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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을용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한 문서.2. 국가대표 경력
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6)
2.2. 허정무호 1기 시절 (1998~2000)
1999년에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으며 1999년 3월 28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를 하였다.[1][2] 이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게 된다.2.3. 히딩크호 시절 (2001~2002)
2.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
거스 히딩크 박항서 스태프 핌 베어벡 · 정해성 · 김현태 · 압신 고트비 |
그가 국내에서 상당히 유명해진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었는데, 당시 미드필더로써 활약하던 이을용은 폴란드와의 32강 본선 조별리그 경기에서 황선홍의 선제골을 정확히 어시스트했다.[3] 다만, 당시 축구를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다음 경기인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이 브래드 프리델의 선방에 막힌 것이 더 기억에 남아있다.[4][5][6] 그러나 그 경기에서 후반 프리킥[7]으로 안정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다행히 역적신세는 피했다. 또 최용수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 넣어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만드는 등 전반적인 경기력은 좋았다. 페널티킥 실패 이후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스페인전은 김남일의 부상으로 교체 출전하였다.[8] 터키와의 3위·4위전에서는 전반 9분 그림같은 프리킥 골로 홍명보의 실수로 인한 실점을 만회했다.[9] 참고로 이을용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했는데 이는 통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월드컵 최다 공격 포인트 2위이자[10], 역대 월드컵 중 단일 대회 최대 공격 포인트다.[11]
2.4.1. 코엘류호 시절 (2003~2004)
2.4.1.1. 2003년 EAFF 일본 동아시안컵
2003년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이을용은 을용타라는 신조어를 만드는 사건을 일으킨다. 때는 2003년 12월 7일, 중국과의 경기 중 이을용의 코너킥을 유상철이 받아 넣어서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중국의 리이가 이을용이 이전에 부상당했던 부위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무리한 태클을 하며 들어오자 이에 빡친 나머지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가격했고 결국 퇴장당했다. 중국 선수는 태클로 이을용을 공격한 것 때문에 옐로카드를, 이을용은 중국 선수 뒤통수를 때려서 레드카드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두 팀의 몸싸움이 일어났으며 경기는 그대로 이어져 1:0 대한민국 승리했다.2.4.1.2. 아드보카트호 시절 (2005~2006)
2.4.1.2.1. 2006 FIFA 월드컵 독일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스태프 압신 고트비 · 홍명보 · 정기동 |
이후 대표팀에서는 조 본프레레 전 감독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탁되지 못하다가[12] 2005년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이 취임한 후 다시 발탁되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첫 소집인 2005년 10월 A매치에서는 제외되었지만 곧바로 다음 2005년 11월 A매치 주간에 소집되어 세르비아전에서 1년 만에 복귀 경기를 치렀다.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독일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1] 당시의 국가대표팀 감독은 허카우터 허정무 전 감독이었다.[2] 그 경기에서 김도훈의 결승골로 승리하였다.[3] 뿐만 아니라 기계인간과 충돌로 회복중이던 이영표의 왼쪽 사이드도 잘 지켰다. 폴란드의 크로스를 수차례 무산시켰고, 한번은 고간으로 상대의 슛을 방어해내기도 했다. 당시 송재익 캐스터는 이을용 선수 큰일이예요, 아직 자식이 없어요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전의 부진은 이날의 타격 때문일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었다.[4] 원래 페널티킥 담당 키커 1순위는 황선홍이었으나 부상으로 못차고 2순위였던 박지성도 전반에 교체 아웃되고 해서 3순위였던 이을용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여담으로 이 때 이천수는 본인이 직접 차려고 했으나, 거스 히딩크가 예정대로 이을용에게 차도록 했다.[5] 이후 안정환과 술 마시면서 한 말이 천수가 공에 손을 대서 부정이 타서 안 들어갔다라고 한다.[6] 사실 들어갔어도 다시 찼어야 하는 것이, 페널티킥 규정은 공이 발을 떠나기 전까지 같은 팀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으면 안 되지만 차기 전에 황선홍, 송종국이 들어와 있어서 반칙이다.[7] 그 프리킥을 따게 해 준 미국 선수가 다름 아닌 미국의 명선수로 유명한 랜던 도노반이었다.[8] 다만 호아킨 산체스에게 자주 돌파당하며 수비적으로 고전했다.[9] 당초 이을용은 이영표의 백업 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으나 이영표가 부상으로 1차전, 2차전을 나오지 못하게 되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10] 통산 월드컵에서 3골을 넣은 박지성, 안정환과 동률. 1위는 3골 1도움의 손흥민이다.[11] 최순호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1골 2도움, 홍명보 또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2골 1도움으로 이을용과 동률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바 있다.[12] 을용타 사건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을용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