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동아일보가 | ||||
정식명칭 | 주식회사 경방 |
영문명칭 | Kyungbang Co., Ltd. |
설립일 | 1919년 10월 5일 |
설립자 | 김성수 |
회장 | 김준[1] |
대표이사 | 김준, 김담 |
업종명 | 그 외 기타 소매업 |
상장유무 | 상장기업 |
기업규모 | 중견기업 |
상장시장 | 유가증권시장 (1956년 ~ 현재) |
종목코드 | 000050 |
편입지수 | 코스피지수 KOSPI200 KRX100 |
자본금 | 137억원 (2019) |
매출액 | 2,535억 5천만원 (2019) |
영업이익 | 389억 6천만원 (2019) |
당기순이익 | 222억 2천만원 (2019) |
직원 수 | 266명 (2020.03.31)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중로 15 (영등포동4가)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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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방직업체로 삼양그룹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세운 기업들 중의 하나이다. 매우 오래 전에 세워진 회사이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배울 때 물산장려운동[2]에서 이 회사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조흥은행에 이어 유가증권시장 상장업체 5호다. 현재의 사명인 경방은 경성방직(京城紡織)의 줄임말에서 비롯됐다.[3]2. 역사
1919년에 인촌 김성수가 이강현의 조언으로 도산 위기에 있던 경성직뉴를 인수해서 재설립한 게 기원이다. 초기에는 경영상 적자를 겪었으나 1922년에는 관계사 경성직뉴 산하에 고무공장을 세워 '별표 고무신'을 생산했고, 1923년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공장을 연 뒤 직원을 100% 조선인으로 채우고 방직제품 생산을 개시했으나 일본제 면제품이 독점한 터라 시장진입에 어려움이 생겼다. 이에 따라 우리 풍토에 맞는 제품을 구상하여 농촌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고자 수십번 빨아도 해지지 않고 묵직한 중량 제품을 고안토록 했다. 심지어 상표명에도 1926년 나온 태극성 및 불로초 등과 같이 우리말 상표명을 적극 쓰기도 했다. 아래 사진과 같이 같은 시기에 물산장려운동에도 참여했다.1927년 경성부 황금정 1정목에서 광교로 사옥을 이전한 후 1933년 영등포공장 증축 후 대규모 방직업체로 성장해 일본계 기업과 경쟁했으며, 1939년 만주국에 남만주방직회사를 세운 후 1944년 동광제사 및 중앙상공을 합병했고, 1945년 8.15 해방 이후 경성방직 출신 기술자들은 국내 면방직업 재건에 기여하기도 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며 관리 미숙과 일부 시설 파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영등포공장 일부 시설을 복구해 명맥을 이어갔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 시 상장해 1962년 동일방직과 함께 동인염색공업을 인수한 후 1968년 면제품 판매체인 '경방써비스코너'를 열었고, 1970년 현 명칭으로 변경한 후 영국령 홍콩에 해외지사를 세웠으며, 1974년 경기 용인군에 공장을 세우고 1975년 경방고등공민학교를 열었다. 1984년 경기 안산 반월공장, 1987년 광주공장을 각각 세웠다.
다른 한편 1973년 태평증권, 1977년 새한패시픽 등을 각각 인수하고 1980년에는 경방코너를 독립법인으로 분사시켰고, 1990년 경방어패럴을 세워 패션업에도 진출하고 1994년 8월 31일 '경방필백화점'을 개점해 쇼핑사업에도 진출하고 관련 업무를 경방유통에 맡도록 했다. 같은 해 한강종합유선방송 설립에 참여해 지역 케이블SO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며 계열사들을 정리하며 2001년 우리홈쇼핑 설립에 참여했고, 2003년 경방상사를 합병하고 영등포 복합단지 개발계획 'K-Project'를 추진하며 영등포공장을 폐쇄했다. 2006년 우리홈쇼핑을 롯데쇼핑에 팔고[4] 2007년 (주)신세계와 백화점 위탁경영 20년 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경방필백화점을 폐점했고, 2008년 베트남 현지법인을 세웠으며 2009년에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를 개장했다. 2015년 경방유통을 합병하고 2019년에는 면방업계 사양화에 따라 용인 및 광주공장 생산업무를 중단시켰다.
쇼핑몰 사업이 확대되어 2021년에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역 舊 포도몰에 타임스트림을, 2022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타임테라스를 오픈 했다.
국내에서는 2021년경 부터 방직물 생산을 중단했다. 베트남으로 생산기지 전체를 이전했기 때문이다.# 경방이 과거 한국에서 방직을 생산했다는 흔적은 영등포 구 경성방직 사무동이 거의 유일하다. 2004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 카페로 활용 중이다. 그래도 여타 방직물 회사들에 비하면 꽤 오랜기간 한국에서 생산을 하긴 했었다. 이에따라 한국에서는 타임스퀘어를 운영하는 사실상 쇼핑몰 회사처럼 되었다.
3. 기업정신
1968년에 제정됐다.- 사훈: 인화로 단결하고 창의로 공부하여 책임을 여행하자
- 사가: 작사는 박목월, 작곡은 나운영이 맡았다.
(1절)희고도 깨끗한 실을 뽑아 / 겨레의 자급자족 다짐하던 그 전통 그 횃불이 오늘에도 휘황한 / 보람찬 업적이여 우리의 경방 (후렴)조국에 하늘에 영원토록 / 빛나리 태극성 찬란한 별아 (2절)올올이 정성을 다한 솜씨가 / 빛살로 뻗어가네 바다 너머로 가는 곳 곳곳마다 아름다운 수놓고 / 이름을 떨치리 우리의 경방 |
4. 그룹 회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179e3f><tablebgcolor=#179e3f> | 경방 회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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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대 로고
경성방직주식회사 | |
1919년 ~ 1970년 | 1970년 ~ 현재 |
6. 역대 임원
- 대표이사 회장
- 김용완 (1971~1975)
- 김각중 (1975~2007)
- 이중홍 (2007~2015)
- 김준 (2016~ )
- 대표이사 사장
- 대표이사 부사장
- 김담 (2009~2016)
7. 오너 일가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오너 일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수당 김연수 (1896년생, 1979년 사망)
경방의 제2대 사장이자 삼양사의 창업주. 위에 언급된 김성수의 동생. 그러나 그는 일제 말기인 1939년부터 만주국 명예총영사와 중추원 참의를 맡고 군수업체인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세우는 등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반민특위에 끌려간 흑역사가 있었다. 그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서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나름대로 자기 반성의 글을 썼다.
- 광산 김용완 (1904년생, 1996년 사망)
인촌이 경영하던 중앙고등보통학교(現 중앙고등학교)의 학생(13회 졸업)이었으며 인촌의 막내여동생인 김점효와 결혼하였다. 히로시마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수학 선생으로 근무하려다 김연수의 권유로 경성방직에 입사했다. 1946년에 사장으로 취임하여 1975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6번이나 역임했다.
- 김각중 (1925년생, 2012년 사망)
김용완의 장남이며 서울 중앙고(33회 졸업)와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마쳤다.[5] 고려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1975년에 부친의 뒤를 이어 경방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에 전경련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최초의 부자 전경련 회장 역임 기록을 세웠다.
- 김준 (1963년생)
김각중의 장남이며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박사를 마쳤다. 경방 사장이며 섬유사업을 총괄한다.
8. 지배구조
2023년 4월 기준주주명 | 지분율 |
김담[6] | 20.98% |
김준 | 13.44% |
이매진 | 5.02% |
경방육영회 | 4.78% |
이승호 | 4.42% |
경방어패럴 | 2.70% |
경우회 | 1.87% |
김지영 | 1.79% |
차현영 | 1.48% |
삼양홀딩스 | 10.35% |
수당재단 | 1.14% |
자사주 | 9.12% |
9. 관계사 목록
- 현존
- 경방어패럴
- 이매진
- 경방베트남
- 해산/매각
- 경방기계: 타자기 및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로, 1973년 9월 6일 (주)새한패시픽으로 설립, 1977년 6월 경방기계공업(주)를 거쳐 1989년 3월 경방기계(주)로 상호변경했지만, 2002년 2월 그로웰산업에 인수된 후 '그로웰메탈(주)'로 상호변경, 2002년 12월 그로웰메탈과 그로웰전자로 사업분할, 사업분할시 기존 법인은 그로웰전자가 계승하고, 그로웰메탈을 신규법인으로 설립. 자동차부품 사업부인 그로웰메탈은 2005년 (주)이노메탈, 2015년 (주)삼보오토로 각각 사명변경, 기존 법인이던 '그로웰전자(주)'는 방송 및 무선통신기기를 만들다가 2004년 11월 8일 경영악화로 폐업.
- 경방상사: 구 경방코너. 2003년 본사에 합병됨.
- 경방유통: 2015년 본사에 합병.
- 경방크로바: 1990년 6월 1일 설립, 경방그룹 제품의 판매법인으로서 1999년 12월 지분매각됨. 현재 지폐계수기 등 기계장비 및 관련 물품 도매업.
- 경서기계: 2001년 그로웰산업에 매각 후 '그로웰엔지니어링'이 됐다가 이후 '에이엠엠'을 거쳐 2011년 폐업됨.
- 게이보재팬: 일본 현지법인으로, 2001년 폐쇄됨.
- 중앙염색가공(현 대유에이텍): 1997년 신광산업에 매각됐으나 2001년 거버너스M&A사모펀드1호에 매각돼 '중앙디지텍'이 됐다가 2002년 대유에스텍에 매각됐고, 2004년에 염색가공업에서 철수했다.
- 태평증권: 1980년 한국투자금융에 매각되어 1988년 '한국투자증권'이 됐다가 1991년 한국장기신용은행에 매각돼 1994년에 '장은증권'이 됐으나, 1998년 퇴출됨.
- 한강케이블TV: 서울 영등포지역 케이블SO 사업자로, 2002년 CMB에 매각된 후 'CMB한강케이블TV'가 됐으나 2018년 CMB대전방송에 합병됨.
- 한국콘락스: 일본 콘락스 사와의 합작사로, 2002년 지분매각 후 '케이브이엠'이 됐으나 2005년 폐업됨.
10. 여담
- 김연수가 사장으로 재직 당시 임직원, 종업원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당시 본사 사무실은 을지로입구의 허름한 2층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경영진은 김연수 사장, 최두선 상무, 지배인 곽기현이었다. 경성방직의 초봉은 60원이었는데 순사와 초등교사의 월급이 20원도 못했을 시절이었고 어지간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15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처우가 매우 좋은곳이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삼성,LG등의 대기업을 다녔다고 보면 된다.
- 대한방직협회 내에서 주축 기업이다. 김용완이 대한방직협회를 창설했고 1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아들 김각중, 손자 김준이 회장을 역임했다.
11. 공익사업
- 영등포공장: 경방여자중학교(1984년 폐교) 및 경방여자고등학교(1997년 폐교)
- 용인공장: 경방용인부설여자중학교(1985년 폐교) 및 인경고등학교(2004년 폐교)
- 장안대학 경방분교(2004년 폐교)
- 경방육영회
12. 관련 문헌
[1] 창업자 김성수의 외조카손자로, 김각중의 아들이다.[2]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만주국에 방직회사를 세운 이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전범기업에도 포함되었다.[3] 과거부터 존재한 방직·방적회사들은 이런 형태로 회사 이름을 줄여썼다.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가 세운 전방은 전남방직의 준말이고 옛 충남방적의 현재 이름은 SG충방이다. 또한 부산광역시 진시장 근방을 조방앞이라고 하는데(조방낙지 등으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역시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4] 단, 브랜드 이름만 롯데홈쇼핑이고, 법인명은 그대로 우리홈쇼핑이다.[5] 재학 당시 지도교수는 이회창의 큰아버지인 이태규 박사이다.[6] 김담 외 22인이 60.77%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