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7:42:25

정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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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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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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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정해성전위원장.jpg
이름 정해성
鄭海成 | Chung Hae-soung
출생 1958년 3월 4일 ([age(1958-03-04)]세)
경상남도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졸업)
한영중학교 (졸업)
계성고등학교 (전학)
중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78 / 학사)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선수 제일은행 축구단 (1982~1983)
럭키금성 황소 (1984~1989)
감독 LG 치타스 (1990~1994 / 코치)
포항제철 아톰즈 (1995 / 코치)
전남 드래곤즈 (1996~1998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1998~2002 / 코치)
전남 드래곤즈 (2003 / 코치)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FC (2004~2007)
전남 드래곤즈 (2011~2012)
중앙고등학교 축구부 (2017 / 기술 고문 겸임)
대한민국 대표팀 (2007~2010 / 수석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17 / 수석 코치)
호앙 아인 잘라이 FC (2017~2018 / 총감독)
호찌민 시티 FC (2019~2020)
행정 대한축구협회 (2013 / 경기위원장)
대한축구협회 (2013~2016 / 심판위원장)
대한축구협회 (2023~2024 / 대회위원장)[1]
대한축구협회 (2024 / 전력강화위원장)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2.2. 럭키금성 황소
3. 지도자 경력4. 행정가 경력
4.1.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묵인 논란5.2.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사보타주 논란
6.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인. 前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호찌민 시티 FC 감독을 맡았다.

그 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당시 대표팀의 코치로 지내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시절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면서부터 핸드볼 선수로 지냈다. 서울시 대회에서 MVP를 수상했을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으나 핸드볼부가 없는 한영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축구를 새롭게 접하면서 축구로 진로를 변경했다.

당시 키고 작고 몸이 약했던 탓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축구를 몰래 해야만 했다. 대신 아버지는 야구를 권유했기에 야구부에 가입해 1년 정도 활동했으나 야구에는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 결국 중학교 2학년 말에 아버지 몰래 축구부에 가입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말 경에 수학여행 경비로 축구화를 산 것이 덜미가 잡혔다. 그래도 어렵게 허락을 받아 축구를 계속했으나 키도 작았고 축구를 시작한 것 자체도 늦었던 탓에 중학교를 1년 더 다녔다. 다만 당시에는 유급하는 경우가 오늘날에 비하면 흔한 일이었다.

한영중 시절 한영고 감독의 권유로 충북 옥천의 죽향초로 내려가 축구를 하기도 했다. 선수가 부족했던 죽향초의 감독이 선배였던 한영고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는 나이를 속인 부정 선수가 득실거리던 시절이고 당시 체구가 작았던 정해성은 영문도 모른 채 죽향초에서 축구를 해야만 했다. 약 9개월 동안 그곳에서 보내야 했고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대구에 있는 계성고에 입학했다. 그런데 계성고 축구부에서 구타가 만연했던 탓에 서울 중앙고로 도망치듯 전학을 갔다.

중앙고에서 축구에 점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3학년에는 주장을 맡아 맹활약하던 중 1977년 고교 선수권에서는 중앙고 유일의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렇게 어느덧 고교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인정을 받으며 여러 대학 축구부의 치열한 스카우트 공세에 시달릴 정도가 됐다.

‘제2의 차범근이라 불렸던 남강고의 이형노에 이어 고교 랭킹 2위로 평가받았고 고려대학교공군사관학교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에 휘말렸다. 아버지는 “군인이면 먹고 산다”며 공군사관학교를, 어머니는 고려대를 원했고 우여곡절 끝에 1978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이는 신의 한 수였는데 얼마 후 3사의 스카우트 경쟁이 과열됐다는 판단에 사관학교의 스카우트 금지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만약에 공사로 갔다면 입학이 취소되어 1년을 허송세월로 보낼 뻔했던 것이다.

김정남 감독이 부임한 2학년 시절부터 풀백으로 보직을 변경했고 대표팀 합류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동료들과 창경궁으로 벚꽃 놀이를 하러 가다가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었던 과정에서 옆구리를 찔리는 중상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축구부에서 제명됐다. 재활을 거치고 나서 축구부 복귀를 희망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체육위원회 사무실에서 허락을 거듭 요청한 끝에 복귀한 후 다시 주전으로 활약했다.

2.2. 럭키금성 황소

파일:external/www.kfa.or.kr/2012112193949.jpg

대학 졸업 후인 1982년에 실업 구단이던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약 2년을 보내고 1984년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럭키금성에서의 출발은 좋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한 시즌이 끝나면 8~10명 정도가 방출되는 시절이었다. 현대와의 경기에서 정해성의 수비쪽에서 수비가 뚫리면서 결국 수적 우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2-3 역전패를 당하면서 주전으로 나서지 못하게 된 것. 당시 경기에서 현대 소속의 최강희가 퇴장을 당한 상태였다. 그래서 진주에서의 여름 합숙 훈련 때 당시 박세학 감독에게 어필하기 위해 삭발을 하면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전에서 다시 기회를 잡았는데 역할은 현대의 키 플레이어 허정무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상대 팀의 키 플레이어를 봉쇄하는 역할이었고 대우조광래, 정해원, 현대허정무, 포항제철조긍연 등을 거머리처럼 마크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그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 이후부터 럭키금성의 듬직한 주전 선수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1985년에 럭키금성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후 1986년 후반기부터는 주장[2]을 맡아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팀의 살림꾼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리더십까지 갖췄기에 대한 평가는 높았고 K리그에서는 이미 톱 클래스의 선수로 인정받기도 하였지만 대표팀으로서의 인연은 없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 다만 대표팀 멤버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었다고 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에 대한 꿈이 있기도 했으나 그런 욕심보다는 K리그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한다.

줄곧 럭키금성에서 헌신하다가 1989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마지막 시즌에도 28경기나 뛰면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갑작스런 은퇴라 할 수 있다. 프로에서 6년을 뛰면 재계약금을 줘야 하는 제도가 오히려 그의 선수 생활 연장에 발목을 잡았던 것.

3. 지도자 경력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
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스태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1989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서 독일 분데스리가 연수를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LG 치타스포항제철 아톰즈 코치를 거쳐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전남 드래곤즈,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3]2000 아시안컵[4]을 함께했다. 당시 감독은 허정무였다. 이후 2002년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나가 4강 신화에 일조했다.

코치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다음에는 2003년부터 부천 SK(現 제주 유나이티드 FC) 감독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으나 2007 시즌을 끝으로 자진해서 사퇴했다. 재차 유럽으로 연수를 떠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허정무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15위)을 일궈냈다. 곧바로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2012년 성적 부진으로 그 해 8월 자진 사퇴하였다.[5]

전남 감독 사임 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도자와는 거리를 두다가 2017년 모교 중앙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2017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선임되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했다. 계약 기간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였으나 슈틸리케 감독 경질 후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자 결국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자진 사임을 택하고 중앙고등학교로 복귀했다. 다만 대한축구협회와의 비상근직 계약이 남아있는 관계로 보직은 기술 고문을 달고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수행하였다. 모교 감독을 맡을때도 우승을 하거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실제로 중앙고 축구부 자체가 약팀에 속하기도 했지만 성적 이외에 눈에 띄는 변화조차 안보였다는게 문제. 이후 전 고양 자이크로 감독을 역임한 이낙영 감독이 무관을 끊어버리면서 중앙고 축구부를 서울 강팀으로 키우면서 더욱 대비되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베트남 V.리그 1의 명문 클럽 호앙 아인 잘라이 FC의 총감독 겸 기술 위원장을 맡았다.

총평하자면 코치로서 능력은 십분 발휘하면서 여러 성과를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국내에서 감독으로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3.1. 호찌민 시티 FC 감독

아쉬웠던 한국에서 감독생활을 뒤로하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는 호찌민 시티 FC의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시즌 초반에는 선두로 독주하며 이 독주 덕택에 3월의 감독상도 수상했다.

5월 26일에는 11경기 8승 2무 1패로 여전히 선두 자리를 지켰다. 더욱이 하노이가 원정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승점 차도 벌리는데 성공. 3월에 이어 5월 감독상도 받아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남베트남-북베트남 갈등이 깊고 축구에서도 북부 베트남이 패권을 쥐고 있어서 남베트남 축구계와 남베트남 지방 사람들은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다시 남베트남 지방의 우승을 기대했다.

막판에 스퍼트를 낸 하노이한테 역전 당하면서 리그 우승은 좌절되었지만 그동안 2년 연속 12위를 우승권으로 만들었고 하노이의 규정 위반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받아냈다. 그리고 11월 2일 2+1 재계약도 확정 지었다. 기사
2020년은 직전 시즌 2위라는 성적에 도취된 호찌민 시티 구단주가 이 기회에 우승 한 번 해 보자고 폭풍 영입을 지시했다. 덕분에 응우옌꽁프엉을 데려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11라운드까지 5위라는 예상외로 부진한 성적에 사퇴 압력[6]을 받고 격분해서 아예 호찌민 구단에 사표를 던졌다. 이에 선수단 내부에서도 큰 동요가 일어나 선수들이 훈련 거부 등의 태업을 저지르고 이적을 문의하는 등 콩가루가 되었고 팬, 축구계에서도 "호찌민이 너무 성급하다", "계약 해지 방식에 예의가 없다."는 식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호찌민 프런트가 부랴부랴 수습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정해성 감독을 찾아가 사과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는 제의를 했고 선수들이 눈에 밟혔던 정 감독이 받아들여 감독 자리에 복귀했다. 다행히도 이 난리가 터진 기간은 코로나19 재유행 기간이라 리그가 중단되어서 성적에는 별 영향이 없다.

그러나 결국 해당 시즌이 끝나고, 이태훈에 이어 이쪽도 베트남 리그 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미 팀에 대해서는 마음 속에서 떠나 있었지만, 선수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에 시즌의 잔여 일정을 마저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4. 행정가 경력

4.1.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2024년 2월 20일, 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마이클 뮐러의 뒤를 잇는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팬들의 반응은 시작부터 몹시 좋지 않다. 위르겐 클린스만의 경질로 가는 국면에서 이미 이석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클린스만 선임을 뜬금없이 뮐러 위원장 탓으로 돌리면서 국내 축구인 출신 전력강화위원장을 선임해야 한다며 정해성 당시 대회위원장 이름을 아예 차기 전력강화위원장으로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도 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진지라 이대로면 후보군을 추려 선임하는 시늉을 왜 한 건지 의문인 상황.

여튼 새롭게 전력 강화 위원장으로 선임된 뒤 위원회도 새롭게 꾸렸는데, 2월 안에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무리한 일정을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밝히면서 사실상 전력강화위원회를 통한 선임 절차도 졸속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상적인 선임 절차라면 여러 차례 회의를 열면서 지난 클린스만 선임 절차에서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 제대로 된 1차 후보군을 추리는 것만 해도 3월은 족히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2024년 2월 21일, 팬들의 우려대로 3월 전에 임시감독이 아닌 정식 감독을 국내파에 비중을 두겠다고 밝혀 그 밥에 그 나물임을 보여 줬다. 거기다 2월 24일 열릴 2차 회의부터는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하기로 하고 별도의 브리핑 절차도 없앤 채로 기자들의 취재까지 막는 불통 행보를 보였다.

2차례 비공개 회의를 통해 2월 27일, 현 황선홍 U-23 대표팀 감독에게 A대표팀 감독직을 임시로 겸임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반발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러면서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면 본인이 책임진다고 말해 더욱 더 빈축을 샀는데,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세계 최다인 올림픽 9회 연속 진출을 기록해 한 국가로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한다면 대한민국 축구가 받을 타격이 큰데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해 빈축을 사고 있다.

정해성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케이스가 독일에도 있었다. 2023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던 루디 푈러는 한지 플릭이 극도의 부진 끝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차기 감독이 올 때까지 직접 감독직을 대행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상대로 9년 만에 A매치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기록한 뒤* 후임 정식 감독에게 자리르 내주었다.

결국엔 올림픽 진출이 무산되면서 이제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축구팬들이 폭발 직전인 상황에서 이를 갈고 기다리는 중으로, 축구팬들은 앞으로 있을 2026 FIFA 월드컵을 이끌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까지 파행으로 몰고 가지 말고, 이 참에 상관인 정몽규와 함께 손잡고 축협에서 나가라는 입장이 대다수이다.

그 와중에도 스포탈코리아를 포함한 몇몇 언론에서는 정해성과 정몽규의 실책과 탐욕을 가리고, 이미 허수아비 겸 고기방패로 이용되다가 토사구팽된지 오래인 미하엘 뮐러와 현 사태와 별 상관이 없는 콜린 벨 감독의 경질만이 축협이 살길이라고 선동하는 기사를 올려 축구팬들의 혈압을 잔뜩 올리고 있다.

게다가 새 A대표팀 감독 후보군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던 인물 중 하나인 에르베 르나르 감독과의 대화를 자체적으로 끊어 그를 차기 감독 후보군에서 제외시키며 정몽규 못지않게 비난 여론이 강해졌다.[7] 결국 책임지는 모양새조차 내지도 않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상황이 되자 축구팬들은 정몽규의 개가 뭘 보고 배웠겠냐면서 울분을 쌓아가고 있다.

한편, 후보군 내 감독들에게 줄줄이 거절 당하며 본인이 직접 공언한 5월 중순 내 감독 선임은커녕 6월 a매치 이전까지 감독 선임도 힘들어진 상황이 되며 본인이 좋든 싫든 사퇴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아마 협회가 전력강화위를 다시 꾸리고 감독선임 작업을 원점 재검토하게 되면 제일 먼저 책임지고 직에서 물러나야 할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책임을 지려는 생각도 없이 계속 굉장히 괴상망측한 책임전가 및 책임회피성 인터뷰를 하며 안그래도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축구팬을 우롱하고 있다. 이쯤되면 축협 최악의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최악 중 최악의 기술위원장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기사 영상

K리그 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K리그 현직 감독을 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넣었다는 말을 했는데 6~7월이면 리그의 순위 경쟁이 한창 치열해질때라서 궤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6월 28일, 건강 악화라는 이유로 전력강화위원장에서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하였다. 기사 하지만 사퇴 타이밍이 굉장히 좋지 않아서 욕을 먹고 있는데, 외국인 감독 선임이 실패했을 때는 쥐 죽은 듯이 있다가 국내파 감독을 선임하는 모든 경우의 수가 사라지자[8][9] 비겁하게 도망갔다는 비판이다. 김도훈도 거절 의사를 표하자 이미 인도네시아랑 재계약을 한 신태용 선임 언플이 축협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바보도 아니고 성과를 내고 있는 신태용을 뱉어낼 리 만무했고 신태용도 자길 그렇게 내쳐놓고 또 방패막이용 소방수로 쓰려는 국대에 올 리가 없었다.

이후 그동안의 행보에 대한 루머가 흘러나왔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자세한 건 사건사고 문단에 후술.

결국 그동안의 유체이탈 화법과 후보들과 제대로 협상할 생각도 없었던 게 아니냐는 등의 의심이 모두 국내파에 대한 정해성의 과도한 망상과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사실로 가정사실화되었고, 축구팬들 사이에서 정해성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후에 연줄을 이용해 협회로 돌아올 수는 있어도 앞으로 영원히 축구팬들에게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윗 문단에서 언급한 대로 이용수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 중 최악의 축협 기술위원장이라는 평가는 덤.[10]

정해성의 업무는 이임생이 이어 받아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묵인 논란

2023년 3월 28일, 클린스만호의 두 번째 평가전인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 시작 직전 대한축구협회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11]과 축구 통합을 명분으로 승부조작범 48인 포함 징계 중이던 축구인 100명을 전격 사면한다는 결정을 내릴 때 회의에 이영표, 이동국, 조원희, 이임생, 박경훈 등과 함께 협회 임원으로 참여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안건 가결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축구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참고로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었으며, 전남에서도 조작범들이 있었다.

5.2.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사보타주 논란

2024년 2월 27일, 정해성은 올림픽 티켓이 걸려있는 U-23 아시안컵을 앞둔 황선홍을 A대표팀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며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 당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연한 것이 부정적 결과, 올림픽 탈락이 나온다 한들 정해성이란 인물 한 명이 책임을 질 수는 없었다. 정해성이 협회에서 사임하거나 축구계에서 매장당한다 한들 잃어버린 올림픽 티켓이 돌아올 수는 없기 때문. 결국 한국의 40년 만의 올림픽 탈락이 현실이 되며, 애초에 임시 감독직을 덥석 받아들인 데다가 전술적으로 심각한 하자를 보인 황선홍의 책임이 가장 컸기에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정해성 역시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도, 후에 언급되지도 않았다. 애초에 올림픽 탈락이라는 대참사를 정해성 개인이 책임질 방법도 없었겠지만.

이후 계속해서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으나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이제 질렸다는 반응이 나올 수준으로 매 순간 논란을 낳으면서도 어떻게든 최종적으로 감독 선임 직전까지 갔으나 갑자기 사퇴를 발표했다.

그리고 사퇴 발표 이후 그동안 정해성의 행적에 대한 루머가 새벽의 축구 전문가로부터 흘러나왔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으로, 정해성은 그동안 협회의 과하다 싶을 정도의 국내파 여론을 주도적으로 형성하던 강경 국내파 지지자였으며 감독을 포함한 모든 사단을 무조건 전원 한국인으로 밀어붙이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 정몽규조차도 정해성의 이러한 계획에 의문을 품고 "아 이건 좀..." 이라고 거부하였고 협회 내에서 암묵적인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국내파 코치진 및 사단을 받을 수 없는 외국인 감독을 아예 감독 후보 선상에서 배제하려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며, 사실상 축구 철학이나 전술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제 한국은 무조건 국내파라는 야심(?)으로 인해 전력강화위원회가 4개월이 넘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와 더불어 이전에 후보군에 있었다고 협상이 결렬된 에르베 르나르제시 마치, 나이 문제로 패싱당한 셰놀 귀네슈 역시 정해성의 잘못된 가치관과 선임 기준으로 인해 놓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렇게까지 축협 전체를 사보타주했는데도 정작 국내 감독들에게조차 지지를 얻지 못했고 퇴장한 것이 그저 안습한 상황이다. 이에 축구팬들은 그 악명 높은 정몽규조차도 정해성의 플랜에 고개를 저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축협이 제안한 대표팀 감독직으로 크게 곤혹을 치른 홍명보[12]는 거절했고, 김도훈도 국대 감독 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황선홍 조차도 인터뷰에서 국대 감독 부임설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축구협회에 불만을 표시한 뒤 대전 하나 시티즌에 부임했고 홍명보처럼 소방수로 투입됐던 신태용은 인도네시아 축구 협회와 2027년까지 재계약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부임 가능성이 소멸했다. 사실상 후보들한테 전부 퇴짜맞은 셈.

다만 정해성은 애초에 후보군 리스트만 작성할 뿐 협상 권한 자체가 없다. 심지어 정몽규가 자기 마음대로 낙하산으로 선임한 위르겐 클린스만은 한국 축구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 끝에 정몽규 본인의 손으로 경질하는 등 정몽규의 안목이라고 정해성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수준이다.[13] 무엇보다 정해성을 전력강화위원장 자리에 임명한 것도 바로 정몽규다. 정해성이 어떤 인사를 추천한들 그것의 최종 결정권자는 정몽규이고, 심지어 국내파/해외파 위주로 추천하라고 지시할 권한이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정몽규다. 이제 와서 본인이 임명한 전력강화위원장이 통제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부터 역으로 축구협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몽규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몽규가 외국인 감독들을 우선적으로 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정해성이 독단으로 국내 감독 위주로 물색해서 갈등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라면 정몽규가 내부 컨트롤을 전혀 못한 셈이다.

거기다 위의 루머와는 다소 다르게 홍명보는 오히려 정해성을 다소 두둔하고 축구협회 측을 맹비판했다. 클린스만을 선임하던 시절부터 학습한 것이 없다며 "협회에서 누구도 정해성 위원장을 지원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혼자 고립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위의 루머대로 정해성이 지지한 인사 중 하나가 홍명보였다면 정해성이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표현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정해성과 함께 일하던 위원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서 전력강화위원회 자체가 붕괴되었다.# 남은 위원이 5명에 불과해 총체적 난국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정해성 자체도 문제와 의혹이 많은 인물이나 역시 현재 축구협회의 가장 문제점은 정몽규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정해성 위원장이 사실상 경질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의사결정은 모두 정몽규 회장이 실질적이고 공식적 최종 결정권자인데 정몽규 회장이 축구인들에게 책임만 지우고 회장 명의의 어떠한 입장 표명도 들을 수 없다" 며 정몽규를 비판했다.#[14]

결국 국대 감독으로 홍명보가 내정되면서 정해성이 원하던 대로 국내파 감독이 선임되는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다. 정해성의 역할을 이어받은 이임생조차 그와 똑같은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몽규의 사람 보는 안목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겠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결과가 똑같다는 것은 결국 협회의 수장인 정몽규의 지시사항이 처음부터 황선홍 아니면 홍명보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도 만든다. 홍명보 감독안을 최종적으로 결재하고 승인할 권한은 회장인 정몽규에게 있다. 만약 정몽규가 최대한 한국인 감독은 자제하고 그간 협상한 외국인 감독들을 유럽 시즌 개막 전까지 협상해 오라고 했다면 이 시점에 홍명보가 낙점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후 이어진 박주호의 폭로와 대조해 보면 위 루머에 대해서 더 의아한 점들이 많다. 우선 박주호를 전력위원회에 참가시킨 것부터가 정해성이고, 그 이유는 유럽 쪽을 잘 아니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해성이 국내 감독만을 고집했다면 굳이 박주호를 데려오며 이런 요청을 할 이유가 없다. 거기다 정해성이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회의 내용이 대외로 유출되자, 결국 정해성도 정보가 새는 걸 막기 위해 박주호에게 추천할 외국인 감독이 있다면 자신에게 따로 연락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15] 이 또한 정해성이 외국인을 당초부터 배제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전력위원회에 속한 인물들이 무조건 한국인 감독을 내정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전적으로 정해성 개인의 고집인지, 그리고 정말로 그 정몽규가 정해성의 플랜을 반대했다는 루머가 사실인지에 대해선 의아한 점이 많다. 정말로 정몽규조차 "이건 좀..."이라 생각했다면 이후 홍명보가 갑작스럽게 선임되는 것은 이상하다. 특히 유럽 시즌 개막 전까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과 협상할 여지가 있었다. 또한 유력 후보였던 포옛과 바그너와의 면접을 가기 위한 출장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가지도 않고 사퇴한 것도 의아한 점이다. 출장을 위해 항공권이나 호텔까지 모두 예약해 놓았을 터인데 이를 모두 취소하고 또 면접에 본인이 아닌 후임자가 가게 하는 무례까지 저지르며 사퇴한 것이기 때문.

물론 정해성이 위원장으로서 위원들을 전혀 휘어잡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폭로들을 보면 정해성에게 주어진 권한은 처음부터 그다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나온다. 익명의 다른 전력강화위원장 역시 언론에 "왜 제시 마쉬 감독 영입에 실패했는지 알 수 없었다. 협상에 나선 협회가 불발 소식을 전했는데, 생각했던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 연봉(약 20억원보다 훨씬 아래)으로 접촉해서 생긴 일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정말 힘이 없었다." 등의 의견을 밝히며 축협을 비판했다. 심지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에 턱없이 적은 연봉을 가이드라인으로 잡았다는 것조차 위원회가 몰랐다며 이를 진작 알았더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다만 해당 기사를 보면 처음부터 정해성이 홍명보가 현실적이라는 판단 아래 1순위로 제시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홍명보까지 도달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이상했다는 것.

종합하여 보면 기밀을 유출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인물들이 전력강화위원회 내외부에 판을 치고 있어 뿌리까지 썩어있고, 축구협회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후 8월 26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와의 통화에서 정해성 전 위원장은 "책임지는 자리라 생각했다." 라면서도 "사실을 이야기하면 정말 안 될 것 같다." 라고 입을 다물었다.#

9월 24일에 열린 2024년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는 증인으로 참석. 핵심 관계자인 정몽규, 이임생, 홍명보에 비해 질의는 많지 않았다. 정해성 본인과 축구협회가 입을 모아 홍명보를 1순위로 추천한 것은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이었던 정해성이었다고 발표한 사실과는 달리, 막상 전력강화의원회 회의록을 까보니 정해성은 홍명보 선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점적으로 다뤄진 것은 자진사임에 관련한 부분인데, 정해성 본인은 자신이 역할이 다 했음을 느꼈고 본인의 건강 문제와 가족들의 걱정 등 복합적인 이유라고 밝혔으나 의원들은 정해성의 일련의 행보들에 모종의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안질의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10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홍명보를 미는 위원들이 있었고 정해성은 '현역 K리그 감독에게 접촉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 결국 10차 회의에서 위원들의 복수 투표로 5명의 최종 후보가 선정, 정해성이 이 다섯을 놓고 투표를 해 순위가 정해지면 내가 보고하러 가면 되는 것인지 묻자 회의 참관중이던 김대업 기술본부장이 순위는 정해성 위원장이 정하는 것이라고 알리고[16] 이에 나머지 전강위 의원들이 모두 동의[17]. 회의 이후 정해성은 후보 다섯 중 현실적인 문제로 둘을 제외하고[18] 홍명보, 바그너, 포옛을 최종 후보로 압축. 이를 정몽규에게 보고하며 회의중 피력한 부정적 견해와는 달리 1순위로 홍명보를 추천. 정몽규는 홍명보에 대한 비대면 면담과 동시에 외국인 감독인 바그너와 포옛에 대한 대면 면담도 진행할 것을 지시. 이후 정해성 돌연 자진사퇴.
라는 흐름.
하지만 스포츠윤리센터 발표 이하면 홍명보감독 2순위 였는데 정해성 위원장 독단적 1순위 올렸다.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11/21/VL5ZEJ4SUJBCHF627LOA2RN6AU/

6. 기타

  •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차두리의 수비 연습을 도와주던 중 그의 몸통 박치기를 맞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정작 그 사실을 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의 뛰어난 피지컬 능력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아프리카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겠구나"하며 매우 흐뭇해했다고 한다. 하늘 같은 코치님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차두리에게 '잘했다'는 의미로 윙크를 날린 것은 덤.[19][20]


[1]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사건으로 인해 이사회 전원이 사임하였으나,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대회위원장에 재임명되었다.[2] 이전까지는 박항서가 럭키금성의 주장을 맡았다.[3]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4] 12개국 본선 진출 대회[5] 감독 사퇴 당시 전남은 강등권까지 추락할 정도로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암울하였다.[6] 호찌민에서 "브라질에서 감독 데려오는 대신 총감독이나 호찌민 시티 구단 아카데미 단장으로 영전시켜 줄게요."라는 거였지만 정해성 감독에게는 이것도 굴욕이다.[7] 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르나르는 KFA에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말한 거지 대화를 파하겠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분명히 르나르도 대한민국 국대에 대한 관심은 있었던 만큼 대화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대화의 장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린 것이다. 때문에 안 그래도 축협에 험악한 여론이 많은데 정해성의 이러한 판단은 사실상 "나랑 회장님은 르나르 맘에 안 들거든? 걔 벤투처럼 말 안 들을 텐데 우리랑 대화하기 싫다 해서 대화 끊었어. 할 말 없지?"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8] 홍명보는 계속해서 거절 의사를 표했고 황선홍은 U23, 성인 국가대표팀에서의 저조한 성적으로 인한 여론이 악화된데다가 올림픽 탈락 후 이전에 부임했던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으로 다시 이동했다. 축협이 계속 밀어붙였던 홍명보와 황선홍의 정식 감독 선임 불발에 이어 김도훈마저 거절 의사를 표하면서 사실상 국내 감독 선임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순간 사퇴를 발표했기에 의심을 받고 있다.[9] 그러나 이후 황당하게도 후임자 이임생에 의해 최종적으로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그 홍명보였다.[10] 그리고 이런 수준미달의 인물을 입맛에 맞는다는 이유로 기술위원장에 앉혀놓은 정몽규는 더욱 까였다.[11] 월드컵 16위[12] 공개 언론 인터뷰에서는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힘든 일이 많았다며 점잖게 표현했으나, 사석에서는 정해성에게 분노하는 태도로 아예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면서 거절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언급된 국내파 감독의 면면만 놓고 보면 적어도 감독의 자질 면에선 클린스만보다는 낫다. 최악의 성적을 낸 황선홍조차도 최소한 근무 태만을 하지는 않았으니. 애초에 황선홍도 정몽규의 픽이기도 하다. 즉 정몽규 본인의 선택인 클린스만-황선홍 보다는 다른 국내 감독이 상대적으로 낫기는 하다.[14] 그러나 해당 협회는 한국인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국내 감독 선임에 우호적이며, 실제로 창설 당시 이를 주장한 바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15] 실제로 니코 코바치에딘 테르지치 등 박주호가 따로 정해성에게 직접 추천한 인사들은 언론에 전혀 새나가지 않았다.[16] 정:여기서 또 투표로 최종순위 정하면 되는거지?, 협:아니 니가 정해, 정:그럼 내가 순위 정해놓고 위원들한테 동의 받으면 되는거지?, 협:아니 너 혼자 하라고, 라는 흐름으로 최종결정권을 떠넘겨받았다. 회의 내용상으로는 외부 유출 방지가 목적이었던 듯하다.[17] 박주호는 당시 위원장 혼자 정하는 것은 모든 책임과 부담을 위원장 혼자 짊어지게 만드는 것이기에 다 같이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주장했으나, 회의록 상으로는 결국 최종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18] 헤수스 카사스그레이엄 아놀드로 추측된다. 둘 모두 소속팀이 있는 상황인데다, 한명은 그냥 협회와 이야기 자체가 잘 안통했고, 다른 한명은 최종 예선 조추첨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모양.[19] 출처는 히딩크의 자서전인 '마이 웨이'.[20] 그런데 웃지 못할 사실이긴 하지만 훗날 22년 후 정해성이 축협의 부패한 위원들과 한패로 해외의 유능한 감독들에게 무례한 결례를 범하고 국민들을 거짓말로 우롱하는 추태를 보이면서, 차라리 저 때 더 다쳤어야 했다는 과한 반응도 조금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