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7:27

마수례

파일:마수례.jpg
정체 馬樹禮
간체 马树礼
한국식 독음 마수레
영문 Shuri Ma
생몰년도 1909년 8월 3일 ~ 2006년 7월 19일


1. 개요2. 생애3. 한국 독립운동 지원

1. 개요

중화민국의 정치인.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마수례는 1909년 8월 3일 장쑤성 롄수이현에서 태어났다. 자는 서남(書南), 호는 미보(未甫). 일찍이 일본의 메이지대학 정치학, 외교학과를 수강했으며, 1938년 졸업 후 중국으로 귀국하여 제3전역 정치부 소장 부주임, 상하이 전선일보사 사장 겸 편집장을 역임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에 입법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49년에 국부천대가 이뤄진 후 국민당 인도네시아 총지부 책임자를 역임했다. 그러나 1964년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대만으로 추방되었다.

그 후 국방연구원 교수, 중한청년 반공 동맹회 명회 회장, 유엔 총회 대표단 고문, 중국 방송사 회장, 아동 관계 협회 이사 겸 주일 대표를 역임했으며, 1985년 2월에 국민당 중앙위원회 비서장을 지냈고, 1987년 8월엔 심민주의 통일 중국 대동맹 주임위원을 역임했다. 1988년 국민당 대륙공작지도소조 소집인을 맡았으며, 1988년 8월에 국민당 13기 중앙평의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90년 6월에 국민정부 총판으로 초빙되었고, 10월에 국가통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00년 4월 대륙에 있는 부모의 묘소를 방문해 성묘를 지낸 뒤 대만으로 돌아갔으며, 중화민국 총통 선거 때 국민당을 탈당해 독자출마한 쑹추위(宋楚瑜)를 지지한 뒤 제명 처분을 받을 위기에 몰렸지만 많은 국민당원들이 반대한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그 후 국가 원로로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2006년 7월 19일에 사망했다. 향년 96세.

3. 한국 독립운동 지원

마수례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에 제3전역 정치부 소장 부주임을 맡았다. 그는 대적공작을 담당하면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고 한중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항일전을 수행하는데 공헌했으며, 특히 대적 선전, 정보 수집, 포로 심문을 한인들에게 맡기고 "전선일보"를 간행해 중국 군민에게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1939년 제3전구 이동방송국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독립운동 지원과 항일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했고, 1941년 한국광복군 징모처가 제3전구에 배치되었을 때 장비와 자료들을 원조했고 8.15 광복이 도래할 때까지 광복군의 상하이, 난징, 항저우 일대의 초모 공작을 지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