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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제11대 사장 이희승 李熙昇 | |
<colbgcolor=#0f8184> 출생 | 1896년 6월 9일 |
한성부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 (現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 |
사망 | 1989년 11월 27일 (향년 93세) |
본관 | 전의 이씨[1] |
학력 |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 / 졸업) 중앙학교 (졸업 / 9회) 연희전문학교 (수물과 /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 수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문학전공 / 학사) |
서훈 | 건국공로훈장 단장[2] 수훈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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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국어학자. 본관은 전의(全義)[3]#, 호는 일석(一石)이다. 생전에 이를 독일어에 빗대어 ein Stein - Einstein(아인슈타인)으로 부른 지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초 서울 남산의 선비들에 대한 글인 딸깍발이라는 유명한 수필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2. 생애
1985년 10월 3일 KBS1 <11시에 만납시다> 인터뷰 영상.1896년 6월에 한성부(23부제)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현 의왕시 포일동)에서 이종식(李宗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학교를 전전했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08년 상경하여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였는데, 1910년 경술국치로 폐교되어 3년만에 앞당겨 졸업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였으나 본교생[4]과의 차별과 일본인 교사가 일본어로만 수업하는 것에 항의하여 자퇴하였다.
1912년 양정의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했으나 1913년 조선교육령으로 양정의숙이 폐지되고 양정고등보통학교가 되면서 다시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 낙향하여 무료한 세월을 보내던 중 주시경의 '국어문법'을 읽고 일생의 길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1914년 사립 신풍학교(新豊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중동학교 야간부를 1년간 다녔다. 이어 1918년 사립 중앙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직뉴주식회사(京城織紐株式會社)에 서기로 취직했다가 1919년부터 4년 반 동안 경성방직회사의 서기로 근무했다.
1923년 전문학교 입학 검정 시험에 합격하여, 1925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5]를 졸업하고 30세의 늦은 나이로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들어갔다. 1927년 예과를 수료하고 1930년 법문학부 문학과(조선어학)를 졸업한 후, 1930년 경성사범학교 교유가 되었다가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에 교수직으로 채용되어 한국어와 한국어문학을 강의했다.
1930년에 조선어학회에 들어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및 ‘표준어사정’(1937) 사업에 깊게 관여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서 1945년 8월 17일까지 복역하였다. 석방된 뒤에는 경성대학,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최현배와 함께 한국 국어학계의 주요 학파를 구성하였다. 1963년에 동아일보 사장에 올랐다.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1989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기미독립선언서를 현대 한국어로 국역하였으며, 1961년 민중서관(현 민중서림)의 국어대사전을 편찬하였다.[6] 또한 1978년엔 민중서림의 국어 중사전인 엣센스 국어사전을 감수[7]하기도 했다. 이외에 어학 논문과 문학에 관한 논문인 '인대명사소화(人代名詞小話), 조선어 '때의 조사'에 대한 관견(管見)'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4.19 혁명 당시 시위에 참여하고, 시국선언서에 서명에 참여하였다.
1971년부터 1981년까지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임 중 한한대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3. 기타
- 일반인들에게는 교과서에 실린 수필인 딸깍발이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서강대학교 초대 학장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 신부에게 '길로연'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 국어사전 감수에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대한 지면에 수록된 많은 항목들과 풀이들을 한번 좍 훑어 보고 대충 감수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몇 번씩 꼼꼼히 살폈다고 전한다. 민중서림(구 민중서관)에서 나온 국어대사전 및 엣센스 국어사전의 명성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데에는 이희승이 편찬하거나 이희승에게 감수를 받았다는 점[8]도 한몫했다.
[1] 대사성공파 부사직공파 28세손 "熙"자 항렬이다.[2] 現 건국훈장 독립장[3] 대사성공파 28세손 희(熙) 항렬[4] 이 무렵 관립한성고등학교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본교생이란 편입생이 아닌 한성고등학교로 신입학해 계속 다녀왔던 소위 '적통' 학생을 말한다. 본교생은 갑(甲)반, 외국어학교 일어부 2학년에서 편입한 학생들은 을(乙)반, 영어부에서 편입한 학생들은 병(丙)반이었는데, 병반 학생들은 일본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을반 학생들보다도 훨씬 더 심한 차별을 당했다.[5] 오늘날로 치면 수학과+물리학과[6] 이 당시 국어사전의 편찬, 감수자로는 이희승과 양주동이 유명했다.[7] 이희승이 1989년 작고한 이후에 나온 개정판은 당연히 이희승이 감수하지 않았음에도 민중서림에서는 이희승이 감수한 국어사전이란 마케팅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희승 사후 나온 개정판도 그 전판을 기반으로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후 몇년도 아니고 사후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여러번의 개정이 이루어진 시점에서도 그런다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한다.[8] 초판 및 제2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