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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강도범이자 탈주범이며 한때 제2의 신창원이라고 불렸다.2. 생애
3. 범죄 행각
3.1. 절도와 체포
이대우는 2013년 2월 22일에 동료 김모씨와 함께 남원시의 한 농가에서 금품 2천여 만원을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경찰에게 조사받았다. 그는 상습강도혐의로 구형받을 것으로 보였다.[1]3.2. 탈주와 재검거
5월 20일 이대우는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호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나와 검찰수사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노려 수갑을 찬 채로 도주했다. 이대우는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테니스장 코트를 뛰어넘어 골목길로 도주한 후 수갑을 풀어헤치고 인근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도주해 정읍으로 향했다. 장명동에서 내린 이대우[2]는 또 다른 택시에 탑승해 광주로 잠입해월산동의 마트에서 현금을 훔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탄 후 사라졌다.
경찰은 이대우의 행방을 찾지 못한 채 광주를 중심으로 수색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광주가 아닌 서울이었다. 검문을 뚫고 서울에 잠입한 것이다.
이후 교도소 동기인 A씨를 만나 돈을 빌리려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6월 1일에 만나기로 했으나 정작 이대우는 A씨를 의심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6월 13일에 부산의 수영구 민락동에서 발견되었다. 이대우는 한 폐가에서 잠이 든 채로 발견되었는데 김모 씨(51)가 그를 깨우자 폐가에서 나갔다. 그러나 수상하게 여긴 김씨는 부산남부경찰서에 신고했고 이후 경찰은 폐가를 1차 수색하여 이대우의 지문을 채취했다.
검거는 의외로 쉬웠는데 이대우는 부산의 해운대 부산제2저축은행 앞길에서 발견되었고 경찰은 검문과 검색으로 그의 신병을 확보해 이대우를[3] 탈주 26일 만에 재검거했다.
3.3. 판결
이대우는 1심에서 징역 15년이 구형되었으나# 2013년 9월 26일에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이대우는 항소했으나 기각되어 1심의 형량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1심에서 이대우와 함께 절도한 공범 김씨(46)에게는 징역 6년, 이대우의 도피를 도운 교도소 동기 박씨(59)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구형되었으나 김씨에게는 징역 3년 6개월, 박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4. 기타
-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다. 1차 검거 당시 덩치가 큰 강력반 형사 3명이 위에서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들고 반항하기도 했다. 또 수감 시절 조폭 3명과 싸워서 이겼다고 했으니 힘만 센 게 아닌 싸움도 잘 하는 듯하다. 원래 교도소에선 조폭들이 정치, 경제사범들, 사형수들, 무기수들을 제외한 잡범들을 상대로 핍박하는 사례가 일반적인 것을 생각하면 이대우는 조폭만 아닐 뿐 현실의 괴물인 셈이다.
-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신창원, 유영철, 이학만, 김길태처럼 주요 현상금이 걸렸다. 현상금은 1000만원.
- 검경의 무능을 보여준 사건이다.
- 이대우가 검찰청에서 탈주한 뒤 남원지청 전체가 뒤집혔다. 담당 수사관들을 포함한 전직원들이 이대우를 신병을 찾기 위해 동원됐다. 그 과정에서 남원지원 등기소 테니스장 뒤로 도망가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 탈주 직후 전북 각지에서 의경중대들이 남원으로 내려왔고 헬리콥터가 실시간으로 뜰 정도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대우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검찰청과 법원 공익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 상술했듯이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다 보니 수배 당시에도 시민들한테 이대우를 목격하더라도 절대 직접 잡으려고 덤벼들지 말고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시민들한테 특정 수배자를 발견시 절대 직접 잡으려고 덤비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드문데[4] 그만큼 이대우는 일반 시민들이 잡기에는 위험 인물이었던 셈이다.
[1] 체포되기 전에도 상습적인 강도 행위를 저질러 왔다고 한다.[2] 돈을 안 내고 내렸다고 한다.[3] 검거 당시 과도를 소지 중이었지만 그 칼을 쓰는 일은 없었다.[4] 굳이 찾아보자면 대표적인 사례로 유병언과 유병언의 가족들 및 측근들 정도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그들이 하나같이 이대우 같은 인간 흉기라서가 아니라 직접 잡으려고 덤비면 유병언 일가 특성상 가까이 있는 신도들의 공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