는 문화재나 건축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몽고메리의 의도와 다르게 독일군 88mm 대공포대와 Pak 40, 폭격에 기동불능을 일으키지 않고 도착한 소수의 티거들의 반격으로 고작 8km 밖에 못가는 덕에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8] 남부의 보석으로 유명했던 도시로, 별명이 '독일의 프라하'였지만 1945년 이후에는 현시창.[9] 격납고에 미사일을 그대로 담을 수는 없으니 탄도 미사일 운용 플랫폼을 추가로 설치해야한다.[10] 실제로 러시아는 제2차 체첸 전쟁 때 그로즈니에 융단폭격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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