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23:33:48

곽태휘

곽태휘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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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박주영
(2011)
곽태휘
(2012~2013)
하대성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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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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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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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997)
김기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유동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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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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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6대 7대 8대 9대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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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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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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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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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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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허정무
(1984~1986)
최강희
(1987~1990)
최인영
(1991~1992)
최영일
(1993~1995)
김현석
(199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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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석
(1998)
박정배
(1998~1999)
김종건
(1999)
김상훈
(2000~2001)
정정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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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2003)
조세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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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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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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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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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한문배
(1984)
김광훈
(1985)
박항서
(1986)
정해성
(1987~1988)
최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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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마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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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휘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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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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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2016
파일:2015_아시안컵_로고.png
}}} ||
파일:ㅌㅎ2022-02-12 202906.png
<colbgcolor=#BA0014><colcolor=#ffffff> 이름 곽태휘
郭泰輝 | Kwak Tae-Hwi
출생 1981년 7월 8일 ([age(1981-07-08)]세)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동 (現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1])
본관 현풍 곽씨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코치
신체 185cm, 80kg
프로 입단 2005년 FC 서울
소속 <colbgcolor=#BA0014><colcolor=#ffffff> 선수 FC 서울 (2005~2007)
전남 드래곤즈 (2007~2009)
교토 상가 FC (2010)
울산 현대 (2011~2012)
알 샤바브 FC (2013)
알 힐랄 SFC (2014~2016)
FC 서울 (2016~2018)
경남 FC (2019~2020)
코치 경남 FC (2020 / 플레잉 코치)
청두 룽청 (2021~2022)
국가대표 58경기 5골 (대한민국 / 2008~2017)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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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A0014><colcolor=#ffffff> 병역 병역면제[2]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5번, 4번[3], 16번[4], 23번
전남드래곤즈, 교토 상가 FC, 울산 현대, 경남 FC - 5번
알 샤밥 - 17번
알 힐랄 - 55번
FC 서울 - 55번[5], 2번[6]
종교 개신교[7]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통산 성적
4.1.1. K리그4.1.2. 국가대표팀
4.2. 우승 기록4.3. 개인 수상
5. 플레이 스타일6. 지도자 경력7. 여담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코치. 현재 청두 룽청 소속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파일:226931_gallery.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곽태휘/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3253513.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곽태휘/국가대표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기록

4.1. 통산 성적

4.1.1. K리그

출전 도움 경고 퇴장
229 20 6 28 1

4.1.2. 국가대표팀

연령 출전
U-17 0 0
U-20 0 0
U-23 0 0
A대표 58 5
종합기록 58 5

4.2. 우승 기록

  • 알 힐랄 SFC
    • 킹스컵: 2014
    •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컵: 2015-16
    • 사우디 슈퍼컵: 2015

4.3. 개인 수상

5. 플레이 스타일

선수 시절의 곽태휘는 매우 막강한 피지컬을 보유한 센터백이었다. 꽃미남스러운 외모와 달리 굉장히 터프하고 파워풀한 수비를 했는데, 일례로 2010년 3월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록바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을 정도로 피지컬 하나만큼은 국내 센터백 중에서도 수위권이었다. 여기다 점프력도 엄청난데,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 높이뛰기 선수였을 정도였다고. 이렇게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대인 마크와 제공권 장악에 강점을 보인, 분류하자면 굉장히 영리한 '파이터형 수비수'라고 할 수 있다.



센터백임에도 공격적인 능력도 뛰어났다. 위 영상처럼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딩슛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앞서 말한 영리한 위치 선정과 강력한 몸싸움,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하여 굉장히 높은 타점에서 달려오면서 내리 꽂는 헤딩슛을 보여준다. 울산 현대에서도 철퇴 축구의 한 축으로 세트피스 가담시 무서운 존재감을 발휘했으며, 2011년 울산 현대에서는 9골을 기록해 같은 팀의 공격수인 김신욱보다도 많은 골을 넣어 팀내 최다 득점자였을 정도다.[8] 장면 1 장면 2 장면 3

게다가 꼭 세트피스 상황이 아니라도 공격에 자주 가담하는 편이었다. 오버래핑 식으로 공간이 보이면 직접 공을 몰고 올라와 패스를 뿌리거나, 중거리 슛팅을 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가끔 경기 막판 급할때는 최전방에서 장신 공격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킥력도 나쁘진 않아서 중거리 슛이나 중장거리 프리킥도 제법 많이 차는 파워슛터이다. 이러한 곽태휘의 뜬금포 공격 가담은 2008년 2월 동아시아컵 중국전이 대표적이다. 이날 곽태휘는 역전골을 넣었는데, 뜬금없이 전방으로 올라와 슈팅을 때려 결승골을 넣었다.해당 영상 2분 40초 경부터 이러한 장면들 때문에 골 넣는 수비수라고도 많이 불렸다.

롱패스를 이용한 빌드업도 본래 커맨더형 수비수가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편. K리그 레벨에서는 상위권의 빌드업 능력을 보여줬으며, 이런 특징으로 인해 팬들은 곽테리 또는 곽테라치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상술한 커맨딩 능력과 축구 지능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며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수비 조율 능력과 전술적인 판단력이 많이 향상되면서 마지막 전성기 시절에는 파이터형 수비수에다가 훌륭한 커맨더의 역량까지 갖추게 되었다. 특히 슈틸리케호 시절 우즈베키스탄전에서의 플레이는 백미. 역대 선수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지시를 통한 수비라인 변화 및 조율을 보여줬다. 노쇠화로 인해 신체능력이 떨어진 곽태휘를 많은 감독들이 쉬이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이 때문. 그를 대신할 수비리더는 장현수 였으나[9] 불명예스럽게 대표팀 경력이 끝나버려 아쉬운대로 김영권-김민재체제로 굳혔다.[10]

단점은 강한 피지컬을 보유한 센터백들이 으레 그렇듯 민첩성이 나쁜 편[11]이었다. 최고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지만 단거리를 빠르게 가속하는 능력과 순발력 면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곽태휘는 공격수와의 1:1 상황이나 스피드 경합 상황이 오면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아시아 레벨에서 울산처럼 철퇴를 휘두르며 웅크리고 있는 팀에선 괜찮지만 국가대표에선 아무래도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수비진을 내리고 버티는 전술이 아니라면 발이 빠른 파트너를 붙여 주어 상호 보완하는 게 좋다. 그리고 시력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사각이 있기 때문에 센터백 파트너와 골키퍼가 이 부분을 잘 커버해줘야 한다.

6. 지도자 경력

2020 시즌 강등당한 경남 FC에 잔류하며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21 시즌부터 서정원 감독이 부임한 중국 2부 리그의 청두 룽청에 코치로 합류했다. 그리고 팀 창단 첫 중국 슈퍼리그 승격에 이바지했다. 2022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7. 여담

  •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한쪽 눈을 실명했고, 심지어 축구 선수에게 최악인 평발에다 허리디스크까지 있던 상황에서 국가대표로 50경기 이상을 뛰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후배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어야 할 인물이다.
  • 외모로만 보면 안정환을 잇는 간만의 꽃미남 축구 선수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이미 2006년 11월에 결혼한 품절남이었고 경북 칠곡 출신답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 인터뷰를 들으면 상당히 깬다.
  • 우수한 피지컬, 괜찮은 킥, 웬만한 공격수를 능가하는 결정력 덕분에 공격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인터뷰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에 축구를 시작했던 탓에 공격수고 수비수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본인도 다시 태어나서 축구를 하게 된다면 공격수를 하고 싶다고.

파일:attachment/곽태휘/info.jpg
  • 상당한 아들바보로 알려져 있다. 현역 시절에 틈만 나면 경기장에 아들을 데려와 안고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정도로 아들을 상당히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 야구 선수 이호준과도 친하다고 하는데, 예전 독일에서 재활할 때 만나서 친해졌다고 한다.
  • 부상이 상당히 잦은 편이다. 축구 선수를 시작한 이후 그의 부상 커리어 중 대표적인 것들만 종합해보자면...
  • 1999년(고등학교 3학년) → 왼쪽 눈 실명
  • 2000년(1년 휴학 후 복학한 고등학교 3학년) → 허리디스크. 이후 허리디스크는 곽태휘의 고질병이 되었다.
  • 2004년 (대학교 4학년) → 어깨 부상. 이 부상으로 곽태휘는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 2008년 → 왼쪽 발목 인대 파열(3월),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손상(11월).
  • 2010년 → 왼무릎 내측인대 부분 파열. 월드컵 직전에 전지훈련을 하면서 치른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당시 폼도 나쁘지 않았던 곽태휘였기에 사실상 주전으로 뛸 기회를 잡았던 남아공 월드컵을 바로 코앞에 두고 안타깝게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를 놓쳤다.
  • 2014년 → 왼쪽 발등 부상. 이 부상 때문에 곽태휘는 거의 4개월 동안 실전을 날려 먹었고, 이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결국 본 대회에서는 홍정호김영권에 밀려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사실상 시즌 아웃을 당한 뒤 겨우 복귀한 선수들까지 월드컵에 데려간 것을 고려하면 월드컵 당시 홍명보호의 선수 관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알 수 있다. 참조

파일:/image/139/2015/09/17/SK001_20150916_2704ext04_99_20150917042803.jpg

이처럼 이런저런 부상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예전 본인의 미니홈피에 이러한 여려 역경을 딛고 베테랑 선수로 부상했던 커리어를 생각하면서 상당히 가슴이 찡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 의외의 사실이지만 예전 사우디 최고의 인기 팀인 알 힐랄에서 뛰면서 좋은 활약을 계속 보여주어 사우디 현지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한때, 한국 운동 선수들 중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손흥민 다음으로 바로 2위 였었다. 이후에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조규성, 김민재, 이강인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이들에게 모두 추월당했지만 그래도 당시 인스타그램이 국내에서 지금만큼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 약 60만명 이상의 팔로워수는 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은퇴 이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현재 중국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어 언택트 위주로만 촬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곽태휘 유튜브 태휘날리며. 2021년 8월22일이 마지막 영상이라 더 이상 관리를 안하는것으로 보인다.

8. 관련 문서



[1] 경상북도는 1988년 이전에 대부분의 군에서 읍면의 하위 행정단위로 리 대신 동을 썼다.[2] 고교 시절 왼쪽 눈 망막 파열로 인해 면제되었다. 처음에는 아예 뿌옇게 보였지만, 지금은 이미 적응이 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라고 한다.[3] 2014년 브라질 월드컵[4]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5] 서울 2기[6] 서울 1기[7] 기사. 참고로 기사에 나온 손흥민크리스천이 아닌 무종교로, 종교 자체가 아예 없다. 하지만 경기 전에 기도를 하는 습관으로 개신교 신자라고 잘못 알려져, 현재까지도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8] 세트피스 시 키커한테 사람을 보지 말고 공간을 보고 차라고 하고, 공이 오는 것에 집중한다고 하는데 강력한 피지컬 덕택에 공이 본인 쪽으로 오면 그 공을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헤딩슛 자체가 정말 날카로웠다.[9] 장현수가 매번 까이는 것 같아도, 모든 클럽팀과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그에게 팀 주장직 혹은 수비 리딩 역할을 맡겼다. 축구팬들에게는 몰라도 많은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였음에는 분명한 것.[10] 다행히 김영권이 나이가 들고 노쇠해지더라도 김민재 역시 수비라인 조율과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큰 걱정은 덜어낸 상태다.[11] 100m는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 손흥민도 2013년 이제까지 붙어본 선수 중 누가 가장 어려웠냐는 인터뷰에서 유럽에서는 FC 바르셀로나아드리아누이고, 곽태휘는 수비, 헤딩, 주력을 겸비한 아시아 최고의 중앙 수비수라고 언급했다. 다만 일반적인 장신 센터백들과 마찬가지로 단거리를 빠르게 가속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