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03:20:08

이영호(1885)

<colcolor=#fff><colbgcolor=#0047a0> 경방(景邦)
본관 진성 이씨[1]
출생 1885년 8월 22일
경상도 예안현 의동면 원촌동
(現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원촌마을 847번지)[2]
사망 1932년 5월 29일 (향년 46세)[3]
경상북도 안동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604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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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퇴계 이황의 13대손이다. 독립유공자 이원영(李源永)은 그의 7촌 재종질(再從姪)이며, 이광호(李洸鎬)는 8촌 삼종형(三從兄), 시인 이육사는 9촌 삼종질(三從姪)이다.

2. 생애

1885년 8월 22일 경상도 예안현 의동면 원촌동(現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원촌마을 847번지)에서 아버지 이중성(李中聖, 1849 ~ 1937. 4. 6)과 어머니 신 안동 김씨(1849 ~ ?. 3. 25)[4] 사이의 4남 5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안동군 임북면 정산동(現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 953번지로 이주해 본적을 옮겼고, 이어 작은아버지 이중규(李中揆, 1859 ~ 1882. 3. 27)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11일 밤 9시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서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8촌 삼종형인 예안면사무소 서기 이광호(李洸鎬)를 비롯해 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김창옥(金昌沃)·백남학(白南鶴) 등과 만났는데, 이때 신상면 면장과 이광호 면서기로부터 독립신문을 건네받고 만세시위의 제의를 받았고 이에 찬성의 뜻을 표했다. 이에 이들은 예안면 장날인 3월 17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예안면사무소에 비치된 등사판을 이용해 기미독립선언서태극기를 대량으로 제작한 뒤 이튿날부터 인근 마을에 거사 계획을 전달하는 등 사전준비를 실행했다.

거사 당일이던 3월 17일 오후 3시 30분에 그는 계획대로 이광호·이동봉(李東鳳) 등 3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뒷편의 선성산(宣城山)[5]에 올라가 일본인들이 그곳에 건립한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6]를 쓰러뜨린 후, 태극기를 흔들며 예안면 장터를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를 기점으로 시장 곳곳에 매복해 있던 조수인·김진휘(金鎭暉)·조병건(趙炳建)·이원영·조방인(趙邦仁) 등과 장터에 나와 있던 수천명의 군중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고, 수업 중이던 예안공립보통학교 학생들까지도 가담해 예안면 장터를 돌며 행진했다. 얼마 후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경찰 소다 토키치(曹田藤吉) 등이 출동해 25명의 군중을 체포하자, 그날 오후 7시 그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포위하고 구금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며 제지하자, 이에 격분해 돌을 던지며 주재소를 습격하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주재소에 있던 일본 경찰 3명을 포로로 잡아 이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시위대의 선두에 서게 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

그러나 곧 안동군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해 빈 포를 쏘아댔고, 결국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얼마 뒤 대대적인 검거가 이뤄졌고, 결국 이때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대를 선고받았으나, 이에 공소하여 이튿날인 3월 25일 대구지방법원으로 이감되었다. 그는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이 취소되었으나 도리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상고했으나 5월 19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32년 5월 29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별세했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에 안장되었다가 1996년 10월 1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되었다.

[1] 원촌파(遠村派) 20세 호(鎬) 항렬.[2] 이 지번은 2018년 12월 12일 828번지에 편입되어 현재 환경부 소속 국유지가 되었다.[3] 음력 4월 24일. 진보이씨상계파세보 상권 478쪽에는 4월 22일에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4] 참봉공(參奉公) 시좌파(時佐派) 김이식(金履軾, 1826. 3. 26 ~ 1897. 3. 13)의 딸이다.[5] 선성현문화단지 내 선성 산성공원이 바로 선성산이다.[6] 어대전(御大典)이란 천황 즉위식을 말하는데, 정황상 1912년에 즉위한 다이쇼 덴노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