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01:39:48

이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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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봉기와 황제 즉위3. 동로마 제국의 개입4. 전성기5. 최후6. 사후7. 대중 매체

1. 개요

Ivaylo/Ивайло(? ~ 1281)

중세 불가리아의 영웅.

본래 도브루자 출신의 돼지치기였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투수부타이가 이끌던 몽골군이 동유럽을 침공한 것이다. 몽골은 러시아의 맹주 키예프 공국을 갈아버리고, 폴란드 레그니차에서 경건공 헨리크 보즈와니가 이끄는 기사단을 박살내고 동유럽의 강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불바다로 만드는 등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바일로의 나라인 불가리아도 몽골의 침입을 받게 된다.

불가리아는 끝까지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몽골군이 주둔하고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협정을 맺었다. 그 때 이바일로는 신으로부터 몽골군을 조국인 불가리아 밖으로 쫓아내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의용군을 조직,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이던 몽골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면서 불가리아 국경 밖인 도나우 강 너머로 밀어냈다. 이 업적으로 조국인 불가리아에서는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되고, 동유럽에서도 경건공 헨리크 2세와 더불어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2. 봉기와 황제 즉위

이바일로가 살던 북동부 불가리아 지방은 킵차크 칸국의 무거운 조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이바일로는 몽골의 침입을 격퇴하고, 그들에게 굴복한 귀족들을 숙청하고자 마음먹고, 1277년 불만을 품던 사람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했다.

의용군은 북동부 불가리아를 약탈하던 몽골군을 공격, 그 해 가을에 완전히 축출했다. 불가리아 정규군이 몇십 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달성한 이바일로는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사실상 황제로 대접받았으나, 당시 불가리아의 황제였던 콘스탄틴 아센 1세는 이바일로의 의용군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1277년 말에 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콘스탄틴은 1272년 낙마 사고를 겪은 후 하반신 마비 증세를 앓고 있었고, 이 때문에 토벌군도 느리게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충분히 시간을 확보한 이바일로는 차르의 군대를 매복공격했고, 차르와 그 측근을 처형하고 나머지 병력을 자신의 휘하에 편입시켰다.

이 승리 이후 이바일로는 불가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정복하여 황제로 인정받았다. 남은 것은 콘스탄틴의 황후 마리아가 대신 통치하고 있는 수도 터르노보 뿐이었다.

3. 동로마 제국의 개입

불가리아 차르의 전사(戰死)는 동로마 제국 황제 미하일 8세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처음에 불가리아의 위기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하려 했지만 이바일로의 군대가 계급 투쟁적인 면모가 명확하자 그런 풍조가 동로마 제국에까지 확산될 것을 우려하여 불가리아 귀족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콘스탄티노플에 머무르던 불가리아의 전 황제 미초 아센의 아들인 이반을 불가리아의 차기 황위 계승자로 내세웠다. 이반은 미하일의 딸 이리니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하고, 이반 아센 3세라는 이름으로 불가리아의 차르를 자칭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은 군대를 북방으로 파병하고, 황후 마리아에게 왕좌를 포기할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데다 삼촌인 미하일 8세에 대한 반감이 컸던 마리아는 이런 처사에 분노하여 이바일로에게 공식적으로 불가리아 황제 자리에 오를 것을 제의했다. 이바일로는 이러한 제안이 내키지 않았지만, 장기간의 내전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마리아의 아들 미하일 아센 2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는 조건으로 공동 통치를 승낙했다.

4. 전성기

1278년 여름 이바일로는 수도 터르노보에 입성한 후 정식 차르로 즉위했다. 그 사이 미하일 글라바스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군이 침공해 왔지만, 불가리아군은 그들을 두 차례에 걸쳐 격파했다. 이에 미하일은 몽골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이 무렵 이바일로는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황후 마리아와 자주 싸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공해온 몽골군을 도나우 강 이북으로 축출했다. 그 사이 동로마 제국군은 시프카 가도와 흑해 방면에서 불가리아를 협공했지만 다시 격퇴당했다.

이후 이바일로는 남부 지역을 안정시킨 후 다시 북쪽의 몽골군과 맞서 싸웠다. 이전과 달리 몽골군은 정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바일로는 전투에서 패하여 드러스터르 요새에서 3개월 동안 포위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킨 터르노보의 귀족들은 이반 아센 3세를 옹립하고 황후 마리아를 폐위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추방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이바일로가 몽골군의 포위를 격파하고 터르노보를 포위했다. 미하일 8세는 조카 사위를 보호하기 위해 1279년 여름에 1만 명의 군대를 보냈지만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격퇴당했고, 다시 5천의 군사를 보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5. 최후

이 사이 이반 아센 3세는 터르노보에서 피신하는 데 성공했고, 불가리아의 귀족들은 당시 가장 영향력 있던 귀족들 중 한 명인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를 차르로 추대했다. 한편 이바일로의 군대는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계속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사기가 꺾였고, 이바일로를 지지하던 농민과 민중들도 그칠 줄 모르고 전쟁을 벌이는데다 황위 쟁탈에 연연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되었다.

국내의 지지 세력이 약화된 이바일로는 일부 충성스런 신하들과 함께 과거의 적인 몽골의 노가이 칸에게 망명하여 도움을 요청했는데, 노가이 칸은 처음에는 이바일로를 환대했지만 미하일 8세의 사주로 결국 그를 암살하고 말았다.

6. 사후

사후에 불가리아 민중들의 기억 속에 정의, 자유, 평등의 투사로 남았고, 이로 인해 당대 및 후대에 이바일로를 참칭한 자들이 주도하는 봉기가 연달아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사후 20년 간 2차 불가리아 제국은 몽골의 내정 간섭을 끊임없이 받고 봉건 귀족들이 발호하여 중앙 집권 체제가 붕괴하면서 쇠퇴의 정점을 찍었다. 또한 트라키아 대부분을 동로마 제국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이후 불가리아는 1300년부터 1321년까지 재위한 토도르 스베토슬라프 시대에 재흥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반 알렉산더르 치세(1331~1371)에 문화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의 사후에 제국이 삼분되면서 1396년에 오스만 술탄국에게 멸망, 5백년간 지배를 받게 된다.

7. 대중 매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에 추가된 3개의 라스트 칸 캠페인 중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플레이 문명은 불가리아인.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도 년도를 1279년으로 맞추면 불가리아의 왕으로 등장한다. 출신을 반영하여 피전트 리더 트레잇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