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5:04:01

강기운

파일:독립장 약장.png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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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독립장 수훈자 }}}}}}}}}}}}
<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출생 1897년 4월 24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남문밖#
(現 함경북도 회령시)
사망 1944년 9월 5일
함경북도 회령군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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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97년 4월 24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남문밖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음력 4월 간도 화룡현(和龍縣)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제1남부지방 경호부장 장성순(張成順) 휘하의 송언지회(松堰支會) 경호원으로 복무했다. 이후 1920년 7월 말에 장성순의 지휘하에 함경준(咸京俊), 장여극(張汝極) 등의 동지들과 함께 화룡현 사대사(四對社) 증봉동 부근 야산에서 일제의 밀정 이덕선(李德善)을 처단했다.

이후 두만강을 건너 회령군 화풍면 무심동 김형섭(金亨涉)의 집에서 머물며 무심동 주민들로부터 군자금 1백원을 제공받았고, 같은 마을의 허육(許六)으로부터는 별도로 120원의 군자금을 지급받았다. 이어 같은 해 음력 8월 중순에 동료 고진홍, 신언규(申彦奎) 등과 함께 사대사 증봉동 부근에서 일제 헌병 보조원을 지내는 것으로 의심되던 남성률(南聖律)을 심문했지만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풀어줬다.

그러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강기운은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2월 7일에 출옥했고 고향에서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1944년 9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강기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