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월 1일/11월 9일 ~ 1929년 11월 3일 (향년 28/29세)
1. 개요
대한제국의 시인. 본관은 인천(仁川)[1]. 본명은 양희(樑熙), 아호는 고월(古月). 1920년에 장희(樟熙)로 개명하였으나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사용한 것이 본명처럼 되었다.2. 상세
이장희는 1900년 1월 1일/11월 9일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가 105번지)에서 아버지 이병학(李柄學)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금련(朴今連)[2]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3][4]대남소학교(현 대구종로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대구공립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중학(京都中學)을 졸업하였다.
어릴 적 아버지 이병학이 시인을 부르는 애칭이 꿀돼지, 꿀봉이, 박쥐였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유엽·김영진·오상순·백기만·이상화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가정배경 또한 생모 박금련이 그의 나이 5세 때 출산 도중 사망해 다른 이의 손에 자라야 했고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서기, 통역 관련 일을 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줄곧 끊겼던가 하면, 세 명의 계모와 열두 명의 이복형제들 그 사이의 갈등 때문에 사망할 무렵부터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크게 괴로워했다.[5]
이렇듯 그는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6] 1929년 11월 대구에서 음독자살하였다.
사망 직후,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는 이병학을 백기만·이상화 등 친우들이 겨우 설득해 대구 신암 선산으로 모실수 있었으나 2021년 12월 현재 인천 이씨 대동보에도 그의 흔적은 없으며, 선산에서도 그의 묘는 사라진 상태이니 안타까움을 지울수 없다.
대구에 아직 그의 본가와 그가 방 안에서 금붕어를 그리다 자살한 큰나무하숙집 역시 2019년 8월 기준으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7]
대표작으로 1924년 5월 《금성(金星)》 1호에 실렸던 <봄은 고양이로다>가 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입술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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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입술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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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인 이상화가 그의 본가에서 내놓은 자필 원고를 계산동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나 가택수사 당시 이를 모두 압수당했다.
6.25 당시 납북된 국문학자 이재욱이 그의 친조카이다.
3. 가족[8]
- 증조부 : 이석호(李錫好)
- 조부 : 이경상(李慶祥)
- 부 : 이병학(李柄學) - * 모 : 박금련(朴今連)
- 형 : 이정희 - * 형수 : 김행이
- 조카 : 이재용
- 조카 : 이재욱[9]
- 종조카 : 이정하
- 형 : 이상희[10]
- 여동생 : 인천이씨 - * 매제 : 인천이씨 재학
[1] 공도공파 33세손. 무슨 연유에선지 인천이씨대동보에는 그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2] 박상묵(朴尙默)의 딸.[3] 출생 순서로 이장희가 셋째이다.[4] 아버지 이병학과 생모 박금련 슬하엔 3남 1녀를 두었으며 시인 위로 두 명의 형과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5] 계모 박강자가 11남매를 두었고 그 외의 자녀는 모두 계모 조명희의 소생이다[6] 친일파였던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 큰나무하숙집과 그의 중구 본가는 재개발의 여파로 2021년 5월 철거될 예정이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회에서 보존을 위해 중구청과 대구시와 여러 협의를 거쳤으나 보존은 어려울 듯하다.[8] 부 이병학 - 모 박금련의 직계만 기록하였다.[9] 국문학자, 삼촌인 이장희와 다섯 살 차이.[10] 후사가 없어 조카 이재욱을 양자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