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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아명 | 권갈례(權葛禮) |
출생 | 1901년 1월 11일 |
평안남도 평양부 대흥면 상수구동 152번지 (現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 | |
사망 | 1988년 4월 19일 (향년 87세) |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종교 | 개신교 (한국기독교장로회)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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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평양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1920년 이후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중국군에 들어가 10여 년간 복무하면서 항일 활동을 계속했다.
2. 일생
좌측부터 차례로 시인 이상화, 권기옥 여사, 이상정 중장.[1] |
1901년 1월 11일, 평안남도 평양부 대흥면 상수구동[2]에서 아버지 권돈각(權敦珏)과 어머니 장문명(張文明) 사이의 1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평양 숭의여학교 졸업반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3주 동안 구류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인 김순일(金淳一)·김정직(金鼎稷)·김재덕(金在德)·임득삼(林得三) 등과 임시정부 공채 판매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 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1920년 8월 광복군 총영의 대한청년단연합회 소속 문일민(文一民)·장덕진(張德震) 등을 도왔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애국 동지들과 접선하기 위한 방편으로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단을 조직, 여자전도대장으로서 전국을 순회·강연하며 비밀 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 경찰에 발각되어 1920년 9월 상하이로 망명, 이승만(李承晩)·안창호(安昌浩) 등을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임정의 추천을 받아 윈난(雲南) 육군항공학교의 제1기생으로 입학[3]하고, 1925년에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후, 혁명 장군 펑위샹(馮玉祥) 휘하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복무하였다. 1927년 장제스의 북벌(北伐) 때 손정방 군을 떠나 최용덕(崔用德)과 동로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총사령부 항공처 항공제2대 비행원이 되었다. 1928년 5월에는 난징에서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같은 해에는 독립운동가 이상정[4]과 결혼했다.[5]
1929년 2월 4일에는 항공서 임시편집위원회 편집위원, 5월에는 항공사령부 항공제2대 비행원, 6월 4일에는 항공서 항공서 항공제1대 상위 관찰사 등을 거쳐 1930년 10월 20일에는 육군 소교[6]가 되었다. 이후 군정부 항공제1대 비행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3년 항공서 계급변경에 따라 육군 중교에서 공군 상위로 변경되었다. 1940년에는 공군 중교에 이르렀으며 중일전쟁 시 중경의 참모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김순애(金淳愛)·방순희·최선화·최애림(崔愛林)·최형록(崔亨祿) 등과 충칭 임정 산하에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 사교부장(社交部長)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광복 후 1949년에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 2년 전에 남편 이상정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6.25 전쟁 시기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귀국 후에는 전 재산을 장학 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의 낡은 목조 건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88년 4월 19일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이후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3. 기타
- 남편 이상정 역시 아내와 함께 펑위샹 군, 그리고 국민혁명군에 복무하며 중국 항공사령부에서 문관으로 근무한 바 있다. 중일전쟁, 임시정부 활동과 광복군 창설에도 아내와 함께 가담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그가 중국에서 머무르며 저술한 여행기와 시조들을 한데 묶은 유고집인 《표박기》는 같은 시기 권기옥 여사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1950년 《중국유기》란 이름으로 발간되었다가, 73년이 지난 2023년 말에 원제 그대로 민속원 출판사에서 재간되었다. 권기옥 여사는 표박기에서 'K' 라는 이명으로 등장한다.
- 이상정은 전후 일본의 연합군 군정사령부의 중국군 사령부 참모로 발령받기도 했으나, 제의를 고사하고 귀국했다. 하지만 곧 뇌졸중으로 안타깝게 요절했다. 최종 계급은 국민혁명군 중장이다.
-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지만, 항공인 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상징성이 있어 공군에서도 교육자료에 꼭 포함시키는 인물이다. 기본군사훈련단 공군사 과목을
졸지 않고이수했다면 들어보았을 이름. - 2009 개정교육과정,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두산 김) 10과 본문에 권기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문의 제목은 "I want to fly"이다. 권기옥의 출생, 어린 시절, 비행사를 꿈꾸었던 계기 등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권기옥의 이야기가 나온다.
- 2020년 초등학교 5-2 국어에 나오는 인물이다.[7]
- 2015년 11월 22일자 골든벨 문제의 정답으로 등장한 바가 있다. 2019년 8월 11일 역사통일 특집 골든벨 47번 문제의 정답으로 재등장했다.
-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때 여성 비행사였던 걸로 알려진 인물로 박경원이 있는데, 박경원의 행보는 권기옥과 정반대로 친일이었다.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청연은 이런 원인과 제작사의 되도 않는 언플로 인해 제대로 망했다. 차라리 이분을 주인공으로 했으면 좋았을것을.. 그러나 청연의 시나리오 작가인 이인화의 평소 행적을 보면, 독립운동가인 권기옥 대신 친일파인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선택하고,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역사 왜곡까지 저지른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계획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중국 국부군 공군에서 중교까지 이르렀는데 중국 국부군 육군 소장(1성장군) 대우였다.
- 2016년 2월, 국가기록원에서 졸업장 등의 기록물을 복원하여 공개했다.
- 2019년 8월 8일 다음웹툰에서 홍혜림 작가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을 소재로 웹툰 "꿈의날개"를 연재하고 있다. 다만 광복 이후 후반이 엄청 날림이라 이거만 봐서는 권기옥의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기 힘들다. 다음 웹툰이 카카오에 합병된 현재는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김한민 감독이 강철날개라는 타이틀 아래 권기옥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제작할 것을 시사했다.
- 권기옥의 사용 기체는 프랑스의 군수회사 꼬드롱(Caudron)의 G.3 복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