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벽동군 출신 독립운동가
1918년생이며, 평안북도 벽동군 송서면 사서리 출신이다. 1933년 중국에 건너간 뒤 난징의 의열단 간부학교인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를 제2기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의열단의 중앙당 연결 업무를 맡았고, 1936년 2월 민족혁명당 조직 검사국의 직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 훈련반에서 훈련받고 1938년 5월 졸업했다.졸업 후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제2지대레 배치된 뒤 상북 일대에서 활동하다 1940년 남악으로 이동하여 유격 훈련을 마친 뒤 화북지방으로 이동해 유격 임무를 수행했다. 1941년 12월 12일 화북 형태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동지 3명과 함께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이정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또한 2021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출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
2. 고양시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1일 경기도 고양군 둑도면 동둑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11월 경기 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송택영 등이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 조선인해방투쟁동맹에 참여했다. 이후 신숙범, 이이일과 함께 실천부를 맡아 학생,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동지를 모았다.1940년 11월 19일, 임원빈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2대 사상을 연구하고 그 모든 것을 파악하여 실천에 옮기는 연구 그룹에 조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계림공진회를 조직하고 기관지로 공진을 발행했다. 그러나 1941년 초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2년 12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92년 11월 18일 서울에서 사망했으며,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고, 2009년 6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
3. 군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1911년 9월 29일 전라북도 옥구군 구읍면 옥봉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 3월 군산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4웡 경성주 고포정의 천리교 강습소에 입학하여 6개월간 천리교의 강습응 받고 1928년 5월 경성부 숭인동 사립학교 고학당에 중도 입학했다.그녀는 1930년 2, 3월경 경성부 북미창정 65번지 허정자의 집에서 정관진의 권유에 따라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고, 동지 모집을 위래 경성부 정동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생도 조숙현에게 권유하여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내에 독서회를 조직하게 했다.
그러나 고려공산청년회가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1932년 11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이정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출처: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