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4:28:14

을음

1. 백제의 개국공신
1.1. 창작물에서의 등장
2. 주나의 왕자

乙音
백제, 고구려의 동명이인으로 1명씩 있어서 분리해서 기재한다. 특이하게도 둘다 고구려의 왕족인 점(후자의 인물은 편입된 것에 가깝지만)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1. 백제의 개국공신

파일:백제 군기.svg
백제 좌·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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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조 우보 을음 | 해루
다루왕조 우보 흘우 | 진회
좌보 흘우*
고이왕조 우보 부여질 | 진충
* 우보에서 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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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초대 우보
을음 | 乙音
<colbgcolor=#00A6A9> 직위 우보(右補)
국적 고구려백제
출생 미상
사망 23년 1월
이름 을음(乙音)
재임기간
(음력)
백제 우보
기원전 17년 3월 ~ 23년 1월 (40년)

백제 온조왕 대의 대신이며 왕족으로, 백제의 개국공신 중 한 명.

을음은 전씨세보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남쪽으로 옮겨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개국할 때 공을 세운 10명의 십제공신(十濟功臣) 중 한 명이다.[1]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을음은 본래 온조왕의 족부(族父)로, 본래 고구려의 왕족이었으나 온조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할 당시에 함께 동행하여 백제 건국에 기여하였다. 족부는 증조부의 형제의 손자, 즉 재종숙부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건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이는 용례이고 한국어의 경우 그냥 씨족/부족의 우두머리라는 뜻만 사전에 올라 있다.

기원전 17년(온조왕 2년) 3월에 온조왕은 을음의 지식과 담력이 출중하다 하여 우보(右輔)의 관직을 내리고 병마의 일을 맡겼다. 우보는 당시 백제의 재상직으로,[2] 후대의 고이왕 때에 좌평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을음은 죽을 때까지 40여 년 동안 정사를 돌보았는데 그동안 백제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23년(온조왕 41년) 정월에 우보 을음이 죽었는데, 이에 온조왕은 북부 사람인 해루로 하여금 뒤를 이어 우보직을 맡도록 하였다.

1.1. 창작물에서의 등장

어린이 만화인 '만화로 보는 백제왕조 700년'에서는 온조왕 시기에 활약한 명신으로 묘사된다. 내용의 묘사를 보면 내정보다는 정복 전쟁에 힘쓴 재상으로 묘사되며,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원성까지도 감수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로 나오는데, 보통 민심을 잘 따르면 명군이자 명신, 반대의 경우는 암군이나 간신으로 묘사되는 아동용 역사책의 클리셰를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인 묘사이다.[3] 아예 만화 내에서도 컨솁을 독일 제국의 비스마르크과 동일하게 맞췄는지 온조왕 4년 가뭄과 역병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자 국고를 풀어 도와야하지 않겠느냐는 온조왕의 말에 을음은 그러면 말갈이 식량이 다 떨어진 것을 알고 침공할 거라며 때문에 국고를 풀어선 안되며 백성들이 반발할 테니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장면에서 온조왕이 '그야말로 철의 재상이로구만...' 이라고 말하는데 철의 재상은 바로 비스마르크를 일컫는 말이며 마한 정복 부분에서는 을음이 온조왕 보고 마한을 차지하라고 부추겨 웅천에 목책을 쌓게 하는데 곧 온조왕이 마한왕이 보낸 사신 때문에 목책을 헐었다가 헌 것을 후회하자 을음이 '아무래도 폐하의 변덕이 심하시니 마한 정복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끔 해야겠다.' 라며 온조왕에게 갑자기 왕궁의 우물이 넘치고 민간에서는 말이 몸 둘 달린 소를 낳았다며 이게 어떤 징조인지 일관을 통해 묻게금 했는데 일관은 을음이 시키는 대로 "우물의 물이 넘친 것은 대왕께서 번영할 징조이며 머리 하나에 몸 둘인 짐승은 대왕께서 이웃나라를 합병한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마치 엠스 전보 사건을 연상케하는 장면이다. 즉 이 만화에서의 을음 캐릭터의 컨솁 자체를 비스마르크에 기초를 두었다고 봐야 한다. 이후 마한을 정벌한 뒤 을음은 나이가 들어 정계에서 은퇴하려 하나 지금까지 나라의 기반을 다진 공이 큰 을음을 쉽사리 은퇴시킬 수 없었던 온조왕은 정무는 그대로 맡되 군사의 업무는 태자 다루에게 맡기겠다며 고사한다. 그 후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으로 을음의 기록은 끝이 난다.

2. 주나의 왕자

생몰년도 미상

고구려 태조대왕 시기인 서기 74년 환내부 패자 설유가 주나(朱那)를 정벌하게 하면서 당시 주내국의 왕자였던 을음을 사로잡아 고구려로 끌려가게 된다. 태조왕은 고추가 직위를 수여했다는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왕족으로 편입된 듯하다.

[1] 십제공신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 가운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간, 마려이고, 이외에 을음, 해루, 흘우, 진회 등 온조왕~다루왕 시기 활약한 사람들이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전씨세보에서만 이름이 언급된다.[2] 고구려는 3대 대무신왕~7대 차대왕 때까지 나오는 직위다. 삼국사기 기록을 그대로 믿으면, 백제 왕실이 고구려에서 내려왔는데 재상직인 좌보, 우보는 고구려보다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3] 실제 해당 작품에서 이 클리셰를 깬 예가 을음 말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