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22:48:49

이재록/사건 사고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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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교단에서 제명 처분3. 무안단물 진위 논란4. 1999년 MBC 습격5. 이단 옹호 논란6. 여성 신도 성폭행 사건7. 수감 중 총회장 선출 논란8. 수감 중 옥중 목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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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민중앙교회 목사이재록의 사건 사고 및 논란들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교단에서 제명 처분

1990년 10월, 이단성 문제로 예수교대한성결교회(약칭 ‘예성’) 교단에서 목사 면직과 제명 처분[1] 당한 후, 곧바로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약칭 ‘예성연합’)이라는 교단을 설립하였다.[2] 1990년 10월 이단 문제로 목사파직과 제명처분을 당한 후에도 교계에서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부흥강사로써 활동하였으며 극동방송기독교방송(CBS) 등에 이재록의 설교가 전파를 타기도 했다.[3] 이후 1998년 8월 신이 자신의 교회에 임재한다고 하여 교계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고 결정적으로 MBC 방송국 난입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교계와 이재록의 공식 교류는 끊어졌다.

3. 무안단물 진위 논란

1999년 2월, 이재록의 고향인 전라남도 무안군에 소재한 만민중앙교회 지교회인 무안만민교회 신도들이 식수가 부족하자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꿔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무안지교회 담임목사 김00 목사(당시 전도사)가 성경을 읽던 중 이재록 목사라면 기도로 짠물을 단물로 바꿀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2000년 3월 이재록을 찾아간 자리에서 함께 식수 문제를 놓고 기도하자 이튿날 짠물이 먹을 수 있는 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물을 무안단물이라고 부르며, 이 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르면 각종 병이 낫거나 쌍꺼풀이 생긴다든지 하는 기적을 일어난다고 교회 신도들은 주장하였다.

하지만 식용불가 처리받은 담수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무안단물 문서 참조. 참고로 이재록 목사의 구속 이후에는 만민측에서도 무안단물에 대해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다.

4. 1999년 MBC 습격

1999년 5월 11일, MBC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은 이날 오후 11시부터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성결교회 문제를 다룬 ‘이단 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 편을 방송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후 10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 진을 치다 사옥 안으로 난입한 신도들에 의해 방송이 5분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날 MBC 본사에 모여든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의 수는 약 2,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200명 정도가 오후 10시 50분께 MBC 사옥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후 일부 신도들이 주조정실 철문[4]을 뜯고 기습, 방송 송출 장비를 부수는 등의 심히 단순무식하게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다. 방송 송출 중단 이후 제작진이 급하게 얼룩말이 등장하는 초원을 찍은 영상을 내보내면서 이 난입 사건은 MBC 동물의 왕국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대의 방송사고로 기록되었다. #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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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단 옹호 논란

1990년 10월, 이재록 목사가 당시 소속 교단이던 예성 측으로 부터 제명되었음에도 한국 교계에서는 이재록 목사를 거부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함께 손을 잡았을 뿐 아니라 CBS등에서 설교 방송을 송출 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목사로 인지되게 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서도 이후 이재록 목사가 완전히 한국교계와 동행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 관계가 끊어진 이후에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재록 목사의 당시 교계사역이나 개신교 라디오 방송[5]이 실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매우 미미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소속 교단으로부터 제명당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매체등을 통해 이단시비가 있었던 목회자임에도 계속 받아주면서 '내 설교가 기독교 라디오방송에 자주 나오는데도 이단이냐?'고 항변할 수 있는 구실을 주었고 #, 이후 이단성이 검증된 이후에도 어떠한 사과도 없는 점은 한국 개신교의 흑역사 중의 하나이다. 특히 CBS의 경우 이재록 목사의 거액후원금과 당시 만민중앙교회 성도들의 선교회원 가입등을 의식하여서 방송국 내부와 청취자들로부터 항의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침묵하였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6. 여성 신도 성폭행 사건

이재록이 행한 성폭행 및 간음사건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면서 이루어졌다.

목회 초기부터 이재록에게는 아내 이복림 원장 외에 그와 늘 함께 같이 다니던 전도사 한 씨가 있었다. 한 씨는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받아 대언하는 대언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항상 이재록과 함께 했다. 그래서 이재록은 자연스럽게 한 씨와 깊은 관계를 행해왔다. 그러다가 찬양팀 소속의 미모의 유부녀 가수 노 모 씨가 이재록의 총애를 받고 관계를 맺자 이를 시샘한 한 씨와 이재록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재록은 심복 목사와 순진하고 어린 남신도들을 시켜 한 씨를 교회에서 쫓아 버린다. 당시 노 씨의 남편도 그 교회의 목사이었으나 이 사실을 알고 이혼하였고, 결국 교회를 떠났다.

쫓겨 나간 한 씨는 방송국에 이재록의 난잡한 추문을 제보하고 이를 MBC 방송사의 PD수첩에서 방송하려고 한다. 1999년 5월 11일, 당시 교회에서는 2주간 부흥성회를 하고 있었고, 저녁 설교 시간에 이재록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강하게 방송국을 비난한다. [6] 예배가 끝난 후 이재록의 속마음을 파악한 총남선교회장은 전체 남선교회 신도들을 불러 여의도 MBC 방송국으로 가서 방송을 저지하라고 지시한다. 버스를 대절하고 성도들이 준비하는 동안, 우선 이재록의 경호원들 다수를 포함한 몇몇 10 ~ 20명의 남성들이 방송국으로 먼저 쳐들어간다. 당시, MBC의 정문에는 1명의 경비만 지키고 있었고, 닫힌 유리문은 바로 밀치고 열어 침입할 수 있었다. 4층으로 올라가 직원을 겁박하고 결국 방송을 중지시킨다. 그래서 동물의 왕국으로 대체되면서 수많은 얼룩말들이 방송되었다. 이때 함께한 사람들 중 다수가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소란으로 결국 약 5천 명의 신도들과 목회자들이 교회를 떠났는데, 상술한 것처럼 구속을 면했던 이재록의 곁에 남아 있던 신도들은 더 열성적으로 이재록을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대언을 하던 한 씨 뒤를 이어 받아 몇 명의 대언자가 교체되고, 이후에 소위 말하는 '쌍둥이 자매 목사'가 그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이들은 비상한 머리로 이재록의 노리개가 될 자매들을 찾아 상납하면서 신임을 얻게 되고 자신들의 입지를 단단히 하기 시작하였다. 쌍둥이 목사가 기존의 한 씨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하게 된 것이다.

쌍둥이 목사가 상납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재록이 당회장으로 있는 만민교회 울타리 내에서 어릴 때부터 성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기 전부터 신격화 과정에 여과없이 노출되어 왔고 그로인해 이재록이 성령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 그럴싸한 논리들과 신비로워 보이는 현상들 또한 이재록을 신격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소 21세기를 사는 현대시민의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이재록이나 만민교회의 흐름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만민교회는 그 생각을 할 기회조차 차단시켜 버렸다. 성령훼방, 거역, 모독을 하지말라는 구절을 이용해 이재록 및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제단인 만민교회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버렸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타 기독교인이 들으면 상당히 분노할 만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욕해도 나중에 회개하면 죄를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면서도 '성령'인 이재록 자신을 욕하면 용서받기가 어렵다고 가르쳤던 부분이다.[7] 이재록을 판단하고 교회를 나간 사람은 암에 걸리거나 비참한 인생을 산다고 주장하며 신도들에게 공포심을 주었다. 그래서 만민교회 신도들은 이재록을 성령이라고 믿었고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세뇌당해 온 피해자들은 더 심했을 것이다. 만민교회 측은 신격화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우고 있다고 한다. 신격화 여부가 재판에 주요한 영향을 미쳐서인 듯.

2018년 11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문성 부장판사)는 상습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록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기사보기

여러 피해 정황과 녹음파일등의 각종 증거들이 나왔고 1심에서 종교계 성범죄 최고형인 15년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신도들은 여전히 굳건하게 이재록을 믿는다고 한다. 교회 측에서 각종 피해 증거들을 신도들이 보지 못하게 강압된 분위기를 조성할 뿐더러 증거를 봐도 성폭행 동영상을 눈으로 직접 봐야 인정하겠다는 신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2018년 11월 27일 쌍방항소하였고, 2019년 3월 6일에 2심 첫 공판이 있었다.

2019년 1월 29일 MBC방송사의 프로그램 PD수첩에서 이재록의 실체를 한번 더 밝혀주었다. 1999년도에도 만민중앙성결교회를 주제로 방송이 제작되어 송출되었지만 성폭행 의혹을 다룬 15분의 영상은 송출되지 못했다. 당시 이재록 측이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재판부는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 관련 내용 15분 가량을 방영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성추문 관련 내용이 만약 1999년에 정상적으로 방송되었더라면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 피해자들은 피해를 안 입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슴 아픈 탄식이 일었다.

PD수첩 다시보기[8] 유튜브 영상

2019년 5월 17일 서울고법 형사11부(성지용 부장판사)는 17일 상습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기사보기 이후 이재록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징역 16년의 형량을 선고한 항소심을 받아들여 징역 16년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뉴스. 그러나 암이 발병하며 건강상태 악화로 인해 3년 5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회복하지 못하고 2023년 12월 31일 사망하였다.

7. 수감 중 총회장 선출 논란

이재록 목사가 예수교대한성결회에서 이단시비로 제명된 후 본인이 세운 교단인 예수교대한연합성결회[9](약칭 예성연합)에서 29차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추대되어 논란이 되었다. #

범죄, 그것도 성범죄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종교 교단의 대표자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교회 측은 "(이재록) 목사님은 억울하시고, 죄가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교회법적으로도 총회장을 해도 문제될 게 없다. 행정은 부총회장들이 하면 된다." 하는 입장을 밝혔다.[10]

8. 수감 중 옥중 목회 논란

만민중앙교회는 아직도 이재록 목사의 말이 곧 근본의 소리[11]라고 믿고 있다.

38주년 기념주일인 7월 26일, 대예배 기도자는 이재록 씨가 ‘근본의 소리 100’을 채우기 위해 옥중 고난을 겪고 있으며 부활체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씨의 옥중서신에 따른 내용이다. 예배 설교도 이씨의 동영상 설교로 대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친필 편지를 보내 수시로 신도들을 단속하고 있다. 지난 12월 25일에는, “봄이나 되어야 뵐 것 같다.”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6년형 확정짓고 복역 중이다. 지난 1월 1일에는 “우리 만민은 주님 오실 때까지 할 일이 많다.”며 새해 인사를 전했다. 최근 교회당 이전문제를 놓고 원로회 측과 권한 대행인 셋째 딸 이수진 사이 분란이 일자, “이수진 목사 사직 및 교회 정상화를 위한 당회장님 의견”이란 제목으로 이재록의 친필 편지가 신도들에게 배포되었다.

“내가 출소할 때까지 이수진 목사 권한 대행으로 교회 전체가 협력하여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성전을 꼭 이룰 것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모두가 하나되어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텐데 분열의 모습을 보여주니 하나님이 너무 섭섭해 하십니다. 수석 부총회장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명을 어길 수 없습니다. 교회 분열은 원수 마귀 사단의 함정입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떤 핑계로든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또한 반드시 재창조의 권능 100으로 부활체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2020년 6월 24일 이재록 친필 서신)#

결과적으로 보면 사망 무렵까지 반성 따위는 전혀 안 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2020년 6월, 여신도 상습 준강간 등 혐의로 징역 16년 형과 피해자들에 12억8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했으며, 2021년 1월에 항소심에서도 피해자들에게 총 10억원대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


[1] 목사 면직은 쉽게 말해 목사직을 박탈한다는 것으로, 목사 사형선고나 같은 기독교 교단에서 내리는 최고의 징계이다. 원칙적으로 목사 면직이 되면, 그것도 이단시비로 인해서라면 소속 교단 정도가 아닌 개신교계 전체에서 매장되는 것이기에 목사로서의 활동은 불가능하다. 파직 후에도 교계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목사로서 활동해왔다.[2] 참고로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는 1988년까지 존속하였던 정통교단의 명칭이기도 하다. 신학교 문제등으로 예성에서 연합측이 분리 되었고 이재록씨가 최초 개척을 할때 가입했던 교단이 바로 이 예성 연합측이었다. 그러다 88년 예성교단과 예성 연합측이 합치면서 예성연합 교단은 사라지게 된다. 이 원조 예성연합과 만민측의 예성연합은 이름만 같지 교리나 추구하는 노선 모두에서 공통점이 없다.[3] 이 설교 프로그램들은 MBC방송국 난입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 되다가 한기총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이재록씨가 이단 판정을 받은 후에야 중단되게 된다.[4]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설명한 바에 의하면 당시 주조정실의 정문은 MBC 출입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나 출입증이 없는 경우에는 청원경찰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열렸다. 그런데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이렇게 보안강도가 강력한 주조정실 정문 대신 당시 아예 쓰지 않고 있었고 잠겨있던 주조정실 폐문을 부수고 주조정실에 진입한 것이다.[5]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케이블TV는 없었고, 중후반 케이블TV가 생긴 이후에도 기독교 채널은 없었다.[6] 하지만 MBC를 쳐들어가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구속을 면한다.[7] 위 두가지를 동시에 말하는 일 없이 따로따로 말했기 때문에 신도들은 저런 모순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해서는 일반 교회와 비슷하게 욕해도 돌이키고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으나 이재록에 관해서는 그를 욕하면 중병이나 재앙이 오고, 회개도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재록 앞에서 무릎 꿇고 바짓가랑이 붙잡으며 눈물콧물 범벅으로 오열하며 회개를 해야 그나마 용서받는다는(...) 이야기는 덤.[8] 시청자 공익 차원에서 로그인 없이 무료로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줬다. 회차를 찾은 뒤 바로보기를 누르면 된다.[9] 과거 이재록이 신학교를 들어갔을 적 교단인 예성(연합) 측 명칭을 따왔다. 예성(연합)측은 이후 성결대학교를 가진 예성(안양)측과 합동(교단을 합침)하여 예성으로 출범했고, 이로부터 1년 뒤 이재록은 교단에서 제명되었다.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류를 하지 않는 교단이니 정상적인 교단인 예성(예수교대한성결교회) 혹은 기성(기독교대한성결교회)과 헷갈리지 말자.[10] 즉 이재록을 총회장에 세운채 임기내내 사실상 직무정지 상태로 두겠다는 것인데 그럴거면 총회장을 왜 선출하는지 의문이다.[11] 근본의 소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나오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소리라는 뜻으로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시 68:33)에서 빌어온 표현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이재록 목사를 빌어서 하시는 말씀을 말한다. 근본의 소리 100이 되면 당회장 이재록목사(교주)가 하는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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