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작가 이상의 작품들을 정리한 문서.이상은 생전에 작품집을 내지 않았으며, 동료이자 친구인 김기림에 의해 1949년 출간된 「이상선집」이 최초로 만들어진 이상의 작품집이었다. 전집 개념의 작품집은 임종국에 의해 「이상전집」(1956, 전3권)이 출간되었다.
이후 이어령이 기존 전집을 보완하여 「이상소설전작집」(1977, 전2권), 「이상수필전작집」(1977), 「이상시전작집」(1978)을 출간했고 이후 발견된 유고작들을 수합해 이승훈(시인)이 시 부문을, 김윤식이 소설과 수필 부문을 정리해 「이상문학전집」(1권 1989, 2권 1991, 3권 1993)을 출간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김주현에 의해 「정본 이상문학전집(전3권, 2005)이, 권영민에 의해 「이상 전집」(전4권, 2009)이 출간되었다.
이상의 작품들 중에는 시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가 불명확한 작품들 몇몇이 존재한다. 어떤 전집에서는 재인쇄할 때마다 장르의 분별이 바뀔 정도로 모두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장르가 다르게 구분되는 작품에 한해 각 전집에서의 장르의 구분을 주석에서 밝혔다. 특히 이 점에서 혼란이 심한 1960년 이후 발굴된 작품들은 장르 구분 없이 마지막에 위치시켰다. 본 목록의 주석에서 사용하는 축약어는 다음과 같다.
전집(1): 「이상 전집」(임종국 편, 1956)
전집(2): 「이상 소설/수필/시 전작집」(이어령 편, 1977~1978)
전집(3): 「이상 문학전집」(이승훈ㆍ김윤식 편, 1989~1993)
전집(4): 「정본 이상 문학전집」(김주현 편, 2005, 증보판 2009)
전집(5): 「이상 전집」(권영민 편, 2009, 재발간 2013)
주석의 대부분은 전집(4)에서 참조했으며,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날개 - 이상 단편선」또한 참고했다.
전반적인 작품은 위키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목록
1987년을 기준으로, 이상이 사망한 지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상의 생전 작품들은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다.[1] 작품마다 위키문헌으로의 링크를 붙여 놓았으니 인터넷으로 원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들어가서 볼 수 있다.2.1. 시
이상의 시 목록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사항은 그가 여러 작품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를 주로 썼다는 것이다.[2] 본 문단에서는 연작시에 포함된 작품들의 제목을 기울임체로 표기했으며, 하나의 연작시를 하나의 개별적인 작품으로 분류하므로 시의 개수는 총 38편 86작품이다.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이상의 작품들이 대부분 일본어 가타카나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3] 그러다 보니 여러 연구자들[4]에 의해 번역이 이루어졌다.
임의의반경의원 (과거분사의시세)
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
이종류의존재의시간적영향성
(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현미경
그밑에있어서는인공도자연과다름없이현상되었다.
「이상한 가역반응」 중에서. 유정 번역
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
이종류의존재의시간적영향성
(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현미경
그밑에있어서는인공도자연과다름없이현상되었다.
「이상한 가역반응」 중에서. 유정 번역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의내부의 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 의 사각 이 난 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 (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 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루세이유의봄을 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 중에서. 유정 번역
즉, 제법 유명한 위 작품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이상이 쓴 글이 아니다. 이상이 일문으로 쓴 것을 연구자들이 이상의 문체와 최대한 닮을 수 있도록 번역한 셈이다.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 의 사각 이 난 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 (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 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루세이유의봄을 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 중에서. 유정 번역
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31 | 이상한 가역반응 (원문: 異常ナ可逆反應)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파편의 경치 (원문: 破片ノ景色)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의 유희 (원문: ▽ノ遊戯)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수염 (원문: ひげ (李箱))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BOITEUXㆍBOITEUSE (원문)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공복(空腹)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 |
1931 | 조감도[5] | 조선과건축 8월호 | 일어시, 연작시 |
1931 | 이인....1.... | - | - |
1931 | 이인....2.... | - | - |
1931 |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 - | - |
1931 | LE URINE | - | - |
1931 | 얼굴 | - | - |
1931 | 운동 | - | - |
1931 | 광녀의 고백 | - | - |
1931 | 흥행물천사 | - | - |
1931 | 삼차각설계도 (일문 원본) | 조선과건축 10월호 | 일어시,연작시 |
1931 | 선에 관한 각서 1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2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3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4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5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6 | - | - |
1931 | 선에 관한 각서 7 | - | - |
1932 | 건축무한육면각체 (원문: 建築無限六面角体)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어시,연작시 |
1932 | AU MAGASIN DE NOUVEAUTES | - | [6] |
1932 | 열하약도 No.2 (미정교) | - | - |
1932 | 진단 0:1 | - | - |
1932 | 이십이년 | - | - |
1932 | 출판법 | - | - |
1932 | 차8씨의 출발 | - | - |
1932 | 대낮 | - | - |
1933 | 꽃나무 | 가톨릭청년 7월호 | [7] |
1933 | 이런시 | 가톨릭청년 7월호 | |
1933 | 1933, 6, 1[8] | 가톨릭청년 7월호 | |
1933 | 거울 | 가톨릭청년 10월호 | |
1934 | 보통기념 | 월간매신 7월호 | |
1934 | 오감도(烏瞰圖) | 조선중앙일보 | 연작시 |
1934 | 시제일호 | 조선중앙일보 7.24 | - |
1934 | 시제이호 | 조선중앙일보 7.25 | - |
1934 | 시제삼호 | 조선중앙일보 7.25 | - |
1934 | 시제사호 | 조선중앙일보 7.28 | - |
1934 | 시제오호 | 조선중앙일보 7.28 | - |
1934 | 시제육호 | 조선중앙일보 7.31 | - |
1934 | 시제칠호 | 조선중앙일보 8.2 | - |
1934 | 시제팔호 해부 | 조선중앙일보 8.3 | - |
1934 | 시제구호 총구 | 조선중앙일보 8.3 | - |
1934 | 시제십호 나비 | 조선중앙일보 8.3 | - |
1934 | 시제십일호 | 조선중앙일보 8.4 | - |
1934 | 시제십이호 | 조선중앙일보 8.4 | - |
1934 | 시제십삼호 | 조선중앙일보 8.7 | - |
1934 | 시제십사호 | 조선중앙일보 8.7 | - |
1934 | 시제십오호 | 조선중앙일보 8.8 | - |
1934 | ㆍ소(素)ㆍ영(榮)ㆍ위(爲)ㆍ제(題)ㆍ | 중앙 9월호 | |
1935 | 정식 | 가톨릭청년 4월호 | |
1935 | 지비(紙碑) | 조선중앙일보 9.15 | |
1936 | 지비-어디갔는지모르는안해 | 중앙 1월호 | |
1936 | 역단(易斷) | 가톨릭청년 2월호 | |
1936 | 화로 | - | |
1936 | 아츰 | - | |
1936 | 가정 | - | |
1936 | 역단 | - | |
1936 | 행로 | - | |
1936 | 가외가전(街外街傳) | 시와소설 3월호 | |
1936 | 명경(明鏡) | 여성 5월호 | |
1936 | 위독 | 조선일보 | 연작시 |
1936 | 금제 | 조선일보 10.4 | |
1936 | 추구 | 조선일보 10.4 | |
1936 | 침몰 | 조선일보 10.4 | |
1936 | 절벽 | 조선일보 10.6 | |
1936 | 백화 | 조선일보 10.6 | |
1936 | 문벌 | 조선일보 10.6 | |
1936 | 위치 | 조선일보 10.8 | |
1936 | 매춘 | 조선일보 10.8 | |
1936 | 생애 | 조선일보 10.8 | |
1936 | 내부 | 조선일보 10.9 | |
1936 | 육친 | 조선일보 10.9 | |
1936 | 자상 | 조선일보 10.9 | |
1936 | I WED A TOY BRIDE | 삼사문학 10월호 |
2.1.1. 사후 발표작
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37 | 파첩(破帖) | 자오선 10월호 | |
1938 | 무제 | 맥 10월호 | [9] |
1938 | 무제(기이) | 맥 10월호 | [10] |
1940 | 청령 | 젖빛 구름(시집) | 일어시[A] |
1940 | 한 개의 밤 | 젖빛 구름(시집) | 일어시[A] |
1956 | 척각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거리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수인이 만들은 소정원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육친의 장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내과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골편에 관한 무제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가구의 추위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아침 | 이상전집 | 일어시[B] |
1956 | 최후 | 이상전집 | 일어시[B] |
2.2. 소설
작품 중 「공포의 기록」을 소설 목록에 넣는 경우도 존재한다. 본 문서에서는 수필 목록에 기재해놓았다.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30 | 12월 12일 | 조선 2~12월호 | 장편소설, 등단작 |
1932 | 지도의 암실 | 조선 3월호 | [22] |
1932 | 휴업과 사정 | 조선 4월호 | [23] |
1934 | 지팽이 역사(轢死) | 월간매신 8월호 | |
1936 | 지주회시(蜘蛛會豕) | 중앙 6월호 | |
1936 | 날개 | 조광 9월호 | |
1936 | 봉별기 | 여성 12월호 | |
1937 | 동해(童骸) | 조광 2월호 | |
1937 | 황소와 독개비(동화) | 매일신보 3.5~3.9 | 동화, 저자 불분명[24] |
1937 | 종생기 | 조광 5월호 | |
1938 | 환시기 | 청색지 6월호 | |
1939 | 실화 | 문장 3월호 | |
1939 | 단발 | 조선문학 4월호 | |
1939 | 김유정 | 청색지 5월호 |
2.3. 수필
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34 | 혈서삼태(血書三態) | 신여성 6월호 | |
1934 | 산책의 가을 | 신동아 10월호 | |
1935 | 현대미술의 요람 | 매일신보 3.14~3.23 | 저자 불분명[25] |
1935 | 산촌여정(山村餘情) | 매일신보 9.27~10.11 | |
1935 | 배의 역사 | 신아동 10월호 | 일문 |
1936 |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 조선중앙일보 1.6 | |
1936 | 나의 애송시 | 중앙 1월호 | |
1936 | 논단시감 | 조선일보 1.24~1.28 | 저자 불분명[26] |
1936 | 서망율도(西望栗島) | 조광 3월호 | |
1936 | 조춘점묘(早春點描) | 매일신보 3.3~3.26 | |
1936 | 편집후기 | 시와소설 3월호 | |
1936 | 여상 사제(女像四題) | 여성 4월호 | |
1936 |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 조광 5월호 | |
1936 | 약수 | 중앙 7월호 | |
1936 | EPIGRAM | 여성 8월호 | |
1936 | 아름다운 조선말 | 중앙 9월호 | |
1936 | 행복 | 여성 10월호 | |
1936 | 가을의 탐승처(探勝處) | 조광 10월호 | |
1936 | 추등잡필(秋燈雜筆) | 매일신보 10.14~10.28 | |
1937 | 19세기식 | 삼사문학 4월호 | |
1937 | 공포의 기록 | 매일신보 4.25~5.15 | [27] |
1937 | 권태 | 조선일보 5.4~5.11 | |
1937 | 슬픈 이야기 | 조광 6월호 | |
1937 | 오감도 작자의 말 | 조광 6월호 | 미발표[28] |
1938 | 문학과 정치 | 사해공론 7월호 | |
1939 | 실락원 | 조광 2월호 | [29] |
1939 | 병상 이후 | 청색지 5월호 | |
1939 | 동경(東京) | 문장 5월호 | |
1939 | 최저낙원 | 조선문학 5월호 | [30] |
2.4. 1960년 이후 발굴 작품
1956년 「이상전집」 출간 이후 발굴된 이상의 작품은 모두 26편이며, 그 중 1편을 제외한 25편은 모두 평론가 조연현이 입수한 이상의 유고에서 발표된 것들이다. 이 글들은 1960년, 1976년, 1986년 세 차례의 발굴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1960년 첫 원고를 발표하면서 이 작품들을 발견한 경위에 대해 조연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얼마전 현재 한양공대 야간부에 재학중인 이연복군이 낡은 노트 한권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이군은 초면이었으나 그가 문학청년이며 특히 이상을 좋아하고 있음을 곧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보이는 노트는 이상의 일본어시작 습작장임이 곧 짐작되었다. 그 노트를 이군이 발견하게 된 것은 그의 친구인 가구점을 하는 김종선군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그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김종선군의 백씨(맏형)가 친지인 어느 고서점에서 휴지로 얻어온 그 노트는 그 집에서 그야말로 휴지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서 100면 내외의 노트가 이미 10분의 9쯤 파손되고 10분의 1쯤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군은 일본어가 서툴렀으나 그곳에 쓰인 문자에 신기함을 느끼고 그 노트를 얻어와서 이상전집과 여러 가지로 대조해본 결과 그것이 이상의 미발표 유고로 짐작되어 나에게 가져온 것이었다.
조연현은 이 유고들을 이상 작품으로 간주하는 이유로 필체가 이상의 전집 속에 발표되어 있는 것과 동일한 점, 작품의 특성이 이상의 그것과 같다는 점, 이상이 즐겨 사용하는 '13', '방정식', '삼차각' 등의 용어로서 작품이 구성되어 있는 점, 이상이 일본어로서 시를 많이 습작한 사실, 초고 중의 연대가 1932년 또는 1935년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이미 발표된 이상의 미발표 일본어 유고와 시기가 일치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이와 같은 원고는 타인이 조작하여 창작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이 원고에서 이것은 시이다, 소설이다, 수필이다라는 기록이나 명확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들에 대한 장르 구분은 전집마다 뒤죽박죽이 됐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전집(5)에서는 이 작품들을 4권(수필집)의 끝부분에 별도로 집어넣었다.
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60 | 무제 | 현대문학 11월호 | 일어시[31] |
1960 | 1931년 (작품 제1번) | 현대문학 11월호 | 일어시[32] |
1960 | 얼마 안되는 변해 | 현대문학 11월호 | 일문수필 |
1960 | 무제 | 현대문학 11월호 | 일문[33] |
1960 | 무제 | 현대문학 11월호 | 일문수필 |
1960 |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현대문학 12월호 | 일문수필 |
1960 | 모색 | 현대문학 12월호 | 일문수필 |
1960 | 무제 | 현대문학 12월호 | 일문수필[34] |
1961 | 구두 | 신동아 1월호 | 일문[35] |
1961 | 어리석은 석반 | 현대문학 1월호 | 일문수필 |
1961 | 습작 쇼오윈도우 수점 | 현대문학 2월호 | 일어시 |
1966 | 무제 | 현대문학 7월호 | 일문[36] |
1966 | 애야 | 현대문학 7월호 | 일문[37] |
1976 | 회한의 장 | 문학사상 6월호 | 일어시[38] |
1976 | 단장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39] |
1976 | 첫번째 방랑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수필 |
1976 | 불행한 계승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소설[40] |
1976 | 객혈의 아침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41] |
1976 | 황의 기 (작품 제2번)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 |
1976 | 작품 제3번 | 문학사상 7월호 | 일문 |
1976 | 요다 준이치(與田準一)[42] | 문학사상 7월호 | 일어시 |
1976 | 츠키하라 도이치로(月原橙一郞) | 문학사상 7월호 | 일어시 |
1986 | 공포의 기록(서장) | 문학사상 10월호 | 일문[43] |
1986 | 공포의 성채 | 문학사상 10월호 | 일문수필 |
1986 | 야색 | 문학사상 10월호 | 일문수필 |
1986 | 단상 | 문학사상 10월호 | 일문[44] |
2000 | 낙랑 파라의 새로움 | 한국문학연구 | 일문수필[45] |
2.5. 편지/기타
연도 | 제목 | 발표지면 | 비고 |
1936 | 동생 옥희 보아라 | 중앙 9월호 | [46] |
- | 사신(2) | - | [47] |
- | 사신(3) | - | |
- | 사신(4) | - | |
- | 사신(5) | - | |
- | 사신(6) | - | |
- | 사신(7) | - | |
- | 사신(8) | - | |
- | 사신(9) | - | [48] |
- | 사신(10) | - | [49] |
1932 | 권두언 1 | 조선과건축 6월호 | 일문[50] |
1932 | 권두언 2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문 |
1932 | 권두언 3 | 조선과건축 8월호 | 일문 |
1932 | 권두언 4 | 조선과건축 9월호 | 일문 |
1932 | 권두언 5 | 조선과건축 10월호 | 일문 |
1932 | 권두언 6 | 조선과건축 11월호 | 일문 |
1932 | 권두언 7 | 조선과건축 12월호 | 일문[51] |
1933 | 권두언 8 | 조선과건축 5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9 | 조선과건축 6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10 | 조선과건축 7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11 | 조선과건축 8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12 | 조선과건축 10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13 | 조선과건축 11월호 | 일문 |
1933 | 권두언 14 | 조선과건축 12월호 | 일문 |
1936~1939 | 아포리즘 | 시와소설 3월호 문장 7월호 경성고공 사진첩 | |
1978 | 낙서(3편) | 이상시전작집의 화보 | 일문[52] |
1976 | 낙서 | 독서생활 11월호 | 일문[53] |
[1] 다만 몇몇 번역본의 경우 번역자에 대한 저작권이 남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위 문단에 링크된 위키문헌의 문서 일부가 삭제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2] 대표적으로 오감도가 있다.[3] 이상 본인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일제강점기에 사망했고, 평소에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어(주로 공문서)가 그렇듯 가타카나가 지금의 히라가나의 역할까지 한 경우도 많았다.[4] 대표적인 예시로 일어시인 이상 전집 3권을 번역해 집필한 임종국이 있다.[5] 이전에는 이상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오감도(烏瞰圖)와 같은 제목이라고 알려졌지만 연구를 통해 조감도(鳥瞰圖)가 맞다고 확인됐다. 제목만으로는 사실상 오감도의 전신. 알 카포네가 언급된다.[6]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번째 시이며, 건축무한육면각체 항목에도 서술된 것처럼 보통 AU MAGASIN DE NOUVEAUTES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7] 이상이 처음으로 발표한 한글 시.[8] 원제는 「一九三三, 六, 一」이다.[9] 생전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작품이다.[10] 위와 마찬가지로 생전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작품이다. 전집(1)에서는 '이유 이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A] 김소운은 시를 발표한 시집 젖빛 구름에서 "여기에 덧붙인 두 편은 원래 시로 씌어진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사신 대신으로 나에게 보낸 산문이지만 네 개 있는 중에서 두 개를 취하고 여기 저기 어휘를 조합하여 시의 형태로 고쳤다. 각각이 전량의 7, 8분의 1 정도, 새로운 단어는 물론 더하지 않았다. 번역하지 않고 트리밍(trimming: 다듬기)을 한 점에서 이 하나가 예외로 되는 셈이다"라고 밝혔다.[A] [B] 이상 9편에 대해 이상 전집의 저자 임종국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원작이 일문으로 된 다음 9편의 미발표유고는, 왕년 상이 작고했을 무렵 상의 미망인이 동경서 가지고 나온 고인의 사진첩속에 밀봉된 채 있었던 것이다. 그 후 20년간을 유족—자당과 영매—께서도 사진첩으로만 알고 보관하던 중, 이번 출판을 계기로 비로소 발견이 된 것이다. 제작연도는 불상한, 그러나 지질이 동일한 점 등 기타 제반사정이 동경시절에 제작 혹은 개작한 것으로 지목케 하는 이 유고는, 상의 작품-특히 말기-거개가 멸실된 오늘 극히 귀중한 위치를 점하리라 믿는다."[B] [B] [B] [B] [B] [B] [B] [B] [22] 필명 '비구'로 발표했다.[23] '보산'이라는 필명의 작가가 발표했는데, 1977년 5월 「문학사상」에서 소개되었다. 당시 휴업과 사정을 이상의 작품으로 규정한 이유로는 산문임에도 불구하고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은 점, 작중인물의 이름을 전기투로 쓰면서 필명 보산을 그대로 사용한 점(다른 소설에서 '이상'이나 '나'를 쓴 것처럼), 소설의 구성이 일정한 줄거리 없이 에세이식으로 되어 있고 심리적인 내적 독백으로 되어 있는 점, 즐겨 쓰여지는 관용구나 어투가 「지도의 암실」의 문체와 같은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 점, 강박관념을 나타내는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점, 소설 속에 한문 문구를 집어넣고 있는 점을 들었다.[24] 이상이 쓴 유일한 동화. 본명인 김해경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토속적이라 김해경이라는 동명이인의 작품이 이상의 작품으로 둔갑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완벽한 창작이 아닌 일본 작품의 패러디라는 주장도 있다. 김영순은 「창비어린이」(2003.12)에서 이 작품이 일본 작가 토요시마 요시오의 작품 「천하 제일의 말」(1924년 책 「붉은 새」에 수록)을 번안한 것이며 작자도 이상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김해경이 잡지 「목마」에 많은 외국 동화를 번역해서 실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붉은 새」에 실린 표지 그림과 삽화를 본떠서 「목마」의 그림을 그렸다는 점 등으로 보아 이상이 토요시마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이 분명하다. 전집(5)에서는 미수록되었다.[25] 문학사상자료조사연구실의 발굴로 「문학사상」(1977.6)에 재수록되었다. 전집(2), 전집(3)은 별다른 설명 없이 이 글을 포함시켰지만, 전집(4)에서는 이 글의 저자가 '金海慶'으로 되어있으므로 이것이 단순히 '金海卿'의 오식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원전확정이 요구된다고 밝혔다.[26] 본래는 4회에 걸쳐 연결된 글이나 「문학사상」(1978.8)에 발굴하면서 2회까지만 실렸다. 전집(3)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 2회까지만 이 글을 포함시켰다. 전집(4)에서는 이 글의 저자가 '宋海卿'으로 되어있으므로, 이것이 단순히 '金海卿'의 오식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저자의 확인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전집(4)에서는 3, 4회도 실어두었다.[27] 전집(1), 전집(2), 전집(5)에서는 수필집에, 전집(3), 전집(4)에서는 소설집에 포함시켰다.[28] 전집(1)에는 '오감도 30편이 15편 연재로 중단케 됨으로써 쓴 것. 당시 발표가 되지 않았음'이라는 편집자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원문은 박태원의 추도사 「이상의 편모」에 실렸다.[29] 전집(1), 전집(2), 전집(3), 전집(5)는 수필집에, 전집(4)는 시집에 포함시켰다. 김주현은 이 작품이 이상의 다른 시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고, 이상 계열시의 전형적인 특징을 담고 있으며, 그 중 '자화상' 부분은 평화신문(1956.3.20)에 시로 소개된 적도 있으므로, 이상의 연작시 중 하나로 본다고 밝혔다.[30] 전집(1), 전집(2), 전집(3), 전집(5)는 수필집에, 전집(4)는 시집에 포함시켰다.[31] 전집(4)에서는 '유고'라는 제목으로 수록[32] 작품 제1번~제3번 연작은 전집(2), 전집(4)에서는 모두 시집에 포함시켰으나 전집(3)에서는 제1번만 시집에 포함시켰다.[33] 전집(2), 전집(3)에서는 수필집에, 전집(4)에서는 시집에 포함시켰다.[34] 전집(4)에서는 '무제2'로 수록[35] 전집(2), 전집(3)과는 달리 전집(4)에서는 시집에 수록[36] 전집(2), 전집(4)에서는 시집에 포함시켰지만 전집(3)에서는 제외됨. 유고에서는 이 작품의 바로 뒷부분에 「황」이라는 글이 있다. 서로 내용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처음의 번역본에서는 이것까지 통째로 묶어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으며 전집(2)는 이 작품을 시집에 포함시켰지만 전집(3)은 제외시켰다. 전집(4)는 두 글을 따로 묶어두었으며 전집(5)는 합친 것으로 보인다.[37] 전집(2), 전집(4)는 시집에, 전집(3)은 수필집에 포함시켰다.[38] 이하 1976년 발표된 작품들은 「문학사상」 측에서 조연현에게 미발표 원고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발표할 것을 제안해 소개된 것들이다. 이 작품들에 대해 조연현은 "본지에 소개하는 이상의 일문유고는 1960년에 입수하여 그 1부를 「현대문학」(1960년 11월부터 61년 1월호)에 발표하고 그 나머지를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고가 산란하여 문맥의 연결을 맞추기 어려운 몇 편만은 그대로 나에게 남아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것 중에도 문맥을 찾기 어려운 것이 몇 개는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발표된 작품들 중에는 이미 「현대문학」에 소개된 것들도 있었다.[39] 전집(2), 전집(4)는 시집에 포함시켰으나 전집(3)은 제외시켰다.[40] 전집(5)는 수필집에 포함되었다.[41] 전집(2), 전집(4)는 시집에, 전집(3)은 수필집에 포함시켰다.[42] 일본의 현대시인이자 동화작가로 1930년대 당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43] 전집(3)은 수필집에, 전집(4)는 시집에 포함시킴. 이하 4편은 조연현의 아내 최상남에 의해 소개되었다. 최상남은 이들을 소개하면서 "「현대문학」에 번역ㆍ발표하고 남은 몇몇 편을 70년대 와서 「문학사상」지에 마저 발표하고 원문을 알아보기 힘들고 미완성인 몇 편이 남아 있던 것을 이번에 번역ㆍ발표하게 되었다. 남편이 이 원고들의 발표를 미루어 온 정확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들이 일부 심하게 낙서가 되어 있어서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는 것과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본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44] 전집(3)은 수필집에, 전집(4)는 시집에 포함시켰다.[45] 이 글은 조연현이 입수한 원고에서 나온 글이 아니다. 당시 다방 '낙랑파라'를 소개하기 위해 이상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인쇄물이다. 1991년 일본에서 처음 공개되어 2000년 출판사 베틀북에서 출간된 책 「한국문학연구」에서 번역되었다.[46] 이 작품을 전집(1)은 '매상(妹像)'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서신 중에 '옥희'의 이름은 모두 '미경'으로, 옥희의 연인 'K'는 모두 'B'로 고쳐 실었는데, 프라이버시나 개인정보 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47] 2편부터 8편은 총 7편은 시인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다. 전집(1), 전집(2)에서는 이상 생전인 1936년 8월부터 1937년 1월까지 「여성」지에 발표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 사후 1939년 6월과 9월에 「여성」지에 실렸다.[48] 소설가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다.[49] 남동생 김운경이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동생에게 보낸 엽서로, 이상이 생전 고국에 보낸 마지막 편지이다.[50] R이라는 이니셜로 총 13회에 걸쳐 권두언이 실렸다. 「문학사상」(1976.6)에 번역 소개되면서 알려졌다. 당시 R이 필명으로 된 12작품(총 13편인데 「권두언 7」은 제외)와 H.R이 필명으로 된 1작품 등 모두 13편을 내용 중의 제목을 발췌하여 소개했고, 전집(2), 전집(3)도 별다른 설명 없이 싣고 있다. 문학사상자료조사연구실은 R이 이상의 이니셜이라고 추정되는 이유로 이 권두언이 실린 호부터 이상이 잡지 편집에 직접 간여했다는 사실과 그 권두언이 끊긴 호가 이상이 그 편집에서 손을 뗀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 문체, 어휘, 사상, 메타포가 그 무렵에 발표한 이상의 일문시와 동일하다는 점, 건축지이면서도 내용이 예술문학 등에 관한 것이라는 점, 이 아포리즘이 뒤에 독립된 시로 쓰여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51] 전집(2), 전집(3)에서 누락됨.[52] 전집(2)의 화보에 실려 있으며, '낙랑의 벽에 쓴 이상의 낙서들. 그는 한잔 술을 마시며 이곳에서 울분을 달래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낙랑'은 카페 '낙랑파라'를 말한다. 수필 '낙랑파라의 새로움'에도 등장한다.[53] 쥘 르나르의 책 「전원수첩」의 속표지에 이상의 자화상과 함께 쓰여져 있다. 임종국에 의해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