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 |||||
<rowcolor=#dca600> 김석진 | 민영달 | 유길준 | 윤용구 | ||
<rowcolor=#dca600> 조경호 | 조정구 | 한규설 | 홍순형 | ||
※ 김석진, 민영달, 조정구는 독립유공자이다. |
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 |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대한제국 판돈녕사사 김석진 金奭鎭 | |
이름 | <colbgcolor=#fff,#222>김석진(金奭鎭) |
출생 | 1843년 |
사망 | 1910년 (향년 67세) |
본관 | 신 안동 김씨 |
자 | 경소(景召) |
호 | 오천(梧泉) |
주요 관직 | 조선 성균관 대사성 조선 형조판서 조선 궁내부 특진관 대한제국 비서원 경 대한제국 궁내부 특진관 대한제국 장례원 경 대한제국 귀족원 경 대한제국 판돈녕원사 대한제국 판돈녕사사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clearfix]
1. 개요
조선, 대한제국의 문신. 본관은 신 안동 김씨.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파 대신 김상헌의 11대손이다.2. 생애
1860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876년(고종 13) 성균관 대사성, 1878년(고종 15) 예조참판, 1884년(고종 21) 이조참판, 1890년(고종 27) 규장각 직제학, 형조판서, 1896년(고종 33)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대한제국 성립 후 1898년(고종 35) 비서원 경, 1899년(고종 36) 궁내부 특진관, 장례원 경, 1900년(고종 37) 궁내부 특진관, 경효전 제조, 귀족원 경, 지돈녕원사, 1901년(고종 38) 장례원 경, 궁내부 특진관, 1903년(고종 40) 판돈녕원사, 궁내부 특진관, 1904년(고종 41) 혼전 향관, 1905년(고종 42) 판돈녕사사를 지냈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고종 43) 1월 을사오적을 규탄하고 의효전 향관의 면직을 청했으나 윤허되지 않았다.
1910년 8월 한일합병 후 일본이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여하자 이를 거부하고 9월 8일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1]이 추서되었다.
[1] 당시 명칭은 건국공로훈장 단장이었다.