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6:09:18

이달의 독립운동가

1. 개요

독립기념관에서 1992년부터 독립운동가를 매년 선정하여 공표하는 이달의 인물.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달의 호국인물삼국시대의 인물까지 꽤 광범위한 반면, 이쪽은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로 한정되며, 2013년 7월부터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도움을 준 외국인들도 선정하고 있다. 물론 이달의 호국인물과 겹치는 경우도 많으며, 무장 투쟁이 아니더라도 윤동주, 심훈, 이육사, 한용운, 나운규와 같이 항일 작품을 쓴 예술인들도 독립운동가로서 당당히 등재되어 있다.

2. 1992년

3. 1993년

4. 1994년

5. 1995년

6. 1996년

7. 1997년

8. 1998년

9. 1999년

10. 2000년

11. 2001년

12. 2002년

13. 2003년

14. 2004년

15. 2005년

16. 2006년

17. 2007년

18. 2008년

19. 2009년

20. 2010년

21. 2011년

22. 2012년

23. 2013년

24. 2014년

25. 2015년

26. 2016년

27. 2017년

28. 2018년

29. 2019년[2]

30. 2020년

31. 2021년

32. 2022년

33. 2023년

34. 2024년



[1] 이후 친일로 변절한 사실이 밝혀져 2011년 건국훈장 서훈이 취소되었고 이달의 독립운동가 홈페이지에도 빠졌다.[2] 3.1 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2017년까지 선정됐던 314명 중 국민 참여·포상 훈격·월별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13명을 선정했다.[3]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3인의 의병장. 모두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자들이기도 하며 세사람 전원이 노사 기정진 학파에서 수행한 유림들이기도 하였다.[4] 경상도의 대구 지역에서 학생운동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이다. 전원이 대구사범학교 출신이다.[5]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로 1919년 3.1운동 당시 충청도 당진에서 활동한 세명의 주도자들이기도 하다.[6] 하와이 호놀룰루 이민 1세대 출신의 4명의 인물들로 재미한족 연합위원회의 회원들이기도 하다. 미주지역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였다.[7] 광주에서 활동하던 여고생 단체인 소녀회의 중심인물들인 4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1928년에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독립단체를 조직한 여학생들로 숭의여고의 박현숙을 제외하고 3인은 광주여자보통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이듬해 1929년에 광주학생운동 당시에 큰 활약을 보이기도 하여 부상자 치료 및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데에 큰 힘을 바쳤다.[8] 1926년에 순종이 승하한후에 일어난 6.10만세 운동의 주동자들로 이들은 당시에 각자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계열, 공산계열까지 등등의 여러가지 이념을 가진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9] 1940년대 중국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4인의 독립투사들로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전원이 1941년에 벌어진 전투인 호가장 전투에서 모두 산화하였다.[10]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3인을 선정했으며,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 당시 일장기 말소사건과 연관이 있다. 6.25때 납북된 이길용을 제외하고 2명은 암살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11]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이바지했던 3명의 순수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이며 각각 캐나다와 영국 출신들이다.[12] 수양동우회 및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신 세분의 한글학자를 선정하였다. 일제치하 당시 한글보급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 이기도 하다.[13] 구한말 당시인 1905년에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유서를 남기고 죽음으로써 자결을 선택한 4명의 순국지사들이 선정되었다. 이중에서 1906년에 옥사한 이건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1905년 말경에 스스로 목숨을 끓었다.[14]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3인의 한인 독립운동가 겸 사업가들이 선정되었다.[15] 인요한 의원의 조부이다.[16] 하와이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17] 개성에서 3.1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다.[18] 일본인으로 한국의 독립훈장을 받은 이례적인 사람들이다.[19] 의병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20] 1945년 8월 광복 직전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의 주요 인물들로 의거 장소인 부민관은 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이다. 다만, 이 두 사람과 같이 활동했던 조문기 의사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이었는지 이 명단에 빠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관련 기사, 국가보훈부의 해명(블로그)[21] 그동안 독재 행각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인해 번번히 탈락했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선정되었다.[22] 만주 정의부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23] 부산에서 3.1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다.[24]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에 참여한 사람들이다.[25]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의부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26]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독립을 호소한 사람들이며, 각각 영국과 미국, 프랑스 출신들이다.[27] 독일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다.[28] 이들 부부 모두 광복군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29] 중남미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다.[30] 의병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31] 제주도 주민들에게 일본 제국의 실태를 폭로한 아일랜드 선교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