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4:46:50

이예다

파일:yeda_lee.jpg
<colbgcolor=#00001b><colcolor=#fff> 이름 이예다
출생 1991년 (32세)
서울특별시
학력 전문대학 졸업
거주지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드메른주 이브리쉬르센
국적 미상[1]
병역 미필
종교 무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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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양심적 병역 거부와 프랑스 망명
2.1. 반응과 여파2.2. 계기
3. 비판 및 유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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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양심적 병역거부자.

한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4개 국어 구사자다.

2. 양심적 병역 거부와 프랑스 망명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지위 신청을 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사법제재를 받는 것을 난민 신청의 주된 이유로 꼽았고 프랑스에서 2013년 6월 난민신청을 받아들였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 출신 중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하나만으로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을 언론에 공개한 최초의 난민이다.[2]

이전에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망명에 성공한 사례는 있었으나 유독 그가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사회인식에서 동성애 같은 난민으로 납득받을 만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못 하는 정치적 망명을 하여 아예 한국을 영영 떠난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예다 이전에도 병역거부(+동성애)로 인한 난민이 있었으나 당시의 반응은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니까 난민으로 인정받을 만한 해당사유가 없을 것이다."였다. 실제로 호주, 캐나다 난민 허가 사유에서도 "군대 자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충분하지만 성소수자는 더더욱 위험한 신변의 위협에 처해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는 탄압받는다는 인식도 있었기 때문에 호모포비아라면 몰라도 난민 신청 자체로는 그렇게 충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비누 좀 주워줘"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보통 군대 아니면 교도소 또는 죽음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가서 출소한 후 범죄자로 낙인찍혀 불이익과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젊은 나이에 죽어 버리느니 차라리 군대를 갔다오고 만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행동은 병역의무 앞에서 선택에 관한 상식의 틀을 완전히 부순 것이었다. 군대 그 자체만을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그는 강의석처럼 비범한 활동가 경력 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대 졸업 후 PC방 알바를 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시기가 탈조선 신드롬과 겹쳤고 지상파 언론까지 출연하였으며 일본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면서까지 언론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단단히 일조했다.[3]

보통 타국의 징병제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국방세를 납부하는 제도도 있다.[4] 병역거부자를 대체복무시켜 주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로서는 드물게 그런 배려가 아예 없었던 게 문제다. 대체복무요원이 신설된 것은 그의 망명(2012년)으로부터 거의 10년 후인 2021년의 일이지만 대체복무요원도 교도소에서 합숙하고 기간도 3년이므로 징역보다 더 길다. 다만 빨간줄만 아닐 뿐이다.

2.1. 반응과 여파

병역에 민감한 한국이지만 의외로 한국 언론들은 그의 망명에 무관심했으며 설령 기사를 낸다고 해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난민 자격을 획득한 후 2014년 11월 일본 도쿄 외국인 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한국 언론사는 단 하나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해외 언론들이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취재했다고 한다.[5]

한국 언론들의 반응이 무관심한 것은 일단 한국에서 이 사례로 기사를 쓰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적법하게 망명 신청을 했고 이를 프랑스가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비판하면 "해외로 망명한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국제법에 어긋나는 국내 병역법부터 고쳐라."라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반대로 옹호하는 기사를 써도 병역의무를 우습게 보냐는 비난을 들어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병역은 여전히 언론이 다루기 힘든 성역이다. 롯데그룹이 병역의무 제도에 군침을 흘리면서 마수를 뻗었다가 걸려 탈탈 털렸던 사건이 발생했을 때조차 이 사건이 지닌 본질을 파헤치는 등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룬 언론사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 그가 병역거부를 한 시점 기준으로도 병역 문제가 정치인 후보도 갈아엎을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성역이고[6],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정서적 반발[7]이 심하다. 거부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선 당시 기준으로는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남초, 군필자, 30대 이상, 보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일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이들은 특히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라서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망명을 돕기 위해 자신의 SNS와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으나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살해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통한 망명을 상담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의 행동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하겠지만 한국군이 징집병들을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유보적인 의견도 있는데 군필자들이 국군이 썩어빠진걸 더 잘 알 기 때문이다. 군복무가 자신의 양심에 반했으나 처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군복무를 한 사람으로서 그의 행동을 응원한다는 옹호적인 여론도 존재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문제보다 "명예와 보상문제"를 걸고 넘어갔다면 국민의 공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이 기사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가장 흔한 부정적인 반응은 "영원히 입국 금지시켜라."이며 "국외로 추방시켜라.", "국적 박탈해라." 등의 반응도 나왔다. 병역거부자의 시민권 박탈 문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양심적 병역 거부/논란 문서와 강제퇴거 문서 참고.

그는 프랑스의 난민법 때문에 한국으로는 돌아올 수는 없다고 한다. 물론 유승준과는 달리 입국 금지를 당하지는 않았고 외국인이 아닌 사람에게 입국금지를 먹일 수도 없다. 프랑스에서 추방은 가능하지만 그건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해서 쫓겨나는 경우다. 이예다 스스로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설령 한국에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이 점이 한국 치안이 좀 좋다 싶으면 돌아오게 해 달라고 난리치는 스티브 유와 반대로 애초에 돌아올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 입국 금지를 해봐야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편법을 써서 한국 정부가 억지로 입국 금지를 때릴 수는 있겠으나 선진국에 걸맞지 않는 인권탄압을 했다는 나라 망신이 될 수 있으니 내버려 둔다.

군대의 사건사고가 하루이틀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진 2013년 6월 이후부터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 피해자인 윤일병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가해자인 임병장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더불어 심지어 시간이 지난 2017년에도 철원 일병 피격 사망사건,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라는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들이 여럿 일어났으며 2016년 대한민국 대체복무 폐지 논란2020년 군인 강제노동 논란이라는 사람을 일개 소모품 쯤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2021년에는 대한민국 군대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의 행동이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언론에 공개된 후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인터넷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의 주목도가 가라앉지 않은 것을 보면 얼마나 군대가 바뀌지 않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유를 엄밀히 따져보면 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역자 취급하며 지나칠 정도로 처벌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크다.

2.2. 계기

병역을 거부하게 된 계기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라고 한다. 이 만화에서 생명에 대해 깨닫고 '어째서 내가 타인의 목숨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입대하기 전에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저서나 국방부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군대를 안 가겠다는 마음에 차라리 교도소행을 생각했으나 교도소에 가 봤자 그저 수감자의 수 +1만 되고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며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치적 신념의 병역거부자가 매년 한 자리 수 이내로 수감되고 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그도 차라리 나라를 떠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은 후 언론에 보도되면서 헬조선 신드롬까지 겹쳐져 그동안의 종교+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SBS, 한겨레 등의 언론에 짧게 보도됐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덕분에 언론에 공개된 규모를 감안하면 그의 계산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좋은 것은 알려야 한다고 퍼트렸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분노감을 표출하고 싶어 퍼트리게 되면서 나쁜 것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초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관심을 끌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정치적 파장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익명이긴 하지만 그의 소식을 듣고 난민허가에 성공한 다른 사람이 나도 이예다의 사례를 보고 도전해서 성공했다고 언론에 밝힐 정도면 오히려 그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 모두 완벽한 성공이라고 봐도 된다. 이런 그의 결정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8]와 누나는 "그게 네 결정이라면"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감옥을 가면 출소 후 볼 수 있겠지만 해외로 떠나면 언제 볼 수 있겠냐며 극렬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에게 단돈 70만 원만 받아들고 프랑스에 관광 명목으로 들어가서 하루 지난 다음날 난민구호소에 접수하였으며 11개월(신청 절차 4개월, 판정 7개월)의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본인의 언급으로는 난민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 한다. 굉장히 불안했다고 한다. 자긴 '동성애자도 아니고 종교적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 전례가 없는 상황인데 과연 받아줄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꽤 많은 나라들이 병역거부자들을 난민으로 받아준다.

참고로 그가 프랑스를 택한 이유는 프랑스가 2001년에 징병제를 폐지한 반면 독일은 2011년에서야 징병제를 폐지했기 때문인데 징병제를 오랫동안 실시하던 독일이 자신을 본국(대한민국)으로 되돌려보낼까봐 그걸 가능성이 적은, 그러니까 모병제를 오래 하고 있어서 자신을 본국으로 되돌려보낼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애초에 징병제 국가로 갈 생각이 아예 없었다.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로 오랫동안 추가 사례가 나오고 있지 않았지만 3년만에 난민인정자가 또 나왔다. # 난민 신청 계기는 이예다 본인의 언론 공개 이후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9]

그는 한국 국군의 파병이 권력자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사건이라고 보았으며 당시 병들의 휴대전화 소지 불가, 굉장히 제한적인 외박 · 외출 · 휴가, 사상이나 정치적인 행보 감시 등의 일과 후 자유 부재를 이야기했는데 이런 그의 인터뷰에 당시 난민 심사를 하던 사람이 이를 듣고 '(내가) South와 North를 잘못 봤나?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라고 했을 정도였다. 인권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던 고소득·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죄수보다 인권침해가 더한 수준의 사병 생활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징병제가 사라지면 지금처럼 사람을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왼쪽부터 아마미야 카린(작가), 통역자, 이예다, 안악희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991년에 태어났습니다. 현재 22세입니다. 2012년 7월, 20살이던 해에 징병에 가고 싶지 않아서 망명을 결심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중략) 2013년 6월, 프랑스 정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징병 거부로 망명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징병제 자체가 망명의 이유로 인정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소수자나 종교를 이유로 징병을 갈 수 없다고 하여, 망명이 허용되었습니다. (중략)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도 없습니다.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반 동안 수감됩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징병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에 망명한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10]
다른 망명자를 돕기 위해 연락도 받아준다. 망명 25시 그는 프랑스의 난민 관련 NGO인 'France Terre d'Asile'을 통해 난민 신청을 하였으며 노숙도 해보고 난민기구에서 자원봉사로 나오는 밥도 먹고 살 정도로 힘든 부분을 겪었던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터라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난민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서 접었고 복지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 국가로 가자니 추위가 싫어서 프랑스행을 택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겠다면 난 독일을 추천하고 싶다.[11] 나는 독일이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한 게 (난민 신청을 할 당시를 기준으로) 겨우 1년 전(2011년 7월)이라서 독일을 피했는데, 작년에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과 독일의 활동가·국회의원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의 비슷한 점을 들며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병역거부권에 호의적이었다. 심지어는 나에게 "독일로 난민 신청을 하러 올 생각을 안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돕지 못해서 부끄럽다"라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
- 출처

3. 비판 및 유의점

그는 국군이 이라크에서 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했는데 자이툰 부대의료공병부대로서 나쁘게 말하자면 상수도 공사 정도 하다 돌아온 게 전부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제발 전투지역 가 달라고 요청했으나 한국에서 거부하면서 전투 자체가 없었고 치안이 극히 안정된 쿠르드 지역으로 전후복구와 평화의 명목으로 밀고 들어갔다. 때문에 이라크 파병 한국군은 끝끝내 총 한 방 안 쏴 보고 돌아왔다. 애초에 세계최강인 미군 탱크와 장갑차도 터져나간 곳이 이라크지만 한국군은 쿠르드 지역에 60트럭만 달랑 타고 가서 연합군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학살을 저지른 적도 없다.

그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사고라고 폄하하였다.# 게다가 아예 군대가 필요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죄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듯 하다.

파일:이예다 페이스북 댓글.jpg

양쪽 다 군대를 안 갈 생각 하면 안 되냐는 유토피아적인 말을 했다. 나는 평화주의자지만 상대는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6.25 전쟁 때 북한, 중국, 소련이 침략했던 걸 잊으면 안된다. 이때 인민재판으로 몽둥이, 돌 등으로 맞아 죽은 사람도 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이 강제 노역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힘 없는 나라는 주변국에 침략을 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유진영공산진영이 힘 겨루기를 하고 있으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도 존재한다. 미래에 군 입대를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민 제도에 솔깃할 수도 있지만 그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도 해봐야지'하는 생각으로 괜히 따라하는 건 극도로 위험하다. 윗 문단들만 보면 신청만 하면 될 것 같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만 자기계발서가 외치는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하다.[12] 그의 망명을 둘러싼 설명에도 병역기피에 대한 당위성이 강조된 내용은 많으나 한국 같은 선진국 국민의 난민 인정의 현실성에 대한 언급은 다루지 않고 있다. 이예다 이후로 프랑스에서 한국의 병역 문제로 한국인을 받아준 사례도 없으며 유럽은 유럽 난민 사태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기준이 엄격해졌다. 게다가 한국에서 2020년부터는 대체복무요원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 사유로 해외에 망명 신청하기 더 어려워졌다. 교도소에서 3년 대체복무하거나 더 짧은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 수 있다.

실제로 그를 보고 따라하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에서 4~5개월만에 3천만원이 넘는 돈을 날린 후에는 매월 150만원씩 한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몇 달간 생활비를 지원받는 등 돈을 꼬라박다가 물건도 도둑맞고 임금체불에, 폭력을 당하고, 돈도 뺏기고, 끝끝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제미아로 신세를 망쳐 버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1년 6개월(실제로는 가석방 돼서 평균 1년 2개월) 한국 감옥에 가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다.#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고 저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다.[13] 다만 당사자는 처음에는 독일에서 난민신청을 하였으나 프랑스를 경유했다는 이유로 더블린 조약에 의해 송환된 것이라고 한다. 난민불인정 판정을 받고 나서 NGO 단체들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건너갔고 지금은 근황을 알 수 없다. 일부 활동가들은 서술한 사회 분위기의 시기 불일치, 짜깁기의 흔적 등으로 인해 저 이야기를 주작이라고 믿고 자신에 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점도 신빙성의 문제가 있지만 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중에게서 자주 회자된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로 난민신청한 한국인들의 숫자와 그 결과를 보면 점점 어려워지고 난민으로 인정받는 게 바늘구멍이 되어가는 걸 알 수 있다.

2000~2017년에 걸쳐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난민 인정을 받긴 했다.# 그렇지만 점점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워지는 추세다. 누적으로 보면 많아보일 수도 있지만 그나마 2020년대에 비해 비교적 순조로웠던 과거의 통계까지 합쳐도 연간 20명도 채 안 되는 숫자다.

즉, 함부로 따라하다간 인생을 망칠 확률이 높다.# 가족들 등골까지 제대로 빼먹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차라리 정 떠나고 싶으면 적법한 이민 절차를 밟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확률적으로도 더 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면 난민 문서를 참고하고 국내외 여러 NGO들의 도움을 받아서 최대한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길 권장한다.


[1] 당사자가 과거에 밝힌 바에 따르면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난민법으로 인해 행사할 수 없는 상태다. 대신 프랑스 정부로부터 난민 전용 여행증명서을 받았으며 여행증명서를 이용해 큰 불편 없이 해외여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귀화 시 필요한 의무거주기간 5년을 채웠기 때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후천적으로 외국 국적(시민권)을 취득한 자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한국 국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우엔 한국 국적은 말소되었을 것이다. 다만 이민 등으로 외국 국적을 획득할 경우 관계 관청에 신고해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이 신고를 하지 않아도 외국 국적을 획득함이 알려지면 해당 날짜부터 한국 국적이 사라진 것으로 소급 처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일단은 대한민국 국적이 유효하고 이예다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국적상실을 신고하였는지는 불분명하며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귀화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당사자가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현재 국적을 알 수 없다.[2] 망명자 본인이 자신의 망명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본국의 정부, 언론이 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3] 이런 식으로 망명한 사람의 대부분이 비난받을 게 뻔하기도 하고 신변을 지키려고도 해서 언론 접촉 자체를 꺼린다.[4] 군복무 대신 세금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시키는 것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병역을 해결하는 제도다. 국방세는 원칙적으로 사병의 급여로 활용하라고 징수하는 세금이다. 대신 병역의 의무를 깨버린다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싸다. 해당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를 기준으로 그 나라의 평균연봉에 해당되거나 평균연봉*복무기간에 해당(의무복무기간이 2년일 경우 평균 연봉의 2배, 3년일 경우 평균 연봉의 3배)되는 돈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기준으로 몇천만원 수준의 큰 돈이다.[5] 이는 유승준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그렇게 관심도가 높지 않은 측면이 크다. 언론에 공개된 건 다 합쳐도 10건이 되지 않으며 알려진 계기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이 커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후술할 비난 여론이 강한 커뮤니티와 차이가 보수 성향인 것만 제외하면 이예다를 알게 된 경로가 20~30대, 남초(사실상 현역) 인구가 많은 커뮤니티 이외에는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6]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롯데는 일개 사기업 처지에 자기 비용 절감을 위해 병역 제도를 직접 써먹으려고 시도했다는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반향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조차 롯데의 행위에 대해 아무 말 못 했을 정도다.[7] 특히 양심적이라는 단어가 그렇다.[8] 직업군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급은 대령이었다.[9] 기본적으로 난민 신청자의 인정여부는 국제법에 따라 반드시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의 소신에 따라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면 본국 정부가 이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병역거부 난민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례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현재로써 수많은 신청자 중 본인의 발표로 언론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사례는 독일 2건, 프랑스 3건, 캐나다 4건, 호주 2건이다.[10] 현재 이예다는 프랑스에서 10년 단위로 체류 기한을 늘릴 수 있는 한국인이다. 이때도 귀국은 가능하지만 입국 즉시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갈 운명이다.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귀국은 불가능하다. 아예 미국인이 된 유승준과는 얘기가 다르다. 다만 스티브 유와는 다르게 비록 한국 국적이 유효한데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본인이 밝혔다.[11] 유럽연합은 더블린 조약으로 인해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에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실제 난민 인정률은 프랑스보다 독일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다만 중동, 아프라카 등 개발도상국 쪽에서 난민들이 백만 단위로 몰려오면서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안 받으려고 온갖 용을 쓰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12] 2018년 올해의 과학 도서상 수상작인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에서는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의 법칙은 '생존자 편향'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일례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나 이렇게 말한 DRX가 '성공'했으니 주목받으며 성공의 비결처럼 보였던 것일 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은 투명인간 취급당한다. 만약 고시낭인이나 패가망신한 도박 중독자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런 소리를 하다간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인데 아무리 멋진 말을 해도 실패하면 조롱받을 수 있다. 영화 '클레멘타인'의 이동준은 전 재산을 걸고 배팅하였기 때문에 당시 인터뷰에선 꿈과 열망, 도전 등 '긍정의 힘'으로 무장한 인터뷰 자체는 멋졌으나 흥행에 참패하면서 '눈물의 똥꼬쇼'라는 밈으로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DRX야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것이고 언제든 대박 터질 확률이 존재했는데 실력도 없으면서 마음만 꺾이지 않는다면(근거없는 자신감) 자칫 '똥꼬쇼'로 전락할 리스크가 있다. 이예다가 되겠다며 무작정 '긍정의 힘'으로 프랑스에 갔다가 꼬여 버리면 붕 떠버려 '난민 아닌 난민'이 될 위험이 있다.[13] 난민에게 폭력을 쓰고 강도질을 일삼는 극우 단체 회원들은 프랑스에서도 범죄집단으로 간주할 정도로 인간말종들이고 실제로 프랑스에서 극우 단체들이 난민에게 폭력을 쓰고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고 처벌받는 사례가 많긴 하지만 저런 일을 겪었을 때 난민 신분으로 현지법의 도움과 보호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에선 저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지만 만약 한국에서 난민에 대한 폭력이 발생했더라도 한국인들이 딱히 동정이나 연민을 가지진 않을 분위기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